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2020.02.06 17:24
흔히 ‘스모킹 건’이란 말을 많이 쓴다. 스모킹(smoking), 연기가 난다는 뜻이고, 건(gun), 권총이란 뜻이다. 살해 현장에 있는 용의자의 총구에서 연기가 피어난다면 그것은 흔들릴 수 없는 명백한 증거가 된다는 뜻이다. 영국의 유명 추리소설 작가 아서 코난 도일이 쓴 ‘셜록 홈즈’에 나오는 인물의 대사에서 비롯됐다. 소설 속에 나오는 살해 현장에서 "그 목사는 연기 나는 총을 손에 들고 서 있었다."면서 목사를 살해범으로 지목한 것이다. 소설에서는 원래 ‘스모킹 피스톨’이었는데 그 뒤로 ‘스모킹 건’으로 바뀌었다.
자, 오늘의 주제는 바로 ‘스모킹 건’과 관련이 있다. ‘청와대의 울산 선거공작 의혹 사건’의 1차 수사를 마무리 지은 윤석열 검찰은 관련자 13명을 일괄적으로 불구속 기소했다. 그 다음날 저희 논설위원실에서도 오후쯤 국회를 통해 공소장이 공개될 것이라고 예상하고 사설과 칼럼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 날도, 그 다음 날도, 오늘까지도 ‘울산 선거공작’ 13명 기소와 관련된 공소장은 나오지 않았다. 추미애 법무장관이 가로막고 있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추 장관은 왜 한사코 울산 선거공작 공소장의 공개를 온몸으로 막아서고 있는 것일까. 그것은 추 장관이 공소장에서 정권의 존립을 흔드는 ‘스모킹 건’을 봤기 때문이다.
추 장관이 윤석열 검찰의 공소장에서 본 ‘스모킹 건’은 누구 손에 들려 있었을까. 총알을 맞고 바닥에 쓰러진 사람은 김기현 자유한국당 울산시장 후보였는데, 총알이 발사된 ‘연기 나는 총’은 누구 손에 들려 있었을까. 조국 민정 수석 손에 들려 있었을까. 임종석 청와대 비서실장일까. 그 정도였는데, 추 장관이 온몸으로 공소장 공개를 막아섰을까. 아니면 그 ‘연기 나는 총’은 문 대통령 손에 들려 있다고 봐야한다는 강력한 정황증거와 진술들이 있기 때문에 추 장관은 절대로 공소장을 공개할 수 없었던 것이라고 봐야할까. 여러분은 어떻게 보시는가.
추 장관이 비공개를 고집하고 있다고 해서 기자들마저 손 놓고 있는 것은 아니다. 오늘 밝혀진 바에 따르면 추 장관이 비공개를 결정한 울산 선거공작 피고인 13명의 공소장에는 ‘청와대가 2018년 지방 선거를 전후해 김기현 전 울산시장 관련 경찰 수사 상황을 모두 21차례 보고받은 사실이 적시돼 있다’고 한다. 내용도 구체적이다. "선거 전에 18번, 선거 뒤에 3번을 보고했다"고 한다. 평균 6일에 한 번 꼴이다. 그만큼 ‘VIP의 관심 사항’이었을 것이다. 일단 조국 당시 민정수석은 박형철 반부패비서관을 통해 적어도 15번 이상 경찰 수사 상황을 보고받은 것으로 공소장에는 명시돼 있다고 한다. 또 송철호 시장 후보가 2017년 9월 황운하 당시 울산경찰청장에게 "김기현 시장에 대한 수사를 적극적, 집중적으로 해달라"고 요청했다는 내용도 공소장에는 적혀 있다. 또 송 시장이 2017년 10월부터 임종석 당시 비서실장 등 청와대 관계자들에게 "김 시장이 추진 중인 산재모 병원에 대한 정부 예비타당성 조사 결과 발표를 연기해달라"고 요청했고, 실제로 성사됐다는 내용도 적혀 있다.
경찰이 김기현 시장 수사를 21차례나 청와대에 보고했다면, 청와대는 보고를 받은 뒤 울산경찰청에 아무런 지시도 하지 않았을까. 자 오늘의 핵심은 이것이다. 그 보고서는 어디까지 올라갔다고 봐야할까. 박형철 반부패비서관까지? 그 위인 조국 민정수석까지? 그 위인 임종석 비서실장까지? 아니면 송철호 시장의 ‘30년 친구’이자, 그의 시장 당선이 자신의 ‘소원’이라고 밝혔던 문재인 대통령까지 일부 보고서 내용이 올라갔다고 봐야 합리적인 추론 아닐까.
이런 정황들을 구체적으로 6하 원칙에 따라 적시하고 드러내는 내용이 윤석열 검찰의 공소장에 담겨 있다고 봐야 옳을 것이고, 그것을 미리 살펴본 추 장관은 자신의 장관직을 걸고 이것만은 막아야 한다고 결심했을 수 있다. 아니면 진중권씨가 지적한 것처럼 추 장관이 청와대 핵심 인사들의 조종을 받았을 수도 있다. 그 어느 쪽이든 공소장이 공개될 경우 문 대통령과 청와대, 그리고 현 집권 세력에게 치명상을 안길 수 있는 ‘스모킹 건’과 그 총을 손에 쥔 사람이 적시돼 있다고 봐야 한다.
자, 추미애 장관은 공소장 공개라는 ‘잘못된 관행’을 이제부터라 고쳐나가겠다, 그렇게 말했다. 그렇다면 묻는다. 추 장관 당신은 ‘유재수 감찰 무마 사건’과 관련 조국 전 민정수석을 기소했을 때는 공소장 공개를 내버려 두었는가. 조국 씨까지는 포기할 수 있는데, 이번에는 조국보다 높은 사람이 연기 나는 총을 들고 서 있어서 온몸으로 막아섰는가. 오늘의 결론은 이렇다. 추 장관은 공소장에서 무엇을 봤을까. 연기 나는 총을 들고 있는 사람이 누구였을까.
*조선일보 김광일 논설위원이 단독으로 진행하는 유튜브 ‘김광일의 입’, 상단 화면을 눌러 감상하십시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20/02/06/2020020603280.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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