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정치

[최현철의 시선] 말 안 듣는 검찰총장 자르는 법

Shawn Chase 2020. 10. 30. 07:50

[중앙일보] 입력 2020.10.29 00:43 수정 2020.10.29 10:03

박근혜 정부의 첫 검찰 수장인 채동욱 전 검찰총장은 임명도 퇴임도 극적이었다. 출발은 18대 대통령 선거를 한참 앞둔 2012년 하반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김광준 부장검사가 기업으로부터 10억 원대의 돈을 받은 단서가 경찰에 포착됐다. 마침 경찰의 수사권 독립 요구가 거세지던 때였다. 검찰은 재빨리 특임검사를 임명해 김 부장검사를 구속했다. 그러나 연이어 서울동부지검 수습 검사가 피의자와 성적 접촉을 하는 사건이 발생하면서 검찰개혁 요구는 한층 거세졌다.

박근혜 정부, 후보추천위 첫 가동
2년 임기 보장, 버티면 방법 없어
감찰 카드, 더 깊은 수렁 될 수도

 
궁지에 몰린 한상대 당시 검찰총장은 대검 중수부 폐지 카드를 꺼냈다가 오히려 최재경 중수부장의 항명으로 낙마하게 된다. 박근혜·문재인 후보는 경쟁적으로 검찰개혁안을 내놨다. 이때 공통으로 포함된 내용이 중수부 폐지와 검찰총장 후보추천위원회 실질화 공약이다. 후보추천위는 한 해 전 검찰청법에 도입돼 아직 한 번도 가동된 적이 없었다.

 
첫 추천위는 박근혜 대통령이 취임하기 전인 2013년 1월에 열렸다. 박 당선자 측이 밀던 인사들은 모두 떨어지고 김진태 총장대행과 채동욱 서울고검장, 소병철 대구고검장이 최종 후보에 올랐다. 정권 교체 후 첫 검찰 수장을 입맛대로 임명할 수 없게 된 박근혜 대통령은 결국 채동욱을 낙점했다.

 
새 총장이 어느 편인지 모른다는 불안감은 검찰이 국정원 댓글수사를 시작하며 금세 현실이 됐다. 윤석열 팀장이 이끈 수사팀은 정권의 압력에 굴하지 않고 원세훈 전 국정원장과 김용판 전 서울경찰청장을 기소했다. 정권 내에선 더는 같이 갈 수 없다고 판단이 섰지만 마땅한 수단이 없었다. 국정원이 사찰한 혼외자 의혹을 언론에 흘리는 음험한 방식은 이런 구도에서 나왔다. 채 총장은 법무부가 감찰 카드까지 꺼내자 결국 사임했다.

 
이처럼 검찰총장은 임명하는 것만큼이나 해임하기도 쉽지 않다. 국무위원이 아닌데다, 2년의 임기를 법으로 보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임기제 도입 이후 임명된 21명의 검찰총장 중 8명만 임기를 채웠다. 대부분은 조직에 문제가 생겼거나 정권이 바뀔 때 함께 교체됐다. 물론 항의 표시로 사임한 사례도 있다. 김각영 총장은 “검찰을 신임하지 않는다”는 노무현 전 대통령 발언이 나오자 사표를 던졌다. 김종빈 총장은 사상 처음으로 법무부 장관이 수사지휘권을 발동하자 그만뒀다.

 
버티면 정부도 뾰족한 수가 없다는 것을 채동욱 총장은 보여줬다. 당시 정권이 고심 끝에 찾아낸 것이 징계다. 검사징계법상 총장(총장이 대상자인 경우 장관)이 징계심의위에 청구해 받아들여질 경우 견책부터 최고 해임까지 가능하다. 사유는 딱 네 가지다. 정치 운동 참여(출마 포함)와 다른 직업 겸임, 직무 태만, 위신 손상 행위다. 앞의 두 가지는 명백하지만, 뒤의 두 가지는 감찰을 통해 밝혀내야 한다. 채 총장은 여기에서 직을 던졌지만, 정권도 많은 상처를 입었다.

 

 


평등과 공정, 정의를 기치로 내걸고 출범한 이번 정부가 이전과는 다를 것이란 기대는 오래전에 무너졌다. 검찰이 바뀌기 어렵듯이, 권력의 속성도 달라지지 않는다. 검찰개혁의 핵심은 과도한 권한을 분산시키는 것이다. 그런데 임기 중 두 번째 총장에 검찰주의자 윤석열을 앉히고 측근을 대거 기용하는 기형적인 인사도 용인했다. 적폐 수사에 대한 보은이었다. 결과는 조국 수사였다. 정권 후반부 권력 비리 수사로 거악 척결이란 명분도 얻고, 존재감도 과시하는 이전 검찰의 공식 그대로다. 후임 추미애 장관이 나서 수사지휘권을 발동해 봤지만, 윤 총장이 알아서 나가주는 일은 벌어지지 않았다.

 
추 장관은 국정감사 기간에 총장에 대해 감찰을 하겠다고 밝혔다. 이전 정부에서 썼던 마지막 카드지만 약발이 들을지는 미지수다. 윤 총장은 채 전 총장의 낙마 과정을 곁에서 생생하게 목격한 경험이 있다. 대처법을 안다는 얘기다. 내내 침묵하다 이번 국감에서 작심 발언을 쏟아낸 것이 그 단면이다. 두 차례 발동된 수사지휘권에 대해 윤 총장은 위법·부당하다고 지적했다. 지금 참고 있지만 여차하면 법원으로 끌고 갈 수도 있다는 속내다. 더구나 옵티머스나 라임 사건 관련 감찰은 현재 진행 중인 수사여서 영향을 미치는 것을 금지한 규정에 위반된다는 지적이 많다. 이렇다 보니 징계가 청구되더라도 해임이라는 결론이 나올지 의문이다. 억지로 결론을 낼 수 있겠지만 이후 정권은 더 깊은 수렁에 빠질 수밖에 없다.

 
이 어려운 길을 굳이 가겠다는 것이 추 장관의 고집인지, 친문 핵심세력의 의지인지, 아니면 대통령의 뜻인지는 알 수 없다. 다만 이 길이 집권 말기를 향해 가는 현 정권에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점은 분명하다.
 
최현철 논설위원

[출처: 중앙일보] [최현철의 시선] 말 안 듣는 검찰총장 자르는 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