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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첫 시험관 쌍둥이… 누나는 교사랍니다"

Shawn Chase 2015. 10. 13. 10:26

입력 : 2015.10.13 03:00

[30년 前 수술 성공한 문신용 교수]

35세 때 무작정 미국행 1년 공부… 1985년 난임 부부에 쌍둥이 안겨
"생명의 조력자라는 자부심 느껴"

결혼하고 4년이 넘도록 아이를 갖지 못한 천모(당시 31세)씨 부부는 1984년 말 서울대병원에서 '시험관아기' 시술을 해보자는 제안을 받았다. 정자와 난자를 부부의 몸에서 채취해 몸 밖에서 수정하는 시험관 시술이 생소했지만 천씨 부부는 제안을 받아들였다. 그만큼 아이가 간절했기 때문이다. 이듬해 10월 12일 오전 5시 10분, 서울대병원 분만실에서 이란성 쌍둥이 남매가 울음을 터뜨렸다. 제왕절개 수술 끝에 5분 차이로 태어난 누나와 남동생은 각각 2.63㎏, 2.56㎏으로 건강했다. 한국 최초의 시험관아기가 세상의 빛을 본 순간이었다.

서울대병원에서 '특별한 울음'을 터뜨린 쌍둥이 남매가 태어난 지 12일로 30년째를 맞았다. 당시 시술은 장윤석(84·마리아병원 명예원장), 문신용(67·엠여성의원 원장) 교수 등 서울대병원 산부인과 의료진이 맡았다. 문 원장은 12일 본지 인터뷰에서 "한국에서 첫 번째 시험관아기 시술에 성공했던 당시의 짜릿하고 숭고했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며 "30년간 생명의 조력자로 살아왔다는 사실에 자부심을 느낀다"고 했다.

1985년 10월 12일 한국 최초로 시험관아기를 탄생시킨 문신용 엠여성의원 원장이 2013년 5월 서울 동숭동 서울대 인구의학연구소에서 본지와 인터뷰를 하며 찍은 사진(왼쪽). 오른쪽은 첫 시험관 쌍둥이가 태어난 날 장윤석 당시 서울대 산부인과 교수가 아기들을 보며 흐뭇하게 웃는 모습이다.
1985년 10월 12일 한국 최초로 시험관아기를 탄생시킨 문신용 엠여성의원 원장이 2013년 5월 서울 동숭동 서울대 인구의학연구소에서 본지와 인터뷰를 하며 찍은 사진(왼쪽). 오른쪽은 첫 시험관 쌍둥이가 태어난 날 장윤석 당시 서울대 산부인과 교수가 아기들을 보며 흐뭇하게 웃는 모습이다. /김연정 객원기자·서울대병원 제공
천씨 가족과 이따금 연락을 주고받았다는 문 원장이 마지막으로 그들의 소식을 들은 건 수개월 전 지인으로부터다. 쌍둥이 누나는 학교 교사로 근무 중이었고, 남동생은 대학을 졸업한 상태였다고 한다. 그때까진 두 사람 모두 미혼이었다. 남매는 성인이 되던 2005년 한 언론 인터뷰에서 "우리가 국내 최초의 시험관아기로 태어난 걸 초등학교 때 신문 기사를 보고 알았다"고 했었다.

한국 최초의 시험관아기를 받아낸 문 원장은 1983년 "미국의 시험관아기 시술법을 공부하고 싶다"며 35세 나이에 무작정 미국행 비행기를 탔다. 1978년 영국에서 세계 최초의 시험관아기가 탄생하자 한국도 관련 연구에 박차를 가했지만, 체외에서 정자와 난자를 수정하는 기술이나 배양·이식은 번번이 실패했다. 그는 미국에서 시험관아기 출산에 처음으로 성공한 버지니아주(州) 노포크 종합병원 하워드 존스 박사를 찾아가 2주 동안 "기술을 가르쳐 달라"며 졸랐다. 그렇게 기술을 배운 문 원장은 1년 후 한국으로 돌아와 천씨 부부의 품에 이란성 쌍둥이를 안겼다.

천씨 부부의 시험관아기 시술 성공을 계기로 국내에서도 시험관아기 시술은 난임 부부들 사이에서 빠르게 자리 잡았다. 시험관아기 시술 건수는 2006년 1만9000건에서 2010년 2만5000건, 지난해 4만1000건으로 늘었다. 문 원장은 지난 30여 년간 약 1만건의 시험관아기 시술에 성공했다. 그는 "여성의 초혼 나이가 늦춰지면서 난임 부부가 많아지고 있다"며 "한국 시험관아기의 '출발'을 함께했다는 자부심을 갖고 임신에 어려움을 겪는 부부들을 위해 더 오래 봉사하고 싶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