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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시간 줄서 먹는 2200원 치즈돈가스, 단돈 ‘1000원의 아침’

Shawn Chase 2015. 7. 12. 01:22

1시간 줄서 먹는 2200원 치즈돈가스, 단돈 ‘1000원의 아침’

[중앙일보] 입력 2015.07.11 00:23 / 수정 2015.07.11 09:43


[세상 속으로] 인기 끄는 학생 식당



요즘 학생식당은 값싸고 맛도 좋아 대학생들에게 맛집 만큼 인기를 누린다. 왼쪽부터 이정혁(21)·천다해(24)·김혜수(24)·이채린(22)·김진철(24)씨.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요즘 대학들은 저마다 뛰어난 ‘학식’을 자랑한다. 학문과 식견을 일컫는 학식(學識)이 아니라 학식(學食), 즉 학생 식당의 줄임말이다. 취업난으로 캠퍼스에 머무르는 시간이 길어진 대학생들의 삼시 세 끼를 책임지는 게 학식이다. 학교 밖 식당 가격이 부담스러운 데다 취업 준비 탓에 잠깐의 시간도 아까운 대학생들은 “학식의 가격 대비 만족도는 최고”라고 말한다. 요즘 온라인 커뮤니티엔 각 대학의 학식 사진이 경쟁하듯 게시된다. 맛집만큼 인기를 끄는 학식의 세계를 들여다봤다.

 ◆수제 돈가스가 2200원, ‘1000원의 아침’도=한국외대 인문관 식당의 치즈돈가스는 SNS에서 큰 화제가 됐고, ‘학식의 전설’이란 별칭을 얻었다. 직접 손으로 고기를 두드려 만들어 웬만한 돈가스 전문점에 못지않게 맛있지만 가격이 단돈 2200원이다. 손이 많이 가는 요리여서 한 달에 한 번 정도만 내놓는다. 식당 관계자는 “치즈돈가스가 메뉴에 오르는 날엔 평소 두 배의 학생이 몰려 전쟁터가 된다. 한 시간 전부터 줄이 생긴다”고 말했다. 카레돈가스덮밥(1800원), 철판볶음밥(2200원), 쫄면(1400원) 등은 가격에 비해 맛이 좋은 걸로 소문이 나면서 타 학교 학생들이 ‘식사 원정’을 오기도 한다.

  이곳은 외부인을 위한 쿠폰을 발행했으나 세법에 어긋난다는 지적을 받은 뒤 원칙적으로는 외부인의 출입을 통제하고 있다. 식당 관계자는 “식권 무인발급기를 들인 뒤 학생증 검사를 하지 않다 보니 외부인을 가려내기 힘들다”며 “한 번은 경희대 로고가 찍힌 점퍼를 입은 학생을 막아섰더니 급히 옷을 벗어 가방에 쑤셔넣고 다시 들어오려는 경우도 있었다”고 말했다.

 세종대 신학생회관 지하 1층에 있는 푸드코트는 멀티플렉스 푸드코트에 버금갈 정도로 다양한 메뉴를 자랑하지만 가격은 절반 수준이다. 소금구이덮밥(3500원), 새우튀김알밥(3800원), 육회비빔밥(4500원), 양념감자 오믈렛(3500원), 돈가스 쟁반국수(4000원) 등 보통 학식에선 보기 힘든 요리가 나온다.

 학기 중 바쁜 날은 하루 2800여 명이 찾을 정도로 인기가 높다. 인근 대학생들이 부러워하는 세종대의 명물이다. 푸드코트를 운영하는 업체 ‘산들’의 지정환 대표는 “옆 학교인 건국대에서도 많이 오고 어린이대공원에 놀러온 중·고교생과 일반인도 찾는다”고 말했다. 세종대생 장준희(25)씨는 “밖에서 비싼 돈을 주고 사먹는 것보다 맛있어 일주일에 서너 번은 여기서 먹는다. 친구들도 학교 밖 식당을 가느니 학식을 가자고 한다”고 말했다.

 학식의 가격만 놓고 따지자면 서울대가 으뜸이다. 서울대 학생회관의 아침 한 끼 가격은 단돈 1000원. 일명 ‘1000원의 아침’이다. 1700원이던 것을 지난 6월부터 700원 내렸다. 아침식사를 거르는 학생들을 위해서다. 단 오전 8시부터 9시30분까지만 운영한다. 8일 만난 서울대 생활협동조합 김태수 실장은 “1000원의 아침이 시작되면서 조식을 먹는 학생이 두 배가량 늘었다”고 말했다. 1000원의 아침을 매일 챙겨 먹는다는 서울대생 강모(25)씨는 “맛이 조금 아쉬운 게 사실이지만 자취생에겐 호평받는 메뉴다. 통학하는 친구들은 운영시간이 짧아 못 먹는다고 아쉬워한다”고 말했다.

 싼 가격에 높은 품질의 요즘 학식, 적자를 면할 수 있을까. 학교나 생협이 운영하는 곳은 적자를 감수하면서 값싸게 음식을 내놓는 반면, 외부 업체가 하는 곳은 박리다매로 이익을 내고 값도 조금 더 비싸게 받고 있었다.

 ◆교직원 식당? 학생이 더 많다=대학생들도 ‘고급스러운’ 식사를 하고 싶을 땐 교직원 식당을 찾는다. 일반 학식보다는 비싸지만 4000~5000원 정도로 크게 부담스럽진 않다. 한양대 생활과학대 건물 7층 교직원 식당은 손님 중 학생이 70%를 차지한다. 한양대생 김은정(23·여)씨는 “맛있는 게 먹고 싶은데 학교 밖까지 나가기 귀찮을 때 교직원 식당을 찾는다. 특히 양식 메뉴가 인기인데 30분만 지나면 동나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양식 메뉴도 코돈블루·하와이안로코모코·오므라이스&깐쇼새우 등으로 다양하다.

 성균관대 옥류천은 교직원 식당이지만 학생 매출이 60% 이상을 차지한다. 이 대학 식당 중 패컬티(faculty·교수집단) 클럽은 1998년 문을 열 당시 말 그대로 교수를 위한 식당이었다. 하지만 학생들의 요청에 따라 성균관대생과 일반인 모두에게 개방했다. 6000원으로 뷔페를 즐길 수 있어 학생들에게 인기가 높다. 서양 요리가 많아 외국 학생들도 즐겨 찾는다. 600주년 기념관 건물에 자리 잡고 있는 데다 패밀리 레스토랑 ‘아웃백’처럼 다양한 음식을 먹을 수 있어 학생들 사이에선 ‘아육백’으로 불린다. 7일 만난 성균관대생 신동해(27)씨는 “학식치곤 조금 비싼 편이지만 배부르게 고급스러운 음식을 먹을 수 있어 돈이 아깝다는 생각은 안 든다”며 “아직도 교수만 출입하는 곳이라 생각하는 학생이 많은 건 아쉽다”고 말했다.

 ◆채식·할랄 … 학식 이색 메뉴=동국대 상록원 안 채식당은 불교종단이 운영하는 학교의 특징을 살려 사찰음식을 내놓는다. 8일 찾은 채식당은 젊은 층은 사찰 음식을 즐기지 않을 거란 선입견과 달리 학생들로 붐볐다. 승려들과 나들이를 나온 일반인들도 눈에 띄었다. 동국대 유재춘 사업1과장은 “건강식을 제공한다는 게 입소문이 나면서 지병이 있는 환자들도 주기적으로 찾는다”고 했다.

 채식이지만 날마다 메뉴가 바뀌고 콩불고기·버섯탕수처럼 육류를 대체할 만한 요리가 있어 채식주의자가 아니라도 먹을 만하다는 평가다. 가격은 7000원으로 학식치고는 고가인 편이다.

 이슬람의 예법을 따른 할랄 음식을 내놓는 학식도 있다. 한양대는 2013년 국내 최초로 학식에 할랄 메뉴를 추가했다. 국제화 시대에 맞춰 무슬림 학생을 위한 식단을 제공키로 한 것이다. 한양대 사랑방 학생식당 배선희 점장은 “비록 무슬림 학생의 숫자가 적지만 이들을 배려하기 위해 할랄 음식을 내놓았다. 한국 학생들도 특별한 경험을 하고 싶을 땐 이곳을 찾는다”고 했다. 성균관대 학식 은행골도 최근 무슬림을 위해 할랄 음식을 고정 메뉴로 추가했다. 할랄 음식은 원재료값이 더 들기 때문에 보통 학식 메뉴에 비해 1000~1500원 비싸다.

 ◆졸업생도 잊지 못하는 전통의 학식 메뉴=공학원 순두부를 뜻하는 ‘공순이’는 연세대생의 오랜 친구다. 현재 연세대 공학원 지하 구내식당 휴나지움의 순두부찌개는 30년 전부터 꾸준히 사랑받는 전통의 학식 메뉴다. 연세대생 김창인(25)씨는 “학교 안엔 주로 기름진 양식 메뉴가 많은데 고급스럽지만 쉽게 질린다”며 “하지만 이 찌개는 투박하지만 쉽게 물리지 않는 매력이 있다”고 말했다. 2013년 원래 운영하던 곳이 폐점하면서 순두부찌개의 명맥이 끊길 위기에 처했지만 새롭게 계약한 휴나지움이 메뉴를 유지해 연세대생과의 인연을 이어나가게 됐다.

 고려대 안에 있는 빵집 ‘고대빵’은 38년간 자리를 지켜 왔다. 이곳은 특이하게도 고려대생보다 외부인에게 인기가 더 좋다. 특히 수능철이면 명문대의 좋은 기운을 받으려는 학부모들이 수능 찹쌀떡을 많이 사간다고 한다. 지난해 연고전에서 고려대가 5:0으로 연세대를 이긴 것을 기념해 나온 ‘오대빵’도 큰 인기를 끌었다.

글=이정봉 기자, 오경진 인턴기자mole@joongang.co.kr
사진=권혁재 사진전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