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국 수사 방해가 검찰 개혁인가
국방부 의견 무시 지소미아 종료
민심·부처 판단 무시해선 안 된다
광장의 박근혜 심판을 잊었는가
가와이도 아베에게는 아끼는 측근이다. 일본 인사들은 2016년 11월 9일 새벽 미국 대통령 선거 개표 도중의 상황을 거론했다. 예상했던 힐러리가 아닌 트럼프의 당선이 유력해지는 순간 일본열도에는 비상이 걸렸다. 아베는 두 달 전 당선이 유력시되는 힐러리만 만났던 것이다. 이 때 워싱턴으로 날아가 당선인 측근들을 만나 트럼프-아베 회동을 성사시킨 사람이 바로 가와이였다. 그런데도 아베는 그를 가차없이 정리했다. 경제산업상의 사퇴, ‘벚꽃을 함께 보는 모임’ 스캔들에도 불구하고 지지율이 유지되는 것은 민심을 존중하기 때문이다. 이틀 뒤 아베는 일본 최장수 총리가 된다.
한국의 권력자는 민심은 안중에 없고 지지자들만 바라본다. 조국은 문 대통령의 엄호 아래 짧은 장관 시절 서둘러 추진했던 포토라인 폐지의 첫 수혜자가 됐다. “검찰 수사에 협조하겠다”고 했던 약속을 깨고 진술 거부권을 행사했다. 누구보다 법치주의를 존중해야 할 전직 법무장관의 자세는 아니다.
김오수 법무부 차관은 윤석열 검찰총장을 따돌리고 대통령을 만나 검찰 개혁 방안을 보고했다. 검찰이 수사 단계마다 사전에 법무장관에게 보고하는 내용이었다. 한국은 대통령이 검찰 인사와 보직을 결정하는 예외적인 선진국이다. 이것도 모자라 수사 상황까지 다 들여다 보겠다는 것이다. 검찰의 중립성과 독립성을 5공 때보다도 못한 수준으로 후퇴시키는 개악(改惡) 조치다.
유·무형의 수사방해로 “헥헥거리면서 수사한다”는 검찰은 죽을 맛이다. 대통령은 조국의 비리 의혹을 “합법적인 제도 속에 내재한 불공정”으로 규정했다. “윤석열이 없어도 되는 반부패시스템”도 주문했다. “조국은 불법을 저지르지 않았고, 윤석열은 그만두어야 한다”는 뜻인지 이 대목에서 묻고 싶다.
대통령이 민심을 거역하고 무능해도 5년 임기가 보장되는 것은 불공정하다. 대통령제의 치명적인 단점이다. 이 때문에 세상은 복잡해지는데 권력은 대통령 한 사람에게만 집중되고 있다. 어떤 초인(超人)도 감당하기 어렵다. 집권당과 내각으로의 권한 위임, 야당과의 협치는 선택이 아니라 필수다.
하지만 이 정권에서는 보좌집단에 불과한 청와대의 규모와 권한이 부풀어가고 있다. 관료들은 청와대 행정관이 기침만 해도 경기를 일으킨다. 대통령과 민심의 거리는 갈수록 멀어진다. 민심을 제대로 알았다면 이렇게 검찰을 무력화하려는 조치를 취하지 않았을 것이다. 도대체 박근혜 정권과 무엇이 다른가.
내각제를 하는 나라 일본의 총리는 국장급 실무자와도 수시로 만나 국정의 실상을 파악한다. 한국 대통령은 ‘혼밥’을 자주 하는데, 아베는 하루 저녁에 식사 자리를 세 번도 갖는다. 매일 수십개의 일정은 언론을 통해 공개된다. 총리가 무슨 일을 하는지 국민들은 훤히 알고 있다. 민심과 멀어지는 순간 지지율은 폭락하고 총리는 물러나야 한다. 민심을 존중하는 정치인이 가장 큰 권한을 갖는 시스템인 것이다.
문 대통령은 후보 시절 “대통령의 24시간은 공공재”라면서 일정 공개를 약속했지만 제대로 이행하지 않고 있다. 국민은 자기가 뽑은 대통령이 누구를 만났는지도 제한적으로만 안다. 민심과 대통령의 결정은 따로 놀고 있다. 권력이 사유화되고 있는 징후다.
22일로 다가온 한일군사정보보호협정(지소미아) 종료는 위험천만한 자해행위다. 국방부와 외교부에선 반대 의견이 지배적이었지만 대통령은 밀어붙였다. 사흘 전에는 동맹국 미국의 국방부 장관과 합참의장에게도 대통령은 “일본이 수출규제를 철회하지 않는 한 종료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한국이 한·미·일 안보협력 체제에서 이탈하려는 움직임을 읽은 미국 합참의장의 입에서 주한미군 철수론이 나왔다. 대통령은 조국 자녀의 입시비리 의혹이 제기되자 공정성을 높이기 위해 정시 비중을 높이라고 주문했다. 공론화 과정은 없었다. 정반대의 정책을 추진해 온 교육부는 한동안 패닉에 빠졌다. 정책의 ‘대통령 리스크’가 이런 것인가.
대통령이 혼자 달리는 시스템은 문제가 있다. 국민의 집단지성과 관료의 전문적 판단을 무시하면 안 된다. 우리는 3년 전 광화문광장에서 현직 대통령이 심판당하는 무서운 장면을 목도했다. 이제 막 임기 반환점을 지난 문 대통령의 자세는 위험한 수준이다.
이하경 주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