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탈북 중국 식당 지배인, 숨 가빴던 ‘집단탈북’ 상황 공개

Shawn Chase 2018. 8. 7. 00:21

단골 조선족 손님에게 부탁해 남측 정보기관 인사와 은밀히 접촉
갑작스레 두 달 여 앞당겨진 탈북 날짜 
상하이 공항 출발 직전 5명 도망치고 공항 가는 길 2명 붙잡혀

2016년 4월 6일 오전 1시경 중국 상하이 공항. 일행으로 보이는 중국 내 북한식당 종업원 13명이 불안한 표정으로 부산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이들의 최종 행선지는 한국. 이미 식당에서 공항까지 오는 길에 종업원 7명이 이탈한 상황이었다. 숨 가쁘게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행 비행기에 오른 지배인 허강일 씨는 이륙 직전인 오전 1시 20분 남측 정보기관 인사에게 전화를 걸어 출발 소식을 알렸다. 수화기 너머로 환호와 박수소리가 들려왔다.  

중국 내 북한식당 종업원 집단탈북 사건과 관련해 탈북을 주도했던 식당 지배인 허 씨가 다시 입을 열었다. 저장(浙江)성 닝보(寧波)의 식당에서 일하던 허 씨와 여성 종업원 12명은 말레이시아를 거쳐 2016년 4월 7일 한국에 들어왔다. 뉴욕타임스(NYT)는 5일(현지 시간) 허 씨와의 인터뷰를 토대로 탈북 배경과 긴박했던 당시의 탈북 과정, 현재의 상황을 전했다. 

허 씨는 29살 때 노동당에 들어갈 만큼 북한 정권의 신뢰를 받는 인물이었다. 그는 외화를 벌어들이기 위해 2013년부터 종업원 22명과 함께 북-중 접경지역인 지린(吉林)성 옌지(延吉)의 한 식당으로 보내졌다. 식당 소유주는 중국인이었지만 종업원 고용과 교육 등 식당 운영의 제반을 모두 허 씨가 관리했다. 그에게 할당된 임무는 매년 10만 달러(약 1억 1200만 원)를 본국에 송금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허 씨는 식당 종업원들을 감시하기 위해 북한에서 파견 나온 감시요원들에게 과도한 뇌물 상납 요구에 시달렸다고 말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북한 정권의 숙청 바람에 북한에 살던 허 씨의 친구들이 정치범 수용소로 보내졌다는 소식도 듣게 됐다. 회의를 느낀 허 씨는 이를 계기로 남쪽에서 일하며 통일을 위해 힘쓰고 싶다는 꿈을 꾸기 시작했다.  

2014년 허 씨는 식당 단골이었던 조선족 손님에게 다가가 “한국의 정보기관 인사를 아느냐”고 물었다. 이렇게 소개받은 사람을 통해 남측의 인사와 소통하기 시작했다. 그는 2015년까지 북한의 엘리트 층 친구들로부터 입수한 북한의 미사일과 잠수함 프로그램 관련 정보를 이 남측 정보기관 인사에게 전달했다. 허 씨는 남측에 충성 서약까지 했다고 NYT에 전했다. 

하지만 몇 달 뒤 문제가 생겼다. 허 씨를 남측 인사에게 연결시켜 준 조선족 손님이 “북한 당국에 남측과의 접촉 사실을 폭로하겠다”고 협박하며 10만 달러를 요구하기 시작한 것. 끈질기게 돈을 요구하자 허 씨는 결국 종업원들과 함께 닝보에 있는 다른 식당으로 일터를 옮겼다. 하지만 조선족 손님은 그곳까지 쫓아와 허 씨를 협박했다. 허 씨는 남측과의 접촉 사실이 알려지는 것은 이제 시간문제라고 판단했다. 

결단을 내린 허 씨는 2016년 초 연락을 주고받던 남측 정보기관 인사에게 “나를 남쪽으로 보내달라”고 부탁했다. 이들은 같은 해 5월 30일을 허 씨의 탈북 날짜로 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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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얼마 안가 이들의 약속은 뒤집어졌다. 탈북을 돕기로 한 정보기관 인사가 날짜가 4월 3일로 바꾸고 같은 식당에서 일하는 종업원 19명도 함께 데려오라고 요구한 것이다. 이 요구를 거절하면 남측과의 접촉 사실을 북측에 알릴 것이고, 승낙하면 수백만 달러로 보상하겠다는 협상안도 내밀었다. 허 씨는 북한에 있는 가족들의 안전을 위해 자신들의 탈북 사실을 공개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받아내고 이 제안을 받아들였다. 

허 씨는 4월 6일 쿠알라룸푸르행 비행기 티켓 20장을 준비했다. 자신을 제외한 종업원 19명은 다른 식당으로 이동하는 것으로 알고 있었을 뿐 말레이시아를 경유해 한국으로 향하는 행선지를 알지 못했다고 허 씨는 주장했다. 

비행기에 오르기까지의 과정도 순탄치만은 않았다. 심상찮은 분위기를 감지했는지 상하이 공항으로 출발하기 수 시간 전 휴식시간을 이용해 종업원 5명이 어디론가 사라졌다. 계획이 탄로 날 위기에 처하자 허 씨의 마음은 더욱 급해졌다. 그는 나머지 종업원 14명과 택시 5대를 나눠 타고 상하이 공항으로 향했다. 하지만 닝보 식당의 주인이 손해를 우려해 차를 타고 이들 일행을 따라 붙어 결국 종업원 두 명이 탄 택시 한 대를 들이 받았다. 그렇게 쿠알라룸푸르행 비행기에는 허 씨를 포함해 총 13명만이 올라탔다. 

허 씨에 따르면 나머지 종업원들은 말레이시아 주재 한국 대사관에 도착해서야 그들의 행선지를 알아챘다. 한국 대사관에서 무장한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을 타고 다시 쿠알라룸프르 공항으로 가 대기 중이던 대한항공 여객기에 몸을 실은 이들은 다음날 아침 한국 땅을 밟았다.

허 씨는 이륙 당시 남측 정보기관 인사와 나눴던 통화에서 “나를 영웅이라고 칭하는 소리를 수화기 너머로 들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남으로 넘어온 뒤에 벌어진 일들은 탈북을 후회하게 만들었다고 전했다. 탈북 사실을 알리지 않겠다던 당초의 약속과 달리 정부는 하루 만에 기자회견을 열어 이들의 집단탈북을 전 세계에 공개했기 때문이다. 허 씨는 당시 TV로 그 장면을 보던 종업원 모두가 울음을 터뜨렸다고 말했다. 그에 따르면 북에 남은 허 씨의 부모님과 누이들은 사라져버렸다. 수백만 달러를 주겠다던 정보기관 인사가 건넨 돈은 3만5500 달러(약 3990만 원). 그는 현재 편의점 캐셔와 트럭 운전을 함께 하며 지내고 있다. 허 씨는 한국의 보수 정당이 2016년 총선에서 지지율을 높이기 위해 투표를 며칠 앞두고 탈북 시점을 골랐다고 믿고 있다.

전채은기자 chan2@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