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차

마티즈·테라칸, 폐차장 대신 해외로.."없어서 못 팔아요"

Shawn Chase 2019. 6. 4. 10:16
최기성 
입력 2019.06.03 06:03 수정 2019.06.03 14:15 댓글 248

사진출처=매경DB, 오토위니이미지 


[세상만車-118] '차(車)생역전'이다. 국내에서는 폐차장으로 끌려가 산산이 부서져야 할 국산 단종차들이 해외에서는 없어서 팔지 못할 정도로 인기를 끌고 있다.
한국무역협회와 210여 개국에서 25만명 이상의 중고차 바이어들이 방문하는 중고차 온라인 플랫폼 오토위니(Autowini)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에서 129개국에 수출된 중고차 대수는 36만400여 대다.

올 1분기 수출대수는 10만7321대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42.9% 증가했다. 분기 기준으로는 2012년 2분기에 10만7573대를 수출한 이후 두 번째로 많다.

중고차 수출용으로 인기를 끄는 차종은 국내에서 애물단지로 취급받는 국산 단종차들이다. 신차로 출고된 지 15년쯤 되면 국내 중고차시장에서도 수요가 적은 데다 딜러 이윤도 적어 애물단지 취급을 받는다. 현재 2005년 이전에 출시된 중고차는 고철 값 20만~40만원(가솔린 세단 기준)을 남기고 폐차장으로 넘어간다.

그러나 이들 단종차 중 일부는 중동, 아프리카, 중남미 등지로 이민을 가 새로운 삶을 산다. 공급보다 수요가 많아 보물대접을 받기도 한다.

국내에서도 '수출 역군'으로 칭송받는다. 외화를 벌어다 주는 것에서 더 나아가 수출 시장 개척으로 국산 부품·용품은 물론 국산 신차까지 진출할 수 있는 길을 터주기 때문이다.

과테말라로 수출된 테라칸 /사진제공=오토위니이미지 크게 보기


◆수출 효자 국가

국산 중고차가 가장 많이 수출되는 곳은 중동에 있는 리비아다. 2017년 8만8726대에서 지난해에는 14만4365대로 증가했다. 지난해 수출된 중고차 10대 중 4대가 리비아로 갔다는 뜻이다. 수출 집계 사상 단일 국가로는 최대치 물량이다.

리비아 뒤를 이어 동남아시아 캄보디아와 아프리카 가나가 2위와 3위를 기록했다. 캄보디아 수출 대수는 2017년 1만6928대에서 지난해 2만4542대로 45% 늘었다. 가나 수출대수도 1만5597대에서 2만2124대로 42% 증가했다.

올 들어서도 리비아, 캄보디아, 가나는 수출 효자 국가다. 올 1분기 중고차 수출대수는 10만7321대 중 5만9000여 대가 리비아로 향했다. 캄보디아와 가나는 4000대 수준으로 그 뒤를 이었다.

대륙별로 살펴보면 중남미와 아프리카 수출 물량이 급증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중남미는 2014년 2만848대에 불과했던 수출 대수가 지난해에는 4만8725대로 두 배 넘게 성장했다. 도미니카공화국, 칠레, 과테말라, 코스타리카, 온두라스, 파라과이 등으로 수출 물량이 증가 추세다.

아프리카 수출 대수도 2014년 1만2925대에서 지난해에는 3만6256대로 3배 가까이 많아졌다. 주요 수출국은 가나를 비롯해 나이지리아, 기니, 가봉, 토고, 세네갈 등 왼쪽 핸들을 쓰는 서아프리카 국가다. 오른쪽 핸들을 사용하는 동아프리카 국가인 탄자니아에도 많이 수출된다.

오토위니는 올 1분기에도 중남미와 아프리카 수출이 증가세를 기록 중이라고 밝혔다. 과테말라 수출대수는 지난해 1분기 1159대에 그쳤지만 올해는 1868대로 61% 증가했다. 코스타리카와 온두스라스 수출대수도 전년 동기보다 각각 11%와 46% 증가했다.

아프리카에서는 수단, 나이지리아, 탄자니아, 카메룬, 라이베리아 등지로 전년 동기보다 2배 많은 중고차가 수출된 것으로 나타났다. 마다가스카르 수출대수도 58% 증가했다.

이와 달리 2017년도 수출대수에서 각각 2위와 3위를 차지했던 도미니카공화국과 요르단은 지난해에는 순위가 2계단씩 하락했다. 도미니카공화국 수출대수는 2017년 2만3874대에서 지난해에는 1만8961대로 감소했다. 요르단도 2만2116대에서 1만8805대로 줄었다.

중고차 수출 흥망성쇠에는 연식 제한과 수입 관세가 결정적 역할을 한다. 리비아와 캄보디아의 경우 연식 제한이 없어 국내에서는 폐차장 신세를 져야 하는 오래되고 낡은 중고차도 수입해간다. 또 한국차는 품질이 좋고 옵션도 다양하게 구비했다는 장점 때문에 인기를 끌고 있다.

반면 도미니카공화국의 경우 연식이 5년으로 제한되면서 신차로 출시된 지 5년 미만인 차만 수출할 수 있게 된 데다 지난해 하반기에 수입관세가 오르면서 월 2000대씩 나가던 물량이 절반 수준으로 떨어졌다.

2000년대 이후 연간 10만대 이상 수출되기도 했던 요르단에서도 연식이 3년으로 강화되고 수입 관세가 오른 뒤 물량이 대폭 감소했다. 지난해 수출대수는 1만8805대로 전년보다 15% 줄었다.

수출 증가에는 온라인 수출 플랫폼도 기여하고 있다. 거리와 언어라는 장벽을 무너뜨리기 때문이다.

한지영 오토위니 대표는 "중남미와 아프리카는 언어, 문화, 국제정세 등의 문제로 수출하고 싶어도 수출할 수 없거나 어려운 곳으로 꼽혔다"며 "온라인 수출 플랫폼을 통해 언어나 수입 절차 같은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것은 물론 해외 직구도 가능해져 수출 지역 다변화가 이뤄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가나에서 인기 높은 모닝과 마티즈 /사진제공=오토위니이미지 크게 보기

가나에서 인기 높은 모닝과 마티즈 /사진제공=오토위니


◆나라별 선호 차종

리비아에서는 현대 베르나, 기아 쎄라토, 르노삼성 구형 SM3 등 지금은 단종된 지 오래된 국산 소형차와 준중형차가 인기를 끌고 있다. 현지 경제 상황이 좋지 않아 100만원 이하 저렴한 차가 잘 팔린다. 이들 차종은 온라인 수출 플랫폼에 올라오자마자 거래가 이뤄진다. 리비아 바이어들이 거의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구입하기 때문이다.

가나에서는 한국지엠 마티즈와 기아 모닝과 같은 경차가 인기다. 기름값(ℓ당 1200원)이 국민 소득 수준보다 비싼 가나에서는 연비가 좋은 차종이 잘 팔린다. 마티즈와 모닝은 연비가 우수할 뿐 아니라 뒷좌석 공간도 차급에 비해 넉넉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우버 택시로도 사용된다.

국내 중고차 시장에서 희귀템이 된 현대 테라칸은 중남미 과테말라에서 자주 볼 수 있다. 국토 전체가 화산지형으로 산과 언덕이 많은 지형 특성상 4륜구동 SUV를 선호하기 때문이다. 테라칸은 4륜구동인 데다 저렴하고 튼튼하다는 평가를 받으며 인기를 끌고 있다.

기아 스포티지와 현대 투싼 구형 모델은 중남미의 칠레와 파라과이, 아프리카의 마다가스카르와 지부티에서 잘 팔린다. 칠레의 경우 경유 가격이 휘발유 가격의 60% 정도로 저렴해 디젤 SUV를 선호한다. 스포티지 디젤 모델은 연비도 좋은 데다 비슷한 가격에 살 수 있는 SUV보다 디자인과 사양(옵션)이 좋아 선호도가 높다. 현대 싼타페 2000~2005년식은 중앙아프리카의 소국 르완다에서 없어서 팔지 못할 정도다.

국내에서 택시·렌터카로 사용된 현대 쏘나타와 기아 K5 LPG 모델은 야구로 유명한 도미니카공화국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다. 국산 LPi 엔진 성능이 우수하다는 인식 때문이다. 현지에서도 택시와 렌터카로 사용된다.

국내에서 개인사업자들이 선호하는 소형 트럭인 현대 포터와 기아 봉고는 온두라스에서 비싸게 판매된다. 포터와 봉고는 커피, 팜유, 바나나 등을 재배하는 플랜테이션 농업에서 운송수단으로 사용된다.

[최기성 디지털뉴스국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