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재 일자 : 2018년 12월 24일(月)
김종호 논설위원
이현령비현령式 이중 신분에
감찰 내용 ‘불순물’ 매도한 채
‘공무상 기밀 누출’ 고발 모순
적폐 낙인 찍었던 국정원 IO를
靑 감찰반에 되살렸다는 개탄
납득 어려운 변명으론 못 덮어
청와대 민정수석비서관실 산하 특별감찰반에서 활동하던 김태우 검찰 수사관의 ‘폭로’와 청와대의 반박이 점입가경(漸入佳境)이다. 김 수사관은 21일 “이인걸 특감반장이 지난 8월 박형철 반부패비서관 지시라면서 특감반원 전원에게 ‘청와대가 모든 부처의 현안을 좌지우지한다는 지적이 나오니, 부처 공무원들의 솔직한 의견을 알아오라’고 했다”고 밝혔다. 그는 자신의 담당인 국토교통부·산업통상자원부 3∼4급 공무원들에게 “청와대 정책이 일방적이냐” 등을 물었고, 대부분 “크게 문제가 없다”고 답한 것으로 윗선에 보고했다고 한다. 청와대 감찰반이 법령에 규정된 업무를 벗어나, 정부 부처와 공·사기업까지 포함한 민·관(民官)의 일반 정보까지 광범위하게 수집했다는 의혹을 뒷받침하는 사례가 추가된 것이다.
김 수사관은 “공직자 비위(非違) 의혹을 감찰하는 내가 전화를 걸었으니 누가 ‘문제 있다’고 할 수 있었겠느냐”고도 반문했다. ‘청와대 정부’라는 용어가 회자될 만큼 위세가 막강한 청와대의 비위(脾胃)를 거슬렀다가 직면할 곤욕이나 불이익에 더 민감할 수밖에 없는 서기관·부이사관급 공무원들의 답변은 미리 정해져 있던 것이나 다름없다. 청와대가 각 부처 공무원들을 ‘자기 합리화’를 위한 들러리로 삼은 것과 마찬가지다. 그러고도 청와대는 “정책 운용 참고를 위해 특감반원 전원이 행정요원 자격으로 조사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른바 ‘드루킹 사건’의 특별검사로 추천할 복수의 후보를 국회가 결정하기도 전에 특검뿐 아니라 특검이 지명할 특검보 후보로 거론되는 인사들에 대해서까지 특감반이 평판 조사를 한 월권 의혹이 20일 제기됐을 때도 그랬다. “감찰반원이 아니라 행정요원으로서 할 일을 한 것”이라며 이중 신분을 내세웠다. 청와대 편의에 따라 이현령비현령(耳懸鈴鼻懸鈴) 식이다.
김 수사관을 “궁지에 몰린 미꾸라지 한 마리”라며 막말로 욕하고, 그의 보고서 일부를 ‘불순물’로 매도하면서도 ‘공무상 기밀’이라며 기밀 누설 혐의로 고발한 청와대 처사는 앞뒤부터 맞지 않는다. 주요 정치인, 언론, 교수, 기업 등 민간에 대한 불법 사찰 의혹이 불거졌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일부 사실은 정황이 명확한데도, 청와대 대변인은 지난 18일 “문 정부의 유전자(DNA)에는 애초에 민간인 사찰이 존재하지 않는다”며 “민간인 사찰이라면 청와대 등 권력기관의 지시에 따라, 정치적 의도를 가지고, 정치적으로 이용하기 위해, 민간인을 목표로 이뤄지는 것”이라며 ‘사찰 면피’ 조건들을 내놨다. 민간 기업인 공항철도에 대한 사찰을 두고는 “특감반장이 감찰 대상인 공기업으로 잘못 알고 지시했던 것”이라고 둘러댔으나, 특감반장이 김 수사관에게 건넨 문건엔 ‘민간이 건설 자본을 대고, 소유권을 보유’해 ‘국가 감독이 미치지 않는다’고 분명하게 적시돼 있기까지 한 것으로 드러났다.
그러니 ‘적폐’ 낙인을 찍어 국가정보원의 국내 정보 담당관(IO) 제도를 폐지하고, 국군기무사령부를 듣도 보도 못한 형식인 ‘해편’을 통해 군사안보지원사령부로 축소·개칭한 문 정부가 청와대 특감반에 IO 역할을 맡겨 전방위 사찰에 해당하는 민·관의 정보 수집 활동을 했다는 개탄도 나온다. 문 대통령이 “그 자체만으로도 있을 수 없는 구시대적이고 불법적 일탈 행위”라고 못 박은 박근혜 정부 때의 기무사 ‘계엄령 문건’은 104일 동안 전·현직 장성 204명을 조사하고도 ‘쿠데타 모의’ 증거를 찾지 못한 합동수사단이 지난 11월 9일 해산했다. 세월호 유족 사찰 혐의로 수사받던 이재수 전 기무사령관은 지난 7일 스스로 목숨을 끊기 전에 ‘현장 상황을 가감 없이 상급기관에 보고함으로써 (정부가) 보다 정확한 정책적 판단을 하는 데 (기무사의 역할이) 있었다’고 밝힌 문건을 남겼다. 이처럼 무리한 적폐 몰이를 해온 문 정부가 ‘내로남불’로, 신(新)적폐까지 은밀히 만들어 왔으면서 진실을 감추려고도 한다는 의심을 키우고 있는 셈이다.
그러잖아도 문 대통령은 국회 인사청문회 보고서 채택조차 거부된 부적격 장관의 임명 강행을 반복하고, 공기업 사장 등에 전문성 없는 ‘코드 낙하산’을 잇달아 내려보내 ‘내로남불’ 개탄을 거듭 자초해왔다. 청와대는 불법 사찰 의혹도 납득하기 어려운 변명과 말 바꾸기로 덮으려고 해선 안 된다. 그런 식이어선 ‘문 정부는 DNA부터 내로남불’이라는 지적의 공감대도 더 커지게 마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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