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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있는 과학] 창호지처럼 반대편 비쳐… 5000년 역사 콘크리트의 변신

Shawn Chase 2019. 3. 27. 16:11

[재미있는 과학] 창호지처럼 반대편 비쳐… 5000년 역사 콘크리트의 변신

입력 : 2019.01.03 03:05

진화하는 콘크리트

지난해 12월, 서울 종로 세운상가에 특이한 구조물이 설치됐어요. 분명 우리에게 익숙한 회색 덩어리 '콘크리트'인데, 창호지처럼 반대편이 은은하게 비쳐보이는 거예요. 심지어 한쪽에서 빛을 비추면 다른 쪽 면에서 빛이 반짝이기도 했지요. 서울과기대 김병일 교수가 만든 이 구조물은 '투명 콘크리트'를 사용한 작품이에요. 단단한 회색 덩어리로만 생각했던 콘크리트가 반대편 실루엣을 보여줘서 놀라웠죠. 콘크리트가 어떻게 빛을 통과시킬 수 있는 걸까요? 구멍을 숭숭 뚫은 것도 아닌데요.

이집트 피라미드에도 쓰인 '콘크리트'

우리가 사는 집, 공부하는 학교, 어른들이 일하는 회사 건물은 대부분 콘크리트로 지어져 있어요. 석회암이 주요 재료인 시멘트에 수산화나트륨 같은 몇 가지 원소와 물을 섞으면 마치 자연에서 보는 암석처럼 단단한 콘크리트가 돼요.

현대 도시 풍경과 뗄 수 없는 물질이다보니, 콘크리트가 현대에 들어 개발된 거라고 생각하는 친구가 많을 거예요. 하지만 콘크리트는 인류의 가장 오랜 건축재료 중 하나랍니다. 기원전 3000년경 이집트에서 피라미드를 만들 때도 콘크리트를 사용했어요. 당시 사람들은 화산재에 석회암이 녹은 물인 '석회수'를 섞어 굳히면 돌처럼 단단해진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어요. 이집트뿐만 아니라 중국, 로마 등 세계 곳곳에서 비슷한 방식으로 고대 콘크리트 건축물을 만들었어요. 1000년 넘게 무너지지 않고 버티고 있는 로마의 수로(水路)도, 콜로세움도 콘크리트로 만들었답니다.

하지만 콘크리트 자체로만 보면 돌만큼 단단하진 않아요. 그래서 현대에는 콘크리트 안에 단단한 철기둥, 즉 철근을 박아 넣은 철근콘크리트를 많이 씁니다. 콘크리트 안에 철근을 심으면 철근과 콘크리트가 서로를 단단히 붙잡아서 휘거나 당기는 힘을 받아도 부서지지 않지요. 19세기 프랑스의 한 정원사가 개발하면서 전 세계로 퍼져나갔어요.

콘크리트의 원리 그래픽
▲ /그래픽=안병현
콘크리트에도 단점은 있어요. 온도에 따라 줄어들거나 늘어나는 경향이 있어서 금이 가기 쉬워요. 거기다 외형이 거칠거칠하고 칙칙한 회색을 띠고 있어 따로 색을 칠하거나 가공하지 않으면 예뻐 보이지 않아요. 철거한 건축물에서 나온 폐콘크리트가 환경을 해치기도 하지요.

그래서 현대에 들어서는 콘크리트의 단점을 줄이려는 노력이 계속되고 있어요. 앞에서 말한 투명 콘크리트는 투박한 겉모습을 바꾸려는 시도로 나왔죠. 그 비밀은 빛을 통과시키는 재료에 있답니다.

광섬유를 콘크리트 속에 쏙!

투명 콘크리트 기술은 20세기 초인 1922년에 처음 등장했어요. 유리 같은 투명한 재료를 콘크리트에 섞는 방법이지요. 이론적으로는 가능했지만 돈이 많이 들고 만들기 까다로워 널리 쓰이지는 못했어요.

투명 콘크리트가 실제 재료로 사용되기 시작한 것은 2001년부터예요. 헝가리 건축가 아론 로손치가 광섬유를 콘크리트에 섞는 기술을 개발하면서부터지요.

광섬유는 유리 재질로 만든 가늘고 긴 관이에요. 광섬유에 들어온 빛은 섬유 안에서 계속 반사되며 반대편으로 전달돼요. 로손치는 광섬유를 짧게 잘라 콘크리트가 굳기 전에 찔러 넣었어요. 콘크리트가 굳고 나면, 콘크리트만 있는 곳은 빛이 통과하지 않지만 광섬유가 있는 부분은 빛이 통과돼 콘크리트 반대편으로 전달해줬죠. 광섬유를 5%만 섞어도 마치 콘크리트 전체가 반투명해지는 듯한 효과를 냈어요. 이 콘크리트는 '리트라콘'이라 불려요. 기념비나 실내 인테리어용으로 사용되고 있답니다.

문제는 리트라콘에 들어가는 광섬유가 비싸다는 거예요. 그래서 리트라콘만으로 건물을 짓기는 어려웠죠. 리트라콘 개발 이후에도 건축 기술자들은 콘크리트에 플라스틱 섬유, 유리, 아크릴 등 빛을 잘 통과시키는 투명한 재료를 섞는 실험을 계속했어요.

덕분에 플라스틱 섬유를 쓰면 광섬유보다 싼값에 비슷한 효과가 나온다는 걸 알아냈지요. 먼저 콘크리트를 굳히는 틀 '몰드'를 만들고 양쪽 벽에 구멍을 뚫어요. 이 구멍에 아크릴 봉이나 유리봉을 꽂아 단단하게 고정하지요. 그 사이에 콘크리트 재료를 붓고 굳힌 뒤 틀을 제거하면 군데군데 투명한 콘크리트가 완성되는 거예요. 이 콘크리트는 리트라콘보다 가격이 훨씬 싸면서도 반투명 효과는 비슷하게 볼 수 있어요. 앞에서 이야기한 세운상가에 설치된 김병일 교수의 투명 콘크리트가 바로 아크릴 등 플라스틱 섬유를 이용한 거랍니다.

박테리아가 콘크리트를 스스로 만든다?

콘크리트는 계속 변신하고 있어요. 균열이 생기면 스스로 메꿔버리는 '자기 치유 콘크리트'지요. 이 콘크리트는 젖산칼슘을 먹고 석회석 성분을 만들어내는 박테리아를 이용해요. 박테리아와 젖산칼슘을 캡슐에 함께 넣고, 이 캡슐을 콘크리트 안에 심어요. 콘크리트에 틈이 생겨 들어간 물이 이 캡슐에 닿으면, 박테리아가 깨어나 활동을 시작하지요. 물과 젖산칼슘을 먹은 박테리아는 석회 성분을 만들어내요. 이 석회 성분이 단단히 굳으면서 콘크리트에 생긴 틈을 메우는 거예요. '바이오 콘크리트'라고도 불린답니다.

이런 자기 치유 콘크리트는 금이 가서 위험한 건축물의 붕괴나 콘크리트 바닥에 생긴 '싱크홀'을 막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돼요. 이 밖에도 산성비에 콘크리트가 녹는 것을 방지하는 내산성 콘크리트 등 다양한 콘크리트가 개발되고 있거나 실제 쓰이고 있어요. 피라미드에서 시작된 콘크리트의 역사는 아직도 현재진행형이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