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2018.06.29 03:17
경제 비상등이 켜졌는데 대통령은 청와대에 갇혀 있다
사람들은 묻고 있다 '세월호 7시간'과 뭐가 다르냐고
박정훈 논설위원
거침없이 국정(國政)의 가속페달을 밟는 문재인 대통령을 보며 사람들이 품는 의문이 있다. 대통령은 현실 세계에서 벌어지는 일을 알고 있을까. 서민 경제가 곤두박질치고 있다. 저소득층 일자리가 줄고 자영업이 휘청거린다. 주력 산업은 중국에 다 따라잡히고 반도체 하나 남았다. 5년 뒤, 10년 뒤 뭘 먹고살지 미래 먹거리는 보이지 않는다. IMF 때보다 더 위기라는 말까지 나온다. 이토록 엄중한 현실을 대통령이 제대로 보고받고 있을까.
자영업 실태를 다룬 본지 기사에 서울 종로구의 치킨집 얘기가 실렸다. 사장 부부가 월 하루만 쉬고 매일 13시간을 일한다. 그렇게 일해서 이것저것 제하고 손에 쥐는 수입이 420만원이다. 사장은 "우리 부부 시급(時給)은 5570원"이라고 했다. 최저임금(7530원)도 안 된다. 이게 평균적인 자영업자들의 모습일 것이다. 그런데도 대통령은 "경제가 좋아지고 있다"고 한다. '소득주도 성장'이 옳다며 최저임금조차 못 버는 주인에게 직원 월급을 올려주라고 한다.
문 대통령이 소득주도 성장에 헷갈리는듯했던 순간이 한 번 있었다. 한 달 전 최하위층 소득이 줄었다는 통계가 나왔을 때였다. 예상 밖 결과에 문 대통령은 놀란 듯했다. 분배 악화가 "아픈 지점"이라고 인정했다. 문 대통령은 긴급회의 소집을 지시했다. 소득주도 성장이 제대로 가는지 점검하겠다고 했다. 드디어 대통령이 실상을 깨달은 모양이란 관측이 돌았다.
대통령의 '점검 모드'는 그러나 오래가지 않았다. 사흘 뒤 "최저임금 인상의 긍정적 효과가 90%"란 발언이 나왔다. "근로소득 불평등이 개선됐다"고도 했다. 사람들은 아연했지만 메시지는 분명했다. 후퇴는 없다는 뜻이었다. 대통령 스스로 소득주도 성장의 퇴로(退路)를 끊었다. 돌아갈 다리를 불태워 버렸다.
그 사흘 새 청와대에서 벌어진 일이 기가 막혔다. 참모들이 왜곡된 정보를 보고한 사실이 드러났다. 입맛에 맞게 편집한 분석을 올린 것이었다. 최저임금 인상으로 타격받은 실직자·자영업자는 통계에서 뺐다. 그래놓고 근로자 소득이 늘었다고 보고했다. 사실상 '허위' 보고였다. 참모들의 왜곡된 보고가 대통령의 판단에 영향을 미쳤다. 소득주도 성장이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너게 만들었다.
문 대통령은 경제 전문가가 아니다. 경제에도 공정·정의 같은 '가치'의 프레임을 얹는 스타일이다. 대통령 주변마저 '이념형' 참모들로 가득 찼다. 참모들이 보고 싶은 것만 보려 한다. 통계청이 작성한 국가 통계조차 "현실을 반영하지 못한다"며 부정한다. 인식이 왜곡됐는데 정책이 잘될 수는 없다.
참모들 탓만 할 수는 없을 것이다. 대통령이 '정의로운 경제'에 집착하고 있다. 소득주도 성장은 정권 차원의 신성불가침한 목표가 됐다. 대통령이 '이념'을 말하는데 참모들이 '실용'을 주장하긴 힘들다. 윗사람 뜻에 맞추려는 게 참모의 본능이다. 통계까지 목적에 맞게 왜곡했다. 그러고도 태연할 수 있는 청와대의 '공기(空氣)'가 두렵다.
청와대뿐 아니다. 대통령 주재로 열린 점검회의에선 '1대 10'의 논쟁이 빚어졌다. 경제 부총리를 뺀 모든 장관이 최저임금 인상의 부작용이 없다는 쪽에 섰다. 기업 현장을 알고 있을 산업부 장관도, 소상공인 비명을 듣고 있을 중소벤처부 장관도 입을 다물었다. 급기야 정책 비판자들에게 "나쁜 의도가 있다"고 몰아붙인 여당 원내대표 발언이 나왔다. 불통도 이쯤 되면 갈 데까지 갔다. 대통령 주변에 정보의 장막이 쳐졌다.
규제 혁신의 성과가 없다고 문 대통령이 정부 부처를 질타했다. 공무원 탓만 할 일일까. 1년 내내 정권 차원에서 적폐청산 드라이브를 걸었다. 규제 개혁을 하라면서 국정(國政)은 거꾸로 '큰 정부'와 반(反)기업의 역(逆)코스를 치닫고 있다. 자칫 적폐로 몰릴까봐 관료 사회가 겁먹고 있다. 잘못되면 감옥에 갈 판인데 책임지고 총대 멜 공무원은 없다. 그런데 대통령은 "답답하다"고 한다. 진짜 원인은 딴 데 있는데 보려고 하지 않는다.
사람들은 '세월호 7시간'과 뭐가 다르냐고 묻고 있다. 세월호가 가라앉는 동안 전임 대통령은 세상과 격리돼 있었다. 보고는 제때 이뤄지지 않았고 대통령은 사태의 심각성을 알지 못했다. 야당은 "구중궁궐에 갇힌 대통령"을 비난하며 탄핵 사유에 올렸다.
지금 문 대통령이 그런 상황에 놓였다. 경제에 경고음이 울려대는데 대통령은 청와대 안에 갇혀있다. 현실과 동떨어져 고립된 인식 세계에 빠져있다. '소통의 달인'이라는 문 대통령이 이상하게도 경제 문제엔 귀를 막고 있다.
세월호 승객은 대통령이 구조할 수 없었지만 경제는 아니다. 대통령 하기에 따라 잘될 수도, 망할 수도 있다. 현실을 봐야 경제 살릴 길도 보이는데 그러려고 하지 않는다. 안타까운 일이다.
조선일보 A3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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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훈 논설위원
경제 비상등이 켜졌는데 대통령은 청와대에 갇혀 있다
사람들은 묻고 있다 '세월호 7시간'과 뭐가 다르냐고
박정훈 논설위원
거침없이 국정(國政)의 가속페달을 밟는 문재인 대통령을 보며 사람들이 품는 의문이 있다. 대통령은 현실 세계에서 벌어지는 일을 알고 있을까. 서민 경제가 곤두박질치고 있다. 저소득층 일자리가 줄고 자영업이 휘청거린다. 주력 산업은 중국에 다 따라잡히고 반도체 하나 남았다. 5년 뒤, 10년 뒤 뭘 먹고살지 미래 먹거리는 보이지 않는다. IMF 때보다 더 위기라는 말까지 나온다. 이토록 엄중한 현실을 대통령이 제대로 보고받고 있을까.
자영업 실태를 다룬 본지 기사에 서울 종로구의 치킨집 얘기가 실렸다. 사장 부부가 월 하루만 쉬고 매일 13시간을 일한다. 그렇게 일해서 이것저것 제하고 손에 쥐는 수입이 420만원이다. 사장은 "우리 부부 시급(時給)은 5570원"이라고 했다. 최저임금(7530원)도 안 된다. 이게 평균적인 자영업자들의 모습일 것이다. 그런데도 대통령은 "경제가 좋아지고 있다"고 한다. '소득주도 성장'이 옳다며 최저임금조차 못 버는 주인에게 직원 월급을 올려주라고 한다.
문 대통령이 소득주도 성장에 헷갈리는듯했던 순간이 한 번 있었다. 한 달 전 최하위층 소득이 줄었다는 통계가 나왔을 때였다. 예상 밖 결과에 문 대통령은 놀란 듯했다. 분배 악화가 "아픈 지점"이라고 인정했다. 문 대통령은 긴급회의 소집을 지시했다. 소득주도 성장이 제대로 가는지 점검하겠다고 했다. 드디어 대통령이 실상을 깨달은 모양이란 관측이 돌았다.
대통령의 '점검 모드'는 그러나 오래가지 않았다. 사흘 뒤 "최저임금 인상의 긍정적 효과가 90%"란 발언이 나왔다. "근로소득 불평등이 개선됐다"고도 했다. 사람들은 아연했지만 메시지는 분명했다. 후퇴는 없다는 뜻이었다. 대통령 스스로 소득주도 성장의 퇴로(退路)를 끊었다. 돌아갈 다리를 불태워 버렸다.
그 사흘 새 청와대에서 벌어진 일이 기가 막혔다. 참모들이 왜곡된 정보를 보고한 사실이 드러났다. 입맛에 맞게 편집한 분석을 올린 것이었다. 최저임금 인상으로 타격받은 실직자·자영업자는 통계에서 뺐다. 그래놓고 근로자 소득이 늘었다고 보고했다. 사실상 '허위' 보고였다. 참모들의 왜곡된 보고가 대통령의 판단에 영향을 미쳤다. 소득주도 성장이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너게 만들었다.
문 대통령은 경제 전문가가 아니다. 경제에도 공정·정의 같은 '가치'의 프레임을 얹는 스타일이다. 대통령 주변마저 '이념형' 참모들로 가득 찼다. 참모들이 보고 싶은 것만 보려 한다. 통계청이 작성한 국가 통계조차 "현실을 반영하지 못한다"며 부정한다. 인식이 왜곡됐는데 정책이 잘될 수는 없다.
참모들 탓만 할 수는 없을 것이다. 대통령이 '정의로운 경제'에 집착하고 있다. 소득주도 성장은 정권 차원의 신성불가침한 목표가 됐다. 대통령이 '이념'을 말하는데 참모들이 '실용'을 주장하긴 힘들다. 윗사람 뜻에 맞추려는 게 참모의 본능이다. 통계까지 목적에 맞게 왜곡했다. 그러고도 태연할 수 있는 청와대의 '공기(空氣)'가 두렵다.
청와대뿐 아니다. 대통령 주재로 열린 점검회의에선 '1대 10'의 논쟁이 빚어졌다. 경제 부총리를 뺀 모든 장관이 최저임금 인상의 부작용이 없다는 쪽에 섰다. 기업 현장을 알고 있을 산업부 장관도, 소상공인 비명을 듣고 있을 중소벤처부 장관도 입을 다물었다. 급기야 정책 비판자들에게 "나쁜 의도가 있다"고 몰아붙인 여당 원내대표 발언이 나왔다. 불통도 이쯤 되면 갈 데까지 갔다. 대통령 주변에 정보의 장막이 쳐졌다.
규제 혁신의 성과가 없다고 문 대통령이 정부 부처를 질타했다. 공무원 탓만 할 일일까. 1년 내내 정권 차원에서 적폐청산 드라이브를 걸었다. 규제 개혁을 하라면서 국정(國政)은 거꾸로 '큰 정부'와 반(反)기업의 역(逆)코스를 치닫고 있다. 자칫 적폐로 몰릴까봐 관료 사회가 겁먹고 있다. 잘못되면 감옥에 갈 판인데 책임지고 총대 멜 공무원은 없다. 그런데 대통령은 "답답하다"고 한다. 진짜 원인은 딴 데 있는데 보려고 하지 않는다.
사람들은 '세월호 7시간'과 뭐가 다르냐고 묻고 있다. 세월호가 가라앉는 동안 전임 대통령은 세상과 격리돼 있었다. 보고는 제때 이뤄지지 않았고 대통령은 사태의 심각성을 알지 못했다. 야당은 "구중궁궐에 갇힌 대통령"을 비난하며 탄핵 사유에 올렸다.
지금 문 대통령이 그런 상황에 놓였다. 경제에 경고음이 울려대는데 대통령은 청와대 안에 갇혀있다. 현실과 동떨어져 고립된 인식 세계에 빠져있다. '소통의 달인'이라는 문 대통령이 이상하게도 경제 문제엔 귀를 막고 있다.
세월호 승객은 대통령이 구조할 수 없었지만 경제는 아니다. 대통령 하기에 따라 잘될 수도, 망할 수도 있다. 현실을 봐야 경제 살릴 길도 보이는데 그러려고 하지 않는다. 안타까운 일이다.
조선일보 A3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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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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