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

"여기, 아무도 안 계세요?" 한국에 부는 무인화 바람

Shawn Chase 2019. 4. 3. 14:27

한상혁 기자  


입력 : 2019.02.27 16:22 | 수정 : 2019.02.27 18:09


지난 21일 오후 서울 서대문구 대현동의 경의중앙선 신촌역 앞 카페. 5평쯤 되는 내부는 단출하다 못해 썰렁해 보였다. 커피 벤딩머신(vending machine·자판기) 2대만 있을뿐 종업원은 한 명도 보이지 않았다. 기계가 만드는 커피를 고객 스스로 결제하고 마시는 ‘무인 카페’였다.

서울 서대문구 대현동 무인 카페에서 고객이 커피를 구매한 후 시럽을 넣고 있다. /한상혁 기자

벤딩머신의 LCD화면에 보이는 커피 가격을 보고 눈이 휘둥그레졌다. 아메리카노 한 잔에 1500원, 아이스아메리카노는 1700원이었다. 시중 커피값의 절반 이하다. 화면을 눌러 음료를 고르고 카드로 결제하니 컵과 함께 자동으로 음료가 나왔다. 인스턴트(믹스) 커피가 아니라 원두에 압력을 가해 추출한(에스프레소) 커피다.

벤딩머신 왼쪽에는 시럽과 얼음을 넣는 공간도 보였다. 매장 내부에 좌석이라곤 달랑 2개. 5~6명이 서서 커피를 마실 수 있는 바(bar)가 있었다. 한쪽 벽에는 ‘컵 등을 가져가지 마세요. CCTV가 보고 있습니다’라는 문구가 적혀있었다.

소비자가 매장 직원을 직접 대면하지 않고 쇼핑하는 이른바 ‘언택트(untact)’ 바람을 타고 전국 곳곳에 ‘무인(無人) 점포’가 속속 등장하고 있다. 매장 직원이 필수라고 여겨졌던 카페 뿐만 아니다. 편의점, 독서실까지 확산하는 추세다. 최저임금 급등과 임대료 인상으로 무인 점포는 더 빠르게 늘어날 가능성이 높아 국내 상권은 물론 부동산 시장에도 새로운 지각 변동이 일어날 것으로 보인다.

■ “인건비 줄이자” 자영업자들, 무인 카페 ‘노크’

서울 서대문구 대현동의 한 건물에 영업 중인 점포들. 와플 가게, 카페, 토스트 가게 모두 무인 판매 시설이 설치돼 있다. /한상혁 기자

서울에서 1~2년 전부터 등장하기 시작한 무인카페는 현재 서울 강남·신촌 등 번화가 주변 소규모 점포 중심으로 급속도로 번지고 있다. 대부분 기계 구입과 운영 노하우를 교육하는 프랜차이즈 업체를 통해 창업한다. 무인카페를 운영하는 ‘티머’의 박우용 대표는 “일반 커피숍은 폐업률이 높고, 기껏해야 주인 인건비밖에 건지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며 “신규 창업은 물론 기존 커피숍도 무인으로 전환하려는 업주가 많다”고 말했다.

무인 카페를 창업하는 가장 큰 이유는 인건비 절감이다. 무인 카페는 하루 1~2회 정도 들러 청소와 재료 투입하는 최소한의 관리 인력만 있으면 돌아간다. 직원 1명 인건비만 아껴도 월 200만원을 줄일 수 있다.

무인 카페와 일반 카페 창업 비용 비교. /이지은 기자

무인 카페 창업 비용은 얼마나 될까. 전용면적 10평 매장에 벤딩머신 2대(1대당 1200만~1500만원)와 디저트 자판기 1대(700만원)를 놓으면 인테리어 비용(1500만원)까지 포함해 4600만~5200만원쯤 든다.

일반 유인 커피숍은 커피 기계와 냉장고·제빙기를 따로 설치해야 하기 때문에 2000만원 정도 든다. 전체적으로는 무인 카페가 유인 카페보다 1100만~1700만원쯤 더 투자된다. 이를 5~7개월 정도의 인건비 절감으로 충당해야 한다.

그렇다면 맛은 어떨까. 무인 카페를 이용해 본 고객들은 “커피 맛이 일반 커피 전문점과 비교해 크게 다를 바 없다”고 평가한다. 어차피 유인 카페에서도 기계를 이용해 원두를 갈고 커피를 뽑는다. 벤딩머신을 이용할 때 차이점은 탬핑(tamping·분쇄된 커피를 눌러 다지는 것)을 사람이 아닌 기계가 한다는 정도다.

물론 단점은 있다. 사람이 만드는 커피보다 판매 속도가 느리고, 셀프 서비스를 싫어하는 손님도 있다는 것. 그래서 매출 규모가 큰 주요 상권의 대형 매장보다 번화가나 대학가 주변 골목의 소규모 점포가 무인 카페 운영에 적합하다. 5~10평 정도의 매장을 무인 카페로 운영하면 주문대와 판매대를 놓을 자리에 테이블을 설치할 수 있어 유인 카페 대비 좌석 수가 2배로 늘어난다는 것도 장점이다.

■ 편의점, 독서실까지… 무인 점포, 대세가 되나

무인화, 자동화는 유통 시장에서 거스를 수 없는 대세가 되고 있다. 이날 들렀던 서울 서대문구 대현동의 무인카페 옆 점포 두 곳은 각각 와플과 토스트 가게였는데, 직원 1명씩만 일하고 있었다. 와플 가게에는 ‘캡슐 커피’를 파는 자판기가 놓여 있고, 토스트 가게는 무인 계산대에서 계산하고 토핑 재료를 직접 담아야 한다. 이 가게들도 ‘무인’은 아니지만 직원 1명분의 일을 기계가 대신하고 있는 셈이다.

서울 중구에 있는 '이마트24' 무인 편의점에 설치된 셀프 계산대. /한상혁 기자

이미 무인으로 운영하던 코인 빨래방·코인 노래방·무인 모텔 뿐만 아니라, 사람이 꼭 필요할 것 같았던 업종들도 무인으로 전환하고 있다. 무인 카페를 비롯해 무인 편의점, 무인 독서실 등이 속속 생겨나고 있다.

서울 중구에 있는 ‘이마트24 조선호텔점’은 ‘무인 편의점’으로 운영한다. 호텔 직원들은 사원증으로, 일반 고객은 이마트24 앱을 다운받은 후 회원 정보가 담긴 바코드로 출입한다. 4평 남짓한 내부는 분위기나 물품 배치가 다른 편의점과 비슷하지만 직원이 한 명도 없다. 계산도 고객이 직접 해야 한다.

CU 편의점도 서울·수도권 직영 점포 6곳을 심야 시간(오전1~7시) 무인으로 시범 운영 중이다. CU관계자는 “직영점 기준 야간에 아르바이트 직원을 쓰면 야간 수당이 붙어 한달 월급으로 300만원 이상을 줘야 한다”며 “보안이나 술·담배 판매시 신분 확인 같은 문제점을 보완하고 직영점뿐 아니라 가맹점에도 무인 시스템을 확대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권강수 한국창업부동산정보원 이사는 “인건비가 지금처럼 오른다면 자영업자들은 무인 점포를 내거나 무인 계산대를 설치하는 방식으로 인건비를 줄이는 방법을 최우선으로 생각할 수밖에 없다”면서 “완제품을 팔거나 조리 시간이 길지 않은 식품을 파는 업종의 경우 입지 여건이 떨어지는 곳부터 무인화가 빠르게 진행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