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문학

‘슈렉’ 옆 작은 고양이 어느덧 주연 됐듯, 우주기술 한국판 ‘스핀오프’도 드디어 꽃피운다

Shawn Chase 2018. 9. 10. 00:10
김기범 기자
2018.09.09 15:42 입력

NASA 신기술, 다른 산업에 파생 영향…꾸준히 배운 한국, 내달 75t급 엔진 시험발사체 ‘발사’
영화에서 스핀오프(spin-off·파생상품)는 조연급으로 출연했던 캐릭터가 인기를 얻으면서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영화가 제작되는 사례를 말한다. 애니메이션 영화 <슈렉>에 조연으로 등장했다가 인기를 얻은 ‘장화 신은 고양이’가 독립된 영화의 주인공이 된 것이 일례다. 마블사의 엑스맨 시리즈에서 인기를 얻은 캐릭터 ‘울버린’은 스핀오프로만 3편의 영화가 만들어졌다.

주로 이 같은 영화들의 사례를 떠오르게 만드는 스핀오프는 사실 우주 개발 분야에서도 중요하게 고려되는 사항이다. 우주 개발 과정에서 얻은 신기술이 다른 산업에 이전되면서 미치는 영향이 크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미국 항공우주국(NASA)이 개발한 우주 기술은 우리가 모르는 사이 이미 생활 전반에 들어와 있는 경우가 많다. 정수기, 전자레인지, 냉동 건조식품, 메모리폼 베개 등은 모두 NASA가 개발한 뒤 민간에 이전하고, 상용화된 기술이다. NASA의 스핀오프 사례는 2015년 현재 1800건을 넘어선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은 1990년부터 시작해 짧은 우주발사체 개발 역사를 갖고 있다. 아직 실생활에 들어와 있는 사례는 찾기 힘들지만 미국이나 유럽 등 선진국에 비해 한국이 우주 개발 분야의 후발주자인 점을 감안하면 빠르게 성과를 내고 있다. 특히 독자적인 우주발사체 기술 확보를 눈앞에 둔 점에서 출발점에 선 한국 우주 기술의 스핀오프는 급속도로 확산될 가능성도 있다.

현재까지 발사체 개발을 통해 획득한 기술의 스핀오프 주요 사례로는 과학로켓 3호(KSR-III)와 나로호, 현재 개발 중인 한국형 발사체 등이 있다. 한국항공우주연구원은 2002년 발사한 액체추진 과학로켓 3호를 통해 획득한 스피닝 기술을 방위산업체의 유도무기 티타늄 동체부 제작에 적용하도록 이전했다. 스피닝은 발사체의 연료를 담는 추진제 탱크의 돔을 제작할 때 필요한 기술로, 두께가 얇고 속이 빈 형태의 금속 제품을 만드는 공정을 말한다. 스피닝은 추진제 탱크에 들어가는 알루미늄 합금 재질 돔을 두께가 얇으면서도 튼튼하게 만드는 핵심 기술이다. 추진제 탱크는 발사체 외형의 70~80%를 차지하며 사실상 몸통이 되는 부분으로, 이 탱크의 무게를 가볍게 하는 것이 곧 발사체의 성능과도 직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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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로켓 3호는 독자 기술로 만든 최초의 액체추진 로켓으로 2002년 11월28일 발사된 뒤 42.7㎞ 고도에 도달해 231초 동안 79.5㎞가량 비행했다. 항우연은 과학로켓 3호를 포함해 1990년부터 추진된 과학로켓 발사를 통해 액체추진기관 설계 및 제작, 유도 제어 및 자세 제어 등 발사체 자력 개발을 위한 기술을 확보하면서 나로호 발사 성공과 현재 한국형 발사체 개발의 기반이 됐다고 평가하고 있다.
2013년 두 번의 발사 실패와 연기 후 국민의 관심 속에 발사된 나로호 때도 항우연 연구진은 발사 통제 및 관제, 시뮬레이터 기술 등 실제로 경험하지 않으면 획득할 수 없는 무형의 기술들을 확보한 바 있다. 항우연은 이때 얻은 나로호 발사 통제 및 관제 기술을 선박의 실시간 자동제어 분야에, 발사체 시뮬레이터 기술은 선박 운항훈련에 쓰도록 이전했다. 아직 완성되지 않은 한국형 발사체에서도 이미 스핀오프 사례가 나왔다. 로켓엔진에 극저온의 액체산소와 연료를 공급하는 터보펌프 기술은 극저온 액화천연가스(LNG)를 운송하는 선박의 펌프에 사용되고 있다.

NASA나 과학로켓과 나로호, 한국형 발사체의 스핀오프 사례에서 보듯 우주발사체 개발과 발사는 우주 개발 측면뿐 아니라 다양한 산업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2021년으로 예정된 한국형 발사체 ‘누리’호의 본격적인 발사에 앞서 다음달 25일쯤 전남 고흥 나로우주센터에서 쏘아올리는 시험발사체에 관심이 집중되는 이유다. 특히 시험발사체는 2013년 나로호 발사 성공 이후 5년 만에 이뤄지는 발사인 데다 한국이 독자 기술로 개발한 우주발사체라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시험발사체와 한국형 발사체의 개발 과정에서 독자적으로 확보한 기술들이 다양한 스핀오프 사례로 등장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도 나온다. 항우연은 세계에서도 75t급 엔진의 발사체 기술을 보유한 나라는 10개국 정도에 불과하다고 설명했다.

시험발사체의 75t급 엔진이 어느 정도 성능을 가졌는지는 1990년 개발이 시작됐던 과학로켓 1호와 제원을 비교하면 간접적으로나마 알 수 있다. 과학로켓 1호의 발사 시 중량은 1.27t이었고, 시험발사체에 연료가 주입된 뒤의 중량은 52.1t이었다. 약 28년 동안 41배 커진 중량을 쏘아올릴 수 있을 만큼 발사체 기술이 발전한 셈이다. 한국 최초의 우주발사체였던 나로호의 총중량은 140t이었으며 2021년 우주로 진출할 누리호의 중량은 200t 정도로 예상된다.

누리호에는 다음달 시험비행에 나서는 시험발사체와 같은 75t급 액체엔진 4개가 클러스터링(묶음)을 통해 1단에 들어가며 2단에도 같은 급의 액체엔진이 장착된다. 3단에는 새로 개발 중인 7t급 액체엔진 1기가 사용된다. 10월의 시험발사는 본 발사체인 누리호에 사용되는 엔진과 동일한 75t급 액체엔진의 비행 성능을 점검하기 위함이다. 시험발사가 성공적으로 이뤄지면 한국은 발사체 전반과 관련된 기술을 확보했음을 확인하게 되며, 본 발사체인 누리호의 제작도 탄력을 받을 것으로 전망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