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보라·이창준 기자 purple@kyunghyang.com
입력 : 2020.08.02 17:17
1~5평 거주자들이 지난해 11월 인터뷰에서 자신들이 꿈꾸는 집의 모습을 포스트잇에 담았다. 인터뷰 내용을 토대로 정리해 집 모양으로 만들었다. 김기남 기자
프리랜서 권지웅씨(32)는 현재 33㎡(10평) 정도 되는 방 두 칸 빌라에 8000만원짜리 전세로 살고 있다. 성인이 된 이후 현재까지 11번 이사를 한 그는 자신을 ‘떠돌이’ 같다고 표현했다. 권씨는 그동안 정부의 부동산 정책이 ‘빌려 쓰는 사람들의 주거불안을 방치해왔다’고 생각했다.
지난달 31일 개정 주택임대차보호법(전·월세상한제, 계약갱신청구권제)이 시행된 후로는 “‘세입자 중심의 정책이 시작됐다’는 신호를 받았다”며 만족하는 편이다. 계약갱신청구권이 도입돼 최소 4년간은 안정적으로 집에서 살 수 있다는 점이 장점으로 보였다. 권씨는 2일 말했다. “원래는 가구를 사거나 집을 꾸미고 싶었지만 이사가 잦아 그러지 못했어요. 이젠 한번 해볼 수 있지 않을까요.”
직장인 이동욱씨(28) 생각은 다르다. 경기 성남시의 1억7000만원짜리 전세 오피스텔에 거주 중인 그는 내년 결혼을 앞두고 전셋집을 알아보고 있다. 개정 임대차법 시행으로 전세 매물이 줄어들까 걱정이다. 이씨는 “규제가 심해지면 임대인이 전세를 내놓을 이유가 없지 않나. 내가 집주인이라도 전세 대신 월세를 받을 것 같다”며 “결국 갈 곳 없는 임차인만 부담이 커질 것”이라고 밝혔다. 이씨는 말했다. “주거안정성 측면에서 4년으로 보장기간을 늘린 건 좋지만 임대료 상승 제한을 없애고 수요·공급에 따라 맞추는 게 오히려 세입자 부담을 줄일 수 있지 않을까요.”
개정 임대차법을 두고 시민들의 다양한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임대인은 임대인대로, 임차인은 임차인대로 입장이 다르다. 청년 세입자들은 임대 보장기간이 기존 2년에서 4년으로 늘어난 것은 대체로 환영했다. 하지만 임대 보장기간 연장과 갱신 시 임대료 5% 상승 제한으로 전세 매물이 줄어들거나 새로 계약하는 전·월세 가격이 뛸 것이라고 우려했다. 임대인들은 투기세력이 아닌 1주택자에게도 법이 적용되면서 규제 부담이 크다고 했다. 전·월세 매매를 자유롭게 하지 못하면 재산권을 침해받는다고도 말했다.
홍서윤씨(33)에게 개정 임대차법은 이전보다는 낫지만 여전히 미흡한 제도다. 그는 다리가 불편해 휠체어를 탄다. 휠체어 이동이 용이한 집을 구하는 건 그에게 매번 어려운 일이다. 계약 만기일이 다가오면 스트레스가 어마어마했다. 그는 “2년마다 한 번씩 이사하려면 시간과 돈이 많이 든다. 준비하는 기간만 6개월을 잡는다면 한 공간에 편안하게 숨 돌리며 머무르는 건 고작 1년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이사할 때마다 집을 휠체어 이동에 맞게 개조해야 한다는 점도 부담이었다. 그는 말했다. “집주인들은 개조를 싫어해요. 자비로 고친다고 해도 비용이 만만치 않고요. 안정된 주거 공간에서 살 수 있는 기간이 가능한 한 오래 보장돼야 합니다. 세입자도 ‘즐거운 나의 집’ 노래를 공감하며 부를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1일 서울 여의도에서 6·17규제소급적용 피해자모임, 임대사업자협회 추인위원회 등 부동산 관련 단체 회원들이 정부의 부동산 규제에 반대하는 집회를 열고 임대차 3법 반대 등의 구호를 외치고 있다. 연합뉴스
임대인인 동시에 임차인인 40대 박모씨는 개정 임대차법이 임대인·임차인 모두에게 좋지 않은 정책이라고 평가했다. 그는 전날 서울 여의도에서 열린 개정 임대차법 및 6·17 부동산대책 규탄 집회에 참여했다. 집회에 참석한 시민 2000여명은 이번 정책이 임대차 계약을 자유롭게 하지 못하게 하면서 재산권을 침해한다고 비판했다.
박씨는 5년에 한 번씩 근무지가 바뀌기 때문에 서울에 소유한 8억원짜리 주택을 6억원에 전세로 내놓았다. 현재 근무지가 있는 경기도에 2억원짜리 전세 계약을 했다. 그는 개정 임대차법이 1주택자에게도 적용되는 건 과도하다고 지적했다. 그는 “개정 임대차법을 적용받는 모든 사람은 투기와 상관없는 내 집 하나 있는 평범한 서민들이다. 직장, 교육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내 집을 세주고 임차하는 경우가 많다”며 “이 정책으로 많은 사람들이 세금을 더 내고 집을 구하기도 힘들어진다”고 말했다. 그는 개정 임대차법이 통과된 뒤 집주인으로부터 나가라는 말을 들었다고 전했다. 그는 “집주인은 바로 목돈 마련이 힘드니 단계적으로 반전세로 바꾸고 월세로 전환하려는 것 같다”고 밝혔다.
박씨는 앞으로 전세 매물이 줄어들고 전세 가격이 폭등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그는 “임차료는 임차 기간에 따라 책정한다. 기간이 두 배로 늘어나면서 임차료도 두 배로 뛸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학군이 좋거나 도심과 가까운 중심지의 경우 집주인이 살고 임차인은 외곽지로 밀려나 주거 계급화가 형성될 수도 있다고 봤다.
자신의 경제 사정에 따라 전·월세 계약을 자유롭게 변경할 수 있는 권리가 박탈된다는 점도 임대인 입장에선 재산권 침해로 느껴진다. 박씨는 “만약 서울로 발령받는다면 원하는 때에 내 집에 들어갈 수 없다. 저는 현재 은행에서 1억원 대출을 했다. 전세금을 일정 부분 올려서 갚으려 했는데 이젠 불가능해졌다”고 말했다. 임대인은 강자, 임차인은 약자라는 고정관념도 잘못됐다고 지적했다. 그는 “제가 세를 내주는 사람은 6억원짜리 전세에 살면서 외제차를 몬다. 제가 그 사람을 보호해줘야 하나. 임대인이라는 이유로 무거운 짐을 져야 하고 고가 전세 거주자는 편하게 살게 되는 꼴”이라고도 말했다.
박씨가 속한 ‘임대차 3법 반대 추진위원회’는 임대차 시장을 안정시키기 위해선 국가가 임대주택을 제공하는 등 국가 차원의 정책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재개발 등으로 양질의 공공임대주택을 다량으로 공급하고 시민들이 주택에 들어갈 수 있는 조건을 완화해야 한다는 것이다. 개정 임대차법이 주거불안의 책임을 임대인에게 떠맡기고 있다는 얘기다.
청년 세입자들은 단기적으로 부작용이 있더라도 국민 절반인 세입자를 중심으로 한 정책 방향은 견지하도록 해야 한다고 했다. 권씨는 말했다. “한국 사회는 그동안 집을 사게 하면서 주거안정을 꾀하는 방식으로 부동산 정책을 펼쳐왔습니다. 이젠 세입자가 안정적으로 주거하는 방향으로 바꿔야 합니다. 주택보급률에 대한 집착에서 벗어나야 부동산 매매 과열이 줄어들고 높은 주거비를 부담하는 환경도 개선될 것입니다.”
정부가 6·17 대책을 통해 잠실 MICE 개발사업, 영동대로 복합개발사업 부지와 그 영향권 일대를 토지거래허가구역으로 지정한 지난6월 17일 서울 송파구 잠실동의 한 부동산 중개업소에 아파트 매매 및 전·월세 정보가 부착돼 있다. 연합뉴스
원문보기: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2008021717001&code=940100#csidxeb871c689ff16fe90f69e10266670a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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