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광일 논설위원
입력 2020.12.08 21:53
문재인 대통령은 어제 12월7일 청와대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이런 말을 했다. “정국 혼란에 죄송”하다, 그러나 “검찰개혁은 마지막 단계”에 와 있다고 했다. 언론은 이 발언을 추미애 법무장관, 윤석열 검찰총장의 갈등에 대한 첫 ‘대국민 사과’라고 해석했다. 물론 대통령은 구체적으로 추미애나 윤석열을 거명하지는 않았다. 추미애의 거취나, 윤석열의 징계는 언급하지 않았다. 또 문 대통령은 내일 12월9일 국회 본회의에서 공수처법을 처리할 것을 촉구했다.
문 대통령은 이렇게 말했다. “방역과 민생에 너나없이 마음을 모아야 할 때 혼란스러운 정국이 국민들께 걱정을 끼치고 있어 대통령으로서 매우 죄송한 마음입니다.” 문 대통령은 말했다. “지금의 혼란이 오래가지 않고 민주주의와 개혁을 위한 마지막 진통이 되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습니다.” 문 대통령은 공수처법 처리 등 ‘제도적 개혁’을 주문했다. 제도적 개혁이란 정권이 바뀌어도 다시 뽑아내지 못하게 확실한 대못을 박아놓고 싶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어떤 진통을 겪더라도 공수처 출범은 반드시 이뤄져야 한다는 점을 강조한 것이다. 시점도 내일 9일 종료되는 정기국회 회기 내에 해야 한다고 못 박았다. 헌법정신과 법치주의를 지켜내려는 윤 총장의 ‘저항’을 ‘진통’이라고 슬쩍 말을 바꾼 것인데, 공수처 출범과 징계위 개최로 ‘윤석열 찍어내기’를 매듭짓겠다고 한 것이다.
문 대통령은 2017년5월의 취임사까지 꺼내들었다. “저는 취임사에서 권력기관을 정치로부터 완전히 독립시키고, 그 어떤 기관도 무소불위의 권력을 행사할 수 없도록 견제장치를 만들겠다고 국민들께 약속했습니다.” “과거처럼 국민 위에 군림하는 권력기관이 없도록 하겠다는 의지였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문 대통령이 절대 깨어날 수 없는 착각이 하나 있다는 점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검찰이 정치로부터 독립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그렇다. 대통령이 검찰을 쥐고 흔들지 말아야 한다. 대통령과 청와대가 검찰 인사에 절대 개입하지 말아야 한다. 대통령과 청와대가 검찰의 ‘살아 있는 권력’에 대한 수사를 방해하지 말아야 한다. 그러면 저절로 검찰은 중립을 보장받고 독립성이 담보되고 국민들로부터 신뢰 받는다. 대통령이 검찰을 쥐고 흔드는 한, 대통령이 검찰총장 찍어내기를 하는 한, 그것이 반복되는 한, 공수처 아니라 ‘공수처 할애비’를 갖다놔도 검찰은 절대 정치권력으로부터 독립할 수 없다.
야당의 비토권을 없애서 공수처장을 자기들 입맛에 맞는 사람으로 앉히려는 법 개정을 밀어붙이고 있고, 그래서 출범도 하기 전에 공수처장을 정권의 하수인으로 만들겠다는 야욕을 거침없이 드러내고 있고, 눈엣가시 같은 검찰총장을 찍어내고 대신 자기네 심복을 갖다 심으려고 하는데, 어떻게 검찰이 정치권력으로부터 독립할 수 있겠는가. 대통령은 국민을 속이고 있는 것이다.
문 대통령은 ‘권력기관을 정치로부터 완전히 독립시키겠다’고 말은 하고 있지만 실제 행동은 검찰을 정치에 ‘완전히 종속·예속’시키고 있고, 공수처란 ‘견제장치를 만들겠다’고 하는데 실제로는 대통령의 ‘충견 조직’을 만들고 있으며, ‘국민 위에 군림하는 권력기관이 없도록 하겠다’고 했으나 실제는 조선일보가 사설에 밝힌 것처럼 “문재인 청와대가 법과 국민 위에 존재하는 무소불위의 권력이라는 점을 분명히 하려는 것”이다. 다시 말해 사실상 대통령이 수사·사법 기구를 완전 장악하는 ‘유사 파쇼 전체주의’로 진입하고 있는 것이다. 대통령의 발언은 완전히 거꾸로 해석해야 비로소 지금 상황과 맞아떨어진다.
문 대통령은 이런 일들의 처음 사달이 됐던 사건들, 그러니까 월성 원전 1호기 경제성 조작 사건, 옵티머스·라임 펀드 사기와 여권 실세의 개입 의혹 사건, 울산시장 선거조작 사건 같은 권력형 비리 의혹에 대해서는 단 한 마디로 언급하지 않았다. 뿌리가 썩어 있는데, 대통령은 나뭇잎만 바꾸겠다고 국민을 호도하고 있는 것이다.
야당에서는 “대통령의 돌격 명령”이다, “전쟁 개시 선언”이나 같다는 반응이 나왔다. 대통령이 정치적 선전포고를 한 것으로 받아들인다는 뜻이다. 김은혜 국민의힘 대변인은 이렇게 말했다. “전쟁 개시 선언이나 다름없다. 검찰총장 징계와 공수처 입법을 반드시 관철하라는 VIP 지시사항이다.”
윤석열 총장은 검사징계법 5조가 “소추와 심판 분리 원칙에 위배돼 있다”면서 헌법 소원을 제기한 상태에 있다. 징계위원이 7명인데, 당연직 두 명은 추미애 장관과 이용구 차관이고, 나머지 다섯 명은 모두 추미애 장관이 임명하고 위촉하는 검사 2명, 외부인 3명으로 돼 있어 사실상 징계위원 전원이 추미애 한 사람이나 똑같은 상황이라는 것이다. 윤석열과 추미애가 경기를 하는데 심판 전원을 추미애가 임명하는 것과 똑같다는 지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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