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정치

관료들 알아서 기고 있다…한일 정치 '불안한 닮음꼴'

Shawn Chase 2018. 6. 26. 00:42

                                        
 
“좀 더 총리와의 싱크로율을 높이도록 생각을 좀 바꿔봐.”
일본 경제부처 간부들중에 총리 관저로부터 이런 질책을 듣는 이들이 있다고 25일 니혼게이자이(닛케이) 신문이 전했다. 

청와대와 아베 총리관저 확고한 독주체제
관료는 JP지수와 싱크로율에 매달리고
日 제2야당 지지율 0%,韓야당과 동병상련
집권당 내부에도 1인자 견제할 인물 안보여
전문가 "진영 대립 격화,정치문화도 닮아가"

제2차 아베 내각이 발족한 2012년말이후 5년반 동안 '아베 신조 1강체제'가 지속되면서 벌어지는 일들이다. 싱크로율은 ‘정확도’나 ‘일치도’를 뜻하는 표현. 총리관저의 질책은 한마디로 아베 내각과 코드를 맞추라는 뜻이다. 
 
닛케이는 ‘싱크로율’과 관련해 “정권과 총리의 의향을 따르라고 강요하는 듯한 관저의 태도에 강한 거부감을 느꼈다”는 정부 부처 간부의 발언을 함께 전했다.
 
문재인 정부의 적폐청산 드라이브에 숨을 죽였던 한국의 관가에서 ‘JP(적폐)지수’란 말이 화제를 낳았던 것과 비슷한 맥락이다. 
 
 ‘전 정부의 정책에 깊이 관여했거나 전 정권에 등용됐던 JP지수가 고위 관료에겐 불이익이 따른다’는 소문이 퍼지고 일부 인사가 이에 부합하는 것으로 확인되면서 한국의 공직사회는 잔뜩 움츠러들었다.
 
지난달 9일 오후 문재인 대통령(왼쪽)이 아베 신조 일본 총리와 도쿄에서 한일 정상회담을 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지난달 9일 오후 문재인 대통령(왼쪽)이 아베 신조 일본 총리와 도쿄에서 한일 정상회담을 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마찬가지로 일본 역시 ‘총리와의 싱크로율’이 화두로 떠오르며 관료들이 강박감에 시달린다는 것이다. 
 
모리토모(森友)사학재단의 국유지 헐값 매입 스캔들 논란에서 "저나 제 아내가 관련돼 있다면 총리직도 국회의원직도 그만 두겠다”는 아베 총리의 한마디에 재무성이 관련 문서 조작에 나선 건 대표적인 사례다. 
 
한동안 30%대까지 떨어졌던 내각 지지율이 일부 조사에서 50%를 회복하면서 일본에서의 '아베 천하'는 더욱 장기화할 조짐이다. 한국에서도 70%중반대의 지지율과 야당의 몰락으로 문재인 정부 독주체제가 강화되고 있다.  
 
이런 1강체제가 정치와 관료간의 관계, 여·야간의 생태계 등에 비슷한 그림자를 드리우면서 "양국의 정치가 닮아가고 있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스가 요시히데 일본 관방장관. [연합뉴스]

스가 요시히데 일본 관방장관. [연합뉴스]

◇총리관저와 청와대에의 힘쏠림 현상
특히 내각제 정부의 사령탑인 일본 총리실이 대통령제인 한국의 청와대에 필적할 만큼의 강력한 권한을 쥐고 있다는 건 이례적이다. 
 
아베 총리의 오른팔인 스가 요시히데(菅義偉)관방장관 이하 1100여명으로 구성된 아베 총리실은 '역대 최강'으로 통한다. 
 
관료들 중에서도 힘깨나 쓴다는 관료들은 대부분이 총리관저에 몰려있다. 
문재인 대통령(오른쪽 두 번째)이 지난달 9일 일본 도쿄 총리공관에서 열린 한일 정상회담 오찬에서 아베 신조 일본 총리로부터 대통령 취임 1주년 기념 축하 케이크를 받았다. [청와대사진기자단]

문재인 대통령(오른쪽 두 번째)이 지난달 9일 일본 도쿄 총리공관에서 열린 한일 정상회담 오찬에서 아베 신조 일본 총리로부터 대통령 취임 1주년 기념 축하 케이크를 받았다. [청와대사진기자단]

 
닛케이는 “총리비서관,관방부장관,부장관보,총리보좌관 등 소위 ‘관저관료’로 불리는 이들”이라고 소개했다. 특히 비서관들중 핵심으로 꼽히는 경제산업성 출신 이마이 다카야(今井尙哉) 정무비서관을 비롯, 총리비서관들 6명 중 5명은 5년반째 계속 자리를 지키고 있다. 
 
아베 총리의 외교책사로 불리는 야치 쇼타로(谷內正太郞)국가안전보장국장이 장악하고 있는 외교 분야에대해서도 닛케이는 "외무성이 관저에 끌려다니는 사례가 눈에 띄게 많다"고 분석했다. 
 
도쿄의 외교 소식통은 "일본 외무성의 경우 ‘북ㆍ미 정상회담 이전이라도 납치 문제 등과 관련해 북한과의 사전 교섭에 속도를 낼 필요가 있다’는 입장이었지만, 최대한의 대북 압박 노선을 유지하겠다는 총리 관저의 반대에 막혀 진전이 없었다"고 말했다.
야치 쇼타로 일본 국가안전보장회의 사무국장.[중앙포토]

야치 쇼타로 일본 국가안전보장회의 사무국장.[중앙포토]

 
경제정책 추진에 있어 기획재정부 보다 청와대 정책라인에 힘이 실리고, 북한문제에 있어서도 청와대가 독주하며 '외교부 패싱'논란이 잦아들지 않는 한국의 상황과 크게 다르지 않다.  
 
◇고전중인 한·일 야당, 여당내 후계자도 없어
‘자민당 30%,공명당 4%,입헌민주당 11%,국민민주당 0%,공산당 2%,일본유신회 2%,희망의당 0%,사민당 1%.’ 지난 23~24일 마이니치 신문 여론조사에서 나타난 정당별 지지율이다.  
 
16~17일 실시된 아사히 신문 조사도 비슷했다. 연립여당인 자민당(36%)과 공명당(3%)을 합쳐 40%쯤 됐고 제1야당 입헌민주당 9%, 제2야당 국민민주당 1% 등이었다.
 
이중 희망의당과 민진당을 탈당한 의원 62명이 지난달 출범시킨 국민민주당의 경우엔 지지율이 특히 심각한 수준이다. 제2야당이란 타이틀이 무색하게 0%와 1%를 오가고 있다. 
 
10개 가까운 정당으로 쪼개진 야당의 지형은 결과적으로 아베 총리 좋은일만 시키고 있다. 뭉쳐도 대항마가 될까말까한 데 갈갈이 찢어져 있다. 
 
아베 총리에게 대적할 만한 라이벌이 없기는 자민당 내부도 마찬가지다. 이시바 시게루(石破茂) 전 간사장이나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정조회장 정도가 대항마로 거론되지만 9월 총재 경선에서 아베 총리에게 대항하기엔 역부족이다.   
     
지방선거에서의 역사적 참패로 존폐의 기로에 선 한국의 야당, 안희정 전 충남지사의 낙마이후 뚜렷한 차기 주자 없이 대통령에게 힘이 쏠리는 한국의 여권과 유사한 지형이다. 독주체제에 브레이크가 걸리기 힘든 구조다.  
 
◇“일본정치문화도 한국 닮아가”  
양국 전문가들 사이엔 "양국의 정치문화까지 닮아가고 있다"는 진단도 있다. 
서울특파원 출신의 일본 유력 언론사 간부는 “헌법개정이 소신인 대표적 보수 정치인 아베 총리의 집권이 길어지면서 일본 사회의 갈등 양상이 과거 전례를 찾을 수 없을 만큼 거칠어졌다”며 “야당이든 진보언론이든 ‘어디 한번 갈 때까지 가보자’는 식으로 비판하고,이런 목소리를 아베 총리가 무시하면서 사회 전반의 갈등이 커지고 있다”고 분석했다. 
 
그는 또 “낮에는 싸우더라도 밤에는 막후채널을 가동하고 완충지대에서 협상ㆍ타협했던 과거 일본 정치의 특징이 최근엔 사라졌다”며“진영간 대립양상이 선명하고, 정치세력들이 ‘모 아니면 도’식으로 경쟁하는 한국 정치와 닮아가는 듯 하다”고 말했다.
 
도쿄=서승욱 특파원 sswook@joongang


[출처: 중앙일보] 관료들 알아서 기고 있다…한일 정치 '불안한 닮음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