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년 단임제 정권마다 3년 차에 접어들며 한 차례씩 홍역을 앓았다. 취임 초 높이 치솟았던 새 정부에 대한 기대감이 서서히 가라앉으며 ‘당신들은 도대체 무엇을 했고, 무엇을 할 수 있는가?’라는 국민의 엄중한 물음과 맞닥뜨렸다. 그 물음의 목소리가 냉랭해졌다는 걸 2년 차 말쯤이면 제대로 느껴야 하는 것이 5년 단임 정권의 숙명이다. 문재인 정부도 예외는 아닌 것 같다. 문 대통령의 국정운영 지지도는 1년 차 1분기(2017년 5~6월)만 해도 평균 81%(한국갤럽 주간조사 데이터 기준)라는 고공 지지율로 스타트를 끊었지만, 2년 차 3분기(2018년 10~12월)엔 55%로 가라앉았다. 그것도 좋은 흐름의 끝물 같은 수치로 봐야 할 것 같다. 2년 차 4분기(2019년 1~3월) 집계가 끝나면 40% 중후반대 지지율이 찍힐 전망이다.
3년 차의 고민과 어젠다들
지지율의 하락, 국정 동력의 약화, 다가올 선거에 대한 부담 등이 중첩되는 3년 차가 되면 집권세력의 고민이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여당 내 또는 청와대와 여당 사이에 노선·정책을 둘러싼 균열과 갈등이 나타나고 2년간 권력의 단맛을 본 집권세력 내부 어딘가에서 비리사건이 불거지기 시작한다. 그래서 3년 차를 맞는 대통령은 예외 없이 국민 앞에 제시할 새로운 화두, 어젠다를 고민하지 않을 수 없다.
직전 박근혜 정부는 3년 차인 2015년 들어 창조경제와 문화융성에 방점을 찍어온 국정기조에서 ‘노동·공공·금융·교육 4대 개혁’을 새롭게 제시하며 전환점을 만들려 시도했었다. 그전 이명박 정부 3년 차에는 행정수도 이전 백지화 및 혁신도시 수정 추진안을 내놓고 정부 여당이 대립했다. 중도실용이라는 새로운 국정철학 네이밍이 등장하는 등 무언가 달라지려는 시도가 있었다. 노무현 정부 당시에는 집권여당과의 노선 대립, 대연정 카드 등으로 집권 중후반기 국면 전환을 모색했던 것으로 기억된다. 그전의 김대중 정부는 남북 정상회담 및 남북 관계 개선이라는 화두가, 김영삼 정부는 ‘역사 바로세우기’라는 국정 카드가 등장했었다.
문재인 정부는 어떤 선택을 하고 어떤 카드로 집권 중반기를 돌파해 나가려 할까? 그동안 문재인 정부의 국정동력을 키워주고 지지율 상승 모멘텀을 만들어낸 핵심 동인은 ‘북한’이었다. 김정은 위원장이 처음으로 판문점을 통해 모습을 드러내고 남북 정상이 만난 건 국민의 이목을 붙잡기에 충분한 빅 카드였다. 북한과 미국 사이에 다양한 논의가 전개되는 등 남북 관계에 획기적 전환점이 만들어질 수 있다는 기대가 형성되었기 때문이다. 남북 관계에 대한 기대감이 높아질 때 문 대통령에 대한 지지율도 상승 흐름으로 전환되곤 했었다. ‘역사적’이라고 불릴 수밖에 없었던 미·북 정상회담에 걸었던 여권의 기대 역시 컸을 것이다. 그러나 베트남 하노이에서 열렸던 2차 미·북 회담은 ‘불발탄’으로 끝났다.
북한이라는 대형 호재를 일단 접어둔 채 맞아야 할 집권 3년 차. 그 시작점으로 봐도 무방할 3월 들어 가장 눈에 띄는 화두는 ‘경제’와 ‘성과’다. 3월이 되자마자 ‘혁신성장’이라는 단어가 언론에 자주 오르내린다. 기획재정부의 외곽조직이던 혁신성장본부를 정규조직으로 바꾸어 재출범시킨다고 한다. 경제이슈, 특히 침체일로인 경기 회복에 주력하겠다는 의지로 읽힌다. 이제는 뭔가 성과를 내야 할 때라는 이야기가 대통령과 총리의 입을 통해 직접 전해지기 시작했다. 일자리 정부를 표방한 문재인 정부가 다급해질 정도로 경제 흐름이 녹록지 않다는 이야기일 것이다. 하지만 경제 문제, 특히 일자리나 소득, 성장 문제는 정부가 단기간에 주목할 만한 성과를 내기 어려운 이슈다. 또 최선을 다해 방어하려고 노력한다 하더라도 ‘당연히 해야 할 일’로 평가되는 게 일반적이다. 획기적인 정도의 가시적 성과가 아닌 이상 경제 부문에 집중, 노력하는 것으로 정부에 대한 국민 신뢰와 지지를 다시 회복시키는 건 지난한 과정이 될 것이다.
그렇더라도 국민이 먹고사는 문제를 통칭하는 경제가 후순위로 밀려서는 안 될 것이다. 정부는 억울하다고 할 수도 있겠지만, 지난 2년 문재인 정부의 국정동력 중심은 사실 적폐청산과 북한 문제에 집중됐다. 경제에 그만한 열정을 쏟지 않은 것 아니냐는 비판이 상당했다. 억울하다는 말만 할 일은 아니다. 그런 비판과 지적이 상당히 나올 정도였다면, 정말로 경제성장을 위해 정부가 해야 할 일들을 우선순위에 놓고 추진하고 그렇게 평가받기 위해 노력하는 게 정도다. 성과 이전에 먼저 진정성을 인정받아야 하는 것이 경제 분야에서 문재인 정부가 직면한 과제가 아닐까.
‘북한’ 대신 ‘경제’ 택할까?
그러나 ‘정치’가 개입될 수밖에 없는 권력의 속성상 경제에 매진하겠다는 의지를 희석시키거나 가로막을 방해요소는 다양하다. 정치적 대립각을 통해 생존의 길을 찾기도 하는 여당에서는 적폐라는 문제에 끊임없이 집착하려 할 것이고, 집권 시기 우군이었던 노동계와 진보세력은 국가의 체력은 아랑곳하지 않고 진보정권 시기 내에 쟁취해야 할 권리와 이익을 보장할 제도를 내놓으라고 정부를 압박해갈 것이다. 복지 확대라는 당근 정책에 대한 유혹도 상당할 것이다. 여름이 지나고 나면 이익단체라는 이익단체는 모두 거리로 나와 정부를 향해 무엇인가를 요구할 것이다. 표를 먹고 사는 정당의 귀가 열리고 목소리가 커지면 더욱 그럴 것이다. 2020년 봄, 1년여 뒤면 21대 총선이 열린다. 이미 지역별 예비타당성 조사 면제사업 선정이 있었다. 포퓰리즘에 대한 유혹과 압력은 올해 후반기로 갈수록 더 크고 강해질 것이다.
결국 문재인 정부의 선택이다. 첫 일성으로 내놓았던 ‘일자리 정부’ 하나만을 위해서도 5년의 시간과 정부 재원, 정책지원을 쏟아붓는 것도 선택이고, 보다 직접적이고 당장 체감 가능한 복지에 주력하는 것도 선택이다. 과거사 청산과 역사라는 화두를 붙들고 적폐를 일소하겠다고 나서는 것도 하나의 선택이 될 수 있고, 미래를 위해 새로운 성장동력을 육성하는 정부로 남겠다는 것 또한 선택이 될 수 있다. 혁신성장이 3월 초 정부발 키워드로 등장한 이후 어떤 단어, 정책이 대통령과 정부를 통해 지속적이고 반복적으로 등장하는지 지켜보면 서서히 그 선택지들이 드러날 것이다. 역대 정부에서 집권 중반기 국면 전환을 위해 ‘깜짝 카드’나 선거용 선심정책을 편 것이 국정을 일신하고 분위기를 바꾸면서 성공적으로 마무리된 사례는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깜짝 카드’가 집권 후반기로 갈수록 부작용과 복잡한 난제들을 낳은 경우가 대부분이었던 것 같다. 1년10개월여가 지났지만, 이제라도 어떻게 경제를 살리느냐가 정부의 최대 과제라는 데 이견이 없다면 조급함을 누르고 그 목표를 위해 최선을 다하는 것이 정도요 정석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