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와 경영

[사설] '기업 생존' 안 되면 '고용 유지' 지속 불가능하다

Shawn Chase 2020. 4. 23. 23:29


조선일보



입력 2020.04.23 03:26

정부가 40조원 규모의 기간산업 안정기금을 만들어 항공·해운·자동차·조선·기계 등 7대 기간산업에 지원키로 했다. 주로 대기업이 대상이 될 것으로 보인다. 문재인 대통령은 "모든 방식을 총동원해 기간산업이 쓰러지는 것을 막겠다"고 했다. 정부는 또 10조원을 투입해 기업들의 고용 유지를 돕겠다고 했다. 문제는 속도다. 미국 등 선진국은 이미 실천 단계다. 우리는 40조원 기간산업 안정기금은 산은법 개정을 통해, 10조원 고용 예산은 6월 초 개원하는 21대 국회에서 3차 추경으로 조달하게 된다. 한계에 몰린 기업과 저소득층, 자영업자들은 숨이 넘어갈 지경이다. 말은 무성한데 행동과 실천은 늦기만 하다.

정부는 대기업 지원의 첫 조건으로 '고용 총량 유지' 등을 내걸었다. 고용 유지는 중요하다. 하지만 코로나 사태라는 초유의 위기 앞에서 업종과 개별 기업에 따라선 인력을 줄이지 않으면 생존이 불가능한 곳도 많다. 기업이 살아야 고용도 유지되는 것인데, 고용 유지를 지원의 조건으로 삼는 것은 앞뒤가 바뀌었다. 기업이 위기를 핑계로 무분별한 인력 감축에 나서는 것은 막되 고용 유지 조건을 현실에 맞게 신축적으로 적용해야 한다. 기간산업 지원의 제1 목표는 '기업 생존'이라야 한다. 그 전제 아래서 고용 조정이나 임금 삭감 등은 개별 기업 차원에서 노사가 협의해 결정할 선택지로 남겨둬야 한다.

한국 경제에 꼭 필요한 기업을 잘 선별해 꼭 필요한 만큼의 자금만 핀셋 수혈하는 정교함도 필요하다. 20여년 전 외환 위기와 10년 전 글로벌 금융 위기 경험 덕에 정부와 금융권엔 기업 구조 조정과 관련된 제도와 노하우가 상당히 많이 축적돼 있다. 금융권이 갖고 있는 정보를 최대한 활용하면 꼭 살려야 할 기업, 없어져야 할 좀비 기업을 선별할 수 있고, 법인세·부가가치세 등 납세 자료, 대출 데이터 등을 활용하면 한시적으로 필요한 자금 수준을 계량하는 것도 어려운 일은 아닐 것이다.

정부의 기간산업 지원은 미국·중국·유럽 등 주요 수출 대상국의 소비가 살아날 때까지 버틸 수 있는 시간을 벌게 해주겠다는 의미다. 지원받는 기업은 그 시간 동안 구조 조정과 체질 개선을 통해 경쟁력을 높이는 것으로 국민 세금 지원에 보답해야 한다. 기업 구조 조정 성공 사례로 꼽히는 하이닉스 반도체의 경우 2001년 채권단이 빚 3조원을 출자 전환한 뒤 뼈를 깎는 구조 조정과 연구개발 총력전에 매진한 결과 메모리 반도체의 강자로 부활했고, 채권단에 6조원이 넘는 이익을 안겨줬다. 반면 조선 산업의 경우 정치논리에 휘말려 구조 조정이 지체되면서 수십조원을 쏟아붓고도 회생의 계기를 찾지 못하고 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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