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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파원 리포트] 밖에선 “한국, 대단하다”는데

Shawn Chase 2021. 7. 6. 23:26

뉴욕=정시행 특파원

입력 2021.07.06 03:00 | 수정 2021.07.06 03:00

 

 

 

 

 

이웃에 9월 프린스턴대 입학을 앞둔 한국계 고교 졸업생 J가 산다. 명문대에 대한 미국인들의 선망도 우리 못지않아서 “똑똑하고 반듯한 청년”이라고 칭찬이 자자하다. 교포 3세인데 한국말을 똑 부러지게 한다. 이야기를 나눠보니 “한국어를 잊어버리지 않도록 엄청나게 노력했다”고 말했다.

뉴욕의 로펌 임원인 50대 한인 2세 변호사 C는 몇 년 전까지도 한국말을 거의 못했다고 한다. 그는 “위로 올라갈수록 내 뿌리를 당당히 드러내는 게 중요하다는 걸 알았다”면서 1년여간 어린 시절 기억 속에 잠자고 있던 한국어를 되살려내 밤낮으로 읽고 쓰는 연습을 했다고 한다.

요즘 미국의 한국계 부모들은 자녀를 여름방학 동안 또는 주말에 한글 학교에 보내 한국어와 한국 문화를 배우게 하는 게 최대 관심사다. “코로나 팬데믹으로 한글 학교들도 1년 넘게 온라인 수업만 하다 보니 아이들이 한국어를 잊어버리는 것 같다”고 걱정할 정도다. 공공·민간에서 운영하는 한글 학교는 미 전역 1000여 곳으로 10년 전에 비해 두 배 이상 늘었다.

자녀 한국어 교육에 가장 열심인 이들은 역설적으로 본인이 한국어를 제대로 구사하지 못하는 이민 2세들이다. 1970~1980년대 미국에 온 1세대는 자녀들이 철저히 미국 주류 사회에 동화되기를 원해 영어 환경에만 풀어놓았다. ‘일본 식민지’ ‘한국전쟁’으로나 알려진 한국이란 나라는 지워도 상관없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정작 2세들은 한국어를 못하고 한국의 정체성을 잊는 것이 미국 사회의 일원으로 살아가는 데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절감했다. ‘내 자식은 나처럼 반쪽 미국인으로 살게 하지 않겠다’는 생각이 강하다.

 

이런 한국계 미국인들의 자각에 불을 댕긴 건 바로 한국의 국력 성장이다. 경제부터 대중문화·예술, 스포츠, 과학 기술과 학술 등 전 분야에서 한국의 영향력이 커지면서 미국 각 분야에선 같은 수준의 인재라면 한국의 카운터파트와 제대로 소통할 수 있는 사람을 선호하는 경향이 뚜렷하다. 컬럼비아 의대의 한 한국계 의사는 “한국 병원 관계자들과 만나는 자리에서 서툴게나마 한국어로 발표했더니 동료들이 날 보는 눈이 달라졌다”고 했다. 한국어 구사 능력이 곧 기회와 영역의 확대가 된 것이다.

외국에서 느끼는 한국의 위상은 한류 드라마 보기와 BTS 듣기, 김치 먹기 수준 정도가 아니다. 조 바이든 미 대통령이 한국 기업 대표들을 일으켜 세워 “생큐, 생큐”를 연발하기까지 그간 한국 인재들의 기술력과 창조성, 진취성이 얼마나 깊이 각인됐을지 짐작하기 어렵지 않다. 그런데 정작 한국에선 철만 되면 자랑스러운 역사를 두고 ‘깨끗했냐, 정당했냐’를 따지며 진흙탕 싸움이 벌어진다. 밖에서는 도저히 이해되지 않는 일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