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덕근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
입력 : 2017.12.19 03:14
80년대 세계 장악한 日 반도체, 美의 반덤핑 조사로 쇠퇴의 길
26년 만에 中 수출품 조사 시작… 우리 기업에 불똥 튀는 일 막아야
미국이 통상 분야에서 26년 동안 쓰지 않았던 '비장의 무기'를 다시 꺼내 들었다. 미 상무부가 지난달 28일 중국산 알루미늄 합판에 직권으로 반덤핑 조사와 상계관세(수출국의 장려·보조금 지원을 받은 제품에 부과하는 관세) 조사를 시작한 것이다. 직권조사는 관련 업계의 읍소가 없더라도 특정국 수출품의 덤핑 여부를 조사하고 높은 관세를 부과하는 강력한 무역 제재 수단으로, 이번 직권조사는 1991년 캐나다산 목재에 대한 상계관세 조사 이후 처음이다.
통상 전문가들 사이에 미국의 반덤핑 직권조사는 '공포의 대상'이다. 직권조사를 마치면 어김없이 무시무시한 무역 보복이 뒤따랐기 때문이다. 1980년대 세계 시장을 석권했던 일본산 반도체에 대한 보복이 대표적이다. 미 상무부는 1985년 일본산 반도체 제품들의 덤핑 혐의에 대한 직권조사를 시작했다. 미·일 간 무역 역조로 두 나라 간 통상 마찰이 절정에 달했던 시기다. 직권조사가 진행 중이던 1986년, 일본 정부는 향후 5년간 일본 국내 시장의 20%를 미국산 반도체 제품에 내주고 일본산 반도체의 저가 수출을 중단하겠다는 내용의 반도체 협정에 서명했다. 미국의 압력에 굴복한 항복 문서였다. 이 협정 이후 세계 최대 시장인 미국에서 경쟁력을 잃은 일본 반도체 산업은 쇠퇴의 길을 걸었고, 후발 주자인 한국의 삼성전자에 선두 자리를 내줬다. 이처럼 막강한 힘을 갖고 있지만, 미국은 1991년 이후 한 번도 직권조사 권한을 발동하지 않았다. 냉전 해체 이후 세계 유일의 초강대국으로 부상한 미국이 경제적 실리에 집착할 경우 글로벌 리더로서의 정치·외교적 명분을 잃게 될 것을 크게 우려했기 때문이다.
이번 직권조사 발표는 시진핑 중국 주석이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방중 기간에 자금성 황제 의전까지 동원해 극진하게 예우해 준 직후에 나왔다. 중국산 알루미늄 합판에 대한 미국의 이번 조사 발표는 앞으로 본격화할 직권조사의 신호탄으로 보인다.
이미 우리 기업들은 트럼프 행정부 출범 이후 미국 시장 진출에서 큰 피해를 겪고 있다. 미 상무부의 직권조사는 지금까지 미국 기업들의 시장 보호 요청이 적었던 분야까지 확산될 공산이 크다. 최근 미 상무부가 북미자유무역협정 재협상에서 협조가 절실한 캐나다에조차 중형 항공기 수출에 300%의 반덤핑과 상계관세를 부과한 것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15년 만에 긴급수입제한조치를 발동하며 한국산 제품 수입 규제에 나선 트럼프 행정부가 직권조사라는 가공할 무기까지 동원할 경우 우리나라 수출길은 전 방위에서 위축될 수밖에 없다. 한·미 자유무역협정 개정 협상을 앞둔 시점에서 우리 수출 기업들이 볼모로 내몰릴 수 있다. 실제로 트럼프 대통령의 최측근인 윌버 로스 상무장관은 지난 12일 워싱턴 DC에서 우리 정부기관 행사에 참석해 "한·미 자유무역협정은 불공정하다" "필요하다 면 더 많은 반덤핑 직권조사를 할 것"이라며 엄포를 놓기 시작했다.
산업계는 최고조에 이른 미국 시장 진출의 위험성을 직시하고 수출 시장을 다변화해야 한다. 우리 정부도 경제외교를 강화해 미국 정부를 상대할 때마다 불공정 무역은 없다는 점을 주지시켜야 한다. 트럼프 정부 이후 봉인을 푼 미국의 직권조사 불똥이 우리 기업으로 튀는 일은 반드시 막아야 한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7/12/18/2017121802751.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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