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의학

[만물상] 무서운 장맛비

Shawn Chase 2020. 8. 4. 20:53

조선일보 

입력 2020.08.04 03:18

어제(3일) 새벽 3시 30분쯤 장대비 소리에 깼다. 심상치 않아 둘러보니 부엌 창호 위쪽 틈에서 비가 새고 있었다. 수도꼭지를 약하게 틀어놓은 것처럼 줄줄 흘렀다. 급한 대로 조치를 했지만 어수선한 아침을 보냈다. 외벽을 나무로 붙인 집인데 나무벽이 속으로 삭은 것 같았다. 지붕엔 처마를 설치해 비를 막아야 하는데 처마 없는 지붕으로 지은 구조적 취약점 때문이었다.

▶한옥 지붕의 추녀는 멋을 내려 한 게 아니라 비에 젖은 기둥이 햇볕을 쉽게 받게 하려고 하늘로 고개를 들어 올린 것이라는 설명을 건축가 유현준 교수 책(어디서 살 것인가)에서 읽었다. 장마철엔 땅이 쉽게 물러버린다. 기둥이 물에 닿아 썩지 않게 주춧돌을 놨고, 기둥이 비에 젖지 않도록 서까래를 늘려 처마를 만들었다. 그런데 지붕 코너 부분은 서까래가 대각선 형태여서 길어질 수밖에 없다. 그대로 두면 나무 기둥에 그늘이 생겼고, 이걸 해결하려 처마를 들어 올렸다는 것이다. 건물이 기후 조건에 맞춰 진화한 것이다. 

▶미국 환경저널리스트 신시아 바넷이 '비(Rain)'라는 책에서 목욕이나 수영 후 물속에 오래 있다 나오면 손가락이 물에 불어 대추처럼 쪼글쪼글해지는 현상에 대해 설명했다. 얼핏 피부가 물을 흡수해 부풀어오르면서 주름이 생긴 것으로 보인다. 사실은 수백만년 전 열대우림에 살던 인류 조상이 빗속에서 뭔가를 붙잡을 때 미끄러지지 않도록 빗물에 젖으면 자율신경계가 작동해 손가락에 주름이 생기게끔 진화했다는 것이다. 신체 역시 비에 적응해 진화한다.

▶지난달 28일 공개된 환경부 작성 '한국 기후변화 평가보고서'를 보면 한국 도시들은 최근 30년간 여름철 강수량이 뚜렷하게 증가해왔다. 앞으로도 같은 추세로 갈 것이다. 한 번에 내릴 수 있는 가능최대강수량이 전엔 915㎜였는데 2100년엔 1030㎜까지 늘어난다는 것이다.

▶1998년에 이어 올해도 양쯔강 대홍수와 한반도 폭우가 함께 찾아왔다. 1998년 8월 양쯔강에선 100군데 넘는 제방을 일부러 폭파해 본류 홍수를 막아야 했고 수백만명이 '인간 제방'으로 나섰다. 거의 같은 시기에 지리산 기습 폭우로 80명 넘게 숨졌고 수도권에선 하루 330㎜ 폭우가 쏟아졌다. 전문가들은 이런 기상이변을 기후변화 탓으로 본다. 기후변화는 강력한 관성(慣性)을 갖는다. 앞으로 어떤 대책을 취해도 일정 수준 피할 수 없다. 그렇다면 미리미리 건물 구조나 도시 인프라 배치 등에서부터 난폭해질 날씨에 대비한 설계를 해야 한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20/08/03/2020080303641.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