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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명이지만 100명 역할 하겠다"...마지막 사법연수생의 다짐

Shawn Chase 2019. 3. 5. 02:48

홍다영 기자


입력 2019.03.04 17:28 | 수정 2019.03.04 20:20


마지막 사법연수생 50기 조우상씨 임명식
"한일 전문 변호사나 외사부 검사가 목표"
1963년 시작된 사시, 논란 속 역사 속으로

"사법연수원 연수생의 본분이 훌륭한 법조인으로서 인격과 능력을 기르는데 있음을 명심해 법령을 준수하고 성실한 자세로 연수생으로서 명예와 품위를 지킬 것을 엄숙히 선서합니다."

4일 오후 2시 경기 고양시 사법연수원 대회의실. 마지막 사법연수생 50기 조우상(33)씨가 선서문을 읽어 내려갔다.

사법연수원 50기는 사시에 합격한 뒤 병역을 마치고 온 조씨 한 명 뿐이다. 2017년 말 사법시험이 54년만에 폐지되면서 사법연수원은 올해 조씨를 끝으로 더이상 연수생을 받지 않는다.

4일 오후 고양 사법연수원 대강당에서 열린 제50기 사법연수생 임명식에서 조우상(33)씨가 선서하고 있다. /연합뉴스


김문석(60·사법연수원 13기) 사법연수원장은 연수원 37기수 후배이자, 마지막 제자인 그에게 이렇게 화답했다. "새로운 출발을 시작하는 조 연수생을 만나 무척 기쁘다"면서 "조 연수생이 아름다운 꿈을 꾸며 훌륭한 법조인으로서 토양을 다지는 여정에 함께 동행하겠다"고 했다.

김 원장은 이어 "사법연수원은 1971년 개원 이래 대한민국 최고의 법조인 양성기관으로서 맡은 바 소임을 충실히 수행해 왔다"면서 "이제 이 자리에 있는 50기 조 연수생을 끝으로 법조인 양성기관으로서의 역할을 마무리 해야 할 것 같다"고 했다. 그러면서 "법조인을 양성한 사법연수원의 노력은 조 연수생이 수료하는 그날까지 계속될 것이며, 오랜 세월 축적된 실무 교육을 변함없이 충실히 제공할 것임을 약속한다"고 했다.


조우상씨. /연합뉴스


이례적인 입소로 주목받은 조씨는 경력도 화려하다. 국내 최초로 한국과 일본의 사법시험에 모두 합격했다. 조씨는 서울 경복고를 졸업하고 일본 게이오대학에 진학한 뒤 도쿄대 법학전문대학원에 입학해 2011년 9월 일본 신사법시험에 합격했다. 이어 지난 2015년 11월 제57회 사법시험에 합격했으나 군 복무 때문에 사법연수원 입소를 미뤘다.

조씨는 한국과 일본 사이에서 ‘윤활유’같은 법조인이 되겠다고 했다. 그는 기자들과 만나 "한국과 일본을 오가며 소송을 담당하는 변호사가 되거나 국제 사건을 맡는 외사부 검사가 되고 싶다"며 "연수를 받으며 차차 진로를 결정하겠다"고 했다. 그는 입소식을 마친 뒤 오후 3시 30분부터 49기 연수생들과 함께 듣는 특별 변호사 실무 수업에 곧바로 참석했다. 그의 다짐은 "1명이지만 100명의 역할을 하겠다"는 것이었다.

사법연수원은 앞으로 2년 동안 일대일 멘토링과 연습생 주도학습, 실무수습 교육 등을 통해 조씨에 대한 법관연수를 실시한다. 조씨의 연수가 끝난 이후부터는 로스쿨 학생들을 대상으로 실무교육과 현직 법관들의 연수 등에 더욱 중점을 둘 방침이다.

◇현대판 ‘과거시험’ 폐지되며 사법연수원도…
사법시험은 1963년 1회를 시작으로 2만여명의 법조인을 배출했다. 이후 한국 사회에서 ‘신분 상승의 사다리’ 역할을 해왔다. ‘공부가 제일 쉬웠어요’의 저자 장승수(49)씨는 막노동을 하며 서울대 인문대에 수석으로 입학한 뒤 2003년 사법시험에 합격했다. 시각장애인 최영(39)씨는 음성으로 전환한 법전을 공부하며 2008년 사법시험에 붙었다. 사법시험은 봉건왕조 시대 출세의 ‘등용문’이었던 ‘과거시험’과 마찬가지였다.

폐해도 많았다. 출세욕을 채워주는 관문 역할을 하다보니 줄곧 시험준비에만 매달려 삶을 허비하는 ‘고시 낭인(浪人)’을 양성한다는 지적이 나왔다. 사법시험 성적과 연수원 성적이 ‘판-검사’ 임용이 결정되는 만큼 ‘법조인으로서의 소양’보다는 ‘판례암기’로 법조인 교육이 치우친다는 비판도 있었다. 사법시험을 통해 배출되는 법조인이 한 해 1000여명 정도에 그쳐 국민들이 법률서비스를 이용하는 데 문턱이 높다는 문제의식도 있었다. 법조계의 병폐로 꼽히는 기수(期數) 문화나 전관예우가 사법시험 합격 후 부여되는 ‘연수원 기수’에서 기인한다는 분석도 나왔다.

대안으로 나온 것이 2007년 도입된 로스쿨이었다. ‘시험을 통한 선발’에서 ‘교육을 통한 양성’이라는 패러다임으로 법조인 배출 패러다임을 바꾼 것이다. 고시 낭인을 막고 국가 인력 낭비를 줄이겠다는 취지였다. 대학 성적, 법학적성시험(LEET) 성적, 공인어학시험 성적, 논술 및 면접 등을 종합해 입학하는 방식이다. 법조인의 정원을 늘리기 위해 법학 전공자가 아니어도 진학이 가능하도록 했다. 그로부터 2년 뒤 변호사시험법이 제정되며 사법시험 폐지가 결정됐고, 2017년 12월 마지막 시험을 끝으로 폐지됐다.

사시 준비생 등은 사법시험을 폐지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는 변호사시험법 부칙 1조가 "직업 선택의 자유를 침해하는 위헌 조항"이라며 헌법 소원을 냈다. 그러나 헌법재판소는 2016년 9월 사법시험 폐지에 대한 합헌 결정을 내렸다. "로스쿨 제도를 도입한 이상 사시를 유지하는 것은 사법 개혁의 근본 취지에 어긋날 뿐더러, 사시를 유지하면 법학 교육의 정상화와 국가 인력의 효율적 배치라는 목적 달성이 어려워진다"는 이유였다. 이후 사시 준비생 등이 "직업 선택의 자유를 침해한다"며 헌법 소원을 제기했으나 헌재는 사법시험 폐지가 합헌임을 재확인했다.

두 번의 헌재 결정에도 사법시험 존치를 주장하는 목소리는 현재까지도 계속되고 있다. 비싼 등록금 문제나 로스쿨 선 발에 집안 배경이 작용한다는 등 여러 논란이 일었기 때문이다. ‘사법시험존치를 위한 고시생 모임’ 회원들은 2017년 6월 마지막 사법시험을 앞두고 서울 여의도 국회 정문 앞에서 사법시험 존치법안 통과를 촉구했다. 이들은 지난달 18일 서울 종로구 청와대 분수대 앞에서 ‘로스쿨 변호사시험 합격률 증가 반대 기자회견’을 갖고 사법시험 부활을 주장하기도 했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9/03/04/2019030402671.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