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와 경영

재벌회장 취미가 '사진촬영'이라면? 겉으론 부유하지만 속으론 가난한 삶

Shawn Chase 2020. 7. 20. 15:43

 

 함영준 마음건강 길 대표  2020-07-19

 

 작년에 별세한 고(故) 조양호 전 한진그룹 회장이 우리나라 스포츠계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아 대한체육회가 올해(2020년) 처음 제정한 특별공로상을 수상하는 첫 번째 인물이 됐다.

고 조회장은 지난 2008년부터 대한탁구협회장을 맡아 별세할 때까지 10년 넘게 대한민국 탁구의 재도약을 이끌었으며, 우리나라 최초로 세계탁구선수권대회를 유치하는 쾌거를 일궈냈다.

또 2018 평창동계올림픽유치위원회 위원장으로서 이건희 당시 삼성그룹회장이자 IOC위원과 함께 갖은 노력 끝에 대한민국 최초의 동계올림픽 유치를 이끌어냈으며 유치 후에도 2년간 조직위원장을 맡아 개최 준비를 진두지휘했다.

나는 평창동계올림픽을 유치할 때 청와대 주무비서관으로서 조회장과 함께 일하면서 그의 성격이나 인품, 일처리 능력 등을 잘 보아 왔다. 그가 자신의 경영실적과 무관한 가족 문제로 크게 힘들어 왔으며 결국 그로 인해 타국에서 70세 나이로 사망한 것을 안타깝게 느껴왔다.  

그의 대표적 취미가 사진찍기인 데서 짐작할 수 있듯 그는 재벌 총수치고는 처신이 요란하거나 유흥에 몰두하지 않고 조용히 자기 혼자의 세계를 추구하는 편으로 보였다.

그러니까 성격은 외향적이 아닌 내향적인 셈이다. 세계적인 항공회사를 운영하는 막중한 자리라 그런지 표정이 그리 밝거나 명랑한 편은 아니었으며 좀 근심 걱정이 많게 느껴졌다.

비록 우리 사이에 사적인 대화는 별로 없었지만 그를 볼 때 마다 ‘재벌이라고 행복한 것만은 아니다’라는 걸 자주 느꼈다.

경영능력과 실적으로 보면 그는 매우 탁월했다. 창업자인 아버지 고 조중훈 회장의 뒤를 이어 2002년 회장이 된 이후 대한항공은 더욱 발전했다. 2008년 세계 금융위기를 잘 극복하고 흑자기록을 냈으며 특히 항공사 필수덕목인 안전은 최상이었다. 그가 재직중이던 17년간 대한항공과 진에어에서 인명사고가 없었다.

그러나 그만큼 업무에 있어서 철저하고 직원에게 매우 엄격한 것으로 소문이 자자했다. 항상 ‘고객의 소리’를 직접 모두 읽고 댓글 달기로 유명했으며, 비행기를 탈 때 먼지 한 톨도 용납하지 않아 승무원들은 모두 비상 대기하는 상태였다.

이에 대해 노조는 비판적인 의견들을 내곤 했지만 다른 한편으로 볼 때 그만큼 경영 실적과 고객 서비스에 채찍 역할을 해 대한항공의 선진화에 기여했다.


그가 평창동계올림픽유치위원장으로 임명된 것은 2009년 9월. 당시 이명박 대통령은 유치위원장으로 여러 재계 인사를 놓고 저울질 하다 조회장으로 낙점했는데 당시 비서관이던 내가 이유를 물어보았더니 이렇게 답변했다.             

“ 내가 현대건설 사장으로 있을 때부터 그를 눈여겨봤는데 여느 재벌 2세답지 않게 술, 여자 가까이 하지 않는 착실한 성품에 일을 아주 열심히 하더군요. 그런 성실성과 정직성이 올림픽유치에 큰 도움이 될 거라고 생각합니다."

이대통령 예측대로 그는 열심히 일했다. 세계 곳곳을 돌아다니며 항공 업무를 보면서 한편으로 그 나라 IOC 위원 등 영향력 있는 사람들을 만나 평창 유치를 간곡히 부탁했다.

업무적으로 자주 만나고 가끔 식사도 했다. 그는 직원들에게는 엄격했는지 모르지만, 일곱 살 연하인 내게는 늘 겸손하게 잘 대해줬고, 대화도 비교적 솔직하게 나눴다. 내가 볼 때 그는 꾸밈이나 가식이 없고 담백한 성격의 소유자였다. 식사도 평범한 데서 했으며, 연말 선물로 내게 보낸 것은 그가 찍은 사진화보집이었다. 나는 그런 조회장에게 신뢰가 갔다.

2011년 7월 평창동계올림픽이 유치된 이후 나와 그와의 만남은 더 이상 없었다. 이후 조회장을 둘러싼 상황, 그리고 그의 입지는 과거와 다르게 안좋게 돌아갔다.

평창동계올림픽 유치를 잘 마쳤는데 그해 11월 출범하는 조직위의 위원장으로 갈 것으로 모두 예상했는데 그렇게 되지 못하고 다른 사람이 임명됐다. 그러다 박근혜 정권 출범 이듬해인  2014년 그는 조직위원장으로 임명됐다. 

2014년 12월 장녀 조현아씨의 문제의 ‘땅콩회항’ 사건이 벌어져 여론의 뭇매를 맞았다. 아마 이때 조회장이 겪은 심적 타격이 컸을 것이다. 가장으로서의 체면도 그렇고 세계 여론에서도 ‘nut rage father(땅콩 분노 아빠)’라고 비아냥대곤 했다. 좀 소심하고 내성적인 조회장이 전 세계를 돌아다니며 겪었을 심적 부담은 미루어 짐작할 만하다.

2016년 3월 그는 올림픽조직위원장직에서 갑작스럽게 물러나야 했다. 이유는 당시 권력을 휘두르던 최순실이 이권개입을 시도한 것을 조회장이 거절했기 때문이다.

이런저런 이유로 고생만 하고 정권 눈에는 가시 같은 존재가 된 조회장은 사업에만 전념하려고 했을 것이다. 그러다 2018년 봄 이번에는 막내딸 조현민의 갑질, 이어서 부인 이명희씨의 ‘직원 갑질 폭행’ 사건이 연이어 터지면서 조회장 일가는 거의 국민 공적(公敵)수준의 여론의 질타를 받았다.

아마 여기서 조회장의 심신은 넉아웃됐을 것이다.

경영인으로서 힘든 업무는 그렇다손 치더라도 올림픽유치를 위해 열심히 뛰었는데도 도리어 비판만 받는 위치가 된데다, 가족들이 계속 사고를 치는 데 대해 더 이상 견뎌내기 어려운 지경이 됐다. 더구나 그는 동생인 조남호 한진중공업 회장 등 동생들과도 사이가 나빠 오래 전부터 왕래를 하지 않고 있었다.

이런 저런 이유로 결국 한진그룹 주주인 국민연금이 스튜어드십 코드를 이용해 조회장을 끌어내리기로 정하고 2019년 3월 27일 적극적 주주권 행사를 통해 조회장의 사내이사 연임을 부결시켜 그의 경영권을 사실상 박탈했다.     
  
이후 12일 뒤 조회장은 미국 LA에서 별세했다. 당초 치료중이던 폐질환과 심신이 급격히 악화돼 무너져 내린 것이다.

그의 죽음을 보면 참으로 허무하다고 느끼지 않을 수 없다. 그가 비록 재벌가 장남으로 태어나 호의호식은 했더라도 그리 행복한 삶은 아니었다고 본다. 재산권 분배 문제 등으로 자신의 형제간과도 갈등이 심했고, 나중에 알고 보니 부인과 자녀와의 가정문제도 원만하다고는 볼 수 없었다. 한마디로 그가 마음 부칠 곳이 거의 없지 않았나 생각된다.

바로 이런 점은 우리같이 평범하고 소박하게 사는 사람들의 삶과 구별된다. 우리는 그렇게 돈이 많지는 않지만 먹고 살만하며 돈으로 인한 문제도 별로 없다. 가족간 우애도 그렇고 주변 사람들과의 관계도 ‘돈’아닌 ‘정’이 우선이다. 인생 문제 자체도 그리 복잡하지 않다.

그러나 조회장은 돈은 많았는지 모르지만 너무 복잡하게 얽혔고 힘들었다. 그리고 돈도 마음껏 쓰며 즐기지도 못했다. 그가 사진촬영을 취미로 한 것도 자신만의 고요하고 평화로운 내면의 행복에 대한 열망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었겠는가.

 

■ 관련 유튜브 (클릭해보세요)

https://www.youtube.com/watch?v=TFObtRBocus&t=9s

내가 만나본 재벌총수들(1)

재벌회장 취미가 '사진촬영'이라면?

겉으론 부유하지만 속으론 가난한 삶

 함영준 마음건강 길 대표  2020-07-19

 작년에 별세한 고(故) 조양호 전 한진그룹 회장이 우리나라 스포츠계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아 대한체육회가 올해(2020년) 처음 제정한 특별공로상을 수상하는 첫 번째 인물이 됐다.

고 조회장은 지난 2008년부터 대한탁구협회장을 맡아 별세할 때까지 10년 넘게 대한민국 탁구의 재도약을 이끌었으며, 우리나라 최초로 세계탁구선수권대회를 유치하는 쾌거를 일궈냈다.

또 2018 평창동계올림픽유치위원회 위원장으로서 이건희 당시 삼성그룹회장이자 IOC위원과 함께 갖은 노력 끝에 대한민국 최초의 동계올림픽 유치를 이끌어냈으며 유치 후에도 2년간 조직위원장을 맡아 개최 준비를 진두지휘했다.

나는 평창동계올림픽을 유치할 때 청와대 주무비서관으로서 조회장과 함께 일하면서 그의 성격이나 인품, 일처리 능력 등을 잘 보아 왔다. 그가 자신의 경영실적과 무관한 가족 문제로 크게 힘들어 왔으며 결국 그로 인해 타국에서 70세 나이로 사망한 것을 안타깝게 느껴왔다.  

그의 대표적 취미가 사진찍기인 데서 짐작할 수 있듯 그는 재벌 총수치고는 처신이 요란하거나 유흥에 몰두하지 않고 조용히 자기 혼자의 세계를 추구하는 편으로 보였다.

그러니까 성격은 외향적이 아닌 내향적인 셈이다. 세계적인 항공회사를 운영하는 막중한 자리라 그런지 표정이 그리 밝거나 명랑한 편은 아니었으며 좀 근심 걱정이 많게 느껴졌다.

비록 우리 사이에 사적인 대화는 별로 없었지만 그를 볼 때 마다 ‘재벌이라고 행복한 것만은 아니다’라는 걸 자주 느꼈다.

경영능력과 실적으로 보면 그는 매우 탁월했다. 창업자인 아버지 고 조중훈 회장의 뒤를 이어 2002년 회장이 된 이후 대한항공은 더욱 발전했다. 2008년 세계 금융위기를 잘 극복하고 흑자기록을 냈으며 특히 항공사 필수덕목인 안전은 최상이었다. 그가 재직중이던 17년간 대한항공과 진에어에서 인명사고가 없었다.

그러나 그만큼 업무에 있어서 철저하고 직원에게 매우 엄격한 것으로 소문이 자자했다. 항상 ‘고객의 소리’를 직접 모두 읽고 댓글 달기로 유명했으며, 비행기를 탈 때 먼지 한 톨도 용납하지 않아 승무원들은 모두 비상 대기하는 상태였다.

이에 대해 노조는 비판적인 의견들을 내곤 했지만 다른 한편으로 볼 때 그만큼 경영 실적과 고객 서비스에 채찍 역할을 해 대한항공의 선진화에 기여했다.


그가 평창동계올림픽유치위원장으로 임명된 것은 2009년 9월. 당시 이명박 대통령은 유치위원장으로 여러 재계 인사를 놓고 저울질 하다 조회장으로 낙점했는데 당시 비서관이던 내가 이유를 물어보았더니 이렇게 답변했다.             

“ 내가 현대건설 사장으로 있을 때부터 그를 눈여겨봤는데 여느 재벌 2세답지 않게 술, 여자 가까이 하지 않는 착실한 성품에 일을 아주 열심히 하더군요. 그런 성실성과 정직성이 올림픽유치에 큰 도움이 될 거라고 생각합니다."

이대통령 예측대로 그는 열심히 일했다. 세계 곳곳을 돌아다니며 항공 업무를 보면서 한편으로 그 나라 IOC 위원 등 영향력 있는 사람들을 만나 평창 유치를 간곡히 부탁했다.

업무적으로 자주 만나고 가끔 식사도 했다. 그는 직원들에게는 엄격했는지 모르지만, 일곱 살 연하인 내게는 늘 겸손하게 잘 대해줬고, 대화도 비교적 솔직하게 나눴다. 내가 볼 때 그는 꾸밈이나 가식이 없고 담백한 성격의 소유자였다. 식사도 평범한 데서 했으며, 연말 선물로 내게 보낸 것은 그가 찍은 사진화보집이었다. 나는 그런 조회장에게 신뢰가 갔다.

2011년 7월 평창동계올림픽이 유치된 이후 나와 그와의 만남은 더 이상 없었다. 이후 조회장을 둘러싼 상황, 그리고 그의 입지는 과거와 다르게 안좋게 돌아갔다.

평창동계올림픽 유치를 잘 마쳤는데 그해 11월 출범하는 조직위의 위원장으로 갈 것으로 모두 예상했는데 그렇게 되지 못하고 다른 사람이 임명됐다. 그러다 박근혜 정권 출범 이듬해인  2014년 그는 조직위원장으로 임명됐다. 

2014년 12월 장녀 조현아씨의 문제의 ‘땅콩회항’ 사건이 벌어져 여론의 뭇매를 맞았다. 아마 이때 조회장이 겪은 심적 타격이 컸을 것이다. 가장으로서의 체면도 그렇고 세계 여론에서도 ‘nut rage father(땅콩 분노 아빠)’라고 비아냥대곤 했다. 좀 소심하고 내성적인 조회장이 전 세계를 돌아다니며 겪었을 심적 부담은 미루어 짐작할 만하다.

2016년 3월 그는 올림픽조직위원장직에서 갑작스럽게 물러나야 했다. 이유는 당시 권력을 휘두르던 최순실이 이권개입을 시도한 것을 조회장이 거절했기 때문이다.

이런저런 이유로 고생만 하고 정권 눈에는 가시 같은 존재가 된 조회장은 사업에만 전념하려고 했을 것이다. 그러다 2018년 봄 이번에는 막내딸 조현민의 갑질, 이어서 부인 이명희씨의 ‘직원 갑질 폭행’ 사건이 연이어 터지면서 조회장 일가는 거의 국민 공적(公敵)수준의 여론의 질타를 받았다.

아마 여기서 조회장의 심신은 넉아웃됐을 것이다.

경영인으로서 힘든 업무는 그렇다손 치더라도 올림픽유치를 위해 열심히 뛰었는데도 도리어 비판만 받는 위치가 된데다, 가족들이 계속 사고를 치는 데 대해 더 이상 견뎌내기 어려운 지경이 됐다. 더구나 그는 동생인 조남호 한진중공업 회장 등 동생들과도 사이가 나빠 오래 전부터 왕래를 하지 않고 있었다.

이런 저런 이유로 결국 한진그룹 주주인 국민연금이 스튜어드십 코드를 이용해 조회장을 끌어내리기로 정하고 2019년 3월 27일 적극적 주주권 행사를 통해 조회장의 사내이사 연임을 부결시켜 그의 경영권을 사실상 박탈했다.     
  
이후 12일 뒤 조회장은 미국 LA에서 별세했다. 당초 치료중이던 폐질환과 심신이 급격히 악화돼 무너져 내린 것이다.

그의 죽음을 보면 참으로 허무하다고 느끼지 않을 수 없다. 그가 비록 재벌가 장남으로 태어나 호의호식은 했더라도 그리 행복한 삶은 아니었다고 본다. 재산권 분배 문제 등으로 자신의 형제간과도 갈등이 심했고, 나중에 알고 보니 부인과 자녀와의 가정문제도 원만하다고는 볼 수 없었다. 한마디로 그가 마음 부칠 곳이 거의 없지 않았나 생각된다.

바로 이런 점은 우리같이 평범하고 소박하게 사는 사람들의 삶과 구별된다. 우리는 그렇게 돈이 많지는 않지만 먹고 살만하며 돈으로 인한 문제도 별로 없다. 가족간 우애도 그렇고 주변 사람들과의 관계도 ‘돈’아닌 ‘정’이 우선이다. 인생 문제 자체도 그리 복잡하지 않다.

그러나 조회장은 돈은 많았는지 모르지만 너무 복잡하게 얽혔고 힘들었다. 그리고 돈도 마음껏 쓰며 즐기지도 못했다. 그가 사진촬영을 취미로 한 것도 자신만의 고요하고 평화로운 내면의 행복에 대한 열망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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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www.youtube.com/watch?v=TFObtRBocus&t=9s

 

 

 글ㅣ 함영준22년간 신문 기자로 일했다. 국내에서는 정치·경제·사회 분야를, 해외에서는 뉴욕, 워싱턴, 홍콩에서 세계를 지켜봤다. 대통령, 총리부터 범죄인, 반군 지도자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사람과 교류했으며, 1999년에는 제10회 관훈클럽 최병우기자 기념 국제보도상을 수상했다.

스스로 신문사를 그만둔 뒤 글을 썼고 이후 청와대 비서관 등 공직 생활도 지냈다. 평소 인간의 본성, 마음, 심리학, 뇌과학, 명상 등에 관심이 많았으며 2018년부터 국내 저명한 심리학자들을 초빙, ‘8주 마음챙김 명상’ 강좌를 조선일보에 개설했다.

마음건강 종합 온라인매체인 마음건강 ‘길’(mindgil.com)을 2019년 창간해 대표로 있다. 저서로는 우울증 치유기 <나 요즘 마음이 힘들어서>, 40대 중년 위기를 다룬 <마흔이 내게 준 선물>, 한국 걸출한 인물들의 인생기 <내려올 때 보인다>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