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차

"한국, 완성차 업체 5개 중 2개만 있어도 충분"

Shawn Chase 2020. 4. 28. 19:37




입력 2020.04.28 14:24 | 수정 2020.04.28 18:31

12분기 연속 적자..가동률 50%대
쌍용차 9년 만에 다시 생사 기로
르노삼성, 한국지엠도 경영 악화
"'코로나 19' 초유의 위기 극복후
체질 개선과 구조조정 서둘러야"


“입사 15년째인데 올해가 가장 힘드네요.”
쌍용자동차 평택 공장 3라인에서 일하고 있는 황영호 차체2팀 차장은 “중국 상하이자동차 철수 후 77일간 노사 극한 대립 끝에 법정관리로 갔을 때는 희망이라도 있었는데…”라며 이렇게 말했다. 이달 23일 기자가 찾아간 경기 평택시 동삭로에 있는 쌍용차 평택 공장은 업황 악화로 잔뜩 짓눌려 있었다.

공장 가동률 50%대…12분기 연속 적자 쌍용차

체어맨 등을 만들던 2라인은 작년 초부터 공장 가동을 중단했다. 하치장에는 평소보다 두 배 많은 차들이 쌓여 있었다. 판매가 잘 안되는 탓이다. 1,3 라인은 이달 들어 각각 매주 하루씩 공장 가동을 쉬고 있었다.

경기도 평택시 동삭로에 있는 쌍용차 본사 공장 정문 모습/송의달 기자
경기도 평택시 동삭로에 있는 쌍용차 본사 공장 정문 모습/송의달 기자

회사 관계자는 “연간 생산능력 25만대 공장인데 지금 상태라면 올해 13만대 생산 목표 달성도 어려워 보인다”고 했다. 그도 그럴 것이 쌍용차는 2017년 1분기부터 작년 4분기까지 12분기 연속 분기 적자를 내고 있다. 2017년 한해 653억원이던 영업손실은 지난해 2819억원으로 불었다. 현재 공장 가동률은 50%대로, 올 1분기도 적자가 유력하다.

이런 와중에 모기업인 인도 마힌드라&마힌드라 그룹은 올 1월 약속했던 쌍용차에 대한 2300억원 자금 투자 계획을 취소했다. 대신 운영자금으로 향후 3개월간 400억원 수준의 일회성 특별 자금만 투입하겠다고 이달 3일 발표했다. 이 결정은 ‘코로나 19’ 파장으로 마힌드라 경영 악화가 가장 큰 요인이지만, 쌍용차의 미래 경쟁력에 대한 의구심도 한몫했다는 분석이다.
3년 전 7800원대이던 쌍용차 주가(株價)는 요즘 1500원대에 거래된다. 공장 안팎에선 “인수후 4년 여만에 철수한 상하이자동차 사태가 되풀이되는 게 아닌가”하는 불안감이 번지고 있다.

산 후 팔리지 않아 선적을 못하고 쌍용차 평택공장 내 하치장에 대기 중인 SUV 차량들./송의달 기자
산 후 팔리지 않아 선적을 못하고 쌍용차 평택공장 내 하치장에 대기 중인 SUV 차량들./송의달 기자

1962년 출범한 쌍용차는 1997년 대우그룹에 인수됐다가 2년 여만에 워크아웃(기업회생작업)에 들어갔다. 이후 2004년 중국 상하이자동차가 인수했다가 법정관리를 거쳐 2011년 인도 마힌드라그룹이 대주주가 됐다. 쌍용차가 9년 만에 다시 생사(生死)의 갈림길에 선 것이다.

20여만명 생계 걸려…노조도 ‘자구 노력’

현장에서 만난 쌍용차 노동조합 관계자들에게도 ‘뾰족한 답’은 없어 보였다. 쌍용차 노조는 민노총 소속이 아닌 개별 기업 노조로 예외에 가까울 정도로 실용적이며 협조적이다. 작년 하반기 복지 축소와 임금 20% 삭감 같은 자구(自救) 노력을 먼저 제의해 성사시켰다.
노조의 한 핵심 관계자는 “2015~16년 당시 소형 SUV 티볼리의 반짝 성공에 도취했던 걸 반성한다”며 “지원을 받으면 쌍용차가 반드시 살아난다는 확신을 줄 수 있도록 노조도 적극 노력할 것”이라고 했다. 5000여명의 본사 직원과 350여개 협력사를 두고 있는 평택시 대표 기업인 쌍용차에 생계를 의존하는 이는 20만명(직간접 고용인원 가족 포함)에 달한다.

쌍용자동차 평택 공장 정문 앞에 있는 상가와 식당, 이발소 등 모습. 이곳 자영업자들은 공장 가동률 하락으로 매출이 떨어져 울상을 짓고 있다./송의달 기자
쌍용자동차 평택 공장 정문 앞에 있는 상가와 식당, 이발소 등 모습. 이곳 자영업자들은 공장 가동률 하락으로 매출이 떨어져 울상을 짓고 있다./송의달 기자

문제는 한계상태에 도달한 국내 자동차 기업이 쌍용차 1개만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특히 외국계 메이커 사정이 심각하다. 2016년 매출 6조2484억원에 당기순이익 3105억원을 거둔 르노삼성의 경우, 지난해 매출 4조6777억원, 당기순이익 1618억원으로 매출과 이익 모두 줄었다.

◇르노삼성차 최근 경영 실적
자료 :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   * 단위 : 억원
자료 :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 * 단위 : 억원

한국지엠은 2016년부터 지난해까지 4년 연속 적자를 내 그 기간 누적 적자만 3조4475억원이다. 중국 시장 점유율 급락 등으로 고전을 면치 못하는 현대차의 올 1분기 완성차 판매량은 9년 만에 100만대 밑으로 떨어졌다.

◇한국지엠 최근 경영 실적
자료 :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   * 단위 : 억원
자료 :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 * 단위 : 억원

‘코로나 19’로 최대 위기…32조원 유동성 지원 요청

이런 상황에서 한국자동차산업협회는 완성차 회사부터 부품사까지 운영자금과 대출 만기 연장, 수출금융 등 32조8000억원의 긴급자금 지원을 정부에 최근 요청했다. 세계적인 ‘코로나19’ 유행으로 생산과 판매 모두 절벽 같은 감소세를 보이는 마당에 유동성(현금 흐름) 지원이 시급하다는 판단에서다.
하지만 2016~17년 40만명을 유지하던 우리나라 자동차 업종의 직접 고용자 수(고용보험 가입자)는 지난달 37만7000명으로 2년 3개월 만에 2만3000명 감소했다. 올 들어는 3개월 새 4000명이 직장을 잃었다. 판매·정비·운송·주유·원부자재 같은 전·후방 산업까지 포함하면 실직자 수는 훨씬 더 많다. 업계 관계자들은 “우리나라 수출 2위 품목이자 최대 고용 유발 업종인 자동차 산업 붕괴를 막기 위해 자금 지원 외에 어음 인수, 대출 만기 연장, 세금 감면 같은 지원책이 절실하다”고 주장한다.

정부가 도와주기만 하면 우리 자동차 기업들은 경쟁력을 갖고 회생할 수 있을까. 일각에선 “코로나19 이후 우리나라 자동차 업황이 미국, 유럽보다 먼저 반등할 가능성이 높으므로 한국 자동차업계가 반사이익을 얻을 수 있다”는 희망섞인 전망을 내놓는다. 하지만 대다수 전문가들은 세계 자동차 시장 구조 변화를 냉정하게 파악하고 더 이상 실기(失機)하지 말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5개인 완성차 업체 2개만 있어도 충분”

김필수 대림대 교수는 “이미 세계적으로 자동차 생산과 공장 시설은 포화를 넘어 남아돌고 있다”며 “한국에 완성차 메이커는 2개만 있어도 충분하다”고 말했다. 그는 “자체 구조 조정과 혁신 노력이 전제되지 않는 상태에서 ‘노동자 프렌들리 정책’에 입각한 정부의 대규모 지원은 혈세(血稅) 낭비에 그칠 가능성이 높다”고 했다.

지난해부터 가동을 중단한 쌍용차 평택공장 조립 2라인 모습./송의달 기자
지난해부터 가동을 중단한 쌍용차 평택공장 조립 2라인 모습./송의달 기자

이항구 산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내연기관차에서 전기 자율주행차로 가는 세계 자동차 산업 대전환기에서 구조조정과 산업 고도화 노력을 한국 자동차 업계가 외면해 온 게 문제의 핵심”이라고 말했다. 그는 “2015년부터 한국 자동차 산업이 어려움에 처했는데도 ‘일시적 호조’라는 착시에 빠졌다”며 “(코로나 19로)시기가 조금 빨라졌을 뿐 올 것이 왔다고 본다”고 했다.

김현정 순천대 교수(경영학)가 올 2월 ‘발표한 논문 ‘자동차 기업의 정태적 효율성과 동태적 생산성 평가’에서 내놓은 결론도 흥미롭다.
2014~2018년 국내 5개 완성차 기업의 자산·종업원 수·매출액·당기 순이익 등을 비교해 업체별 경영 효율을 분석한 김 교수는 논문에서 “한국지엠은 비효율성을 개선하기 위하여 자산은 35.4%, 종업원 수는 46.9% 감소시켜야 하고, 쌍용차는 기존 투입 대비 자산은 40.7%, 종업원 수는 40.6% 줄여야 효율적이 된다”고 밝혔다.

“‘1 고 3 저’인 한국 자동차 산업 체질 바꿔야”

고비용이면서도 효율과 생산, 수익이 모두 낮은 ‘1고(高)3저(低)’라는 한국 자동차 산업의 체질을 바꾸지 않는 한, 일자리 지키기용 지원은 ‘밑빠진 독에 물붓기’에 그칠 것이라는 얘기이다.

자동차 회사들의 이익단체인 한국자동차산업협회의 정만기 회장은 이에 대해 “코로나 19 같은 초유의 비상 상황에선 산업 전체가 무너지지 않도록 기업들을 지켜내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기업들이 노사 협력으로 비용 절감과 생산성 제고에 노력하고 정부는 유동성을 신속공급하여 이번 위기를 극복한 후 전기차·자율주행차 등 미래차로 혁신을 추진해야 한다”고 했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20/04/28/2020042802634.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