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정치

[강천석 칼럼] 조국 장관 머리 위에 펼쳐진 '寬容의 雨傘'

Shawn Chase 2019. 10. 13. 14:24



입력 2019.10.11 23:38

대통령, 내 편 아닌 사람에게 이렇게 너그러운 적 있었나
경쟁자 말살하는 정권은 보복의 惡夢에서 헤어나지 못해

강천석 논설고문
강천석 논설고문
나라가 두 달 넘게 헛돌고 있다. 대통령이 '국가 운영'과 '조국 보호' 가운데서 우선순위(優先順位)를 잘못 잡은 탓이다. 지도자의 가장 중요한 자질(資質)은 우선순위를 정확히 매기는 것이다. 문제점을 찾아내는 데도, 문제점 중에서 무엇을 먼저 해결할 것인가를 결정하는 데도 기준이 되는 것이 우선순위다. 엉뚱한 데 조직의 에너지를 탕진(蕩盡)하면 쇠퇴(衰退)와 쇠망(衰亡)의 길로 들어선다.

현재 상황에서 조국씨는 무죄(無罪)다. 아직은 혐의자(嫌疑者)·용의자(容疑者)일 뿐이다. 헌법 27조의 '모든 형사 피고인은 (대법원에서) 유죄 판결이 확정될 때까지는 무죄로 추정된다'는 규정 덕분이다. 조국씨의 아내·아들·딸·어머니·동생·제수·5촌 조카·처남 및 그들의 범죄를 거든 사람들도 '무죄 추정 원칙'의 그늘 아래 있다. 헌법과 법률 어디에도 '중대 범죄 혹은 잡스러운 여러 범죄에 연루(連累) 혐의를 받고 있는 사람은 국무위원 또는 정부 중요 직책에 임명해서는 안 된다'는 규정은 없다.

법률에 '하지 말라'는 규정이 없다는 것을 '해도 된다'고 해석하는 사람은 국가 운영에 발을 들여 놓아선 안 된다. 더더욱 공직자 임명권을 행사하는 자리에는 적합하지 않다. 아무리 촘촘하게 짠 법의 그물도 구멍이 있기 마련이다. 법의 빈 곳을 '건전한 상식'으로 메워가며 해석하고 집행하는 것이 국정 운영이다. 세계 어느 나라 법률에도 '일족(一族) 다수가 범죄 혐의에 연루됐을 경우엔 국가 중요 공직에 임명해선 안 된다'는 규정은 없다. '건전한 상식'의 작동(作動)을 믿기 때문이다.

지도자의 유형은 세 가지다. '탁월한 지도자'는 나라가 자유롭게 번영할 뼈대를 멀리 보며 설계하고 치밀하게 시공(施工)한다. 법률도 제도도 세월이 흐르면 헐거워지고 현실과 맞지 않게 된다. 도로나 건물처럼 주기적 보수(補修) 공사가 필요하다. '보통 지도자'는 보수할 때를 놓치지 않고 나라가 굴러가게 한다. '참 나쁜 지도자'는 자신의 역량(力量)과 국가가 놓인 환경을 오판(誤判)하고 나라의 골조(骨組)를 바꾸겠다고 덤비다 건물을 무너뜨리고, 한 번도 가보지 않은 길을 가겠다며 시도 때도 없이 모든 것을 뒤집어 아수라장을 만든다.

보통 사람들은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듣고 싶은 것만 듣기 쉽다. 민주주의의 모순은 보통 사람들이 '보이지 않는 것도 볼 줄 알고 들리지 않는 소리도 들을 줄 아는 지도자'를 뽑아야 한다는 데 있다. 그런 데서 비롯되는 위험을 줄이려면 대통령과 다른 걸 보고 다른 소리를 듣는 색깔이 다른 사람도 주위에 둬야 한다. 이 정권 인사는 위에서 아래까지 홍일색(紅一色)이다. 대통령과 다른 소리를 들을 사람도 다른 소리를 낼 사람도 없다.

대통령은 광화문 집회와 서초동 집회를 두고 '국민의 뜻은 검찰의 정치적 중립 못지않게 검찰 개혁이 시급하고 절실하다는 것'이라고 풀이했다. 유엔 총회에 가서 '북한은 작년 9·19 군사 합의 이후 단 한 건의 위반이 없었다'고 했던 대통령이다. '우리 경제는 올바른 방향으로 가고 있다'는 말을 수시로 되풀이한다. 북한 미사일 발사의 굉음(轟音)도, 세종로의 함성도, 청년 실업자의 비명도 듣지 못하는 '선택적 난청(難聽)' 증상이다. 설득은 '귀[耳]로 시작해서 입[口]으로 마무리한다'는데 설득의 첫걸음이라도 뗄 수 있겠는가.

조국씨의 위선(僞善)은 지난 두 달 양파처럼 벗겨졌다. 위선이란 영어 단어(hypocrisy)는 원래 '배우의 연기(演技)'를 가리키는 말이라고 한다. 위선은 탈을 쓰고 사는 것이다. 대통령은 그런 조씨의 탈 위에 '무죄 추정의 원칙'이란 우산을 받쳐 주고 있다. '대통령 사람' '대통령 편' 말고 그 우산을 빌려 써본 사람이 있는가.

문재인 정권은 경쟁자 집단을 말살(抹殺)하는데 조금의 주저도 없었다. 불관용(不寬容)의 원칙에 철두철미한 사람들이다. 관용은 상대를 위한 배려가 아니다. 사실은 나와 우리 집단의 미래의 안전을 위해 드는 보험이다. 이 정권은 그런 보험이 있는 줄도 모른다. 그런 집단은 어느 순간부터 보복의 공포에서 헤어나지 못한다. 정권을 놓으면 죽는다는 악몽(惡夢)에 시달린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제일 존경한다는 미국 대통령 링컨 변호사의 말로 대신하자. '나는 공화국의 헌법을 생명처럼 수호하겠다고 선서했다. 그러나 나라가 무너진 다음 헌법을 수호한다는 말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대통령에게 들으라는 말이 아니다. 국민이 마음으로 새길 말이다. 그러다 보면 길이 보이고 용기가 우러날 것이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9/10/11/2019101102916.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