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SLBM에 발칵 뒤집힌 일본
일본 정부가 이처럼 북한의 SLBM에 강경 대응하고 나선 것은 안보에 직접적인 위협이 되기 때문이다. 북한의 SLBM이 떨어진 곳은 일본이 규정한 EEZ 내였기 때문이다. 북한이 발사한 탄도미사일이 일본의 EEZ 내에 떨어진 것은 2017년 11월 29일 이후 처음이다. 영해 기선에서 200해리 이내의 수역인 EEZ는 선박 통행과 상공 비행의 자유를 제외하고 배타적 경제 주권을 국제사회로부터 인정받는다는 점에서 사실상 영해와 다름이 없다. 북한은 SLBM을 시험발사하기 전에 국제해사기구(IMO) 등 국제기구에 사전 통보조차 하지 않았다. 때문에 북한의 SLBM이 떨어진 해역에서 일본 선박들이 자칫하면 피격됐을 가능성도 있었다. 게다가 북한의 SLBM이 일본 열도를 직접 타격할 수도 있다는 점을 감안할 때 일본 정부로선 민감하게 반응할 수밖에 없었다. 특히 일본 정부의 입장에선 북한이 앞으로 SLBM에 핵탄두를 탑재했을 경우 엄청난 위협이 될 수 있기 때문에 우려의 목소리를 낼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일본 정부는 지난 9월 27일 각의에서 채택한 ‘2019년 방위백서’에서 “북한이 핵무기의 소형화·탄두화에 성공한 것으로 보인다”면서 탄도미사일의 핵 탑재 가능성을 언급했었다.
아베 총리는 지난해 6월 12일 싱가포르 미·북 정상회담 이후 김정은과의 북·일 정상회담을 개최하고 싶다는 뜻을 여러 차례 밝혀왔다. 또 지난 5월부터는 아예 조건조차 붙이지 않았다. 실제로 아베 총리는 지난 9월 24일 뉴욕 유엔총회 연설에서 김정은과 ‘조건 없는’ 회담 개최 의지를 재차 강조했다. 아베 총리는 “일본인 납치 문제, 핵·미사일 문제 등 모든 현안을 포괄적으로 해결해 불행했던 과거를 청산하고 국교 정상화를 실현한다는 목표에는 변함이 없다”고 밝혔다. 아베 총리는 이를 위해 지금까지 북한에 대해 유화적 제스처를 보내왔다. 아베 총리는 북한이 올 들어 5차례에 걸쳐 10발의 단거리 탄도미사일을 시험 발사했는데도 비판의 목소리를 자제해왔다. 물론 아베 총리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북한의 단거리 탄도미사일에 대해 문제가 없다는 식으로 눈을 감아온 것을 보면서 북한에 대한 비난을 자제해온 측면도 있다.
이처럼 북한과의 정상회담에 ‘올인’했던 아베 총리가 이번에는 유엔 안보리 결의 위반을 언급하면서 강경 대응하는 것은 북한의 SLBM이 ‘게임체인저’(주간조선 4월 29일자·2555호)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SLBM은 지상에서 발사되는 대륙간탄도미사일(ICBM)과는 달리 해저의 잠수함에서 발사되기 때문에 발사 장소와 시점을 알 수 없는 치명적인 무기다. 북한이 SLBM 2~4기 탑재가 가능한 3000t급 잠수함을 전력화할 경우 게임체인저가 될 수 있다. 은밀하게 침투하는 SLBM을 탑재한 잠수함을 탐지, 추적, 타격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북한이 SLBM을 탑재한 잠수함으로 일본의 자위대와 주일미군 기지를 공격할 경우 이를 막는 것은 매우 힘들다. 잠수함 강국인 일본은 다른 어느 국가들보다 이런 사실을 잘 알고 있다. 때문에 아베 총리로선 김정은과의 정상회담 개최를 위해 대북 유화정책을 펴왔음에도 불구하고 강경한 목소리를 낼 수밖에 없는 입장이다. 아베 총리로선 국민 생명과 재산을 지키기 위해선 무엇보다 국가 안보가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3000t급 잠수함 탑재 북극성-3형의 위력
북한은 현재 3000t급 잠수함에 탑재할 북극성-3형 미사일을 개발하고 있다. 북한은 2016년 8월 함남 신포 앞바다에서 북극성-1형을 성공적으로 발사했고, 2017년 2월 지상발사 탄도미사일인 북극성-2형의 시험발사에도 성공했다. 당시 김정은은 북극성-2형의 실전배치를 지시한 바 있다. 북극성-2형은 최대고도 560㎞까지 올라가 500여㎞를 비행해 사거리가 2000㎞인 것으로 추정된다. 북한 국방과학원은 지난 10월 2일 오전 동해 원산만 수역에서 북극성-3형의 시험발사를 성공적으로 진행했다고 밝혔다. 북극성-3형은 2016년 4월 23일 처음 발사했을 때의 북극성-1형과 비교하면 길이와 직경이 모두 커졌다. 첫 시험발사한 북극성-1형은 30㎞가량을 비행해 실패한 것으로 평가됐었다. 이후 북한은 같은 해 7월과 8월에 잇따라 북극성-1형을 시험발사했는데, 8월 발사 때는 500㎞를 비행했다. 당시 북극성-1형의 길이는 7.35m, 직경은 1.1m였는데, 북극성-3형은 길이가 10m 이상, 직경이 1.4m 이상으로 추정된다. 북극성-3형의 외형은 중국의 SLBM인 쥐랑-2(巨浪·JL-2)와 비슷하다. 중국 정부가 10월 1일 건국 70주년 국경절을 맞아 거행한 열병식에서 공개한 JL-2는 길이 13m, 직경 2m로 사거리는 7000~8000㎞에 달한다. 북극성-1형은 탄두부가 뾰족한 모양이었으나 북극성-3형은 둥근 형태로 제작됐다. JL-2의 탄두부도 둥근 모양이다. 북한이 북극성-3형의 외형을 JL-2와 닮은꼴로 개발한 것은 다탄두 SLBM을 개발하려는 의도가 있다고 볼 수 있다. JL-2는 3~8개의 다탄두 탑재형 SLBM이다.
북한 관영 조선중앙통신은 지난 7월 23일 김정은이 새로 건조한 잠수함을 시찰했다면서 새 잠수함은 동해 작전수역에서 임무를 수행하게 되며 작전배치를 앞두고 있다고 보도한 바 있다. 당시 북한이 공개한 신형 잠수함은 SLBM 3기를 탑재할 수 있을 것으로 추정됐었다. 북한은 이번 북극성-3형을 잠수함이 아닌 바지선에서 발사했다. SLBM을 개발하려면 지상에서 시험발사를 하고 수중발사대가 장착된 바지선이나 물에 잠기는 컨테이너에서 시험발사를 한 후 잠수함에서 발사한다. 북극성-3형의 사거리는 고각 발사한 고도로 봤을 때 최대 3000~5000㎞가 될 것으로 추정된다. 동해에서 발사할 경우 미국의 군사 전략 거점인 괌이나 알래스카를 타격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고노 방위상은 북한의 SLBM은 사거리가 2500㎞인 준중거리 탄도미사일로, 신형 고체연료 추진 방식으로 추정된다고 밝혔다.
북한의 SLBM 시험발사는 한국은 물론 일본과 미국의 안보에 중대한 위협이 되는데도 불구하고 문재인 정부의 대응은 한가롭기만 하다. 청와대는 정의용 국가안보실장 주재로 국가지도통신망을 통해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상임위원회 긴급회의만을 개최했을 뿐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북한의 단거리 탄도미사일 도발 때는 물론이고 이번에도 NSC 회의를 직접 주재하지 않았다. 또 NSC에서 나온 대북 메시지는 ‘강한 우려’가 전부였다. 특히 NSC는 “북·미 간 실무협상이 성공적으로 개최돼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와 항구적 평화구축을 위해 실질적인 진전이 이루어질 수 있기를 기대한다”는 엉뚱한 성명을 발표했다. 심지어 정경두 국방장관은 북한이 SLBM을 발사한 지 3시간 만인 10월 2일 오전 10시 국방부에서 열린 국회 국방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이번 발사가 9·19 남북 군사합의에 위배되지 않는 것인가”라는 자유한국당 이주영 의원 질의에 대해 “9·19 군사합의에는 정확하게 그런(미사일 발사 금지) 표현이 없다”고 답변했다. 9·19 군사합의에는 비무장지대(DMZ) 기준 남북 간 5㎞ 이내에서 포 사격 등을 중단하도록 하고 있는 만큼 강원 원산 인근 해상에서 SLBM 발사는 합의 위반이 아니라는 것이다. 북한이 DMZ 5㎞ 밖에서 어떤 군사행동을 벌여도 도발이 아니라는 해괴한 논리다.
9·19 합의 위반도 아니라는 정부
북한이 발사한 SLBM은 핵무기를 장착할 수 있는 데다 사거리에 한국 전역이 포함된다. 9·19 군사합의 전문은 ‘남북이 상대방에 대한 일체의 적대행위를 전면 중지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북한의 SLBM 도발은 명백한 합의 위반이자, 모든 탄도미사일의 발사를 금지한 유엔 안보리 결의를 어긴 것이다. 유엔 안보리는 2009년 6월 결의 1874호에서 북한의 탄도미사일 기술을 활용한 모든 발사행위를 금지했고, 2017년 12월 결의 2397호에선 북한의 탄도미사일 기술이나 핵 실험, 또는 그 어떤 추가 발사 등도 금지했다. 문재인 정부는 지금까지 북한의 단거리 탄도미사일과 SLBM 시험발사가 유엔 안보리 결의 위반이기 때문에 강력하게 제재해야 한다고 발언한 적도 없다.
문재인 정부의 이런 대응은 미국과의 실무협상을 벌이는 북한을 자극하지 않겠다는 의도라고 볼 수 있다. 하지만 문재인 정부의 ‘눈치 보기’에도 불구하고 북한은 지난 10월 5월 스웨덴에서 열린 미국과의 실무협상에서 결렬을 선언했다. 문 대통령은 2017년 5월 북한이 연일 미사일 도발을 감행하자 NSC를 주재한 자리에서 “북한의 미사일 발사는 유엔 안보리 결의의 명백한 위반일 뿐만 아니라 한반도는 물론 국제평화와 안전에 대한 심각한 도전행위로 이를 강력 규탄한다”고 밝힌 적이 있다. 당시 북한은 북극성-2형과 중거리 미사일인 화성-12형을 시험발사했었다. 문 대통령은 2년5개월 만에 북한이 다시 북극성-3형 미사일을 쐈지만 침묵하고 있다. 게다가 북극성-3형은 말 그대로 게임체인저인데도 불구하고 문 대통령은 북한을 포용하는 방안에만 골몰하고 있다.
실제로 문 대통령은 지난 10월 4일 박용만 대한상공회의소 회장, 손경식 한국경영자총협회장, 김기문 중소기업중앙회장, 김영주 한국무역협회장 등과의 오찬 간담회에서 개성공단 재가동과 관련한 의견을 교환했다. 문 대통령은 지난 9월 24일 유엔총회 연설에서는 DMZ 국제평화지대화 구상을 내놓으면서 판문점과 개성을 잇는 평화협력지구를 지정하고 유엔기구 및 평화·생태·문화기구를 유치하겠다는 뜻을 밝힌 바 있다. 문 대통령은 자신의 이런 구상에 가장 중요한 전제조건인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에 대해선 가타부타 언급을 하지 않았다. 북한이 핵을 탑재할 수 있는 SLBM을 시험발사했는데도 이를 전혀 비판하지 않은 채 개성공단 재가동 운운하는 것은 핵과 미사일을 개발할 자금을 주겠다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문 대통령은 “개성공단이 재가동될 경우 다국적기업을 참여시키겠다”는 뜻을 밝혔는데, 북한이 SLBM까지 발사하는 마당에 어떤 외국 기업이 개성공단에 입주할지 의문이다. 문 대통령의 이런 발상은 국민의 생명과 국가의 안보를 도외시한 것이다.
문 대통령은 또 지난 10월 4일 제100회 전국체육대회 개회식에서 기념사를 통해 “2032년 서울·평양 공동올림픽이 열리는 날을 꿈꾼다”고 밝히기도 했다. 문 대통령은 지난 10월 5일 세계한인의 날 기념식 축사를 통해서도 “2032년 서울·평양 공동올림픽을 개최하는 데에도 동포들께서 힘을 보태주시길 기대한다”고 강조했다. 이와 관련, 국제올림픽위원회(IOC)의 토마스 바흐 위원장은 스위스 로잔에서 열린 집행위원회에서 2032년 하계올림픽 개최지는 2021년 이후에나 결정하겠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앞으로 2년 이상이나 남았는데도 문 대통령이 서울·평양 공동올림픽 개최를 강조하는 것은 말 그대로 북한을 띄워주려는 것이다. 문 대통령은 오는 11월 부산에서 개최되는 한·아세안 정상회의에 어떻게 하면 김정은을 초청할 것인지에만 정신이 팔려 있다. 김정은이 한국 땅을 밟게 되면 내년 총선에 유리하기 때문이다.
문 대통령은 북한이 핵을 포기하는 것과 상관없이 오로지 북한만을 포용하겠다는 ‘북한 우선주의’라는 몽상에 빠져 있다고 볼 수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경질한 존 볼턴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은 지난 9월 30일 미국 전략문제연구소(CSIS) 포럼에서 “북한은 자발적으로 핵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며 “제재 부분 완화를 통해 경제 발전과 핵·미사일 개발까지 손에 넣겠다는 북한의 논리에 속아 넘어가고 있는 곳들이 있다”면서 한국 정부를 지목했다. 실제로 문 대통령은 김정은이 핵을 포기할 것이라고 굳게 믿고 있는 듯하다. 트럼프 대통령의 ‘미국 우선주의’가 자신의 ‘재선 우선주의’로 변질되면서 의회 탄핵 조사를 초래한 것을 교훈 삼아 문 대통령은 ‘평화 쇼’에 대한 집착을 버리고 ‘북한 우선주의’를 접을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