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정치

“정부가 싫지, 그 나라 사람이 싫은 건 아니잖아요”

Shawn Chase 2019. 5. 12. 22:51

박세준 기자 , 김우정 기자 입력 2019-05-11 08:24수정 2019-05-11 08:34



일본서 취업한 한국 젊은이들 ‘혐한’ 피부로 느끼지 못해



“한국에 사는 외국인이 고향에 있는 가족들로부터 자주 듣는 질문이 ‘한국은 휴전 중이라 위험하지 않니’라고 해요. 그런데 정작 한국에 사는 사람들은 전쟁 위협을 크게 느끼지 못하죠. 일본에서 늘고 있다는 ‘혐한’ 분위기도 비슷한 것 같아요. 양국 보도나 인터넷에 떠도는 내용만 보면 일본인의 한국인 혐오가 심각한 수준에 이른 것 같지만, 몇 년 전과 비교해 일본인이 한국인을 대하는 방식이 크게 달라졌다는 느낌은 받지 못했어요.”

7년째 일본 현지 대기업에 다니고 있는 김모(31) 씨의 말이다.

최근 한일관계가 악화일로를 걷자, 일본에 거주하는 한국인의 안전에 대한 우려도 커지고 있다. 한국인 관광객이라는 이유로 일본 거리에서 욕설을 퍼붓거나, 일부 음식점에서 주문한 음식에 장난을 치는 행위 등이 인터넷을 통해 알려지기도 했다.

하지만 한국에서 일본으로 가는 사람은 계속해서 늘고 있다. 일본 관광객은 여전히 많고, 취업경쟁을 피해 일본에 일자리를 잡는 사람도 증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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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에서 자칭 독립군도 휴가는 일본으로


정치·외교적 이슈였던 한일관계 경색은 최근 문화산업 및 인터넷을 통해 더 크게 퍼지고 있다. 지난해 11월에는 방탄소년단(BTS)의 일본 음악프로그램인 TV 아사히 ‘뮤직스테이션’ 출연이 취소됐다. 일본 매체 ‘도쿄스포츠’가 멤버 지민이 광복절을 기념해 입었던 티셔츠를 문제 삼은 것. 다큐멘터리에 2초간 나온 장면이었고, 팬이 선물한 티셔츠를 입었을 뿐이지만 논란이 됐다. 해당 매체는 다른 멤버인 RM이 2013년 인스타그램에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는 문구를 올린 것에 대해서도 “이 문구는 한국이 일본을 비판할 때 쓰는 상투적인 표현”이라고 주장했다. 일본의 극우 성향 커뮤니티에서도 이 보도가 화제가 됐다.

4월 30일에는 한국에서 비슷한 일이 있었다. 아이돌그룹 트와이스의 일본인 멤버 사나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일본 연호가 바뀐 일을 언급했다 일부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일본 군국주의의 상징인 연호를 언급했다’며 비난받았다. 사나가 SNS에 올린 글은 ‘헤이세이 시대에 태어난 사람으로서, 헤이세이가 끝나는 것이 어딘지 모르게 쓸쓸하지만 헤이세이 수고하셨습니다. 레이와라는 새로운 시작을 위해 헤이세이의 마지막인 오늘을 깔끔한 하루로 만들어요’였다. 서력보다 연호를 사용하는 일본 문화 특성상 송구영신(送舊迎新) 정도의 의미였다. 하지만 특정 커뮤니티 이용자들은 사나를 ‘군국주의 신봉자’ ‘파시스트’라며 비난했다.

케이팝(K-pop) 그룹에 환호하는 일본 한류팬(왼쪽)과 지난해 11월 일본 도쿄 도심에서 혐한 시위대가 ‘욱일기’를 앞세워 행진하는 모습. [CJ ENM, 동아DB]


두 사건에서 양국 누리꾼이 벌인 설전만 놓고 보면 일촉즉발의 상황인 것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최근 양국 간 교류 분위기는 정반대다. 일단 한국에 오는 일본인 관광객이 크게 늘었다. 통계청 집계에 따르면 지난해 한국을 여행한 일본인은 총 292만1360명. 전년 대비 64만여 명이 증가한 수치다. 2009년에 전년 대비 67만여 명이 증가한 후 9년 만에 가장 큰 폭으로 늘었다. 일본을 여행하는 한국인도 여전히 많았다. 일본정부관광국(JNTO) 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일본을 방문한 한국인 관광객은 총 753만9000명. 전년 대비 39만8562명 늘었다. 한국인은 중국인(약 763만 명)의 뒤를 이어 일본을 가장 많이 찾는 외국인 관광객이기도 하다.

일본 도쿄에 거주하는 가족을 자주 만나러 가는 송모(28) 씨는 “5년 동안 2~3개월에 한 번씩 형을 만나러 가는데, 분위기가 달라진 걸 느끼지 못한다. 오히려 한국인 관광객이 늘어나서인지 한국어 메뉴를 갖춘 가게나 한국어 안내 책자가 많아져 더 편하다. 물론 길에서 형과 한국어로 이야기할 때 주위 시선이 몰리는 경우가 있다. 하지만 이전에 비해 많아졌다고 보기는 어렵다. 한국에서 일본어가 들리면 시선이 몰리는 정도”라고 밝혔다.

업무상 일본을 자주 찾는 국내 출판업계 종사자 최모(26·여) 씨는 “속마음과 겉으로 드러나는 행동이 다른 문화 때문인지 거래처 고객이나 여행객에게 대놓고 싫은 소리를 하는 일본인은 드물다. 특히 출판업계 관계자들은 다른 업종에 비해 외국 문화에 대한 이해 등 인권 감수성이 높은 편이라 한국인이라는 이유로 차별받은 적은 없다. 숙소, 음식점 등에서 만나는 종업원이나 일반 시민도 딱히 한국인을 싫어한다는 인상을 주지 않았다. 물론 일본 기업에 취업한 한국인 친구의 경우 보이지 않는 차별을 받는다고 호소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돈과 물건 대신 현해탄을 넘는 인력

한국 젊은이의 일본 내 취업도 계속 늘고 있다. 일본 후생노동성과 법무성 집계에 따르면 일본에 취업한 한국인(기술·인문지식·국제 업무 비자 발급 기준)은 지난해 2만1088명에 달했다. 1965년 국교 수교 이후 처음으로 2만 명을 넘어선 것. 2016년 취업자가 전년 대비 13.6% 늘었던 것에 이어, 지난해에도 전년 대비 증가폭이 11.4%를 기록했다.

일본 내 취업이 늘어난 이유는 한국의 취업난과 일본의 구인난이 겹쳤기 때문. 현재 일본 실업률은 2.4%로, 자연실업률이 3%인 것을 감안하면 사실상 완전 고용 상태다. 이에 구직자 인당 1.59개의 일자리가 있는 상황이다. 일본 취업알선업체 관계자는 “일본 기업은 중국, 동남아 쪽 인력보다 한국 인력을 선호한다. 한국 인력을 채용한 기업은 다음 해에도 추가 채용 의사를 밝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현지 담당자들에게 한국 인력은 동남아 인력에 비해 근면하고, 중국 인력에 비해서는 순종적이라는 인상이 있다”고 밝혔다.

일본 도쿄 정보기술(IT) 업체에 3년째 다니고 있는 임모(26·여) 씨는 “한국 젊은이들이 치열한 경쟁을 거친 덕분인지 유능하다는 평이 많다. 직장에서 대부분 환영받는 것으로 안다. 일각에서는 한일관계 악화로 직장 내 차별이 있으리라 보는데, IT업계 특성상 연령대가 낮고 개방적이라 외국인 차별을 무례하다고 여기는 문화가 강하다”고 말했다.

그러나 일본에 취업한 젊은이 가운데 일부는 한국인에 대한 차별이 있다고 밝혔다. 일본 내 무역업체에 3년째 다니고 있는 김모(28·여) 씨도 한국의 구직난을 피해 일본으로 건너갔다. 김씨는 대학에서 제2외국어로 일본어를 택해 한국에서 취업 준비를 할 때도 주로 일본계 기업이나 무역상사에 지원했다. 그래도 일본에서 적응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입사 후 반년 동안은 사건·사고의 연속이었다. 사내 분위기는 대체로 한국보다 보수적이었다.

김씨는 “평소 업무에서 텃세에 직면해 어려움이 많았다. 업무를 처리하다 보면 개발자들에게 지시할 일이 많은데 일부 개발자가 ‘외국인’이 지시하는 것에 반감을 느끼는지 ‘당신이 말하는 일본어는 알아들을 수 없으니 일본인 직원을 통해 다시 지시해달라’고 하는 경우도 있었다. 이와 관련해 상사에게 정식으로 개선 요구나 상담 요청을 해도 ‘당신이 외국인이라 어쩔 수 없다’는 식으로 가볍게 넘겨버리곤 한다”고 말했다.

오랫동안 일본에서 살아온 중년층도 불안감을 느끼기는 마찬가지. 오사카에서 20년 넘게 살고 있는 이모(47) 씨는 “과거에도 일부 일본인이 한국인에 대한 차별을 은근히 표현했지만, 최근 들어 20~40대 남성을 중심으로 차별과 혐한 발언을 드러내놓는 경우가 늘었다. 음식점이나 가게에서도 큰 소리로 한국이나 한국인에 대해 욕하는 일본인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게다가 서점 베스트셀러 코너에 혐한 관련 서적이 하나 둘 자리 잡고, 혐한 시위대가 활동하는 모습을 간혹 보도를 통해 접하다 보면 10여 년 전에 비해 일본에서 한국인으로 사는 것이 불편해졌다고 느낀다”고 말했다.

키보드워리어의 만용은 온라인에서만

4월 29일 오전 광주 동구 광주지방변호사회관 6층 대회의실에서 열린 광주전남 일제강제동원 피해자 전범기업 대상 1차 집단소송 기자회견 모습(왼쪽). 3월 일본 도쿄 도심에서 혐한 시위대와 이에 반대하는 일본 시민들이 충돌했다. [뉴스1, 동아DB]獩潩n


하지만 본지가 취재한 30여 명의 일본 내 취업자 및 유학생은 혐한 분위기로 힘들다고 느끼지 않았다. 혐한 분위기가 있다지만 실생활에서 마주친 적은 많지 않고, 있다 해도 주변에서 빠르게 제지할뿐더러 그런 이야기를 꺼낸 사람을 나무라는 분위기라는 것.

일본에서 대학생활을 하고 있는 윤모(25) 씨는 “학교에서 간혹 혐한 발언을 하는 사람을 본 적은 있지만, 한국인 앞에서 직접 언급하는 사람은 드물다. 인터넷상에서는 혐오 발언을 일삼는 사람이 사회생활에서는 이를 감추는 것처럼, 인터넷과 일부 세력 사이에서 혐한이 퍼진다고 일본 전체가 혐한 분위기인 것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고등학교 졸업 후 줄곧 일본에서 생활한 직장인 박모(32) 씨는 “최근 5년간 혐한 관련 서적이나 콘텐츠가 대폭 늘어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극단적인 주장은 절대 다수에게 큰 영향을 미치지 못하는 것 같다. 한국에서도 극우, 급진 등 자극적인 콘텐츠가 일정 계층에게서 폭발적인 지지를 이끌어내지만, 절대 다수가 이에 공감하지 않는 것처럼 아직 피부에 와 닿는 위협은 없다. 반대로 방탄소년단, 트와이스 등 한국 대중문화에 대한 관심이 커졌다. 한국 번화가에 일본식 이자카야가 많은 것처럼 일본에도 한국식 음식점이 늘어나는 추세”라고 말했다.

성향만 맞다면 한국보다 나을지도

일본에서 생활하는 것이 낫다는 사람도 있었다. 요식업계에 종사하는 정모(29) 씨는 “한국에서 일할 때는 돈을 낼 때 뿌리듯 던지거나, 이상한 요구를 하는 손님을 매일 여러 명 볼 수 있었다. 하지만 일본에서는 이런 ‘진상’ 손님을 한 달에 한 명 마주치기도 힘들다. 최근 일하는 회사에서 한국에 가게를 내니 그쪽으로 가줄 수 있겠느냐는 요청을 받았지만, 거절하고 싶다”고 말했다.

정씨는 또 “최근 한국인 사이에서 일본 워킹홀리데이가 유행하면서 언어를 제대로 준비하지 않은 채 무작정 일본으로 오는 사람이 늘어나고 있다. 의사소통이 안 되니 일에 실수가 잦고, 그럼 상사나 손님에게 싫은 소리를 들을 수밖에 없다. 이를 두고 차별이라는 식으로 이야기하는 경우도 있는 것으로 안다”고 밝혔다.

일본 투자회사에 다니는 오모(32) 씨는 “한국과 일본 양국에서 모두 일해봤지만, 큰 차이는 없는 것 같다. 솔직히 일본에 5년 이상 살면서 단 한 번도 차별이나 불쾌한 상황을 겪어보지 않았다면 거짓말이다. 외국인이다 보니 승진, 인사고과에서 차별받을 때도 있다. 하지만 이는 한국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간혹 직장 상사의 괴롭힘과 필요 이상의 관심에 시달렸고, 학벌 때문에 인사고과에서 불이익을 받는 경우가 다반사였다. 어디를 가나 무례한 사람은 있고, 사회적 인식 탓에 불이익을 당할 수도 있다. 결국 어디에서 일하며 살지는 개인의 선택 문제”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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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 사이에 예의를 차리는 일본의 ‘혼네(本音)·다테마에(建前)’(속마음과 겉으로 표현하는 것이 다름)보다 직설적인 한국 정서가 편해요.”

서울에서 직장 생활을 하는 일본인 A(25)씨의 말이다. 한일관계가 경색되는 것과 무관하게 일본으로 진출하는 한국 취업준비생들처럼, 한국에 사는 일본인도 반일 감정과 무관하게 한국 생활에 적응하고 있었다.

A씨는 서울 소재 대학에서 1년간 교환학생으로 지내며 한국의 매력에 빠져 지난해 아예 한국 기업에 취직했다. 한일관계가 악화됐다지만 그는 생활에 큰 불편함을 느끼지 못하고 있었다. A씨는 “양국 정치인이 날 선 말을 주고받아 위기가 고조되면 일본의 부모님이 안부 전화를 해온다. 하지만 나는 아직 큰 변화를 못 느낀다. 지금까지 일본인이라는 이유로 차별받은 기억은 없다. 잠시 불쾌할 수 있지만 대부분 문화적 차이에 따른 오해였다. 일례로 교환학생 시절 백반집에서 음식을 던지듯 내려놓아 ‘일본인이라 차별하는 건가’라며 잠시 화가 났지만, 모든 테이블에 똑같은 방식으로 음식을 놓는 모습을 보고 마음이 풀렸다”고 밝혔다.

그는 최근 악화되는 한일관계에 대해 “일부 언론이 보도하는 정치적 갈등이 전부는 아니다. 몇 개월 전 한 일본 언론이 한국인의 일본산 제품 불매 운동으로 피해가 크다고 보도했다. 그러나 당시 서울 번화가의 일본 브랜드 매장은 한국인 손님으로 북적였다. 일상의 영역에서 한일관계는 큰 문제없다”고 말했다.


한국에서 10년 넘게 살고 있는 B씨는 “경색되는 한일관계와 반대로 실생활에서 일본인에 대한 혐오 표현은 줄었다”고 말했다. 그는 “처음 한국에 왔을 때만 해도 술자리나 지하철에서 일본어를 사용하면 힐끗힐끗 쳐다보며 일본인 혐오 발언을 하는 일이 종종 있었다. 하지만 최근에는 혐오 발언을 하는 사람이 크게 줄었다”고 밝혔다.

박세준 기자 sejoonkr@donga.com
김우정 기자 friend@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