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역사

신문은 선생님 [뉴스 속의 한국사] '못난이 불상' 은진미륵, 보물된 지 55년 지나서야 국보됐죠

Shawn Chase 2020. 7. 7. 20:16

 

입력 : 2020.07.07 03:00

 

우리나라 문화재 중 지위가 가장 높은 것은 '국보' 칭호가 붙고, 그다음은 '보물' 명칭이 붙습니다. 문화재의 예술적·역사적·학술적 가치를 문화재위원회가 심사해 무엇으로 부를지 지정하지요. 그런데 최근 보물이었던 '정선 정암사 수마노탑'이 국보(332호)로 승격됐다고 해요. 반면 국보 168호였던 '백자 동화매국문 병'은 흔한 원나라 작품이라는 게 뒤늦게 밝혀져 최근 국보 자격을 잃었답니다. 오늘은 마치 사람처럼 '승진'이나 '강등'이 되는 문화재 이야기를 해볼게요.

'못난이 불상'의 역전극

국내 석불(돌부처) 중에서 가장 규모가 큰 문화재는 무엇일까요? 높이 18m가 넘는 충남 논산 관촉동 관촉사의 '석조미륵보살입상'이에요. 이 석불은 '은진미륵'(과거 행정구역은 은진면)이라는 별명으로 더 잘 알려져 있어요. '쥐의 사위 고르기'라는 전래동화에도 등장할 정도로 유명한 석불 이름이기 때문이지요.

 /그림=김영석

그런데 이 불상계의 스타는 1963년부터 무려 55년 동안 국보가 아니라 보물 제218호에 머물러 있었어요. 통일신라 시대의 정교하고 세련된 불상과는 달리 고려 초에 만들어진 이 불상은 인체 비례가 맞지 않고 다소 둔중해 보인다는 것이 그 이유였지요. 널찍하고 편평한 얼굴에 투박한 이목구비를 지녀 '삼국시대와 통일신라 시대의 정교한 불상들에 비해 고려의 제작 기술이 퇴보한 것'이란 평가도 받았답니다.

하지만 최근 반전이 일어났습니다. '고려 초 큰 세력을 형성하던 호족들의 기상을 표현한 파격과 대범의 미학'이라는 평가가 새로 나오게 된 것이죠. 큰 돌 세 개로 거대한 불상을 쌓아 올린 기법은 아주 새롭고 독특한 발상이었다는 거예요. "인체 비례가 맞고 세련돼야만 아름다운 것인가, 일부러 큼직큼직하게 만든 '못난이 불상'이라도 그 시대 나름의 미(美)를 표현한 것일 수 있다"는 평가였어요. 2018년 국보 323호가 된 이 불상에 대해 문화재청은 "독창성과 완전성이 뛰어나 충분한 국보 가치가 있다"고 밝혔습니다.

보호막 걷어내자 펼쳐진 '신세계'

전남 해남 대흥사의 '북미륵암 마애여래좌상'은 우연한 계기로 숨어 있던 진가가 드러나 뒤늦게 보물에서 국보로 승격된 문화재입니다. 고려 초기에 제작된 이 불상은 비바람을 막아주는 보호각에 가려서 불상 일부만 볼 수 있었어요. 그런데 2004년 보호각을 수리하던 중 높이 4m 정도로 생각했던 마애불(암벽에 조각한 불상)의 전체 규모가 이보다 훨씬 크다는 사실이 드러났어요. 보호각에 가려졌던 벽에는 웅장하고 화려한 조각이 나타났지요. 이 불상은 이듬해 보물 48호에서 국보 308호로 42년만에 승격됐습니다.

가짜 거북선 총통, 국보에서 해제

이와 반대로 국보 자격을 박탈당한 문화재도 많아요. 1992년 8월, 깜짝 놀랄 만한 문화재 발굴 성과가 발표됐어요. 이순신 장군이 1592년 일본 수군을 크게 무찌른 한산대첩의 승전지인 경남 통영시 한산면에서 건졌다는 유물이었는데, 임진왜란 중인 1596년 제작됐다는 글자가 새겨진 조선 수군의 총통(화포)이었지요. 게다가 '거북선의 황자총통'이란 글자가 새겨져 있었습니다. 3일 뒤 열린 문화재위원회에서 30분 만에 만장일치로 국보 지정이 결정돼 '국보 274호 귀함별황자총통'이 됐습니다.

그런데 4년이 지난 1996년, 뜻밖의 검찰 조사 결과가 나왔습니다. 유물발굴단장이 골동품 업자로부터 가짜 총통을 받아 글자를 새겨 넣고 바다 밑으로 가라앉힌 뒤 마치 진짜 유물을 발견한 것처럼 인양했다는 거예요. 국보 지정은 해제됐고 274호는 지금 '영구 결번'으로 남았습니다. 비슷한 경우가 또 있어요. 육군박물관 소장 '금고(쇠북)'도 조선 선조 때 전쟁터에서 사용한 쇠북으로 파악돼 1986년 보물 864호로 지정됐다가, 근대의 작품이라는 사실이 드러나 2008년 지정 해제됐습니다.


[불에 타 보물 해제된 낙산사 동종]

2005년 강원도 양양 낙산사의 보물 479호 '낙산사 동종'은 화재로 불타 지정이 해제됐습니다. 보물 476호인 전북 김제 금산사의 '대적광전'도 1986년 화재로 전소돼 보물에서 지정 해제됐어요. 그러나 2008년 불에 탄 국보 1호 '숭례문'은 '목조 건축 일부만 훼손됐을뿐 역사적 가치가 없어진 것은 아니다'라는 이유로 국보 지위가 유지됐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