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권따라 출렁인 부동산 정책
샤워실의 바보.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밀턴 프리드먼이 섣부른 정부의 개입을 빗댄 말이다. 샤워실에서 물을 틀면 차가운 물이 나온다. 샤워실의 바보가 수도꼭지를 확 돌리면 뜨거운 물이 나오게 된다. 깜짝 놀라 찬 물 쪽으로 돌리면 다시 차가운 물이 나온다. 이런 과정이 반복된다. 프리드먼은 정부 정책이 실제 효과를 발휘할 때까지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섣부른 개입은 경기 변동을 더 크게 할 수 있다고 경고한 것이다.
MB·박근혜 규제 풀자 과열 조짐
문재인 정부 초강경 규제로 눌러
재건축 막고 양도세·보유세 강화
공급 줄자 ‘똑똑한 한 채’에 집중
강남·마용성 누를수록 더 뛰어
“뉴욕·도쿄처럼 도심 신축 늘려야”
한국 정부의 부동산 정책은 대표적인 사례로 꼽힐만하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은 최근 지난 20년 동안 정권별 서울 아파트값 시세를 분석해 발표했다. 서울 강남권 17개 단지의 아파트 가격은 문재인 정부 집권기인 2017~2019년 3.3㎡당 2034만원 오른 것으로 나타났다. 노무현 정부에서도 2257만원 올랐다. 반면 반면 이명박 정부에서는 3.3㎡당 4207만원에서 3575만원으로 632만원 하락했다.
민간 임대 147만 채, 최장 8년 매물 잠겨
부동산 억제 정책을 편 노무현·문재인 정부에서 값이 오른 반면 부양 정책을 실시한 이명박 정부에서는 오히려 내린 것이다. 특히 문재인 정부는 부동산 보유세 강화, 재건축 억제, 민간주택 분양가 상한제 등 강력한 부동산 대책을 잇따라 내놨음에도 가격 상승을 오히려 부채질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이에 대해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은 “박근혜 정부에서 주택담보인정비율(LTV)과 총부채상환비율(DTI) 한도를 늘리는 등 각종 부동산 규제를 푼 여파가 이번 정부에서 나타나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박근혜 대통령 취임 직전이 2012년 말 963조원이던 우리나라 가계부채 규모는 2016년 말 1342조원으로 급증했다.
하지만 문재인 정부가 면죄부를 받기는 어렵다. 섣부른 정책으로 아파트값 폭등에 일조했기 때문이다. 서울 아파트, 특히 강남 4구와 마용성 등지의 역세권 신축 아파트에 대한 수요는 꾸준하다. 정부는 재건축초과이익환수제 부활(2018년1월), 민간주택 분양가 상한제 도입(2019년 10월) 등을 통해 공급을 억누르고 있다. 국토교통부는 “분양가 상한제 시행 시기(2007년~2014년) 서울 아파트값은 0.37% 상승한데 비해 분양가 규제가 자율화된 2015년 이후 5.67% 올랐다”며 “분양가 상승에 따라 기존 주택으로 수요가 몰리면서 가격이 오르고, 다시 분양가가 상승하는 악순환을 끊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부동산 전문가들의 의견은 다르다. 규제와 가격 변동의 시차를 감안해야 한다는 것이다. 권대중 명지대 부동산대학원 교수는 “분양가를 규제해서 값이 안정됐다기 보다는 분양가 상한제로 공급 물량이 줄어들면서 2015년 이후 가격이 올랐다고 보는 편이 온당하다”며 “분양가상한제는 가격 통제로 공급을 축소하기 때문에 중장기적으로는 봤을 때 주택값이 다시 상승할 우려가 있다”고 말했다.
아파트는 보통 인허가를 받은 뒤 2~5년 후에 입주하게 된다. 건설교통부에 따르면 올들어 7월까지 누적 주택 인허가는 25만4168가구로 최근 5년 평균(34만3983가구)보다 26.1% 줄었다. 서울의 경우 2015년부터 2017년 사이 신규주택 인허가가 연 10만채 안팎이었지만 2018년에는 6만채 수준으로 줄었다. 부동산 정보사이트 부동산지인은 서울 아파트 입주물량이 지난해 4만9000채에 이어 올해 5만6000채로 정점을 찍은 뒤 내년 4만채, 2021년 2만채, 2022년 8000채 수준까지 급감할 것으로 전망했다.
2017년 12월 내놓은 민간 임대주택 등록 활성화 방안도 공급 부족을 심화시켰다. 지난달 말 현재 누적 등록 임대사업자는 총 46만5000명, 등록 임대주택은 총 147만9000채로 역대 최대다. 2016년 79만채였던 것에 비하면 두배 가까이로 늘었다. 특히 지난해 3월에는 양도소득세 중과를 앞두고 이를 피하기 위한 막판 등록자가 몰리며 한달동안 3만5000명이 임대사업자로 등록했다. 임대주택 가운데 서울의 비중은 30% 정도다. 올 상반기 신규 등록된 17만7000채 가운데 서울은 6만6000채에 달했다. 감세 혜택을 받으려면 최소 8년동안 임대해야 한다. 그만큼 매매 시장에 나올 물건이 줄어든 셈이다. 통계청에 따르면 서울시 주택 290만채 가운데 아파트는 170만채다. 이 가운데 강남3구는 34만채, 마용성은 16만채다. 함영진 직방 빅데이터랩팀장은 “정부의 규제 강화로 다주택 보유에 대한 부담이 갈수록 늘고 있어 증가폭은 둔화되더라도 임대사업자 증가 추세는 이어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수요는 꾸준한데 공급이 막히니 값은 오르기 마련이다.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올들어 8월까지 서울에 집을 산 사람(5만2472명) 가운데 22.4%(1만1740명)는 서울에서 살지 않는 사람들이었다. 외국인들도 서울에 아파트를 산다. 소유자의 국적에 대한 국가의 공식통계는 없지만 한국감정원은 2015년부터 올 9월까지 외국인이 1만479채의 집을 산 것으로 집계했다. 특히 강남, 마용성, 구로·금천·영등포 등이 서울 전체의 외국인 매수비중(1.11%)보다 높았다. 그 결과가 양극화다.
노무현 정부처럼 서울·지방 양극화 가능성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19일 국민과의 대화에서 “서울 쪽 고가 아파트 중심으로 부동산 가격이 상승하고 있는데 지금 방법으로 못 잡으면 더 강력한 여러 방안을 강구해서 반드시 잡을 것”이라며 “부동산 문제는 자신있다”고 말했다. 한국감정원에 따르면 문재인 정부가 출범한 2017년 5월부터 올해 9월까지 서울 아파트값은 11.08% 올랐다. 지난해 9·13부동산대책 발표 후 7개월간 하락했지만 올 7월부터 21주 연속 오르고 있다. 반면 같은 기간 수도권 외 아파트값은 6.23% 떨어졌다.
문제는 이같은 상황이 앞으로도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는 점이다. 수요와 공급을 묶는 정책을 편 노무현 정부에서도 양극화 현상이 나타났다. 노 대통령이 퇴임한 2008년 서울의 아파트 매매지수는 89.1인 반면 6대광역시는 67.1이었다. 노 대통령 취임시(2003년 2월)에는 서울이 56.9, 6대 광역시가 57.2였다. 서울 아파트 공급을 억제할수록 ‘똑똑한 한 채’로 수요가 집중되면서 강남 집값의 급등이 나타나는 것이다. 허윤경 건설산업연구원 주택도시연구실장은 “어려운 경기 여건, 단기 급등의 피로감, 정부의 강력한 의지를 고려하면 단기적인 추가 상승 동력은 크지 않아 보이지만 장기적으로는 서울 아파트 시장의 불안 요인은 여전하다”며 “일본 도쿄나 미국 뉴욕처럼 용적률 인센티브 등을 통해 도심 주택 공급을 적극적으로 추진해 서울 신축 아파트의 희소성을 낮춰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창우 기자 changwoo.ki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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