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후

황혼결혼

Shawn Chase 2019. 7. 14. 10:40
가수 미나씨의 어머니인 장무식씨(71)와 나기수씨(69)는 지난 5월 결혼식(재혼식)을 올렸다.2017년부터 연애를 시작한 두 사람의사연이 MBN <모던패밀리>를 통해 공개되자 대중의 이목이 집중됐다. 장씨의 장녀 미나씨는 어머니의 새 반려자가 될 나씨를 가장 신중하게 지켜본 딸이라고 한다. 나기수씨 제공
■연애 2년여 만에 결혼 ‘골인’

94세 시어머니도 “좋아요”
장무식(71)·나기수(69) 커플

경기 광명에 사는 장무식씨가 남편과 사별한 것은 2007년. 그동안 ‘좋은 남편감’이 있다며 중매를 서겠다는 제안도 여러 차례 받았다. 그때마다 장씨는 이렇게 말했다. “내가 이 나이에 가서 밥 해주고 빨래 해주고, 미쳤냐.” 아마도 중·노년 싱글 여성 대다수의 마음이 이럴 것이다. 자녀까지 다 키워내 ‘인생 과제’를 모두 마쳤다고 할 만한 황혼기. 마음껏 자유를 누리고 싶었다. 하지만 2017년 한 남자와 만나면서 그의 삶은 달라진다.

장무식·나기수씨는 요새 황혼재혼 커플의 상징이다. 가수 미나의 어머니인 장씨의 황혼연애·재혼기는 MBN <모던패밀리>에서 세 차례 다뤄졌는데, 그때마다 ‘장무식’ ‘나기수’ 등의 이름이 인터넷 포털사이트의 실시간 검색어를 ‘올 킬’하다시피 했다. 노년기에 되살아난 ‘연애세포’가 각자의 일상에 강렬한 생명력을 불어넣는 현장이 전파를 타자 대중의 이목이 집중된 것이다.

|결혼 골인 커플

남편 사별 후 중매 제안 많았지만
인생 과제 마친 황혼기 자유 즐겨
“이 나이에 밥해주고…미쳤냐”

방송 프로에서 상대로 만난 남자
툭하면 불러 데이트하자 졸랐다
끈질긴 구애에 사귀고 언약식도

아픈 노모 모시는 그를 도와주다
사귄 지 1년 만에 동거…재혼까지
남편의 동창들은 부러워한단다
“가장 멋있는 인생 2막을 산다”고

장씨는 2017년 ‘엄마의 소개팅’이라는 방송 프로그램에서 소개팅 상대로 나씨를 만났다. 이때 장씨는 나씨를 ‘남자’로 처음 인식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나씨의 마음속에는 이미 장씨가 들어와 있었다. 두 사람은 서울의 한 교회에서 ‘선극’(선교를 위한 연극)을 하며 처음 만났다. 나기수씨는 1985년 대종상영화제 남우조연상을 수상했으며 영화 <독전> 등 각종 영화·드라마에 조연급으로 출연하고 있는 프로 배우다. 그러니 선극에 참여한 아마추어 배우들은 나씨로부터 가르침을 받는 상황이었다. 다들 ‘선생님’이라고 부르며 깍듯하게 대했다. 하지만 “돌려서 말하지 않는” 성격의 장씨는 나씨에게 그리 고분고분하지 않은 ‘제자’였다. 나씨는 그런 장씨가 좋았다. 장씨는 그러면서도 주변을 챙기는 따뜻한 사람이기도 했다. 언젠가는 김치를 담가, 연극을 함께한 동료들에게 나누어준 적이 있었다. 그 김치를 정신없이 먹었던 기억이 나씨는 지금도 생생하다. “그렇게 맛있는 김치는 처음이었다”고 할 정도였다. 나중에는 장씨의 거친 사투리 악센트까지 사랑스럽게 다가왔다.

소개팅 후 나씨는 장씨를 툭하면 불러내 데이트를 하자고 졸랐다. 대시가 시작된 것이다. 어디를 다녔는지 물으니 나씨는 한 곳, 한 곳을 모두 기억하고 있었다. “소래포구, 대부도, 제부도, 영흥도, 간월도, 안면도, 왜목마을, 삼길포….” 끈질긴 구애에 장씨의 마음이 열렸고 2017년 10월 무렵부터 정식으로 사귀기 시작했다. 자녀들에게 알리지 않고 태안의 한 교회에서 두 사람만의 언약식도 했다.

나기수씨는 25년 전에 이혼한 후 세 딸을 어머니와 함께 키웠다. 지금 딸들은 모두 결혼해 따로 살고 있고 나씨가 아흔넷의 어머니를 모시는 상황이다. 사귄 지 1년 만에 장씨는 나씨의 집에 들어가 함께 살게 된다. 새 ‘시어머니’가 부담스럽지 않았을까. 사연을 들어보니 오히려 나씨의 노모 덕분에(?) 합가가 성사됐다. 나씨의 어머니가 팔을 다쳤는데, 그는 촬영일정으로 정신이 없었다. 장씨가 대신 병원에 모셔다 드렸다. “그런데 차마 그냥 두고 못 나오겠더라고요.” 결국 병원에서 간병도 하고 집에 모셔온 뒤에도 돌봐드렸다. 그렇게 자연스럽게 그 집에서 하루, 이틀 밤을 보내면서 아예 눌러 살게 됐다. “아마 우리 애들은 ‘엄마가 미쳤나’ 했을 거야.” ‘내가 왜 남자 위해서 밥, 빨래를 해주냐’ 했던 장씨는 이런저런 집안일이 “하나도 힘들지 않다”면서 “늙어도 순정은 있다는 걸 느끼고 있다”고 했다.

사실 ‘순정’으로 치자면 장씨보다는 나씨가 한수 위인 듯 보인다. <모던패밀리>에서는 나씨가 장씨의 잔소리가 ‘시처럼 들린다’고 하는 장면이 나온다. ‘방송용’ 농담이라 여겼는데 그는 기자에게 “진짜로 시로 들린다”고 했다. 장씨의 잔소리는 사실 그냥 귓등으로 듣고 흘릴 수 없는 성격의 것들이다. 이를테면 나씨는 홀로 25년 사는 동안 동료들과 새벽까지 술을 즐기곤 했다. 장씨는 이 습관을 고치라고 끊임없이 잔소리를 했다. 1년여의 노력 끝에 정말로 과음 버릇을 고쳤다. 이제는 술을 마시러 나가더라도 장씨에게 언제까지 들어오겠다는 약속을 하고 어기지 않는다. 청소나 설거지에 관한 잔소리도 강도가 높은 편이다. 장씨는 결벽증에 가까울 정도로 청결을 중시하기 때문이다.

두 사람은 <모던패밀리>를 통해 멋지게 재혼식을 치렀다. 장씨는 웨딩드레스를 입어보며 설렘을 감추지 못했고 나씨는 그런 장씨를 보며 함박웃음을 지었다. 방송이 나가자 연락이 한동안 끊겼던 지인들도 전화해 이들을 축복했다. 나씨는 특히 초등학교 동창들에게서 온 전화가 기억에 남는다. “동창들이 난리가 났습니다. 가장 멋있는 인생 2막을 사는 사람이 ‘나기수’다, 부럽다고….”

황혼, 그래도 당당하게 결혼을 한다는 것은…

“쉿, 아들에겐 비밀이에요”…황혼 연애를 한다는 것은
장무식·나기수씨가 멋진 재혼식을 치른 배경에는 장씨 자녀들의 주의 깊은 관심과 지지가 있었다. ‘2002 월드컵 미녀’ 혹은 ‘17살 나이차를 극복한 결혼’ 등의 수식어로 통하는 미나씨는 사실 속 깊은 장녀다. 그리고 장씨의 가족 가운데 가장 마지막까지 나씨를 신중하게 지켜본 딸이기도 하다. 1년 전 두 사람은 한 방송프로그램을 통해 공개적으로 ‘결혼사진’을 찍으려 했으나 그때는 미나씨가 선뜻 동의하지 못해 불발됐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나씨의 진심을 확신하게 된 미나씨는 ‘화끈’하게 응원을 시작했고 지금은 세 딸 모두 나씨를 ‘아버지’라 부른다. 나씨의 딸들 역시 주기적으로 두 사람과 만남을 갖고 있다.

두 사람은 서로를 ‘여보’라고 부른다. 황혼연애에서 재혼으로까지 이처럼 성공적으로 ‘골인’한 사례가 흔하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잘 들여다보면 이 커플이 횡재하듯 행복을 누리고 있는 것은 아니다. 아흔넷의 새 시어머니를 반갑게 받아들인 장씨, 장씨의 뜻대로 과음 버릇 등을 고친 나씨, 신중하게 지켜본 후 마음을 열고 열렬하게 응원한 자녀들까지, 모두의 노력이 보태져 완성된 ‘꽃길’이다.

명실상부한 ‘부부’가 된 두 사람에게 한쪽이 오래 병치레를 하거나 혹은 먼저 죽음을 맞이하는 일에 대해 생각해본 적 있는지 물었다. “병수발도 다 들 각오고요, 그리고 이 사람이 먼저 죽는다 그러면 따라 죽고 싶은 마음이에요.”(나씨) 듣고 있던 장씨가 혼잣말하듯 말했다. “눈물이 나려 하네.”

▣당사자와 자녀들을 위한 ‘황혼연애’ 가이드

모든 연애가 그렇듯 황혼기의 연애도 마냥 순조로운 것은 아니다. 고독감과 외로움을 나누는 성숙한 사랑을 하는 커플들도 있지만 쉽게 깨져버리는 사례도 숱하다. 2005년부터 한국노인상담센터를 운영해 온 이호선 숭실사이버대 교수로부터 좋은 황혼연애를 위한 조언을 받아 정리했다.


·좋아하는 사람이 생겼다면 일단 충분한 시간을 갖고 지켜보라

호감을 갖고 시작했으나 ‘돈 문제’로 관계가 끝나는 경우가 있다. 6개월~1년은 시간을 갖고 상대를 지켜봐야 한다. ‘집안에 행사가 있는데 부모로서 줄 돈이 없다, 300만~400만원만 있었으면 좋겠다’는 식으로 금전적 요구를 하는 사람인지 아닌지를 확인해야 한다.


·과거의 배우자와 너무 닮은 사람은 주의하자

전 배우자를 ‘대체’하는 사람으로 여기면 안 된다. 이런 감정으로는 상대방의 ‘있는 그대로’를 볼 수가 없다.


·폭력적인 사람인지 미리 확인하고 피하라

조금 친해졌다 싶으면 돌변하는 사람이 있다. 아무리 매너가 좋았던 사람이라도 언쟁을 하다가 말을 함부로 한다거나 몸을 밀친다거나 하는 행동을 할 수 있다.


·주변인들의 평판을 들어보라

자신의 호의적인 시선에만 의지해서 판단하지 말자. 주변 사람들은 상대를 어떻게 생각하는지도 꼭 물어보자. 상대도 자신에게 호감을 갖고 있는지도 꼭 확인해야 할 사항이다. 그리고 자신의 관심을 상대방이 알 수 있도록 표현하자.


·자녀는 부모에게 자신의 생각을 강요하지 말라 

성인이 된 자녀는 부모의 선택을 존중해야 한다. 자녀가 생각하는 부모의 행복과 당사자의 행복은 ‘다른 그림’일 수도 있다. 재산 문제로 갈등이 불거지기도 하는데, 자녀들은 살아계신 어머니·아버지 재산에 대해 법적 권리를 주장할 수 없다는 기본 전제를 받아들여야 한다.


·황혼연애 권유도 ‘잘’ 해야 한다 

자녀의 연애·재혼 권유가 자칫 부모에겐 ‘나는 더 이상 당신의 도움이 필요하지 않다’는 뜻으로 읽힐 수도 있다. 홀로 된 부모의 소중함을 충분히 표현하면서 가볍게 시도하는 게 좋다.


·혼인신고를 하려 한다면 자녀에게 알려라

법적으로 부부가 되고자 한다면 자녀에게 ‘고지’는 해야 한다.


·자녀와의 갈등으로 연인과의 관계를 포기하지 말라

가장 중요한 것은 당사자의 행복임을 명심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