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광일 논설위원
입력 2020.12.04 19:49
어제 조선일보가 수습기자 아홉 명을 뽑았다. 새내기 후배가 들어오면 수습 기간 중에 선배 기자가 귀에 못이 박히도록 여러 훈련을 시킨다. 그 중 하나가 이런 것이 있다. “한 사람이 죽는다는 것은 우주와 맞바꿀 만큼 사연이 있다는 뜻이다.” 수습 기간 중에 맨 처음 가장 중요하게 맞닥뜨리는 것이 변사 사건, 살인 사건, 자살 사건, 같은 어떤 죽음과 관련된 기사일 때가 많다.
어제 밤 우리는 잠자리에 들기 직전에 아주 충격적인 사건 하나를 접하게 됐다. 더불어민주당 이낙연 당 대표실 부실장 쉰네 살 이모씨가 어제 3일 오후 9시15분쯤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법 인근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경찰은 이씨 스스로 목숨을 끊었을 가능성이 크다고 보고 있다. 이씨는 전날인 2일, 5000억원대 펀드 사기를 벌인 옵티머스 자산운용 측으로부터 금품을 받은 혐의로 서울중앙지검 경제범죄형사부에 소환 조사를 받았다고 했다. 중앙지검은 “이씨는 2일 오후 6시 30분까지 조사를 받은 뒤 저녁식사 후 조사를 다시하기로 하고 나갔으나 소재가 확인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검찰은 이 사람이 옵티머스의 김재현 대표 측으로부터 이낙연 대표의 여의도 사무실 보증금을 받았다는 관련자 진술을 확보하고 수사 중이었다. 또 서울시 선관위는 옵티머스 측이 이낙연 대표의 종로 사무실에 복합기 대여료를 대신 내줬다는 혐의, 그리고 이 대표 사무실에 1000여만원 상당의 가구·집기를 제공했다는 혐의 등으로 이씨를 검찰에 고발한 상태에 있었다. 정리하자면 1) 이낙연의 사무실 보증금 대납, 2) 이낙연의 복합기(인쇄, 복사, 팩스 기능이 다 있는 기계) 대납, 3) 이낙연 사무실에 1000만원 가구 제공 등이다.
이 사람이 해온 일은 정치인 이낙연이 전남 지사를 할 때부터 10여 년 동안 그의 공적인 살림살이를 도맡아 온 집사 같은 역할을 한 것으로 보인다. 이 사람이 걱정하고 있는 비리 혐의가 ‘사무실 보증금, 복합기 대납, 1000만원 가구’, 이 정도 뿐일까. 아니면 이것은 빙산의 일각에 불과할 뿐이고, 국민도 언론도 모르는 더 추잡한 고구마 줄기가 땅속에 묻혀 있는데 검찰이 드디어 손을 대기 시작했다는 절박함에 몰려 있었던 것일까. 어둡고 길고 긴 비리 의혹의 터널 입구에서 검찰이 더 이상 들어오지 못하게 혼자 몸으로 막아선 것일까.
고인이 혼자 짊어지고 가겠다는 뜻일 수 있다. 숨진 이씨는 2014년 이낙연 전남지사 후보 측에게 당비 대납 사건이 벌어지자 그 혐의를 혼자 감당해서 실형을 선고받고 복역까지 한 사람이다. 다시 말해 이낙연을 위해 징역까지 살았던 사람이다. 그런 사람이 이번에는 ‘내가 입을 열면 이낙연 대표는 물론이고, 집권 여당이 무너질 수도 있다’는 절박함 속에서 혼자 모든 것을 떠안고 가겠다는 뜻일 수도 있다.
그러나 많은 국민들은 동의하지 못할 것이다. 이 사람은 올해 쉰네 살이다. 자녀들은 어떻게 하라고, 자녀들보다 더 큰 가치가 도대체 무엇이 있을 수 있다는 말인가, 하는 생각도 든다. 나라를 구하는 일도 자녀의 미래와 맞바꾸려면 쉽지 않은 일인데, 이 사람은 목숨을 버리고 말았다. 그렇다면 도대체 왜 이런 일이 벌어졌을까.
댓글들 중에는 이낙연 대표의 최측근이 극단적 선택을 한 것을 계기로 ‘왜 집권 여당이 라임 사태, 옵티머스 사태에 대한 검찰 수사를 한사코 막으려고 했는지 이제 조금씩 이해가 된다’는 반응이 많았다. 얼마나 구린 데가 많으면 그랬을 것인가, 합리적인 의심들이 폭발하고 있는 것이다. 또 어떤 댓글들은 이모씨가 “극단적 선택을 당했다”는 말로 상황을 이해하려고 했다. 이 사람의 선택은 자신의 선택이 아니라, 그럴 수밖에 없는 절박한 상황으로 몰려서 타인에 의해, 타의에 의해 그 길을 갈 수밖에 없었다고 봐야 한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이 사람을 그런 극단적 선택으로 몰고 간 사람은 누구란 말일까. 누가 이 사람을 극단적 선택으로 몰아세운 것일까. 여러분은 그게 누구라고 생각하십니까.
검찰에 당하는 것이 너무 억울해서 해원(解冤)할 길이 이것밖에 없어서 마지막 선택을 한 것이라고 여권은 말을 맞춰가려고 할 것이다. 그러나 그는 ‘슈퍼 집권 여당’의 당 대표를 모시고 있는 실세 중에 실세라고 할 수 있는 인물이다. 이낙연 대표가 “의탁할 사람은 그 사람밖에 없다”고 했을 정도로 믿었던 사람이다. 어떻게 보면 대한민국에서 억울한 일을 당하고 않고 살아갈 수 있는 몇 안 되는 특권 그룹 중에 한 사람이었다고 추정할 수도 있다. 그런 사람이 목숨을 끊었다는 것은 그야말로 민주당을 충격에 휩싸이게 하고 있는 것이며, 국민들도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이와 함께 어제 나온 큰 뉴스는 문재인 대통령의 지지율이 폭락했다는 점이다. 취임 이후 최저치를 기록했다. 여론조사 업체 리얼미터가 TBS 의뢰로 이번 주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이른바 ‘철벽(鐵壁)’이라는 소리를 듣던 문 대통령의 지지율 40%가 깨져서 취임 이후 최저치인 37.4%를 기록했다. 신문들은 “‘철벽 40%’ 깨졌다”고 대서특필하고 있다. 게다가 민주당 지지율도 30%대가 붕괴됐다. 야당에게 1위 자리를 내준 것이다. 여러 요인이 있겠으나, 조금 비틀어서 말해본다면, 이런 일에 ‘1등 공신’은 추미애 법무장관이다. 추 장관의 헛발질, 안하무인, 막무가내, 위법, 부당, 무리수, 이런 것들이 국민들을 문 대통령과 문 정권으로부터 등 돌리게 만들었다.
특히 문 대통령 지지율은 1)진보층, 2)호남, 3)충청, 4)여성에게서 썰물처럼 빠져나가고 있다. 진보층에게서는 7.8%p가 떨어졌고, 호남에서는 13.9%p가 빠져나갔으며, 충청권에서는 무려 14.9%p가 급락했다. 여성 지지자도 9.1%p가 문 대통령을 떠났다. 여러 신문들 표현대로 “핵심 지지층마저 등을 돌렸다” “진보층·호남마저 이탈했다”고 할 수 있다. 아직은 아니라는 일부 의견도 있지만 많은 평론가들은 “문 정권의 레임 덕이 시작됐다”는 신호탄으로 해석하고 있다.
그런데 어제 문 대통령은 참모들과 오찬 간담회에서 윤석열 검찰총장의 징계 문제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사안의 중대성에 비추어 징계위원회는 더더욱 절차적 정당성과 공정성을 담보해야 한다.” 절차적 정당성이 매우 중요하다는 것이다. 물론 이 말은 이용구 신임 법무차관이 월성 1호기 경제성 조작 의혹으로 고발된 백운규 전 산업부 장관의 변호를 맡은 것으로 밝혀지면서 중립성 논란이 불거지자 그에 대해 대통령이 ‘한 말씀 하신 것’으로 보인다. 대통령은 ‘이용구 차관에게 징계위원장 직무대리를 맡기지 말라’고 사실상 지시를 내렸고, 법무부는 지난 2일에서 4일로 연기했던 징계위 날짜를 다시 10일로 늦췄다.
‘절차적 정당성과 공정성을 담보하라’는 대통령의 지시는 참 뜬금없다는 생각도 든다. 자다가 봉창 두들긴다는 말이 있다. 정말 그런 생각이 든다. 추미애 법무장관이 윤 총장의 직무 정지와 징계 청구를 전격적으로 발표한 날이 11월24일 오후6시다. 그 후 9일 만에 대통령이 ‘절차적 공정성’을 말하고 있다. 어디 달나라 여행이라도 다녀오셨냐고 묻고 싶은 심정이다. 그때는 추 장관의 행태가 말도 안 되는 무리수라는 정말 몰랐을까. 그냥 추미애 장관의 행태를 보고 있다가 대통령이 홀로 불현 듯 깨달았기 때문일까. 아, 내 손으로 임명했고, 내 손으로 해임할 수 있는 검찰총장이지만, 그를 해임하려면 절차가 공정해야 되는구나, 내가 이걸 무시하면 법조인 출신 대통령 맞느냐고 사람들이 비웃겠구나, 이렇게 깨달았을까.
천만에 말씀이다. 비겁한 대통령이 뭔가에 흠칫 쫄은 것이다. 겁을 먹은 것이다. 2100명 검사들 중에 몇몇 정권의 충견들 빼고는 거의 100%가 추 장관과 그의 조종자인 정권의 “위법하고 부당한” 조치에 항거하여 일어섰기 때문이다. 정권이 믿었던 서울행정법원 조미연 판사마저 법치주의의 편에 서서 정권에게 펀치를 날렸기 때문이다. 외부 인사들로 구성된 법무부 감찰위원회마저 만장일치로 추 장관과 정권에게 브레이크를 걸었기 때문이다. 추 장관과 정권의 오른팔 역할을 할 줄로만 알았던 고기영 전 법무부 차관마저 더 이상 오명(汚名)을 남길 수 없었던지 분연히 사표를 던진 것, 등등 이루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법치주의의 양심 세력들이 들고 일어서자 문 대통령이 아차 싶었고, 식은땀이 흐르듯 겁이 났기 때문일 것이다.
여러분은 어떻게 보십니까. 일견 온갖 무리수를 두어온 원인 제공자인 ‘추미애’를 버리고 대신 ‘윤석열’을 지켜보자는 쪽으로 청와대가 분위기를 잡고 있는 것으로 보이십니까. 아니면 ‘윤석열 징계’가 뜻하지 않았던 ‘과속 방지턱’에 세 번이나 턱턱 걸리자 이번에야말로 뒷말 없게, 다시 말해 법원에서 다시 뒤집히지 않게 확실하게 하라고 참모들에게 쐐기를 박는 점심을 먹었다고 보십니까. 왠지 여러분은 확실한 정답을 알고 계실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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