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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 전 '이날'] '아시아의 물개' 조오련이 대한해협 횡단 직후 한 말은...

Shawn Chase 2020. 8. 12. 19:40

송윤경 기자 kyung@kyunghyang.com

수정2020-08-12 15:25입력시간 보기

 

1960년부터 2010년까지 10년마다 경향신문의 같은 날 보도를 살펴보는 코너입니다. 매일 업데이트합니다.

1970년 방콕에서 열린 아시안게임에서 400m와 1500m자유형에서 아시아신기록을 세워 금메달을 딴 고 조오련 선수 | 경향신문 자료사진

■1980년 8월12일 조오련 선수가 대현해협 횡단 직후 한 말은…

‘아시아의 물개’ 고 조오련 선수를 기억하십니까. 그는 1980년 최초로 대한해협 48㎞를 헤엄쳐 건너는 데 성공했는데요, 40년 전 오늘(8월12일) 한국 언론이 앞다퉈 이 소식을 보도합니다. 경향신문 역시 7면·8면에 4개의 꼭지로 그의 도전기를 다뤘습니다. (참고로 인쇄매체인 신문은 소식이 하루 늦을 수 밖에 없습니다. 조오련 선수가 대현해협 횡단을 성공한 날은 1980년 8월11일입니다.)

“조오련은 11일0시5분 부산시 서구 다대포 앞바다를 출발, 대한해협 48㎞를 13시간16분10초만에 헤엄쳐 일본의 대마도서 북단 사오자끼(도기) 등대에 11일 하오1시21분 10초에 도착했다. 조오련은 해변에 도착하는 순간 두 손을 번쩍 치켜들어 ‘대한민국 만세’를 부른 뒤 ‘대한남아의 용기와 기상을 발휘할 수 있어 기쁘다. 지금까지 물심양면으로 도와주신 부모님과 국민들에게 감사하다’고 말했다.”

경향신문 자료사진

당시 보도에 따르면 조오련 선수와 그의 트레이너 차동석씨는 횡단에 걸리는 시간을 18시간 정도로 예상했다고 합니다. 대한해협의 밀물, 썰물에 의한 거센 조류, 대마도 앞바다를 가로지르는 급격한 해류 등을 감안해 계산한 결과 그 정도는 걸릴 것이라 예측한 겁니다. 그런데 의외로 밀물을 만나 속력을 높일 수 있었고 13시간만에 횡단을 이뤄냈다고 합니다.

하지만 ‘행운’만 따랐던 것은 아닙니다. 강한 해류에 근육마비를 겪어, 15분간 서서 헤엄치며 몸을 풀어야 했다고 합니다. 또 영양분 섭취를 위해 죽을 장대로 받아 빨아먹으며 수영하기도 했다고 하네요. 수중 스피커로 음악을 들으며 지루함을 달랬다는 점도 재밌습니다.

“조오련은 부산을 출발한 지 1시간 만에 밀물을 만나 1시간에 7.8㎞나 나가는 놀라운 속도를 보였다. 그는 상오 11시40분쯤 사오자끼 북단에서 강한 북동해류를 만나 왼쪽팔에 가벼운 근육마비까지 일으키는 위험한 고비를 15분 동안 서서 헤엄치면서 마사지로 몸을 풀어 위기를 넘겼다. 조오련은 3척의 배가 상어떼의 습격에 대비하여 이끄는 길이 10m, 폭 5m, 깊이2m의 쇠그물 안에서 헤엄쳤다. 조오련은 매시간 잣·쇠고기·어간·쌀겨·비타민·소화제 등을 섞어 만든 영양죽을 비닐봉지에 넣은 것을 장대로 받아서 수영하면서 빨아먹었고 수중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디스코 음악을 들으며 지루함을 달랬다.”

■‘아시아의 물개’ 조오련은 누구인가

조오련 선수는 전남 해남읍 학동리에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마을 뒤편의 강곡저수지에서 수영하는 것을 무척 즐겼다고 합니다. 중학교 졸업 후 무작정 상경한 그는 YMCA 실내 풀장을 서성이다가 장현숙·원종훈·정일룡 등 3명의 은인과도 같은 후원자를 만나게 됩니다. 이후 그의 실력은 크게 향상돼, 1970년 방콕아시안게임에서 2관왕(400m·1500m 자유형)이 됩니다. 이때부터 그는 언론의 큰 관심을 받게 됩니다. 4년 후 열린 테헤란 아시안게임에서도 같은 종목에서 금메달을 획득해 2연패를 달성했습니다. 그는 은퇴할 때까지 50여개의 한국 신기록을 세웠습니다.

대한해협 횡단은 은퇴 이후 시작한 ‘바다를 향한 도전’이었습니다. 1982년에는 도버 해협을, 2003년에는 ‘한강 600리’를 헤엄쳐 건넜습니다. 2005년에는 아들과 함께 울릉도에서 독도까지 93㎞에 이르는 거리를 횡단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2008년에는 독립선언문의 33인을 기려, 독도 33바퀴를 돌기도 했습니다. 그는 30살에 성공했던 대한해협 횡단을 60살인 2010년에 다시 도전하려 했습니다.

하지만 조오련 선수는 2009년 57세의 나이에 갑작스럽게 심장마비로 숨지고 말았습니다. 당시 보도에 따르면 그에게는 독도 33바퀴 헤엄과 대합해협 횡단 재도전 준비 때문에 1억원의 빚이 있었다고 합니다.

그의 끝없는 도전은 1980년대 사회적 격랑을 헤치며 살아가야 했던 한국인들의 시름을 잠시나마 덜어주었습니다. 한국 수영의 큰 별이었던 고 조오련 선수. 그의 도전정신과 열정은 오래도록 기억될 것입니다.

<송윤경 기자 kyung@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