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정치

[김광일의 입] '안종범 수첩'과 朴, '송병기 일지'와 文 다를게 뭐 있나

Shawn Chase 2019. 12. 19. 03:18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9/12/18/2019121802824.html



입력 2019.12.18 18:22 | 수정 2019.12.18 20:02


문재인 정권이 임명한 김명수 대법원장. 그 ‘김명수 대법원’의 전원합의체가 올 8월29일 중요한 판결 하나를 내린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상고심 선고에서 박 전 대통령의 지시 내용 등을 담은 안종범 전 청와대 정책조정수석의 업무수첩이 갖는 증거능력을 일부 인정한 것이다. 앞서 작년 8월엔 국정농단 사건 수사 당시 '사초(史草)'라는 평가까지 받은 이른바 '안종범 업무수첩'이 박근혜 전 대통령과 최순실씨의 항소심 재판에서 증거능력을 인정받았다.

이런 재판이 진행되기 전인 2017년10월 송병기 울산시 여당후보 선거참모도 열심히 업무수첩을 적는다. 한 예로 이런 글이 적혀 있다. ‘2017년10월10일 (서울 지역균형발전위) 단체장 후보 출마 시, 공공병원 (공약), 산재모(母) 병원→좌초되면 좋음.’ 송병기라는 사람은 작년 6·13 지방선거를 앞두고 김기현 전 울산시장 관련 비리 의혹을 청와대에 처음 제보했던 장본인이다. 여기서 표를 하나 보여드린다.


이 표는 송병기씨의 업무수첩을 알아보기 좋게 요약해서 표로 만든 것이다. 맨 위를 보시면, ‘2017년10월10일, 서울 지역균형발전위’라고 돼 있고, 그 밑에 ‘단체장 후보 출마 시, 공공 병원’이라고 돼 있다. ‘단체장’이라는 것은 울산시장을 뜻하고, ‘후보로 출마’한다는 것은 자신이 모시고 있는 송철호 후보자를 뜻한다. 그리고 ‘공공병원’이라는 것은 송철호 후보가 핵심 공약으로 내걸게 되는 내용을 뜻한다. 그런데 바로 밑에 ‘산재모병원→좌초되면 좋음’이라도 돼 있다. ‘공공병원’이든 ‘산재모병원’이든 대형 종합병원 건립은 당시 울산시의 숙원사업이었는데, 산업재해자를 위한 산재병원을 총괄한다는 뜻에서 어미 모(母)자를 붙인 산재모병원은 박근혜 정부의 울산 대선공약이었고, 2014년에 예비타당성 조사에 착수했으며, 그대로 한국당 김기현 전 울산시장의 추진 사업이요 공약이었다. 반면 ‘공공병원’은 민주당 송철호 후보의 공약이 된다. 표를 계속 보겠다.

‘2017년10월12일 서울 출장’ 그리고 그 밑에 ‘산재모병원 또는 공공병원→BH방문’, 이렇게 돼 있다. 여기서 BH는 블루 하우스, 즉 청와대를 뜻한다. 계속 표를 보겠다. 표의 세 번째 칸을 보면 이렇게 돼 있다. 사실은 여기에 이번 울산 선거 개입 사태에 핵심 내용이 담겨 있다. ‘2017년10월13일, VIP가 직접 후보 출마 요청 부담(면목없음)으로 실장이 요청.’ 이건 무슨 뜻인가. VIP란 당연히 문재인 대통령을 말한다. 문 대통령이 형이라 부르는 절친 송철호 씨에게, 더구나 그 지역에서 8번이나 출마했다가 모두 떨어진 ‘송철호 형’에게 출마를 요청한다는 게 부담스럽고 면목이 없으므로, 대신 ‘실장’이, 그러니까 임종석 비서실장이 출마를 요청한다는 뜻이다. 대통령이 출마를 권유한다는 것 자체가 법적으로 문제 삼기는 힘들지만, 그 뒤에 송철호 후보를 청와대가 지원하고 경쟁 후보를 배제하려는 작업을 펼쳤다면, 그것은 선거법 위반 소지가 적지 않은 것이다.

이어서 업무일지 표를 계속 보겠다. 바로 그날, 2017년10월13일 이렇게 돼있다. ‘송 장관 BH 방문 결과(10월12일), 공공병원 대안 수립 시까지 산재모 추진 보류→공공병원 조기 검토 필요’. 여기서 ‘송 장관’은 장관급인 국민고충처리위원장을 맡은 바 있던 송철호 후보를 지칭하는 것이고, 청와대를 방문한 결과, 상대당인 김기현 후보의 산재모병원 공약은 추진을 보류하고, 대신 민주당 송철호 후보의 공공병원 공약은 조기 검토에 들어가야 한다는 내용이다.

표의 오른쪽을 잠시 보겠다. 그 뒤에 일을 빠르게 진행되어 2017년11월 송철호씨는 대통령 직속 지역균형발전위원회 고문으로 위촉되고, 다시 해가 바뀌어 이미 알려진 것처럼 2018년1월 송철호 후보, 송병기 씨, 선거 참모 그리고 청와대 행정관 등 4명이 청와대 앞 음식점에서 만나게 되는 것이다. 표를 끝까지 보겠다. 왼쪽 밑을 보면 ‘2018년3월31일 BH 회의, 총사업비 2000억 원. 기재부 반대 예상되므로 대비, 울산시 부담액 준비 필요.’ 이렇게 돼 있다. 지방선거를 두 달 보름 앞두고 청와대에서 회의가 열렸다는 것이고, 송철호 후보의 공약인 공공병원 사업에 대한 예산 얘기가 나온다.

이번엔 표의 오른쪽 밑을 보겠다. 이어서 한국당 후보인 김기현 시장에게 마지막 쐐기를 박는다. ‘2018년5월28일, 기획재정부, 산재모병원 백지화’, 이렇게 돼있다. 한국당 김기현 후보의 핵심 공약은 선거를 치르기 보름 전에 예비 타당성 조사에서 탈락해 백지화되는 것이다. 그리고 2018년6월13일 선거에서 대통령의 ‘30년 절친’인 송철호 후보가 당선된다.
이런 내용이 일목요연하게 적혀 있는 송병기 울산 부시장의 업무수첩. 청와대 하명 수사 의혹을 수사 중인 서울중앙지검 공공수사 2부 김태은 부장검사는 지난 6일과 7일 송병기 부시장의 자택과 사무실을 압수수색하면서 이 업무수첩을 확보했다. 검찰은 이 업무수첩을 핵심 증거로 보고 있다. 이 업무수첩은 관련 내용이 모두 30여장에 달하고, 일기처럼 작성해온 만큼 실제로 벌어진 일이라고 검찰은 보고 있다. 심지어 ‘2018년3월BH회의’라고 돼 있는 메모에는 청와대 사회정책비서관의 이름도 적혀 있다고 한다. 다른 항목에도 청와대 관계자들의 이름과 날짜까지 적혀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송병기 부시장의 업무일지를 보면 한국당 후보뿐만 아니라, 민주당 당내 경쟁자를 솎아내는 내용도 들어있다. 2017년 10월, 11월 업무일지에는 이런 내용이 들어 있다. ‘A(ㅇㅇ발전), B(자리 요구)’ ‘송장관·B씨 건’ ‘중앙당과 BH, B제거→송 장관 체제로 정리’ ‘C의원 발언 : B씨를 움직일 카드가 있다고 조국 수석이 얘기함’. 당시 조국 민정수석이 당내 경쟁자인 B씨를 움직이려 했다는 뜻이다. 실제로 B씨는 공천에서 떨어졌고, 지역위원장으로도 복귀하지 못했다.

앞서 박근혜 대통령 때 정책조정수석이었던 안종범 씨의 업무수첩이 대법원에서 최종적으로 증거능력을 인정받았다고 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은 2016년 총선에서 친박 인사들을 위해 공천 개입을 했다는 혐의가 선거법 위반으로 확정돼 징역 2년을 추가로 선고받았다. 그렇다면, 문재인 대통령의 절친인 송철호씨, 송철호씨의 핵심 측근으로 선거를 지휘했던 송병기 부시장, 그 사람의 업무수첩에 나오는 ‘VIP’ ‘비서실장’ ‘조국 수석’ ‘비서관’ ‘행정관’ ‘청와대 회의들’, 이것들은 무엇을 말하는가. 더 이상 무슨 말이 더 필요하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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