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행복하고 완벽한 나라 미국의 가면을 벗기다

Shawn Chase 2018. 7. 21. 22:25

중앙선데이] 입력 2018.07.21 02:00



영화 ‘서버비콘’

 

1950년대 미국은 ‘행복하고 현대적인 가정’을 꿈꾸던 시기였다. 2차 세계대전이 끝나자 경제는 폭발적으로 성장했고, 바야흐로 풍요의 시대를 맞이했다. 도심 외곽에는 중산층을 겨냥한 신도시가 마구 생겨났다. 타운의 이미지는 엇비슷했다. 너른 잔디밭이 있는 1~2층 규모의 조립식 주택, 집 앞에 세워져 있는 캐딜락 승용차, 최신 가전제품이 가득 있는 주방의 모습이 늘 강조됐다. 대형 쇼핑몰 앞에 종이봉투 꾸러미를 잔뜩 들고서 활짝 웃는 주부의 모습도 대표적인 이미지였다.  
 
하지만 이 행복한 이미지는 중산층 백인 가정에만 국한돼 있었다. 즉 진짜가 될 수 없었다. 미국은 이민자의 나라이기 때문이다. 이처럼 백인 우월주의로 점철됐던 아메리카 드림의 이중성은 감독들에게 흥미로운 소재다. 특히 트럼프 시대를 맞이한 요즘 더욱이 단골 소재가 되고 있는 모양새다.  
 

영화의 무대 역시 교외 지역에 있는 백인 중산층을 위한 마을, 서버비콘이다. 마을을 홍보하는 내레이션과 함께 비슷비슷한 모양새의 주택이 영화 도입부에 펼쳐진다. “인구 6만 명이 사는데 소음이나 교통체증이 없습니다. 뉴욕ㆍ오하이오ㆍ미시시피 등 어느 지방 출신이든 환영합니다. 서버비콘에 없는 것은 당신뿐입니다. 여기서 새로운 삶을 시작하세요.”  
 
어느 지방 사람이든 환영한다는 마을의 민낯은 마이어스 가족이 이사 오면서 드러난다. 마이어스네가 흑인이어서다. 마을 사람들은 웃음을 거둬들이고, 새 이웃을 대놓고 차별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마이어스의 옆집에 사는 가드너(맷 데이먼)의 아내 로즈(줄리안 무어)가 괴한의 침입을 받아 죽는 일이 발생하자, 사람들의 차별 행위는 더 과격해진다. 마을에서 일어나는 모든 불행한 일의 원흉으로 마이어스 가족이 지목된다. 정작 로즈를 죽인 것은 가드너와 불륜을 저지른 그의 쌍둥이 동생 마가렛(줄리안 무어)인데도 말이다.  
 

마이어스 집을 보지 않겠다며 마을 사람들이 집 주변에 울타리를 치다가 확성기로 밤낮없이 소리지르며 혐오 표현 수위를 높여가는 사이, 가드너의 청부 살인 사건 역시 엉뚱한 방향으로 흘러가며 커진다. 미국의 평범한 가족이자 겉보기에는 완벽한 삶을 살고 있는 듯해 보였던 가드너 가족과 서버비콘의 실체는 잔혹동화극처럼 묘사된다. 맷 데이먼은 “1959년에 일어나는 일이지만, 지금의 미국 사회와 밀접한 연관이 있다”며 “완벽해 보이는 미국이란 나라에 추악한 일들이 벌어졌었다고 말하는 작품”이라고 소감을 밝히기도 했다.  
 
영화는 코엔 형제의 시나리오를 각색했다. 원래 작품의 시대적 배경은 1980년대로, 가드너 가족의 이야기만 담은 누아르극이었다. 조지 클루니 감독은 코엔 형제의 시나리오를 영화화하기로 결심하면서 시대 배경을 1959년으로 옮겼다. 그러면서 57년 펜실베니아주의 레빗타운에서 일어났었던 마이어스 가족의 실화 사건을 덧붙였다. 실제로 레빗타운의 백인 주민들은 이사온 마이어스 가족을 영화처럼 괴롭히며 폭력을 행사했다. 쓰레기 투척, 방화 등 사건이 커지자 주 당국이 나서서 말렸을 정도였다. 2005년 마이어스 부인은 당시 경험을 회고하는 책 『스틱과 돌』을 출간하기도 했다.  
 

조지 클루니 감독은 “레빗타운을 조사하며 흑인들이 마을로 이사 오기 전의 삶이 더 좋았다고 말했던 사람들이 실제로 있었다는 걸 알게 됐고, 이 주제를 이야기하고 싶었다”며 “이 문제가 현재까지도 계속되고 있음을 상기시켜주고 싶었다”고 덧붙였다.  


 
영화는 마이어스 가족과 가드너 가족의 이야기가 병치되도록 각색됐지만, 두 이야기의 결은 다르다. 얼토당토 하지 않게 꼬여 가는 가드너 가족의 이야기에서 코엔 형제 특유의 블랙 코미디가 느껴지는 반면, 마이어스 가족의 인종차별 이야기는 직설화법으로 그려진다. 이처럼 양상이 다른 범죄극과 사회극을 ‘인간의 위선’이라는 공통주제로 잘 묶어내면서 메시지를 증폭시킨 힘이 돋보인다. ●
 
글 한은화 기자 onhwa@joongang.co.kr  사진 영화사 진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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