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자력 태양광 발전

한국 원전 기술력 세계 최고?…핵심 해체 기술은 ‘아직 개발 중’

Shawn Chase 2017. 12. 23. 20:00

김기범 기자 holjjak@kyunghyang.com


입력 : 2017.12.22 20:53:01 수정 : 2017.12.22 20:56:30




ㆍ원자력연구원 가보니

한국 원전 기술력 세계 최고?…핵심 해체 기술은 ‘아직 개발 중’

38개 가운데 10개. 약 26.3%를 나타내는 이 수치는 원자력발전소를 해체하기 위한 핵심기술 가운데 한국이 보유하지 못한 기술의 수를 의미한다. 이들 기술이 없다고 해서 원전 해체가 불가능한 것은 아니지만 기술이 부족한 만큼 예산과 시간이 많이 들고 피폭과 사고의 위험도 높아진다. 이미 영구정지된 고리 1호기의 해체를 눈앞에 둔 한국으로서는 10개 핵심기술 확보가 원자력 기술 발전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일 수밖에 없는 셈이다. 국내에서 거의 유일하게 원전 해체 핵심기술 확보를 위한 연구를 실시하고 있는 원자력연구원을 찾아 이들 기술의 확보 현황과 전망에 대해 들어봤다.

지난 14일 찾아간 대전 원자력연구원에서는 다양한 로봇에 대한 연구가 진행되고 있었다. 무거운 중량을 들어 옮길 수 있으면서도 정밀한 절단 작업이 가능한 로봇팔부터, 사람이 들어가기 어려운 환경에 투입돼 내부 공간정보를 파악하고 3차원 지도를 그려주는 무인 모니터링 로봇 등 원전 내에서 인간을 대신할 수 있는 장비들이었다. 

■ 원전 해체 작업에 필수적인 로봇팔 

원자력과 로봇이 무슨 상관이기에 원자력연구원에서 로봇 연구에 열을 올리고 있냐는 생각을 하기 쉽지만 사실 고방사능 환경인 원전의 해체 작업에서 로봇은 필수적이다. 방사성물질로 오염된 시설들을 직접 접촉하는 과정이 포함되기 때문이다. 고리 1호기 원자로 내부의 방사능 수치는 사람이 잠시만 노출돼도 죽음에 이르게 될 정도로 높아져 있다. 

특히 원전 내부에서도 수십년 동안 끊임없이 방사선을 쬐면서 고방사성을 띠게 된 원자로 주변과 핵연료 냉각 수조 등은 사람이 직접 해체 작업을 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이처럼 높은 방사능으로 인해 원격으로 조종하는 로봇이 투입되는데 특히 원자력연구원이 개발 중인 로봇팔은 아직 국내에서는 미확보된 10개의 원전 해체 핵심기술 중에서도 중요성이 높은 기술로 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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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봇팔 기술의 정식 명칭은 ‘고하중 취급 원격 정밀제어 기술’이다. 사용후핵연료나 원자로 같은 원전 핵심설비를 해체하려면 높은 방사능을 견디면서도 무거운 물체를 들어 옮길 수 있을뿐더러 정교한 작업이 가능한 로봇팔이 필요하다. 원자력연구원은 현재 내부의 원자력로봇연구소에서 실제 원전에 투입될 수 있는 크기와 성능을 지닌 로봇팔을 만들어 시험 중이다.

원자력연구원이 개발 중인 실내 모니터링용 로봇이 원전 내부와 비슷한 형태의 연구시설 내 계단 위를 이동하고 있다.

원자력연구원이 개발 중인 실내 모니터링용 로봇이 원전 내부와 비슷한 형태의 연구시설 내 계단 위를 이동하고 있다.

원자력연구원 이성욱 박사는 “아직까지 외국의 원전 해체 공정에서도 경제적이고 고성능인 로봇팔이 성공적으로 활용된 사례가 없다”며 “고리 1호기는 물론 해외 원전 해체에서도 적용이 가능한 로봇팔을 목표로 만들고 있다”고 설명했다. 

로봇팔은 원전 설비들을 원반형의 대형 톱날로 절단하는 게 일반적이다. 이와 더불어 원자력연구원에서는 톱날 위치에 레이저 절단기를 넣어 활용하는 기술도 개발 중이다. 원전의 핵심설비들은 잘 부식되지 않고 잘 잘라지지 않는 소재들로 이뤄지기 때문에 이들 금속을 열로 절단하는 레이저가 더 효과적일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장비가 고방사능 환경에서도 오랫동안 고장 없이 작동되도록 하는 기술인 원격 해체장비 내방사화 기술도 아직 확보되지 않은 기술 중 중요도가 높은 것으로 꼽힌다.

■ 제염·폐기물 처리 기술 확보도 현안 

원자력연구원에서는 해체 기술뿐 아니라 원전 내에 사고가 났을 경우 투입해 현장 상황을 파악하기 위한 무인로봇들도 개발 중이다. 가동 중인 원전은 물론 해체 중인 원전에서 사고가 발생했을 때 사람이 직접 들어가기 어려운 상황이 생길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실내 모니터링용 로봇’은 미로처럼 복잡하고 계단이 많은 원전 내부를 쉽게 이동할 수 있도록 캐터필러(무한궤도)로 달아놓은 장치이다. 방사선, 온도, 습도, 수소 탐지기 등의 모니터링 장치를 탑재하고 있다. 원전을 해체할 때 방사선 센서를 탑재해 내부의 오염물질 분포지도를 작성하는 데 활용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원자력연구원은 연구소 안에 원전 내부와 흡사한 환경을 조성해 이 로봇의 개발에 이용하고 있다. 

국내에서 확보하지 못한 원전 해체 핵심기술 중 제염 기술(방사성물질로 인한 오염을 제거하는 기술)에는 2가지가 있다. 원전 일차계통 화학제염 기술과 나노복합유체 제염 기술이다. 원전 일차계통 화학제염 기술은 특히 원전 해체 작업자의 방사능 피폭을 줄이고 안전성을 향상하기 위해 필수적이다. 원전을 해체하기 전 화학제염제를 사용해 원전의 냉각재 순환펌프 및 일차냉각계통 등에 형성된 방사성물질을 용해해 미리 제거하면 그만큼 작업자가 노출되는 농도가 낮아지기 때문이다. 나노복합유체 제염 기술은 대형·대면적 설비의 오염된 표면을 제염할 때 이차폐기물 발생량을 줄이기 위한 거품 제염 기술이다. 

폐기물 처리 분야도 모두 핵심기술을 보유한 것은 아니다. 장기 저장이 어려운 방사화 탄소폐기물 및 원자력시설 해체 시 발생하는 악틴족 함유 폐기물을 처리하는 기술을 확보하는 것이 시급하다. 원전 해체가 완료된 부지를 최종 개방하기 전 잔류 방사능을 측정하는 기술도 국내 연구진 앞에 놓인 과제들이다. 원자력연구원은 이들 기술을 모두 2021년까지 확보한다는 목표를 세우고 있다. 한국수력원자력이 고리 원전의 사용후핵연료 반출이 시작되는 것으로 잡은 2022년 직전에 해체 기술 전체가 확보되는 셈이다. 

■ 재가동에만 관심, 해체 기술 확보 더뎌 

원자력업계가 국내 기술력이 최고 수준이라며 탈원전의 부당함을 지적해온 것이 무색할 정도로 선진국보다 원전 해체 기술 확보율이 낮은 이유는 무엇일까. 전문가들은 원전 건설과 가동에만 중점을 둔 탓에 원전 해체에 필요한 기술 확보가 늦어졌다고 분석한다. 정부와 원전업계가 노후 원전을 무리하게 계속 운전하는 데만 관심을 쏟아온 것이 원전 해체에 필수적이자 미래 성장동력이 될 수 있는 해체 기술 확보의 걸림돌이 된 것이다. 한국의 경우 연구용 원자로 및 우라늄 변환시설만 해체해본 경험이 있을 뿐이다. 

그나마 전문가들이 다행으로 여기는 것은 새 정부 들어 정부의 원자력발전 관련 연구·개발(R&D) 정책이 원전 해체와 안전 쪽에 방점을 두는 것으로 바뀐 점이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지난 18일 미래원자력기술 발전전략을 발표하면서 원자력 관련 연구 방향의 패러다임을 안전·해체 연구 강화를 포함한 국민 생명과 안전 중심의 기술 개발로 전환한다고 밝힌 바

있다. 그러나 여전히 실제 원전과 흡사한 시설에서 해체 기술을 검증해보거나 이미 확보한 기술력을 높이는 것까지는 갈 길이 먼 상황이다.

원자력연구원 서범경 부장은 “원전과 같은 대규모 원자력시설의 해체를 위해서는 해체 기술을 확보한 뒤 실제 시설에서 실증사업을 거쳐 기술을 검증하고 고도화할 필요가 있다”며 “아울러 기술 이전을 통해 산업체의 능력을 배양하고 인력을 양성하는 등의 준비도 이뤄져야 한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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