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의학

[최보식이 만난 사람] "한 시절 창궐했던 곤충이 갑자기 사라지듯… 생물 세계에 영원불변은 없어"

Shawn Chase 2019. 3. 15. 00:09

조선일보

  • 최보식 선임기자




  • 입력 2015.02.23 03:00 | 수정 2015.02.23 09:04

    [평생 국내외 나방 新種 520종 찾아낸… '나방박사' 박규택 교수]

    "벤 나무를 비닐로 싸 약 넣는 게 '소나무 재선충'의 유일한 방제법
    IT시대에 얼마나 원시적인가… 올해만 350만 그루 베어야 해"

    "한국의 위치도 몰랐을 1886년, 訪韓해 나방류 채집한 英 학자…
    그 한 달간의 보고서 10편 읽고 한국인 연구자로서 자괴감 느껴"


    "우리나라 사람들은 이런 분야를 잘 모르니까 나를 '곤충학 박사' '나비 박사'라고 부른다. 사실 내 연구 대상은 '나방'이다. 나방은 15만7000종(種)이나 된다. 이 중에서도 나는 '뿔나방'류를 연구한다. 입 아래 수염이 뿔처럼 올라와 있는 놈들이다. 뿔나방류만 1만8500종이나 된다."

    박규택(72) 강원대 명예교수는 단단해보였다. 사람들 관심 밖의 연구를 했지만 이번에 '3·1 문화상'을 받는다.

    ‘나방박사’박규택 교수는“연구자가 되는 길보다 연구자로 계속 남는 길이 훨씬 더 힘들었다”고 말했다.
    ‘나방박사’박규택 교수는“연구자가 되는 길보다 연구자로 계속 남는 길이 훨씬 더 힘들었다”고 말했다. /이덕훈 기자


    ―하필 '뿔나방'류를 연구한 이유는?

    "곤충 중에서 나방은 딱정벌레류, 노린재류 등과 함께 종수(種數)가 가장 많다. 대부분이 농작물에 해를 끼친다. 내가 연구를 시작했던 1970년대에는 해충이 관심 대상이었다. 뿔나방류에는 '보리나방' 등 국제적 해충이 다수 포함돼 있지만 외국에서도 연구자가 드물었다."

    그는 평생 국내외 뿔나방류 신종(新種)을 520종 찾아냈다. 현존 생물분류학자 중에서 최고 실적으로 꼽힌다. 그는 학술 논문 300여 편을 발표했고, '한국곤충대도감' '한국 동식물도감' 등 37권 저술 작업에 참여했다. 불모지나 다름없던 국내 곤충분류학의 기반을 구축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내가 연구해온 뿔나방들은 날개를 펴도 1~3㎝밖에 안 된다. 인간 세상에 문제를 일으키는 것은 대부분 이처럼 작은 곤충이다."

    ―왜 작은 곤충들이 문제를 일으키는가?

    "보이는 큰 놈들은 잡을 수 있지만 작은 놈들은 눈에 안 띄게 확산된다. 작년에 '소나무 재선충'으로 전국 산에서 소나무 218만 그루를 벴다. 금년에는 350만 그루를 베어내야 한다. 벤 소나무를 비닐로 싸서 약을 집어넣는 게 유일한 방제법이다. 첨단 IT에다 화성 탐사까지 하는 시대에 얼마나 원시적인가. 우리가 큰소리쳐도 작은 곤충 하나 다스리지 못한다."

    ―최근 미국 플로리다주에서 열병(熱病) 모기를 말살하기 위해 '유전자 변형 기술'을 승인했다는 보도가 있었는데.

    "한 단계 높은 방제법인데, 오래전에도 열대 과일에 치명적 피해를 주는 '과실파리'를 막기 위해 불임성(不妊性) 수컷을 살포하는 방법이 있었다. 실제 일본 오키나와에서 그 해충 방제법이 시행됐다."

    ―생태계에 대한 인위적 개입을 어디까지 허용해야 하나?

    "해충이 창궐해도 내버려두면 자연적으로 생태계 균형은 이뤄진다. 시일이 너무 오래 걸리고 피해가 크기 때문에 그렇게 할 수 없는 것이다. 1958년 용산 미군 기지로 '흰불나방'이 들어왔다. 수입 목재에 알이 붙어서 온 것이다. 그 뒤로 플라타너스 등 가로수들이 말라죽었다. 겨울에 나무 둥치에 볏짚을 빙 둘러 묶은 것은 흰불나방 때문이었다. 짚에 알을 낳으면 뜯어내 불태웠다. 지금도 이렇게 짚을 둘러놓고 있다. 하지만 흰불나방은 10년 전에 거의 사라졌다. 천적(天敵) 곤충이 생겼기 때문이다."

    나방 채집하는 장면.
    나방 채집하는 장면.


    ―'소나무 재선충'도 방치하면 언젠가는 없어질까?

    "더 이상 갉아 먹을 소나무가 없거나 천적이 나타나면 재선충도 없어진다. 그런 뒤 죽은 소나무 자리에는 다른 나무가 올라올 것이다. 과거에 배추밭을 망쳐놓았던 '배추흰나비'는 요즘 사라졌다. 한 시절 창궐했던 곤충들도 부자가 3대(代)를 못 가듯 천적이 생겨나 영원할 수는 없다."

    ―'흰불나방'이나 '배추흰나비'가 사라진 것은 천적이 아니라 농약 때문 아닌가?

    "농약 방제법은 일시적으로 해충 밀도를 낮출 수 있을 뿐이다. 미국 플로리다주에서는 '불개미' 때문에 공원의 잔디밭에 앉는 걸 겁낸다. 불개미 소탕을 위해 엄청난 노력과 재원을 들였지만 효과가 없었다. 이 불개미는 조만간 우리나라에도 상륙할 것이다."

    ―선생은 나방이 전공인데 나방은 '나비목(目)'에 속한다고 들었다. 나방과 나비는 더듬이 형태로 구별된다는 게 맞나?

    "나비의 더듬이는 가늘고 길며 끝이 뭉툭하다. 나방은 털이 많고 끝이 뭉툭하지 않다. 나비는 날개를 직각으로 세우거나 펴고 앉지만 나방은 날개를 지붕처럼 겹쳐서 앉는다."

    ―같은 계통인데, 나비는 꽃과 함께 시(詩)의 대상이고 나방은 왜 혐오스럽게 여길까?

    "나비는 낮에 활동하기에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기 위해 컬러풀하다. 나방은 주로 밤에 활동하니 단색(單色)이라 추하게 보인다. 이는 어디까지나 인간의 관점일 뿐이다."

    ―나방 연구를 하려면 현장 작업이 많지 않은가?

    "국내는 물론이고 베트남·캄보디아·대만·태국 등으로 채집을 다녔다. 백두산에는 여섯 차례나 갔다. 산속에 흰색 스크린을 설치해놓고 200W 수은등을 켜면 나방이 빽빽하게 앉는다. 채집한 나방에 핀을 꽂아 말린 뒤 라벨을 붙인다. 지금껏 표본 3만여 개를 채집했다. 품은 많이 들지만 제대로 논문 한 편 쓰기 어렵다."

    ―현존 생물분류학자 중에서 나방 신종(新種)을 가장 많이 발표했다는데, 현장 채집을 열심히 한 결과인가?

    "표본 채집이 전부가 아니다. 채집한들 어느 계통으로 분류되는지, 신종인지를 알 수가 없다. 개인이 할 수 있는 채집에도 한계가 있다. 거기서 신종을 발견한 경우는 얼마 안 된다. 나는 뉴기니에 직접 가 본 적이 없지만, 그쪽에서 채집된 나방에서 여러 신종을 발견했다."

    흰불나방.
    흰불나방.


    ―안 갔는데 어떻게 신종을 발견했다는 것인가?

    "미국·영국·노르웨이·덴마크·헝가리 등의 자연사박물관 자료를 받아본다. 미국 스미스소니언(Smithsonian) 자연사박물관에 보관된 나방 표본은 1960년대 채집된 것들이다. 아무도 손을 못 대고 분류가 안 되어 있다."

    ―채집은 남이 했는데, 발견자는 본인이 된다는 것인가?

    "채집을 해놓아도 무엇인지 모르면 아무런 의미가 없다. 그 계통과 소속을 밝혀내고 이름을 붙여주는 게 발견이다. 그러려면 학계에 이미 보고된 나방들의 형태에 대한 지식을 갖고 있어야 한다. 그만큼 오랜 시간 공부가 필요한 것이다. 내가 평생 쓴 논문 중 절반을 2007년 대학에서 퇴직한 뒤 썼다."

    ―선생은 우리나라 곤충분류학의 1세대라고 할 수 있나?

    "일제강점기에 '나비 박사' 석주명(石宙明·1908~1950) 선생이 있었다. 영국에 연수 갔을 때 그쪽 사람들도 '미스터 석'을 알고 있었다. 그 뒤로 우리 세대인데, 나와 비슷하게 시작한 동료·후배들이 있었지만, 끝까지 못 했다. 연구자로서 업적을 내기가 어렵고 재미가 없으니까. 연구자가 되는 길보다 연구자로 계속 남는 길이 훨씬 더 힘들었다."

    서울대 농대를 졸업한 그는 농업진흥청에 들어갔을 때 곤충과(課)로 발령받았다. 논농사와 관련된 벼멸구 등의 생태와 방제가 곤충과의 주 업무였다. 당시 유엔식량농업기구(FAO)에서 고문관으로 온 코넬대 교수가 "한국은 곤충분류학자부터 키워야 한다. 지금 외국에 보내 훈련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곤충 분류는 인기가 없었기에 신참인 내가 1974년 영국 자연사박물관으로 연수를 갔다. 거기서 영국 곤충학자인 리치(J H Leech)가 쓴 연구 보고서 10여 편을 보게 됐다. 한국이 어디에 붙어 있는지도 몰랐을 1886년에 우리나라에 들어와 한 달 이상 나방류를 채집했다. 그런 외국 학자도 있었는데, 우리는 연구를 안 하고 있다는 자괴감이 들었다. 그때 내 진로를 확실히 했던 셈이다."

    ―국내에서 처음으로 '곤충 벤처기업'을 했다고 들었다.

    "교수 시절인 2004년 장수풍뎅이와 사슴벌레를 키우는 'K-insect'라는 벤처를 설립했다. 당시 일본에서는 애완용 곤충이 유행하고 있었다. 곤충에게 먹일 사료를 개발하려고 일본 전문가를 모셔오기도 했다. 지금은 아무런 기술도 아니지만, 그때는 처음이라 어려움이 많았다."

    ―곤충학자인데 장수풍뎅이를 못 키워서야.

    "어디 가서 창피해서 말도 못 했다. 변명하자면 곤충 종류가 워낙 많고 나는 작은 부분인 나방 분류를 했으니…. 연구자가 사업하는 게 아니었다."

    ―그러면 벤처기업은 문을 닫았나?

    "그 때문에 아직도 우리 집사람에게 구박받고 있다. 처음 시작하는 사람은 원래 망한다. 내 제자들이 그 벤처를 이어받아 하고 있다. 또 다른 제자는 '천적(天敵) 생산 회사'도 하고 있다. 밭에 진딧물이 많이 생길 때 농약을 대신해 천적인 무당벌레를 집어넣는 것이다. 곤충 생산 회사가 이렇게 생길 수 있게 된 것도 당시 '곤충산업법'을 만들어야 한다고 뛰어다녔기 때문이다."

    ―그런 법이 왜 필요했나?

    "곤충을 대량 키우려면 건물이 필요하다. 하지만 농지에는 축사와 버섯 재배사밖에 허용되지 않았다. 농산물 관련법에 곤충이 안 들어 있었기 때문이다. 국회의원들을 1년간 설득한 끝에 '곤충산업법'이 통과됐다."

    ―곤충을 '미래 식량 자원'으로 보고 있다. 국내에서는 메뚜기와 누에번데기가 식품 원료로 사용돼왔다. 얼마 전부터 '갈색거저리'도 임시 허용됐다. 하지만 곤충을 먹는다는 게 좀 그렇지 않은가?

    "곤충에 대해 모르니 편견이 생기는 것이다. 발레나 특수 운동을 하는 청소년들은 벨기에 제품인 '곤충바'를 먹고 있다. 우리가 의식하지 않은 사이에 곤충이 식량화되고 있는 것이다. 곤충의 형체를 생각하지 마라. 가루를 내서 먹는 것이다."

    ―나방을 연구해오면서 혹시 인생철학 같은 걸 깨달은 게 있나?

    "하느님이 천지창조한 것까지는 믿겠지만, 내세(來世)니 영원불변은 안 믿는다. 나방도 인간과 같은 생물이다. 종족 번식 의무를 마치면 여축(깔축)없이 자기는 죽는다. 자기가 계속 살아 있겠다고 하면 후대가 살아갈 공간도 없어 지지 않겠나."

    ―만물의 영장인 인간을 그런 식으로 곤충과 비교해서야.

    "인간은 도구를 쓰고 생각과 말을 할 줄 아니까 다르다? 그건 인간의 주장이고, 서로 멀리 떨어진 나방 암수가 말을 못하는데 어떻게 만나 교미를 하겠나. 인간은 잡다한 말을 다 동원해야겠지만, 이놈들은 그냥 '페로몬' 하나로도 다 통한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5/02/22/2015022202588.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