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에게, 실크로드 38] 당신이 선물해 준 별빛 - 이란 이스파한, 카샨
오마이뉴스 정효정 입력 2015.09.22 15:20
http://media.daum.net/life/outdoor/travel/newsview?newsId=20150922152013420
[오마이뉴스 정효정 기자]
▲ [당신에게, 실크로드 38] 당신이 선물해 준 별빛- 이란 이스파한, 카샨 |
ⓒ 정효정 |
모르는 남자에게서 이메일이 왔다. 이란의 이스파한에 살고 있다는 사람이었다.
"아직 이런 말을 하는 것은 이르다는 것은 알고 있지만, 나의 14살 된 딸이 한국의 열렬한 팬이야. 네가 이스파한에 올 때 꼭 우리 집에서 묵어 줄 수 있을까?"
이란 여행을 준비하던 때였다. 한 여행 사이트 게시판에 이란의 시성 하피즈에 대해 문의하는 글을 올렸다. 이란 사람들이 가장 사랑하는 하피즈의 시가 무엇인지 알고 싶었다. 그러자 뜻밖에 이런 메일이 도착한 것이다.
그리고 6개월 후, 이스파한에서 이 소녀를 만났다. 14살 베히. 한국을 너무나 사랑하는 이란 소녀였다. 나는 그녀가 좋아하는 이민호의 친필 사인 본을 구해다 줌으로써 그녀의 귀빈으로 등극 되었다.
▲ 이스파한 이맘 광장 이란의 진주, 세계의 절반으로 불리는 이스파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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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히와 나는 관광지에도 함께 가고, 스카프 쇼핑도 하고, 수영장에도 가면서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베히의 부모님은 물론 일가친척들까지 나를 친가족처럼 대했고, 꼭 조카의 방학 때 놀러 온 고모가 된 기분이었다.
▲ 반크 교회 내부 이란의 아르메니아 인을 위해 지은 교회. '이란의 쿠텐베르크'라고 불리는 가차투르 바르다페트의 인쇄기를 볼 수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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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니는 한국에서 온 내 손님이잖아! 이란에서는 '손님은 눈에 넣는다'는 말도 있단 말이야!"
나중에 이 이야기를 들은 다른 이란 친구는 한참 웃었다. 대체 '손님은 눈에 넣는다'는 말이 뭐냐고 묻자 정확한 표현은 '손님은 눈(眼) 위를 걷게 한다(Qadamet be rooy-e Chashm)'라는 거란다. 이란에는 타로프(Taarof)라는 표현양식이 있는데 그중 하나의 표현이라고 한다.
타로프는 예의를 차리는 이란식 표현방법이다. 겉치레 말이라고 볼 수 있다. 손님이 돈을 내려고 하면 점원은 '당신의 존재만으로도 충분합니다'라고 말하는 식이다. 그렇게 몇 번 오고 가다가 결국 점원은 못 이기는 척 돈을 받는다. 우리나라에도 세 번 사양하는 문화가 있는데 그것과 비슷하다.
그러니까 '손님은 눈(眼) 위를 걷게 한다'는 말은, 손님의 존재는 그만큼 자신들을 기쁘게 한다는 이란식 비유법이었다. 우리도 소중한 존재에 대해서 '눈에 넣어도 안 아프다'라고 하지 않는가.
여행 중 만난 이란 사람들은 늘 이런 이야기를 하곤 했다. '여길 네 집이라고 생각해', '난 네가 우리 가족이라고 생각해', '우리 가족은 널 위해 있어' 등. 비록 관습에서 비롯된 겉치레 말이긴 하나 진심이 아예 안 섞인 건 아니다. 그들은 정말 가족처럼 손님을 대했다.
▲ 이란 요리 타티그 타티그는 샤프란을 넣어 지은 노란 밥으로 만든 누룽지 케이크다. 손님이 오면 대접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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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파한주에 위치한 카샨. 한때 이곳은 카펫 공예의 중심지였다. 타바타바에이, 보르저디와 같은 부자 상인들의 아름다운 저택과 화려한 페르시아 스타일의 목욕탕 등에서 그 번성기를 추억할 수 있다. 특히 시내 중심에는 아름다운 재래시장이 있다. 시장 안에는 분수와 카페, 과거 대상들의 숙소였던 카라반사라이 등을 볼 수 있다.
▲ 카샨의 아름다운 재래시장 시장 안에는 이런 휴식공간이 있고 옆에는 옛 낙타대상들이 쉬던 카라반 사라이(숙소)가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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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란의 전통 목욕탕 하맘의 휴게실 450년 전에 지어진 목욕탕, 이란의 전통 목욕탕은 탕에 몸을 담그는 게 아니라 물을 퍼서 쓰는 구조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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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하나의 유명한 관광지는 사파비 시대의 전통 정원인 '핀 가든'이다. 이 정원에선 온천수가 나온다. 그 온천수를 활용하기 위해 이곳에 정원을 만들고 목욕탕을 지었다. 핀 가든 내부에는 사방팔방 이어진 수로가 이어졌고 파란 타일로 장식해 더욱 시원하게 느껴진다. 건조한 사막도시에서 물이 끊임없이 흐르는 것을 보는 건 기분 좋은 경험이다.
▲ 시장에 팔고 있는 마른 장미와 장미수로 만든 음료수 음료수 안에 떠 있는 씨앗은 칵실이라는 허브의 일종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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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핀가든의 물길 온천수가 나와서 흘렀다. 과거 왕족의 휴양지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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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미르 카비르는 하인의 아들로 태어났으나 비범한 능력으로 나시르 알 딘 왕궁의 재상 자리에 올랐다. 내부적으로는 왕을 비롯한 귀족들은 부패하고, 외부적으로는 영국과 러시아가 끊임없이 이란을 넘보던 시기였다. 그는 혼란한 국내 정세를 안정시키고 군대, 행정을 개혁했다. 그뿐만 아니라 현대적 학교를 세우고, 신문을 창간하는 등 이란의 근대화에 앞장섰다.
▲ 아미르 카비르 인형 이란의 근대화를 부르짖던 그는 칼로 손목을 긋는 형에 처해졌다고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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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아미르 카비르는 이란인들이 가장 존경하고 그리워 하는 정치인 중 한 명이다. 어딜 가나 아미르 카비르 이름을 딴 호텔이나 거리를 볼 수 있다. 근대화를 어떻게 겪느냐에 따라 그 나라의 운명이 달라졌던 만큼, 아미르 카비르가 계속 활약을 했다면 이란의 운명은 달라지지 않았을까.
당신이 선물해 준 별빛
"엄마, 엄마. 이쪽으로 와봐."
무함마드는 큰소리로 외쳤다. 골목 끝에서 해바라기를 보던 여인이 웃으며 다가왔다.
"얘 좀 재워줘."
무함마드는 날 가리키며 여전히 화난 듯 크게 외쳤다. 나중에 알고 보니 원래 목소리가 큰 타입이었다. 엄마라고 불린 여인은 나를 보고 싱긋이 웃었다. 그렇게 마리안느 아줌마를 만났다.
아비야네는 사산조 페르시아 때부터 존재했다는 작은 마을이다. 카샨에서 남동쪽으로 80km 떨어진 칼가스 산기슭에 붉은 흙으로 지어진 네모난 집들이 빼곡하게 들어서 있다. 좁고 경사진 환경을 이용해 계단식으로 집을 지었다. 우리 집 마당이 앞집의 옥상이 된다. 현대식으로는 테라스 하우스 같은 건축기법이다.
▲ 아비야네 전경 이 오래된 마을엔 조로아스터의 전통이 그대로 남아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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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붉은 흙으로 지어진 마을 건물들 도배를 따로 하지 않고 내부도 흙 그대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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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하나 인상적인 것은 마을 여인들의 옷차림이다. 무릎까지 오는 주름치마와 '초르각'이라는 꽃무늬 망토를 머리부터 뒤집어쓴다. 약 300여 명의 주민이 살고 있지만, 젊은이들은 도시로 떠나고 노인들만 남았다. 붉은 흙담을 지나 골목을 꺾으니 당나귀를 탄 할머니가 꽃무늬 스카프를 쓰고 천진하게 미소 짓고 있었다.
▲ 당나귀를 모는 마을 어르신들 워낙에 중국인 관광객이 많다. 무조건 카메라를 들이대면 실례다. 먼저 친해지고 난 후 동의를 구하고 사진을 찍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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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꽃무늬 초르각을 쓴 할머니들 무릎까지 오는 주름 잡힌 원피스에 꽃무늬 스카프(초르각)이 이곳의 전통복장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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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다 만나게 된 무함마드. 그는 이번 실크로드 여행에서 만난 8번째 무함마드다. 그가 간단한 영어를 할 줄 알아서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어이가 없다는 반응이다. 그러더니 자기 엄마를 불러 나를 맡긴 것이다. 그는 저녁에 가족이 있는 테헤란으로 돌아가고, 그렇게 무함마드의 부모님과 하룻밤을 보내게 되었다.
▲ 고마운 아줌마 사진을 찍는다고 하자 치마오 스카프를 바꿔 두르고 나오셨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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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은 1층에 방 하나와 부엌 그리고 2층에 창고와 옥상, 화장실이 있다. 저녁은 옥상에서 먹고 잠은 1층 방에서 잔다. 아줌마가 차려준 저녁을 먹고 1층으로 내려가는데 문턱이 낮아서 쿵 소리가 나게 부딪혔다.
▲ 2층 구조 1층은 작은 방 하나, 부엌 하나. 2층에는 테라스 스타일로 옥상, 작은 화장실, 세면대 그리고 창고가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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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픈 이마를 감싸고 주저앉았다. 마리안느 아줌마가 소리 없이 웃으며 내 어깨를 감싸 쥐었다. 아프기도 하고 민망하기도 해서 계속 엄살을 부리고 있자 그녀가 갑자기 옥상의 불을 끄고 하늘을 가리킨다. 별이 가득한 밤하늘이 눈에 들어왔다.
사실 그렇게 선명하지도 가깝게 보이지도 않은 별이었다. 남반구의 캥거루 아일랜드에서 바라봤던 별이나, 해발 3600m 키르기스스탄 송쿨 호수에서 바라봤던 별이 더 아름다웠다. 하지만 그날 아름다움은 상대적인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만약 누가 가장 아름다웠던 밤하늘에 관해서 묻는다면, 그녀가 나를 위해 별을 보여주었던 그 날 밤이 가장 아름다웠다고 말할 수 있다.
다음날, 마을을 떠나면서 그녀에게서 말린 과일을 묵처럼 만든 쫀득거리는 간식거리를 잔뜩 받아서 떠났다. 몰래 소정의 숙박비와 한국 책갈피를 봉투에 넣어 방안에 두고 왔다. 테헤란으로 향하는 버스를 탔는데 그녀에게서 문자가 왔다.
'모든 것은 괜찮니? 네가 너무 피곤하지 않을까 걱정이구나.'
고속도로에서 인터넷이 다시 연결되기 시작했다. 얼른 구글 번역기를 이용해 답을 했다.
'다 괜찮아요. 많은 것에 감사드려요. 우리 다음에 또 만나요.'
▲ 마리안느 아줌마가 보내준 메시지 이란어는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읽는다. |
ⓒ 정효정 |
○ 편집ㅣ김준수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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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2014년 4월부터 10월까지의 여행 중, 실크로드- 경주, 중국, 키르기스스탄, 타지키스탄, 우즈베키스탄, 투르크메니스탄, 이란, 터키, 로마의 이야기를 담아냅니다. 동쪽과 서쪽을 잇는 실크로드의 과거 이야기와 현재 진행형 이야기입니다. 더불어 히스테리가 극에 달한 노처녀의 한풀이이기도 합니다. 실크로드에서 건져낸 이야기를 점과 점으로 이어, 글을 읽는 당신의 마음에 또 하나의 실크로드가 그려졌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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