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제의 이야기들

"누드 그리는 천주교 신부 바로 접니다"

Shawn Chase 2021. 5. 31. 22:36

성골롬반외방선교회 제이슨 미술사목 신부

美시카고서 공부하고 한국행
미술 공부하다 누드화 세계로
"벗은 몸은 속된 것만은 아냐
몸 집중하며 신을 묵상해보길"
정동에서 6월 전시회 개최도

  • 김유태 기자
  • 입력 : 2021.05.30 17:59:20   수정 : 2021.05.30 23:25:03

 

서울 성북구 성골롬반외방선교회에서 만난 제이슨 안티케라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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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지하철 4호선 성신여대입구역에서 2분 거리. 이곳에 성골롬반외방선교회가 있다. 서기 6세기 가톨릭 성인(聖人) 골롬반을 추념하는 곳이다.

그런데 선교회 건물 상층 네다섯 평 남짓한 공간에는 '나체 그림'이 사방 벽마다 한가득이다. 선교회에서 미술사목을 하고 있는 제이슨 안티케라 신부(40)를 최근 만났다. "벗은 몸 그리는 신부라고 이상하다고 보진 말아주세요(웃음). '알몸 회화'는 제게 성서를 되새기는 일입니다."

미국 시카고에서 공부하고 한국에서 봉직하며 이제 유창한 한국어를 구사하는 제이슨 신부의 '누드화 사연'은 7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사제 서품을 받고 페루를 거쳐 2015년 한국으로 발령받은 그는 서강대에서 공부하며 순수미술 동아리 '강미반'에 참여했다. 광주·제주 등지 성당에 머물면서도 '미술로 신앙을 증거하기'를 사명으로 여겼다. 인체화를 만난 건 그즈음이었다.

 

 

 

"처음부터 나체만 그리려던 건 아니었어요. 인체 드로잉을 실습하는데, 누드모델이 들어오는 거예요. 예상하지 못했던 터라 충격을 받았지만 2분 만에 크로키를 그려야 해서 내색도 못했어요. 그런데 어느 순간 알몸이야말로 인간의 원상태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이후 제게 전라(全裸)는 인간과 하느님의 관계를 이해하는 핵심이었습니다."

가톨릭 교리에서 인간은 원죄를 가졌다. 선악과를 먹지 말라는 금기를 어긴 뒤 신의 진노로 인간은 '부끄러움'이란 감정을 신에게 주입당했다. '아담과 그 아내는 둘 다 알몸이면서도 부끄러워하지 않았다'(창세기 2장 25절)는 구절까지 고려해본다면 알몸은 죄악과 부끄러움 이전의 상태였다. 제이슨 신부는 "알몸은 우리가 신의 피조물임을 드러내준다"고 강조한다.

 

 

 

"벗은 몸을 그린다는 건 단지 야하거나 속된 것이 아니예요. 알몸 그림 앞에서 우리는 죄의 이전 세계를 경험하게 됩니다. 제가 그리는 알몸의 모델은 사람이 죄악에 빠지기 전 원래 모습처럼 느껴지고 그 죄 없는 인간은 부끄러움 없이 제 앞에 앉아 있습니다. 사람이 하느님의 놀라운 피조물임을 모든 모델에게서 발견하곤 해요."

많은 사람은 영혼이 몸에 앞서고, 몸의 가치가 낮다고 생각하지만 "몸이야말로 신의 증거"라고 제이슨 신부는 힘주어 말한다. 몸의 긍정을 위해 15세기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이 쓴 '몸의 신학'까지 깊이 공부했단다.

"몸이야말로 중요합니다. 천주교 성찬식인 영성체(communion)에서도 '이것은 너희를 위하여 내어주는 내 몸'이라고 하셨어요. 예수님은 자신의 다른 가치가 아니라 '몸'을 희생하셨고 몸으로써 부활하셨습니다. 또 우리는 영혼이 아니라 몸으로써 사람을 창조하신 신의 형상을 생각하잖아요. 몸의 가치는 결코 낮지 않습니다."

 

 

 

필리핀 네그로스섬에서 태어나 '성인 골롬반처럼' 나그네를 자처한 지 7년째. 제이슨 신부 눈에 한국 사회는 이토록 소중한 '몸'을 학대하고 있는 것처럼 보여 염려스럽다고 했다. "과도한 식습관에 찌든 분들, 외모를 가꾸려 너무 안 먹는 분들 모두 몸을 학대하는 건 아닐까 생각해요. 우리 몸은 물건이 아닌데 극단화하는 게 아닐까요."

제이슨 신부는 윤여정 배우가 출연한 프로그램 '윤스테이'에도 출연했던 유명 인사다. 제이슨 신부는 6월 1~12일 서울 중구 정동길 소재 성프란치스코회수도원 교육회관에서 12점의 누드화 전시회를 연다. 그가 그린 누드화 50여 점 중 엄선했다.

"인체 드로잉은 자신을 투영하는 미술이라고 해요. 인물이 고통스러우면 함께 고통스러워지고 자유로우면 보는 이도 자유로워지니까요. 모델의 존재와 함께 앉아 있는 저는 인간의 약함과 인간성을 더 의식하고 이해하게 됩니다. 제 작품을 통해 우리 몸의 기적을 묵상해보시기 바랍니다."

 

 

 

[김유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