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정치

[김광일의 입] 검찰 대학살, 추미애가 졌다

Shawn Chase 2020. 1. 9. 18:21
입력 2020.01.09 17:45


조선일보 아침 1면톱 제목이 "문정권 수사하는 ‘윤석열 사단’ 대학살"이다. ‘대학살’이란 단어가 나왔다. 수요일 저녁에 ‘인사 피바람’이 불었다는 뜻이다. 어제 오후 7시30분 공무원도 기자도 대부분 퇴근했을 시각에 법무부는 검찰 고위급 간부 32명에 대해 전격적인 인사를 단행하고 발표했다. 가령 조국 일가를 수사해온 한동훈 검사는 부산으로 쫓아냈고, 울산선거 개입 의혹을 수사해온 박찬호 검사는 제주도로 보내는 식의 인사였다. ‘윤석열 사람들’을 전국으로 뿔뿔이 흩어버렸다.

조선일보 2면 톱 제목은 ‘윤총장에게 귀띔조차 않고, 대검 간부 8명 전원 해체한 폭거’다. 사실상 독재 정권에서나 볼 수 있었던 ‘폭거’라는 뜻이다. 3면 톱 제목은 ‘워터게이트 검사 자르고 탄핵 몰린 닉슨…그에 비견될 보복인사’라고 했다. 미국 닉슨 대통령은 법무장관에게 자신의 워터게이트 스캔들을 수사하던 아치볼드 콕스 특별검사를 해임하라고 지시했는데, 이것으로 사법방해 혐의로 탄핵에 몰리다가 결국 사임했다. 문정권의 보복인사도 일종의 사법방해에 해당한다는 뜻이다.

중앙일보 1면 톱은 ‘검찰 대학살…정권 수사 윤석열 손발 다 잘랐다’고 했다. ‘손발을 다 잘랐다’는 원색적인 표현까지 쓰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2면 톱은 ‘친문 중앙지검장·검찰국장…윤석열은 대검에 갇혔다’라고 썼다. 검찰과 관련해서 가장 중요한 요직 2자리를 꼽으라면 당연히 서울중앙지검장과 법무부 검찰국장, 두 곳이다. 그런데 이성윤 신임 중앙지검장, 조남관 신임 검찰국장, 두 사람은 노무현 정부 때 문 대통령과 함께 청와대에 근무했던 경력이 있다. 이성윤 지검장은 문 대통령의 경희대 후배이기도 하다.

어제 저녁 퇴근 후에 발표된 법무부의 검찰 인사는 한마디로 "산 권력을 수사 중인 검찰총장의 손발을 다 잘라버린 인사 폭거"라고 규정할 수 있다. 말 그대로 ‘피바람’이요 ‘대학살’ 인사다. 그렇다면, 청와대를 겨냥한 수사는 이 대학살로 끝나고 마는 것인가. 우리는 아니라고 본다. 그렇게 생각할 필요 없다. 윤석열 검사 32명을 전국 각지로 흩어버린 검찰 인사는 거꾸로 말하면 지금 정권이 그만큼 코너에 몰려 있다는 뜻이고, 그만큼 지금 정권이 자신감이 없다는 반증이다.


여기서 지난연말 주간조선 송년호 표지를 보여드린다. ‘2019 올해의 인물, 윤석열’이다. 그런데 이번에 문 정권은 새해 벽두 ‘검찰 대학살 인사’를 해버림으로써 그들이 원치 않았던 ‘윤석열 영웅 만들기’가 시작됐다고 봐야 한다. 주간조선 2019년 ‘올해의 인물’ 윤석열은 2020년에도 ‘올해의 인물’이 될 공산이 커졌다. 국민들의 지지와 성원은 이제 윤석열 한 사람을 중심으로 뭉치면서 거대한 회오리바람이 될 징조를 보이고 있다. 엊그제 ‘김광일의 입’ 제목처럼 말 그대로 "이제는 윤석열 하나 남았다"고 볼 수 있는데,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윤석열 총장은 일기당천(一騎當千)의 기세를 얻었다고 할 수 있다. 한 마리 말에 올라탄 장수가 천여 명의 적들을 혼자서 무찌를 수 있다는 뜻이다. 마치 관운장과 조자룡이 그랬던 것처럼 ‘일기당천 윤석열’에 대한 국민 성원과 기대감이 폭발하고 있기 때문에 윤석열 총장은 정권에게 더 날카로운 창끝이 될 수 있다.

어제 밤늦게까지 지인들과 토론을 벌였는데 결말은 이렇다. 첫째 시나리오다. 윤석열 총장이 이번 인사에 개인적인 수모를 참지 못하여 전격적으로 사표를 내고, 이어서 4월 총선에 출마할 채비를 한다. 그러나 대부분 지인들은 이럴 가능성이 거의 없다고 봤다. 토론 자리에서 이 시나리오는 바로 폐기처분됐다.

둘째는 윤 총장이 끝까지 버티면서 총장의 2년 임기를 다 채운다는 시나리오다. 윤 총장이 아무리 고립무원이 됐지만, 그러나 검찰총장이란 자리가 결코 만만한 자리가 아니라는 것이다. 누구도 간섭할 수 없는 검찰총장의 고유권한, 즉 ‘자원 배분 권한’을 살린다면 전국에 흩어진 검사들을 다시 불러들여 ‘특별수사팀’을 꾸릴 수 있다는 것이다. 이 경우엔 살아있는 정권에 대한 수사가 계속될 수 있다.

셋째 시나리오도 있다. 윤 총장이 특별수사팀을 꾸리거나, 혹은 새로 임명된 중앙지검 검사들을 직접 지휘해서 살아있는 권력에 대한 수사를 계속할 경우, 추미애 법무장관은 비상 징계위원회를 소집한 다음, 검찰총장이 지휘체계를 무시했다는 이유를 들어 그를 징계할 수 있다. 만약 이 시나리오가 진행되면 윤 총장은 자발적인 ‘의원(依願) 해임’이 아니라, 정권에 의한 ‘파면 조치’가 되는 것이며, 이 경우 윤석열은 ‘끝까지 정권에 저항한 대항마’로서 자연스럽게 대선 후보의 자격을 얻게 될 뿐 아니라 정치적 투쟁 에너지와 국민적 성원과 구심력을 한 몸에 끌어 모을 수 있다.

자, 여러분의 생각이 궁금하다. 여러분은 이번 사태가 어느 쪽으로 움직일 것으로 보시는가.
문재인 정권의 특징은 ‘내로남불’이라고들 했다. 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 여기서 비롯된 말이다. 그런데 이 말은 틀렸다. 지금 정권의 핵심 세력들이 노출하고 있는 특징은 ‘후안무치(厚顔無恥)’다. 염치도 모르고 부끄러움을 모르는 사람처럼 행동한다. 대학살 인사를 저질러놓고도 부끄러움이 없다. 이들은 나중이 없는 것처럼 행동한다. 지금은 추미애 법무장관이 윤석열 총장의 손발을 자르면서 검찰을 제압한 것 같지만, 우리는 그렇게 보지 않는다. 이번 검찰 대학살에서 우리는 정권의 불안한 얼굴을 본다. 추미애는 졌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20/01/09/2020010903196.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