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의학

태풍과 바람에 대한 지식 1편5호 태풍, 그대 이름은 ‘장미’

Shawn Chase 2020. 8. 8. 00:15

2020년 8월초에 발생한 4호 태풍 ‘하구핏’은 필리핀이 붙인 이름이다. 5호 태풍이 발생하면 그 이름은 ‘장미’가 될 것이다. 가시 돋친 장미가 될지, 어여쁜 장미가 될지….

 처음 태풍에 이름을 붙여 예보하기 시작한 것은 호주의 기상 예보관들이었다. 그들은 익살스럽게도 태풍에 자신이 싫어하는 정치가의 이름을 붙였다.

  “일기 예보입니다. ‘윌슨’이 엄청난 재앙을 일으킬 것 같군요. ‘윌슨’에게 피해를 입지 않도록 모두 주의하세요.”

  2차 세계대전 이후 미 공군과 해군의 예보관들은 정치가 대신 자신의 아내나 애인의 이름을 붙였다. 사라(SARAH), 베라(VERA), 낸시(NANCY)…. 모두 여성 이름이다.

  “여자가 태풍이면, 남자는 산들바람이야? 기가 막혀!”

우주 정거장에서 촬영한 태풍 마이삭(MAYSAK, 2015.03.31) ⓒ NASA

 

  1978년 이후부터는 한동안 남녀의 이름을 번갈아가며 사용하다가, 2000년부터는 세계기상기구 태풍위원회(UN/ESCAP WMO Typhoon Committe)의 14개 회원국이 10개씩 제출하여 만든 140개의 이름을 순차적으로 붙이고 있다. (회원국 중 13개국은 아시아 국가이며 나머지 하나는 미국인데, 미국령 괌(Guam) 섬이 아시아의 태풍 지역에 위치하고 있다.)

  담레이(코끼리)나 콩레이(산 이름)는 캄보디아가, 펑선(바람의 신)과 텐무(번개의 여신)는 중국이, 시마론(야생 황소)이나 하구핏(채찍질)은 필리핀이, 손띤(신화 속의 산신)과 짜미(장미과의 나무)는 베트남이 제안한 이름이다. 일본이 제출한 덴빈(천칭자리), 야기(염소자리), 우사기(토끼자리) 등은 모두 별자리에서 이름을 따왔다.

  태풍의 이름 중에는 한글로 된 것이 20개로 제일 많다. 남한과 북한이 각각 열 개씩 제출했기 때문이다.

 개미, 제비, 나리, 너구리, 장미, 고니, 미리내, 메기, 노루, 독수리 / 기러기, 종다리, 도라지, 버들, 갈매기, 노을, 무지개, 민들레, 메아리, 날개

 이들 스무 개의 한글 이름 중에 순우리말이 아닌 것이 하나 있는데, 국어사전을 찾아보며 우리말을 공부하는 것도 재미있다.


환생 태풍, 퇴출 태풍

  통계에 따르면, 태풍은 1년에 약 26개 정도 발생한다. 따라서 미리 준비해 둔 140개의 이름을 순서대로 붙이면 5년 후 바닥난다. 그래서 과거에 수명을 다하고 스러져간 태풍 이름을 다시 사용하게 되는데, 태풍의 입장에서는 환생인 셈이다.

  예를 들면 2004년 9호 태풍 곤파스, 2010년 7호 태풍 곤파스, 2016년 11호 태풍 곤파스는 이름은 같지만 발생 연도는 다른 동명이풍(同名異風)이다.

  앞서와 달리, 영구 제명된 태풍도 있다.

  2003년 14호 태풍 매미는 심각한 피해(한국인 사망 · 실종 132명, 이재민 6만 명, 재산 손실 4조 7천억 원)를 입혔기 때문에 퇴출당하고, 무지개라는 새 이름이 명단에 올랐다. 같은 이유로 2005년 14호 태풍 나비는 독수리로 개명되었고, 2013년 1호 태풍 소나무는 필리핀과 말레이시아에 큰 피해를 입혔기 때문에 종다리로 대치되었다. 이 밖에도 와메이, 차타안, 루사, 봉선화, 코도, 임부도, 수달, 팅팅, 맛사, 모라꼿 등 여러 이름이 삭제된 바 있다.

  태풍은 강풍과 폭우를 동반하기 때문에 위험하지만, 꼭 나쁘기만 한 것은 아니다. 더위를 식혀주고 가뭄을 해소하며, 저위도의 열을 고위도로 운반하여 위도에 따른 온도 차를 줄인다. 또 대기를 깨끗하게 정화하고, 바닷물을 뒤섞어 바다 생태계에 활력을 제공한다. 1994년 13호 태풍 더그, 2015년 9호 태풍 찬홈은 가뭄 해소에 큰 역할을 했기 때문에 ‘효자 태풍’이라는 칭찬을 듣기도 했다.


태풍, 허리케인, 사이클론

  초속 17미터 이상의 바람을 동반한 열대 저기압을 *태풍(颱風, Typhoon)이라고 한다.

  *세계기상기구(WMO)는 풍속 33m/s 이상의 바람이 불 때 태풍(Typhoon), 17m/s 이상의 바람이 불 때는 열대성 폭풍(Tropical Storm)으로 분류한다.

  한국 기상청은 태풍을 강도에 따라서 5단계로 구분하고 있다.
  태풍 중심 부근의 최대 풍속(10분 평균)이 초속 25미터 이하이면 약(-), 초속 25미터 이상이면 중(normal), 초속 33미터 이상이면 강(strong), 초속 44미터 이상이면 매우 강(very strong), 초속 54미터를 넘으면 초강력(super strong) 태풍으로 본다.

(참고: 국가태풍센터, typ.kma.go.kr)

 

초강력 태풍은 취약한 건물을 무너뜨릴 만큼 강한 위력을 지니는 데, 초강력 계급은 2020년 5월 15일부터 신설된 기준이다. 이는 지구 온난화에 따른 수온 상승으로 인해 위력이 엄청난 태풍이 발생할 가능성을 염두에 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태풍을 뜻하는 타이푼(Typhoon)은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괴물 타이폰(Typhon)에서 유래한 것으로 보는 견해가 일반적이다. 타이폰은 강력한 불을 뿜어내는 용이었으나, 제우스에 의해 제압된 후 폭풍우만 일으킬 수 있게 되었다고 전해진다.

제우스와 타이폰의 전투 ⓒΚοινό Κτήμα

  

  그런데 ‘태풍’이라는 용어는 동아시아 지역에서만 사용하는 이름이기 때문에 그리스 신화와 연관을 짓는 것이 무리라고 보는 견해도 있다. 문헌을 연구하는 학자들은 한자어 ‘태풍(颱風)’, ‘대풍(大風)’ 등의 고증 자료를 통해 용어의 기원을 추적하기도 한다.
 
  동태평양과 대서양에서 발생하는 태풍은 ‘허리케인(Hurricane)’이라고 불린다. 이 용어는 폭풍의 신을 뜻하는 스페인어 ‘우라칸(huracán)’에서 기원했다고 알려져 있다.

  아시아와 아메리카 지역을 제외한 인도양, 남태평양, 남대서양에서 발생하는 태풍은 모두 ‘사이클론(Cyclone)’으로 불린다. 이것은 회전하는 저기압(cyclone)이라는 뜻을 지니고 있어서 학문적인 용어라고 할 수 있다. 2000년대 초반까지는 오스트레일리아 근처 남태평양에서 발생하는 태풍을 윌리윌리(Willy-willy, 원주민 언어로 공포라는 뜻)라고 따로 지칭했었지만, 근래에는 이 지역의 태풍도 사이클론으로 통칭하고 있다.

 신규진 ≪최고들의 이상한 과학책≫, ≪너무 재밌어서 잠 못 드는 지구의 과학≫, ≪지구를 소개합니다≫ 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