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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밍아웃' 김보미 서울대 총학생회장 "일 잘하는 사람을 뽑아준 거다"

Shawn Chase 2015. 11. 24. 22:26
  • 김지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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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입력 : 2015.11.24 14:42 | 수정 : 2015.11.24 16:18

    서울대 총학생회장 선거 직전 레즈비언임을 밝혀 화제가 된 김보미(23·소비자아동학부 2012년 입학)씨가 86.8%의 높은 찬성률로 23일 당선을 확정했다. ‘국내 첫 동성애자 대학 학생회장’이 된 김씨는 당선 직후 본지와 단독 인터뷰에서 “앞으로 학내 문제 사인이 발생하면 해결하고, 기본권에 대한 공감대를 만드는 것을 최우선으로 하겠다”고 밝혔다.

    김씨는 선거운동 개시 나흘 전 커밍아웃(본인이 동성애자임을 공개함)을 한 것에 대해 “커밍아웃이 이슈를 만들어 당선에 도움을 줬다는 점을 인정하지만, ‘서울대 총학생회장 후보가 일 잘 하는 게 중요하지 레즈비언이건 말건 상관 없다’고 학생들이 폭넓게 동의했다는 것에 당선의 의미를 두고 싶다”고 했다.

    2000년대 학번이 ‘투쟁 총학’ 대신 ‘개인과 자유’를 선택했다면, 이번 선거 결과는 '자신의 사적 정체성을 밝힘으로써 직무를 더 잘 수행하고 사회에 참여할 수 있다는 시민적 자유의 확장판'이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김씨는 이번 선거에 나선 단독 후보이긴 하지만, 서울대 총학생회장 선거에서 얻은 86% 지지율은 매우 이례적이고, 결선 투표 없는 1차 투표 당선 확정은 18년 만의 일이다.

    김씨는 기본적인 인권과 자유를 옹호하는 공약으로 지지를 호소했다. 세부 공약은 ▲학교운영기구에 학생 의결권 요구 ▲학내 성폭력·신체폭력 등 인권 침해 금지 ▲응급치료술·사과문 쓰기를 비롯한 시민으로서 알아야 할 기본 내용을 담은 시민사회교육 활성화 ▲예비군 훈련에 따른 수업 불참을 결석 처리하지 말 것 등이다.

    김씨는 ‘학내 전도(傳道) 제재’ 공약을 내세워 논란을 일으켰다. 그녀는 “종교의 자유는 반드시 지켜져야 한다. 모든 선교를 금지하겠다는 것이 아니라 기숙사 생활공간에 전도인이 들어오지 못하도록 청원 경찰과 협조책을 세우겠다는 의미였다”고 해명했다.

    김보미 서울대 총학생회장이 본지와 인터뷰를 갖고 포즈를 취하고 있다. /박상훈 기자


    김씨는 1992년 경기도 부천 출신으로 2녀1남 중 둘째다. 김씨는 고교 입학 이후 전교 1등으로 성적을 올렸고 서울대 소비자아동학부에 2012년 입학해 올해 부총학생회장(제57대)로도 일했다.

    김씨는 학생에게 성희롱·성폭력을 저지른 두 교수의 퇴진 운동을 올해 8월까지 9개월 동안 이끌며 두 교수 파면이 관철되도록 도왔다. 학생회 산하에 ‘학생·소수자인권위원회’라는 기구도 만들었다. 이 대학 봄 축제 폐막제에서 사회자가 동성애자·외모비하·성차별 발언을 했을 때, 공식 학생 홍보대사 동아리 ‘샤인’이 신입회원 면접 당시 후배들에게 부모의 사회적 지위나 출신지역으로 모욕적인 발언을 했을 때, 사과를 받아내고 재발방지 대책을 마련하는 일을 주도했다.

    김씨는 “학내 장기화된 문제들을 해결하려고 노력하는 모습을 보인 것이 동료 학생들에게 신뢰감을 준 것 같다”고 말했다. 다음은 김씨와의 일문일답.

    ―학교 안팎에서 동성애자의 커밍아웃·당선을 어떻게 받아들였으면 하는가.

    “세상은 조금씩 바뀌고 있다. 내가 최초의 동성애자 학생회장인지는 모르겠고, 확실한 건 처음 커밍아웃을 한 학생회장이라는 점이다. 전국 대학에 60여년간 동성애자 학생회장이 없진 않았을 것이다. 이젠 한국에서도 대학생 세대에서는 커밍아웃을 현실적으로 고민해 볼 수 있는 분위기가 만들어진 것 같다. 한국갤럽에서 지난해 차기 정치 지도자에 대해 조사를 할 때 함께 동성애 관련 인식 조사를 했다. 20대는 92%가 동성애자 취업에 문제가 없다는 반응을 보였고, 60세 이상은 69%가 찬성했다. 이런 결과가 앞으로 올 사회 변화라고 생각한다. 앞으로는 동성애자가 자신이 동성애자임을 밝히고 사회 활동을 하는 사례가 더 많아질 것이다.”

    ―성 소수자 당선에 불안한 시선도 있을 텐데.

    “가장 논란이 됐던 건 학내 개신교 전도 금지 공약일 것이다. 이 공약은 동성애자인 내가 아닌, 주일마다 교회에 나가는 김민석 부총학생회장이 냈다. 현재 서울대에는 학생들이 염증을 느낄 정도로 전도 과잉 상태다. 기숙사 입주 철에 학생들이 이사를 하려고 문을 열어놨을 때, 학교 밖 교회에서 승합차에 교인들을 태우고 와 기숙사 방문에 노크를 하고 들어와 전도한 일도 있었다고 들었다. 이런 경우 외부인이 전도하려 기숙사에 들어오지 못하도록 청원 경찰과 협조하겠다는 공약을 내세운 것이다. 모든 전도를 악으로 규정하고 금지하겠다는 것이 아니다. 긍정적인 것은 서울대기독교연합이 총학과 얘기를 나누는 자리를 만들겠다고 한 거다. 어느 경우에도 종교의 자유는 반드시 존중받아야 한다. 기독교를 탄압하려는 의도는 절대 없다.”

    ―사회적으로 공개된 레즈비언이 됐다. 주변 반응은 어땠는지.

    “아침에 눈을 뜨면 모르는 번호로 부재중 전화와 문자가 수십 통씩 와있다. 대부분 취재 요청이지만 어렸을 때부터 가족끼리 알고 지낸 친구가 보낸 문자도 있다. ‘널 응원하지만 걱정된다’는 내용이다. 부모님은 보수적이지만 익숙지 않은 일도 이해해주시려고 노력하는 분들이어서 감사하다. 커밍아웃하기 전 주말, 집에 네 장의 손편지로 가족들에게 커밍아웃했다. ‘아주 오래 전부터 내가 다른 사람들과 다르다는 것을 알고 있었고 중학교 때 레즈비언임을 확실하게 자각했으며 이제껏 숨기고 사느라 힘들었다’ ‘가족들이 나를 인정해줬으면 좋겠다’고 썼다. 그리고 지난 5일 학교에서 공개적으로 동성애자임을 밝혔다. 처음엔 뒤집어졌다. 공개 커밍아웃을 할 거라고는 말씀드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부모님은 마음이 많이 아프셨다고 했다. 얘기를 좀 더 해보자고도 했다. 아마 대한민국 모든 국민들에게 동성애자가 커밍아웃을 하는 것은 익숙지 않은 사건이다. 부모님도 처음 겪는 일이라 놀라셨을 것이다. 그 후 언니와 남동생이 부모님을 설득하며 날 도와줬고, 부모님도 이해하려 노력하겠다고 하셨다.”

    ―부모님은 이제 변하셨나.

    “어머니가 ‘천천히 여유 있게 생각해보자. 하는 일 지혜롭게 잘 하고, 엄마 아빠 도움이 언제든지 필요하면 말해’ 라고 문자를 보내셨다. 아버지는 평소 무뚝뚝한 편인데 전화를 걸어왔다. 부모님과 장문의 메시지와 장시간 통화가 오갔다. ‘놀라셨죠? 부족하고 완벽한 딸은 아니지만, 부모님이 가르쳐주신 대로 살려고 항상 노력하고 있어요. 중요한 결정의 고비에서 항상 저는 부모님의 가르침을 생각해요. 이번에 제가 생각을 충분히 놀라게 해드린 점 다시 한 번 죄송해요. 그리고 나 자신을 사랑할 수 있는 사람으로 키워주셔서 감사해요’라고 문자를 보냈다. 계속 소통하려고 노력했고 그래서 부모님도 이해하려 노력하시는 중 같다.”

    ―주변 성 소수자들 반응은.

    “평소에 알고 지내던 사람들 중 내게 커밍아웃한 사람이 최근 세 명 있다. ‘언니가 커밍아웃해준 게 힘이 되고 고맙다’고 했다. 내가 처음 커밍아웃을 한 공간은 2012년 대학 1학년 때 인턴을 했던 군인권센터였다. 그 곳에서 활동하는 분들 중엔 성소수자도 있었다. 그러나 자연스럽게 자신에 대해 밝히고 함께 활동했다. 주변 분위기가 바뀌면 용기를 낼 수 있다.”

    ―인터 넷 반응 봤나. 경악·우려 또는 환영으로 나뉘고 있다.

    “젊은 층이 어떻게 보면 나의 당선에 카타르시스를 느낀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부모님 나이대 분들과도 끊임없이 소통하고 싶다.”

    지난 16~19일 치러진 서울대 총학생회 선거의 투표율은 53.3%, 투표 참가자 5명 중 4명꼴로 김씨를 지지했다. 김보미 총학생회장은 12월 1일 임기를 시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