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레다오스타(Valle d' Aosta)의 몬테로사(Mote Rosa) 지역 트레킹
월간산 글·사진 김기환 차장 입력 2015.09.22 19:02
우리가 알고 있는 유럽 알프스의 이미지는 대부분 스위스나 프랑스의 것들이다. ‘알피니즘의 발상지’로 알려진 프랑스 샤모니와 ‘첨봉의 전형’으로 꼽는 스위스의 ‘마터호른’ 등이 워낙 유명한 탓이다. 하지만 유럽의 등줄기를 형성하는 알프스산맥은 프랑스와 스위스 외에도 오스트리아, 이탈리아 등에 걸쳐 넓게 뻗어 있다. 잘 알려진 곳들 말고도 알프스 산자락에는 수많은 산골 마을이 있다는 이야기다.
이탈리아 북서부에 위치한 발레다오스타(Valle d' Aosta)주는 유럽 알프스의 대표적인 봉우리들이 밀집한 곳이다. 알프스 최고봉인 몬테비앙코(Monte Bianco·4,807m·몽블랑)를 비롯해, 몬테체르비노(4,478m·마터호른), 몬테로사산군(최고봉 4,634m), 그랑파라디소(4,061m) 등 많은 고봉이 이 지역을 둘러싸고 있다. 이탈리아를 대표하는 산악관광지 가운데 한 곳으로 서쪽은 프랑스, 북쪽은 스위스와 국경을 접한 지역이다.
7월 말, 이탈리아 관광청과 발레다오스타 관광협회의 협조를 얻어 알프스 산자락을 돌아볼 기회를 얻었다. 이탈리아 원단업체 까르비코 방문에 이은 사흘간의 일정이었다. 하지만 아오스타 주변으로 방문지를 한정해도 워낙 광활한 지역이라 시간이 충분치 않았다. 게다가 산악지역이라 고도차가 크고 도로망이 복잡해 여러 지역을 돌아보는 것은 불가능했다. 어쩔 수 없이 대표적인 이탈리아 알프스의 봉우리들을 돌아보는 것으로 일정을 잡았다.
몬테로사빙하 아래 첫 동네 샴플록
폭염이 기승을 부리던 밀라노에서 보낸 며칠은 정말 힘들었다. 한낮의 기온이 40℃에 육박했고 습도까지 높아 불쾌했다. 한밤중에 에어컨이 꺼지면 잠을 청하기 어려울 정도였다. 하지만 발레다오스타 지역으로 이동하며 공기가 달라졌다. 산이 가까워지자 확실히 밀라노에 비해 기온이 크게 떨어진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샴플록은 이탈리아 사람들의 여름 피서지로 인기 있는 곳입니다. 해발고도가 1,500m를 넘어 한여름에도 시원하지요. 최신식 온천시설을 갖추고 있어 가족단위 휴양지로도 안성맞춤입니다. 눈이 쌓이는 겨울 시즌에는 스키를 즐기는 이들로 항상 붐비는 산골마을입니다.”
마을 구경은 뒤로 미루고 산악가이드와 몬테로사산군의 좀 더 깊은 곳을 살펴보기로 했다. 포장도로가 닿는 마지막 마을인 생쟈크(St. Jacques)에서 산길이 시작됐다. 대부분의 트레커들은 여기서부터 오솔길을 따라 걷기 시작한다. 하지만 사륜구동 차량은 산중의 목장으로 이어지는 비포장길을 이용할 수 있다.
짙은 숲이 우거진 산길을 따라 고도를 높이다 보니 바람이 한층 서늘해졌다. 빙하가 가까워지다 보니 찬 기운이 점차 강해졌다. 도시의 열기에 시달렸던 몸과 마음이 치유되는 느낌이었다. 짙은 녹색 그늘을 빠져나오니 정면에 거대한 빙하와 회색빛 퇴석지대가 넓게 펼쳐졌다. 마음의 준비 없이 만난 고산지대의 황량함에 가슴이 먹먹해졌다. 역시 대자연의 감동은 도시의 관광지에서 느끼기 어려운 깊이가 있었다.
빙하가 만든 호수 ‘라고 블루’
널찍한 목장지대를 지나 지그재그로 이어진 급사면으로 오르다 길모퉁이에 차를 세웠다. 산속의 ‘블루호수(Lago Bleu)’로 가기 위해서다. 간단한 차림으로 오솔길을 따라 걷기 시작했다. 해발 2,000m가 넘는 고도라 조금만 힘을 써도 숨이 턱까지 차올랐다. 작은 언덕을 넘어서니 빙하 녹은 물이 흐르는 계곡 위의 다리가 나타났다. 칼날 같은 회색빛 능선과 하얀 빙하가 정면으로 보이는 장소였다.
몬테로사산군의 멋진 풍광을 사진에 담고 작은 둔덕에 올라서니 파란 물빛을 자랑하는 호수가 모습을 드러냈다. 이곳은 샴플록을 찾는 이들에게 가장 인기 있는 하이킹 장소 가운데 하나다. 길이 좋고 풍광이 아름다워 남녀노소 누구나 손쉽게 찾을 수 있는 곳이다. 여름철 주말이면 우리의 북한산 둘레길처럼 많은 이들로 붐비는 장소다.
“제가 어릴 때인 1980년대 초반만 해도 빙하가 호수 바로 뒤에 있었어요. 하지만 지금은 산 쪽으로 한참 들어가 있지요. 이 호수도 원래는 빙하로 덮여 있던 곳인데, 빙하가 녹으면서 형성된 것입니다. 특히 올해는 날이 더워서 빙하가 엄청나게 빨리 녹고 있습니다. 지구 온난화를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곳입니다.”
샴플록의 대표적인 하이킹 장소인 ‘블루호수’는 몬테로사산군의 아름다움을 접할 수 있는 멋진 장소였다. 중앙 브라이트호른(Central Breithorn·4,159m), 동 브라이트호른(Eastern Breithorn·4,139m), 카스토레(Castor·4,228m) 등으로 이어진 4,000m급 산줄기에 둘러싸여 웅장한 풍광을 자랑한다. 이곳을 지나 계속 3,000m가 넘는 고도에 위치한 대피소(Rifugio)들로 이어진 본격적인 산행도 가능하다. 대피소는 몬테로사산군을 등반하는 클라이머의 베이스캠프 역할을 하는 곳이다. 시간만 된다면 대피소에서 지내는 하룻밤도 욕심이 났다. 하지만 다음 일정을 위해 서둘러 자리를 떴다. <계속>
몬테로사 테르메
온천에 몸 담그고 알프스 산맥 전망
지난 7월 23일 샴플록에 대형온천 ‘몬테로사 테르메’(Monterosa Terme)가 문을 열었다. 최신 시설을 갖춘 곳으로 우리나라 온천 수영장과 같은 형태로 운영되는 곳이다. 대형 풀과 거품 풀, 환자 치료용 풀, 어린이용 풀, 야외 풀, 야외 가든 등이 주요 시설이다. 뷰티서비스 프로그램과 마사지 시설, 대형 공연장 등의 부대시설도 충실하게 갖췄다. 무엇보다도 따뜻한 물에 몸을 담그고 누워 빙하로 덮인 몬테로사산군의 아름다운 풍광을 감상할 수 있어 좋다.
시모네 오리고네(Simone Origone)
몬테로사 산악가이드… 세계적인 스피드 스키 선수
아오스타가 고향인 그는 샴플록에 살며 산악가이드와 스키강사로 활동하고 있다. 어릴 때부터 몬테로사산군의 여러 봉우리를 등반했고, 지난해에는 카라코룸 히말라야의 K2에도 도전한 전형적인 산꾼이다. 또한 그는 세계 스피드 스키 기록을 보유한 이탈리아의 대표적인 스키선수이기도 하다.
그가 2015년 초에 세운 세계 기록은 무려 시속 252.632km라고 하니 놀라울 따름이다.
안타고네(Antagnod)
아야스계곡 조망이 환상적인 산중턱 마을
샴플록 남서쪽 해발고도 1,700m에 위치한 안타고네(Antagnod)마을은 몬테로사산군의 색다른 풍광을 감상할 수 있는 곳이다. 가파른 산비탈에 자리를 잡아 어디서나 아야스계곡의 시원한 조망이 가능한 것이 특징이다. 마을 중앙에 자리 잡은 첨탑을 가진 성당과 하얀 빙하가 어우러진 모습이 정말 아름답다. 마을 길 끝에 자리 잡은 관공서 건물의 고풍스런 인테리어 또한 볼거리다. 마을 뒤편에 솟아 있는 제르비온(Zerbion)산 정상에는 대형 성모상이 세워져 있는데, 입구 주차장에서 정상까지 2시간이면 걸어서 오를 수 있다.
루 쿠르토(Ru Courtaud)
600년 전에 만들어진 산 속의 관개수로
아야스계곡의 안타고네마을에서 산으로 오르다 보면 산 중턱을 가르는 수로를 만나게 된다. 루 쿠르토(Ru Courtaud)라 불리는 이 관개수로는 오래전 아야스계곡 사람들이 산간 마을로 물을 끌어오기 위해 만든 것이다. 몬테로사빙하의 풍부한 수자원을 이용하기 위한 고민의 결과다. 1393년 처음 공사를 시작해 40년 만에 완공되었다고 전해진다. 이 수로는 샴플록 상류의 빙하에서 시작해 상빈셍(Saint-Vincent) 부근까지, 평균 해발고도 1,800m의 산자락을 가르며 약 22km에 걸쳐 이어진다. 지금도 수로의 기능이 그대로 유지되고 있으며, 하이킹이나 산악자전거 코스로도 인기가 있다.
찾아가는 길
대중교통을 이용해 몬테로사 지역의 샴플록으로 가려면 기차와 버스를 두 번이나 갈아 타야 하기 때문에 시간이 많이 걸린다. 밀라노를 기점으로 하면, 중앙역에서 유로스타 이탈리아 기차를 이용해 노바라(Novara)까지 간다(30분 간격 운행, 37분 소요). 노바라에서 버스(Savada Line 407)를 타고 베레스(Verres)로 이동(4시간 간격 운행, 약 30분 소요)한 뒤, 베레스에서 다시 샴플록 행 버스(Savada Line 398)를 타고 종점에 내린다(3시간 간격 운행, 약 1시간 소요). 버스 시간을 잘 맞춰서 갈아탔을 경우 5~6시간 정도 소요된다.
밀라노에서 샴플록으로 가는 가장 빠른 방법은 렌터카를 이용하는 것이다. 밀라노 말펜사 국제공항에서 샴플록까지 거리는 약 160km로 그다지 멀지 않다. 대부분 고속도로를 타고 이동하기에 큰 어려움은 없는 편이다. 다만 베레스에서 샴플록까지 산길이 초행이라면 버겁다. 해발 1,500m 고지까지 끊임없이 구불거리는 좁은 산길이 계속되기 때문이다. 안전을 위해 고갯길에서는 속도를 줄이고 방어운전을 해야 한다.
지도를 보고 길을 찾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려우니 내비게이션은 필수다. 스마트폰에서 다운받아 사용할 수 있는 시직(Sygic) 어플이나 구글지도의 내비게이션 기능을 이용하면 된다. 구글지도는 운행 중 계속 무선데이터를 사용하므로, 데이터로밍을 해가거나 현지에서 구입한 선불유심을 이용하면 된다.
이탈리아 도로 사정은 우리와 비슷하나 길이 좁고 복잡한 곳이 많다. 고속도로 진출입과 톨게이트 이용은 우리나라와 큰 차이 없지만 적응이 필요하다. 일반도로의 교차로마다 나타나는 로터리 역시 통과 시 주의해야 한다.
숙식
샴플록은 여름 피서지인 동시에 겨울철 스키 관광지다. 그만큼 많은 숙박시설이 시내 일원에 밀집해 있다. 중심가에 위치한 호텔 카스토레(www.hotelcastor.eu)는 아기자기하게 꾸며진 시설로 유명하다. 몬테로사 테르메 상류에 위치한 호텔 르 로쉬(www.lerocherhotel.com)는 자연 속의 호젓한 분위기를 즐기기 좋은 숙소다. 이 호텔들에서는 이탈리아 산골 특유의 자연미 넘치는 식사 또한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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