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와 경영

나뭇잎 팔아 年24억원 버는 일본의 어느 산골

Shawn Chase 2015. 10. 12. 23:24

저출산 고령화로 이미 큰 몸살을 앓고 있는 일본, 이곳에서 도시도 아닌 산골 마을에서 산림 자원을 색다르게 활용해 돈도 벌고 나름의 생존 해법을 찾은 마을이 있다.
이 마을의 비결은 다름 아닌 ‘나뭇잎’이었다.

 

입력 : 2015.10.12 08:12

일본의 산촌(山村)은 국토 면적의 47%를 차지하지만, 산촌에서 사는 인구는 390만여명으로 전체 일본 인구의 3%에 불과하다. 특히 산촌은 만 65세가 넘는 고령 인구 비율이 34%로, 전국 평균 23%(2010년 기준)를 크게 웃돈다. 산간 벽촌에서 마땅한 일자리를 얻지 못한 젊은이는 도시로 떠나고, 저출산 고령화 여파로 인구가 급감하면서 많은 산골 마을이 폐촌 위기에 내몰리고 있다. 그러나 산림 자원을 색다르게 활용하면서 생존 해법을 찾아낸 곳도 있다.

일본 도쿠시마현 가미카쓰 마을에 사는 니시카게 유키오씨가 나뭇잎을 다듬으며 PDA로 주문 현황을 살피고 있다. 이 산촌마을 주민들은 쓰마모노(妻物·나뭇잎으로 만든 고급 일식 요리 장식품)를 생산해 높은 소득을 올리고 있다. (양지혜 특파원)

나뭇잎으로 돈 버는 마을

도쿠시마(德島)현 가미카쓰(上勝) 마을은 면적의 86%가 산림으로 뒤덮인 두메산골이다. 주민은 1700명인데, 2명 중 1명이 만 65세 이상이다. 이곳 주민들은 지천에 널린 단풍·은행·밤·감나무 등의 잎을 상품화해 매년 2억5000만엔(약 24억원)을 벌어들인다. 가미카쓰의 나뭇잎이 고급 일식 요리 장식품으로 쓰이는 ‘쓰마모노(妻物)’로 이용되기 때문이다. 이 지역 나뭇잎은 300여 가지로 품종이 세분화돼, 현재 일본 쓰마모노 시장의 70%를 차지한다. 나뭇잎으로 1인당 평균 연소득 300만~500만엔씩(약 2900만~4800만원) 올리고, 많게는 1000만엔(약 9700만원) 이상 버는 주민도 있다. 최근에는 프랑스 수출도 시작했다.

지난 5일 가미카쓰 마을에서 만난 니시카게 유키요(78·西陰幸代)씨는 이날 출하할 붉은 단풍잎을 다듬느라 분주했다. 그녀는 매일 오전 8시 정각 컴퓨터에 접속, 선착순 신청으로 나뭇잎 주문을 따낸다. ‘밤나무잎’ ‘푸른 감잎’ 등 나뭇잎 이름 10여개가 적힌 목록을 꼼꼼히 살피던 니시카게씨는 ‘붉은 단풍잎 10팩’ 항목을 보자마자 신청 버튼을 눌렀고, 곧 모니터 화면에 ‘성공’ 두 글자가 떴다. 그녀는 컴퓨터 옆 작업용 책상 앞으로 옮겨가 새벽에 따 놓은 붉은 단풍잎을 깨끗한 물로 씻어 물기를 털어낸 뒤, 두 주먹 분량의 잎을 스티로폼 팩에 담아 랩을 씌워 ‘단풍잎 1팩’을 완성시켰다. 보통 나뭇잎 1팩당 200~300엔(1900~2900원)의 수익이 난다. 포장된 나뭇잎을 정오까지 농협으로 보내면, 농협 직원이 생산자 이름과 바코드를 부착해 전국 40여곳 농산물 시장으로 배송한다. 나뭇잎은 다음 날 새벽 도매시장 경매를 거쳐 요리점 식탁 위에 오른다.

[초밥집 '나뭇잎 장식'에 착안]
주민 1700명 절반이 65세 이상
이상 한파로 감귤농사 망하자
5년간 전국 돌며 새 수입원 찾아

[1인당 연소득 3000만~5000만원]
300가지 품종, 온라인 주문받아
90세 넘는 노인도 '컴퓨터 도사'
나뭇잎 1팩에 3000원… 수출까지

가미카쓰 마을은 원래 감귤나무로 먹고사는 동네였다. 그러나 1981년 2월 영하 13℃라는 기록적인 이상 한파가 찾아와 감귤 나무가 모두 얼어 죽었고, 이어 오렌지 수입이 자유화되면서 마을의 주요 수입원이 사라졌다. 당시 농협 영농지도원이었던 요코이시 도모지(橫石知二·57)씨는 감귤나무를 대신할 수입원을 찾기 위해 5년 동안 전국을 누비다, 초밥집 쓰마모노를 보고 영감을 얻어 나뭇잎 비즈니스를 고안했다. 공정한 경쟁과 품질 관리를 위해 인터넷 선착순 신청제를 구축한 덕분에, 가미카쓰 주민들은 90세 이상 노인도 SNS를 스스럼없이 쓰는 ‘컴퓨터 도사’가 됐다. 마을 노인들의 1인당 의료비도 전국 고령자 의료비보다 평균 10만엔 적은 80만엔 수준이다. 니시카게씨는 “나뭇잎을 관리하는 데는 따로 목돈이 필요하지 않고, 가볍고 예쁘기까지 한 우리 마을 최고의 보물”이라며 “적어도 100세까지는 현역으로 일할 생각”이라고 했다.

친환경 목재 연료·관광 자원으로 개발

온천으로 유명한 군마(群馬)현 우에노(上野) 마을은 면적의 96%가 숲으로 우거져 있다. 인구는 1335명으로, 현 내에서 주민 수가 가장 적어 “야생동물과 사람 수가 비슷하다”는 농담이 있을 정도다. 이 지역은 온천수를 데울 때 등유 대신 ‘목재 펠릿(wood pellet)’을 2011년 9월부터 대체 에너지원으로 적극 활용하고 있다. 덕분에 등유 가격의 상승 추세와 상관없이 한 해 연료비 지출을 600만엔으로 유지하면서 안정적인 온천 영업을 하고 있다.

목재 펠릿은 나무를 가공하고 남은 톱밥을 분쇄해 길이 2~3cm가량의 원기둥 모양으로 압축시킨 연료다. 일반 나무보다 발열량이 많고 연소율도 95%에 달해 잔해를 거의 남기지 않는 데다, 탄소 배출량도 경유의 12분의 1 수준이어서 친환경 연료로 각광받는 에너지원이다. 무엇보다 경유의 43%, 등유의 28% 수준인 가격이 장점이다. 현재 우에노 마을에서는 온천 시설 이외에도 학교, 면사무소, 주택 등에 목재 펠릿 보일러 70대를 설치해 이용한다. 곳곳에 버려져 있던 나무 잔해들이 에너지원으로 재활용돼 지역 경제의 윤활유 역할을 하고 있다. 이와테(岩手)현 스미타(住田) 마을과 나가노(長野)현 네바(根羽) 마을 등지에서도 목재 가공을 지역 브랜드로 육성하면서, 나무 폐기물을 친환경 연료나 지역 화폐로 이용하고 있다.  도치기(栃木)현은 내년부터 현 전역에서 목재 폐기물 연료를 쓰기로 했다.

니시카게 유키오씨가 집 근처 숲에서 재료로 쓸 나뭇잎을 고르고 있다. (양지혜 특파원)

이 밖에도 산촌 풍경 자체를 관광자원으로 활용해 ‘산길 달리기 대회’를 열거나 지역의 폐교와 빈집을 ’산림 테라피 기지’로 숙박객을 끌어들이는 정책도 각광받고 있다. 지난해 6월 산길 80km를 뛰는 대회를 개최한 군마현 쿠사쓰(草津) 마을은 홋카이도부터 오키나와까지 전국에서 참가자들이 모여들어 행사 하루 만에 2500만엔의 경제 효과를 거뒀다. 일본 농림수산성 관계자는 “산촌은 자연환경 보전 및 문화 전승 등 국토의 핵심이 되는 지역”이라며 “산촌의 지속가능한 발전과 경제 활성화를 위해 지자체와 더불어 다양한 정책 및 프로그램을 개발해 나가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