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

[이영완의 사이언스 카페] 고양이가 인간을 그토록 열심히 관찰한 이유

Shawn Chase 2019. 7. 14. 21:03


입력 2019.06.04 03:15

왠지 거리감 느껴지던 고양이… 알고 보면 개만큼 사람 잘 이해
개·고양이 반응 방식이 다른 건 인간에 길들여진 과정 차이 때문
진화 측면만 놓고 볼 땐 고양이가 인간에 더 비슷


이영완 논설위원·과학전문기자
이영완 논설위원·과학전문기자


'나는 고양이다. 이름은 아직 없다. 어디서 태어났는지 도무지 짐작이 가지 않는다.'


일본의 문호 나쓰메 소세키(夏目漱石·1867~1916)가 1905년에 쓴 첫 소설 '나는 고양이로소이다'의 첫 문장이다. 그는 고양이를 관찰자로 삼아 교양인이라며 거드름을 피우는 인간들을 신랄하게 비판했다. '나를 보면서 팔자가 저 정도면 얼마나 좋으랴 하고 말하는 이도 있는데… 감당도 하지 못할 만큼 멋대로 일을 만들어 놓고 괴롭다 힘들다 투덜거리는 것은 제 손으로 아궁이에 불을 활활 때면서 덥다고 야단하는 격이다.' 소세키가 인간의 관찰자로 고양이를 내세운 것은 탁월한 선택으로 보인다. 100년 전이나 지금이나 주인이 주는 먹이에도 비굴해지지 않고 제 방식대로 살아가는 고양이는 인간에게 왠지 모를 거리감을 준다. 어쩌면 저렇게 심드렁한 표정 뒤에 숨어 인간이 뭘 하는지 감시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마저 들 정도이다.

하지만 고양이의 진심은 달랐다. 표현하는 방법이 달라서이지 고양이도 개만큼이나 사람을 따르고 사람의 행동과 표정에 일희일비(一喜一悲)한다는 사실이 과학자들의 실험을 통해 속속 드러났다. 국제 학술지 사이언스는 지난달 10일 미국 오리건주립대 연구진의 고양이 연구를 소개했다. 이들은 고양이에게 손가락으로 사물을 가리켰다. 그러자 고양이는 사람 얼굴 대신 손가락 방향을 바라봤다. 고양이가 사람의 의중(意中)을 이해한다는 의미다. 23년 전 과학자들은 개에게서 동물로는 처음으로 이 능력을 발견했다. 인간은 아기 때부터 그런 능력이 발달하지만 인간과 가장 가까운 영장류인 침팬지도 그리하지 못한다. 심지어 사람이 눈으로 가리킨 방향도 고양이는 따라갔다. 헝가리 외트뵈시 로란드대 연구진은 지난해 손가락 대신 눈으로만 사물을 바라봐도 고양이가 70%를 따라 본다고 발표했다.

[이영완의 사이언스 카페] 고양이가 인간을 그토록 열심히 관찰한 이유
/일러스트=이철원


과학자들은 고양이가 인간의 감정에 따라 행동을 달리한다는 사실도 밝혀냈다. 고양이는 선풍기 소리에 민감하게 반응한다. 하지만 주인이 선풍기에 호감을 나타내는 말을 계속 하면 고양이도 선풍기 옆에 편안하게 앉았다. 오리건주립대 연구진은 고양이가 자신에게 관심을 더 많이 보이는 사람 주변에 더 오래 머문다는 사실도 확인했다.

고양이는 주인이 불러도 오지 않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제 이름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사실이 아니었다. 일본 도쿄대 연구진은 지난 4월 국제 학술지 '사이언티픽 리포트'에 '고양이는 자신의 이름과 다른 말을 구분할 수 있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연구진은 주인에게 고양이의 이름과 길이, 리듬이 같은 네 가지 명사를 읽도록 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고양이의 이름을 부르게 했다. 고양이는 11마리 중 9마리가 다른 단어에는 반응하지 않다가 자신의 이름을 부르면 머리와 꼬리를 움직이는 등의 반응을 보였다. 고양이 카페에 사는 고양이는 같이 생활하는 동료 고양이의 이름에도 반응을 보였다.

고양이는 개와 함께 인간의 가장 오래된 동반자이다. 개는 1만4000년 전쯤부터 인간을 따라다니기 시작했고, 고양이는 9500년 전 중동에서부터 인간과 같이 살았다. 하지만 겉으로 보이는 모습은 딴판이다. 개는 늘 사람을 따라다니지만 고양이는 독립적인 삶을 즐긴다. 고양이가 사람을 탐탁지 않게 본다는 오해가 생길 수밖에 없었다.

사정이 이렇게 된 것은 길들여지는 과정이 달랐기 때문이다. 개는 늑대가 먹이를 주는 사냥꾼을 따라다니기 시작하면서 진화했다. 이후 인간이 교배를 통해 원하는 특성을 가진 개들을 적극적으로 만들어냈다. 반면 고양이는 홀로 살던 야생 고양이가 농경지 주변에 많던 쥐를 잡으면서 인간과 접촉하기 시작했다. 품종 개량도 개보다 훨씬 제한적으로 이뤄졌다. 결국 개가 인간에 의해 길들여졌다면, 고양이는 인간과 같이 살 수 있게 스스로 길들었다고 볼 수 있다.

이 점에서 고양이 연구는 인간의 진화를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을 줄 수 있다. 인간 역시 다른 누군가의 손이 아니라 스스로 사회생활을 하도록 진화했기 때문이다. 가축 등 다른 동물과 함께 사는 삶도 홀로 개척했다. 진화의 측면에서 보면 인간은 고양이와 같은 부류인 셈이다. 소세키 소설의 고양이가 인간을 그토록 열심히 관찰한 것도 그 안에서 자신의 모습을 발견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9/06/03/2019060303030.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