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후

“쉿, 아들에겐 비밀이에요”···황혼 연애를 한다는 것은

Shawn Chase 2019. 7. 14. 10:38
2019.07.13 10:21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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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쉿, 아들에겐 비밀이에요”…황혼 연애를 한다는 것은
모든 연애가 그러하듯…황혼연애도 ‘설렘주의’. 우철훈 선임기자photowoo@kyunghyang.com
모든 연애가 그러하듯…황혼연애도 ‘설렘주의’. 우철훈 선임기자photowoo@kyunghyang.com
송윤경 기자
2019.07.13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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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에 빠진 노년 세 커플, 닮은 듯 다른 ‘러브스토리’ 속으로
노년이라고 해서 왜 사랑을 모르겠는가. 한국 사회에서 오랫동안 ‘무성의 존재’ 취급을 받아온 노년층. 그러나 지난 10여년간 이성교제와 성생활에 대한 욕망을 적극적으로 드러내고, 동거·재혼에까지 이르는 노인들이 크게 늘고 있다.

통계청의 ‘2018 고령자통계’에 따르면 2000년부터 17년 동안 65세 이상의 재혼 건수는 남성은 2배, 여성은 6배가량 뛰어올랐다(2017년 기준 남성 2684건, 여성 1202건). 반면 같은 기간 모든 연령대의 재혼 건수는 남녀 각각 약 2%, 4%씩 줄었다. 황혼재혼 증가 추세가 도드라져 보이는 이유다. 자녀와의 관계나 재산 등의 문제로 혼인신고를 하지 않고 교제나 동거에 머무르는 노인들의 규모는 황혼재혼을 감행한 이들보다 훨씬 클 가능성이 높다.

  
노년기에 관한 연구에 따르면, 자녀와의 유대관계 못지않게 데이트 중인 이성친구와의 친밀감이 ‘심리적 복지’에 영향을 끼치는 것으로 나타났다. ‘뿌듯할 때가 많다’ ‘나는 다른 사람들에게 필요한 존재다’ 등의 문항에 더욱 긍정적으로 답한다는 것이다(‘노인의 이성교제가 심리적 복지감에 미치는 영향’ 이예종·장진경).

나이 지긋한 배우들을 전면에 내세워 6070세대의 로맨스를 그린 콘텐츠도 늘고 있다. 2015년 개봉한 영화 <장수상회>와 지난해 방영된 KBS 주말극 <같이 살래요>는 각각 배우 박근형·윤여정, 유동근·장미희가 주연을 맡았다.

실제 황혼연애의 세계를 들여다보기 위해 연애 3~6년차에 해당하는 70~80대 세 쌍을 만났다. 모든 연애가 그렇듯, 황혼연애도 방식이 제각각이다. 근거리에서 따로 살면서 때때로 함께 사는 커플도 있고, 동거생활만 유지하는 커플, 젊은이들 못지않은 화려한 예식을 치르며 ‘부부’가 된 커플도 있다. 설렘과 사랑 고백, 다툼과 극복 등의 과정은 지극히 사적이지만 동시에 보편적인 인간사를 비춘다.

한국은 6년 후면 5명 중 1명은 노인인 초고령사회에 진입한다.

황혼연애의 다양한 국면을 경험한 세 커플은 “노인이 주인공이 되는 시대의 얼리어답터”(이호선 한국노인상담센터장)들이다. 노년이기 때문에 더 열렬히 연애하는 김호영(82)·한덕임(75), 노형웅(76)·강여선(78·이상 가명), 장무식(71)·나기수(69) 커플의 러브스토리를 소개한다.

황혼, 그래서 조심스레 연애를 한다는 것은…

2014년부터 연애를 시작한 김호영(82)·한덕임(75) 커플. 두 사람의 집은 버스로 10분 거리에 있다. 두 사람은 동거를 할 때도 있지만 기본적으로는 각자의 집을 ‘근거지’로 두고 연애를 한다. 사귈 생각이 없었던 한씨의 마음을 흔든 가장 결정적 사건은 김씨가 그의 남편 산소를 돌봐준 것이다. 우철훈 선임기자photowoo@kyunghyang.com
■자녀에겐 ‘비밀’

근거리에서 따로 살며 때때로 동거
김호영(82)·한덕임(75) 커플

남자는 첫 만남부터 묘한 떨림을 느꼈다. 2014년 4월 경기 연천지역 노인 남녀 15쌍의 소개팅이 있던 날, 남자는 50분이나 지각했다. 댄스파티에서 파트너를 구하지 못한 ‘월플라워’처럼 구석에 홀로 앉아있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또 다른 ‘지각생’이 나타났다. 갈까 말까 한참 고민하다가 일부러 늦게 참석한 여성이었다. 남자는 ‘인연’이라고 생각했다. 김호영(가명·남), 한덕임(가명·여). 두 사람은 그날 파트너가 되었다. 3개월이 지나 본격적으로 사귀기 시작했고 지금은 서로를 ‘당신’이라고 부르는 사이다. 둘은 독거노인의 ‘솔로 탈출’을 위해 연천노인복지관이 마련한 ‘두 번째 프러포즈’ 프로젝트로 탄생한 커플이다.

김씨와 달리 한씨는 처음엔 그리 설렘을 느끼지 못했다. 소개팅 며칠 뒤 복지관의 실버댄스 수업 시간에 김씨가 한씨에게 다가갔다. “저기 가서 얘기 좀 합시다.” 교실 문을 열고 나가면 조용한 야외공간이 있었고, 그곳에서 진지하게 사귀자고 할 참이었다. 한씨가 답했다. “그냥 여기서 얘기하세요.” 김씨는 생각했다. ‘여성이 이렇게 당돌해?’ 그는 한씨가 더 좋아졌다.

그날 남자의 교제 제안에 여자는 똑부러지게 답하지 않았다. 남자를 사귀고 싶다는 생각이 딱히 없었던 탓이다. 다만 홀로 사는 자신의 집에 놀러오겠다고 하면 마다하지는 않았다. 저녁밥을 같이 먹는 날이 점차 늘어갔다. 어느 날 한씨네 집 욕실 샤워기가 망가지자 김씨는 조용히 나가 샤워기 헤드를 사와 뚝딱뚝딱 고쳐줬다. 50대에 남편을 잃은 후 집수리를 할 때마다 늘 “아쉬운 소리를 해 가며” 이웃의 손을 빌리던 한씨에게 작은 감동이 밀려왔다. 남자는 여자의 텃밭도 함께 가꿨다. 겨울이면 쉽게 얼어버리는 보일러 배관도 고쳐줬다.

한씨 마음을 흔든 결정적인 ‘사건’은 연애 초기 김씨가 한씨 남편의 산소를 돌봐준 일이었다. 봉분을 받치는 축대가 무너졌다는 말에 김씨는 시멘트를 가득 실은 지게를 지고 산에 올랐다. 시멘트를 개어 축대를 손보고 정성껏 벌초를 했다. 김씨가 당시 78세였으니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남자는 ‘힘들다’고 말하는 대신 농담을 던졌다. “죽은 남편 섬기다가 산 서방 죽겠어요.” 그때를 떠올리면 둘은 지금도 배꼽을 잡고 웃는다. 사실 남편 산소 관리는 아들도 하지 못했던 일이었다. 한씨에게 김씨는 어느새 “자식보다 의지되는” 사람이 되어 있었다. 때때로 앓아누우면, 떨어져 사는 자녀들에게는 부담이 될까봐 알리지 않았다. 대신 김씨가 사다주는 약을 먹고 함께 병원에 갔다. 김씨가 등산을 하다 다쳐 병원에 3개월간 입원했을 때는 한씨가 대소변을 받아주며 간병을 했다.

|지금도 연애 중, 반동거 커플

소개팅날 파트너 없던 80대 남자
갈까 말까 고민하다 늦게 온 여자
그들은 서로 ‘인연’이라 생각했다

그녀의 남편 산소를 돌보는 그가
자식보다 더 의지하는 사람이 됐다
떳떳한 엄마 되려, 재혼 실패 탓에
자식들에겐 아직 못 알리고 있다

가족 비공개, 독립 거주, 반동거
둘은 적당히 뜨겁고 적당히 쿨하게
자신들만의 행복을 찾아가고 있다

둘은 서로를 반려자라고 생각하지만 같이 살지는 않는다. 때때로 김씨가 한씨 집에서 살다시피 할 때도 있지만 기본적으로는 각자의 집을 근거지로 두고 있다. 요즘은 아침은 각자의 집에서 먹고, 복지관에서 만나 점심을 먹고 한씨의 집에서 함께 저녁식사를 한다.

남자의 ‘직진 대시’ 후 순탄하게 풀려가던 이들의 연애에도 위기는 있었다. 개방적인 성격의 한씨는 지르박을 잘 춘다. 그의 남편은 20여 년 동안 중국집에서 반죽을 하느라 팔꿈치 연골이 닳아버렸는데 70년대엔 마땅한 치료법도 없었다. 춤이 좋다는 말을 듣고 부부가 함께 지르박을 배운 적이 있었다. 노년의 한씨는 그 춤을 실컷 추고 싶었다. 젊을 때 잘 배워놓은 덕에 그는 콜라텍에 가면 파트너를 바꿔가며 홀을 누빈다. 하지만 김씨는 달랐다. 함께 콜라텍에 가도 어정쩡하게 서 있을 때가 더 많았다.

둘은 결국 콜라텍을 두고 크게 싸웠다. 남자는 여자의 집에 갖다놓았던 자신의 살림가지를 다 챙겨서 나갔다. 남자도 울고 여자도 울었다.

며칠 동안 김씨는 한씨의 집을 찾지 않았다 ‘춤을 정리해? 영감을 정리해?’ 한씨는 고민했다. 김씨가 “고개를 숙이고” 슬며시 찾아왔을 때 한씨는 ‘영감’을 택하기로 했다. 콜라텍에서 ‘날아다니는’ 삶을 접는 대신 김씨에게 춤을 열심히 가르쳤다. 두 사람은 기자 앞에서 멋진 지르박 댄스를 보여주기도 했다.

자녀들에게 둘의 연애는 아직은 ‘비밀’이다. 복지관 측에서 결혼사진을 찍어주겠다고 했지만 거절했다. 한씨는 아들 내외가 가장 걸린다. “내가 장사를 오래 하면서 여러 사람을 봐 왔는데, 어머니가 시집을 갔다가 다시 돌아오면 아들·며느리 태도가 달라지더라고. 나는 떳떳한 엄마가 되고 싶어.”

김씨 역시 자녀들에게 연애사실을 알리기가 조심스럽다. 과거의 ‘시행착오’ 때문이다. 그는 50대에 아내와 사별한 후 재혼한 적이 있다. 6년 정도 살다 이혼한 상대는 “재물에 관심이 많은 사람”이었다고 한다. “그분하고 영원히 살면 기둥뿌리도 안 남겠더라고.” 딸이 준 3000만원을 당시 재혼 상대에게 줬는데 이혼할 때 받지 못했다. 김씨는 위자료를 준 셈 치기로 했다. 대신 그 후 “여성을 볼 때 가치관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게 됐다”고 한다. 그가 한씨를 좋아하게 된 가장 큰 이유도 복지관에 다니면서 알게 된 그의 ‘됨됨이’ 때문이었다.

한씨와 사귀기 시작할 때 “평생 존경하며 살겠다”고 했던 김씨는 “지금도 그 마음 그대로”라고 했다. 반면, 솔직한 한씨는 자신의 연애에 대해 “세상만사에 장점만 있는 것은 아니”라면서 “한 사람에게 매여 살아야 하는 답답함”도 있음을 굳이 숨기려 하지 않았다. “자유가 없어. 이분 성격이 자상하지만 또 피곤한 스타일이라고. 인연이 맺어졌으니 이렇게 살다가 가자 하는 거지. 잘 생기고 옷걸이 좋은 양반이 ‘핫바지’ 입고 다니는 게 불쌍해서….” 듣고 있던 김씨가 “불상은 절에 가야 있어요”라고 실없는 농담을 했다. 둘은 지금도 아웅다웅한다. 엊그제는 한씨가 부친 호박전을 김씨가 먹는 둥 마는 둥 했다. 여자는 속상한 나머지 혼자 다 먹고 배탈이 났다. 남자는 조용히 소화제를 건네면서 용서를 구했다.

연애의 ‘양면’을 모두 고백한 한씨에게, 다른 노인들에게 황혼연애를 권하고 싶은지 물었다. 의외로 확신에 찬 어조로 추천한다고 했다. “남자로서만이 아니라 친구 삼아 살다보니까 시간이 빨리 가요. 하루만 안 봐도 궁금해. 둘이 여행가서 소주 한잔 ‘쫙’ 하잖아, 그럴 때는 끝내줘요.” 그리고 상대를 고를 때 가장 먼저 살펴봐야 할 것에 대해선 두 사람이 입을 모아 “첫째는 건강, 둘째는 인격”이라고 했다. 한씨는 이런 말도 덧붙였다. “한집에서 오래 같이 사는 것보다 조금 떨어져 있으면서 사는 게 좋더라고.”

‘가족 비공개’ ‘독립거주·반동거’ 연애를 선택한 김호영·한덕임씨. 두 사람은 바람대로 건강하고 성숙한 짝을 만나, 적당히 뜨겁고 적당히 쿨하게 자신들만의 행복을 찾아가고 있다.

■6년째 동거

‘신혼’ 같은 행복 누리지만 자녀와 갈등도
노형웅(76)·강여선(78) 커플

2012년에 만나 이듬해부터 함께 살고 있는 노형웅씨(가명·76)와 강여선씨(가명·78)가 손을꼭 잡고 있다. 자녀와의 갈등은 앞으로 해결해야 할 과제지만, 여전히 “아기자기한 재미”로 행복하다.우철훈 선임기자photowoo@kyunghyang.com
2012년에 만나 이듬해부터 함께 살고 있는 노형웅씨(가명·76)와 강여선씨(가명·78)가 손을꼭 잡고 있다. 자녀와의 갈등은 앞으로 해결해야 할 과제지만, 여전히 “아기자기한 재미”로 행복하다.우철훈 선임기자photowoo@kyunghyang.com
인천에 사는 노형웅씨(가명·남)는 7년 전 지자체에서 주최한 실버미팅에서 강여선씨(가명·여)를 만났다. IMF 외환위기 때 이혼 후 15년 동안 홀로 살았던 그는 미팅에서 강씨에게 첫눈에 반했다. 강씨는 당시 남편과 사별하고 아들과 살고 있었다. 둘은 만나자마자 사귀기 시작했고, 1년여 만에 동거에 들어갔다.

동거 초반 노씨는 여러 방송 프로그램에 출연해 황혼연애와 황혼동거 사실을 당당하게 밝혔다. “눈만 뜨면 보고 싶고, 지남철(자석)처럼 찰싹 붙어 있고 싶다”면서 70대도 열정적으로 사랑할 수 있음을 일깨웠다.

그는 공개적으로 이런 조언도 했다. “홀로 된 어르신들을 모시는 가족들에게 부탁의 말씀 드립니다. 어르신께 소망을 여쭤보세요. ‘너희가 건강하게 잘 살면 된다’고 하실 겁니다. 그런데 어르신들 속마음은 따로 있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옆에 두고 행복하게 살고 싶은 마음입니다. 쑥스러워서 말을 못할 뿐이에요.”

최근 10여 년간 65세 이상의 재혼 건수가 증가한 배경엔 노씨처럼 인생 황혼기의 사랑이야기를 만방에 드러낸 선구자격 인물들의 영향도 있었을 것이다.

|가족 갈등 버텨내는 동거 커플

실버미팅서 만나 1년여 만에 동거
초반엔 방송에서도 떳떳이 공개
70대도 사랑할 수 있다고 일깨워

평소에 스킨십 많이 했던 남편
전립선 수술 받고 성생활 어려워
진짜 사랑하지 않으면 살 수 없어

엄마 동거를 못마땅해하는 막내딸
그녀가 싫어 가족모임 안 가는 그
그래도 둘만의 행복이 자랑스럽다

노씨와 강씨는 지금도 사랑을 이어가는 중이다. 올해로 동거 6년차인 두 사람은 서로를 ‘강 여사’ ‘웅씨’라고 부른다. 요즘도 웅씨는 스킨십과 같은 애정표현을 자주 한다. 아니, 예전보다 더 많이 한다. TV를 보다가 깜빡 잠든 강 여사에게 몰래 다가가 꽉 껴안는 식이다. 기습뽀뽀를 하고 볼을 비비고 가슴을 파고든다. 동화 같은 장면이지만, 사실 두 사람은 그동안 여러 갈등과 고비를 겪었고 그래서 더 단단해진 커플이다.

가장 큰 고비는 2년 전에 찾아왔다. 노씨가 전립선 비대증으로 수술을 받으면서 성관계가 어려워진 것이다.

“예전엔 잠자리를 왕성하게 할 수 있었어요. 한 달에 세 번은 했죠. 서로 대단히 만족했어요. 젊은 시절의 신혼 기분으로 살았지요.”(노형웅씨) 사실 노씨는 전립선에 문제가 있다는 것을 이미 5년 전 알고 있었다. 그러나 의사가 ‘수술할 경우 관계는 갖지 않는 것이 좋다’고 해서, 수술을 받지 않는 편을 택했다. 강 여사와의 기쁨을 더 누리고 싶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상황이 악화됐고 결국 수술을 하게 됐다. 노씨는 “성생활이 끝난 이후부터는 진짜 사랑하지 않으면 살 수 없다는 걸 느꼈다”면서 “사랑에도 여러 종류가 있는데, 마치 부모와 자식 간의 사랑 같은 것을 하고 있다. 뭐든지 감싸주고 덮어주는 그런 사랑을 하는 중”이라고 말했다. 사실 그가 ‘사랑한다’는 말을 입에 달고 다니고, 스킨십을 퍼붓는 것도 조금이라도 더 애정을 전달하기 위한 노력이다.

강 여사도 이런 상황에 대한 아쉬움을 숨기지는 않았지만 애정은 그대로다. “아직 젊은 사람인데, 안쓰럽고, 안타깝고…. 저는 여전히 같이 사는 게 재미있어요.” 웅씨의 잦은 스킨십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 물으니 잠시 뜸을 들이다 이렇게 말하고는 웃었다. “귀찮기도 하지만…좋아요.” 두 사람은 지금도 신혼부부처럼 산다. 둘 사이에서 생긴 변화는 ‘극복’을 한 셈이다.

하지만 자녀들과의 갈등은 6년째 풀지 못하고 있다. 강씨의 막내딸은 연애 초기부터 노씨를 못마땅하게 여겼다. 어머니가 데이트할 때 입으려고 전날 미리 옷과 신발을 골라 따로 뒀는데 막내딸이 치워버린 적도 있었다. 유사한 에피소드가 쌓여가면서, 노씨는 강 여사 막내딸에 대한 미움이 커지고 말았다.

강 여사는 지금 막내딸과 웅씨 사이에 낀 신세다. 딸이 늘 하는 말은 이렇다. ‘혼자 편하게 즐기고 살지, 왜 어머니가 평생 모아둔 돈까지 써가며 그분과 사느냐.’ 강여선씨는 현재 자기 소유의 소형아파트 한 채를 담보로 주택연금을 받아 생활비로 쓰고 있다. 두 사람의 생활비 부담은 반반쯤 된다.

막내딸은 어머니가 동거생활을 청산하기를 바라고 있고, 여전히 적극적으로 설득하고 있다.

“그런데 아무리 생각을 해봐도 나는 이쪽이(노형웅씨와 사는 것이) 좋거든요.”

노씨는 강씨가 막내딸에게 따끔하게 말하고 몇 달쯤은 연락을 끊기를 바라지만, 어머니인 ‘강 여사’는 그럴 수 없다. ‘웅씨’는 그런 강 여사가 서운하다. 강 여사도 나름대로는 웅씨에게 불만이 있다. 자신의 아들·딸이 초대한 식사 모임에 노씨는 늘 가지 않으려 한다. 그 막내딸을 보기 싫다는 이유에서다. “내 옆에서 챙겨주는 모습을 보여야 딸의 마음도 바뀔 텐데….” 막내딸이 자신의 옷과 구두를 치워버렸다고 노씨에게 말한 것을, 강 여사는 요즘에 와서 후회하고 있다.

그러나 갈등 없는 부부가 어디 있겠는가. 일상 얘기로 돌아가자 두 사람은 이내 웃음을 되찾았다. 웅씨는 당뇨가 있는 강 여사가 늘 걱정스럽다. 토마토, 양배추 등의 채소를 익혀서 강 여사에게 아침마다 건넨다. 강 여사는 열흘에 한 번씩은 웅씨의 발을 마사지해 준다. 그럴 때는 자녀들과의 갈등은 끼어들 틈이 없다.

강씨에게 자녀와 같이 있을 때와 지금의 반려자와 같이 있을 때 각각 어떤 마음이 드는지를 물었다. “아이들(자녀들)과 있을 때는 든든하고, 웅씨랑 있을 때는 아기자기하고….” 강씨의 이 한마디는 아무리 효자·효녀라도 결코 채울 수 없는 어머니·아버지의 정서적 공간이 따로 있음을 보여준다.

크고 작은 난관을 이겨내면서 여전히 ‘사랑’을 누리고 있는 두 사람에게, 홀로 사는 동년배에게 해줄 만한 조언이 없는지 물었다. “실버미팅 때 200명의 커플이 탄생했어요. 그런데 우리만 남았죠. 대부분 돈 때문에 깨졌어요. 사랑 이외에 다른 뜻이 있으면 안돼요.”(노형웅씨) “저는 웅씨에게 금전적으로 의지하려고 하지 않았어요. 돈이든 뭐든 두 사람 다 써야만 해요.”(강여선씨)

노형웅·강여선씨는 거리를 유지하며 부담을 더는 대신, 자석처럼 딱 붙어서 문제를 맞닥뜨리고 함께 풀어가는 삶을 택했다. 물론 그만큼의 고통이 뒤따랐고 아직 해결하지 못한 과제도 있다. 하지만 두 사람은 서로를 위해 노력해 성취한 이 행복을 뿌듯하고 자랑스럽게 여기고 있다.


“자식과 있을 땐 든든하고, 이 사람과 있을 땐 아기자기하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