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

[김철중의 생로병사] 하늘의 조종사가 땅에서 열심히 달리는 이유

Shawn Chase 2017. 8. 8. 17:40

입력 : 2017.04.18 03:13

승객 목숨 책임지는 파일럿, 질병에 따른 사고 막으려 小食 지키며 열심히 운동해
저먼윙스 참사 이후엔 정신이상 징후도 미리 찾아내… 그들의 건강법 따라 해볼 만

김철중 의학전문기자·전문의
김철중 의학전문기자·전문의

직업적으로 가장 건강한 사람은 누굴까. 의사? 질병을 앓고 있어도 환자를 보는 경우가 있고, 알코올 의존증도 때론 있기에, 의사라고 모두 건강하다고 할 수 없다. 왜 의사가 시키는 대로 해야지 따라 해서는 안 된다는 말이 있겠나. 그럼 군인? 이것도 글쎄다. 전투 병과가 아니라면 약물 투병 중이라도 군복을 입고 업무를 본다. 어떤 사람이 현재 무슨 일을 하고 있느냐만 보고, 신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건강한 상태라는 것을 알 수 있는 분야는 비행기 조종사다.

조종사는 매년 특화된 건강 검진을 통과해야 비행기를 몰 수 있다. 도중에 건강상의 문제가 발견되면, 조종 업무에서 즉시 제외된다. 이는 항공 운항 관련 법으로 규정돼 있다. 이들은 아무 의사한테 가서 건강 상태를 평가받지도 않는다. 반드시 항공우주의학을 별도로 학습하여 자격증을 딴 항공 전문의사에게 검진을 받아야 한다.

조종사 건강 평가는 일반 검진과 다른 별세상이다. 나이 들어가면서 생기는 질병으로 의식을 잃거나 판단 착오가 있으면 안 되기에 별의별 것을 다 본다. 일단 시야 검사가 철저하다. 백내장이나 녹내장으로 시야에 제한이 생기면 완전히 해결되기 전까지 조종석에 앉을 수 없다. 비행 소음 속에서 신호음을 잘 듣고 교신해야 하기에 청력 검사 통과 기준이 높다.

장거리 비행의 경우 고도 10㎞ 안팎까지 오르는데, 그런 경우 기압이 낮아져 몸속 물과 공기 부피가 1.5배 이상 팽창한다. 비행기에서 음식을 조금만 먹어도 속이 더부룩하고, 방귀와 트림이 잦은 이유다. 산소 농도가 옅고 기압이 떨어진 상황에서는 혈압과 심박동 관련 교감신경계가 예민해진다. 이착륙 스트레스로 혈압이 치솟기도 하고, 오래 앉아 있다 보니 혈액이 끈적거릴 수도 있고, 심장 혈관 관상동맥이 좁아질 우려도 지상보다는 크다.

칼럼 관련 일러스트
일러스트=이철원 기자

이 때문에 조종사들은 자신의 혈압이 정상 기준인 120/80(수축기/이완기 mmHg)을 조금만 넘어도 경고로 받아들인다. 혈중 콜레스테롤치가 240(㎎/dL)을 넘으면 통상 고지혈증이라고 진단하는데, 조종사들은 200만 넘어도 콜레스테롤 관리 대상으로 편입된다. 부정맥이 있으면 순간 의식을 잃을 수 있어서 심전도에서 조금이라도 징후가 잡히면 경과를 살피지 않고 바로 정밀 검진에 들어간다. 이에 하늘의 조종사들은 땅에서 혈압과 콜레스테롤을 낮추기 위해 열심히 달린다. 유산소 운동과 소식(小食)이 습관화되어 있다. 뚱보 조종사가 드문 이유이기도 하다. 60세 넘으면 조종사 검진을 6개월마다 받아야 하기에 나이 들어도 긴장을 늦춰선 안 된다.

지난 2015년 독일의 저가 항공사 저먼윙스(German Wings) 여객기 추락이 우울증을 앓던 조종사의 자살과 관련된 것으로 밝혀지면서 정신건강 검진은 더욱 철저해졌다. 항공 전문의사는 조종사 면담 과정에서 조종사의 행동과 말을 주의 깊게 살핀다. 손톱을 물어뜯은 흔적이 심하다든지, 외모가 너무 지저분하거나, 몸에서 냄새가 너무 나거나, 과도한 분노 또는 불안을 표출하거나, 최근의 일들을 제대로 기억하지 못하면 정신과적 추가 검사를 받게 된다.

조종사는 의식을 잃는 뇌진탕 증세를 겪었거나, 극심한 통증이 있는 신장결석 치료를 받는 경우 등에도 스스로 신고해 비행 업무에서 잠시 빠져야 한다. 마치 도핑 테스트 하듯 비행 전 불시에 약물 복용 여부나 음주 검사를 받는다. 항공사들은 이혼으로 스트레스가 심하거나 불면증으로 알코올 의존이 생긴다 싶은 조종사에게 익명의 온라인 심리 컨설팅을 받도록 권고한다. 비행하는 데 문제가 되기 전까지는 정신과 상담도 보안으로 처리해준다. 화근을 일찍 드러내 적극적으로 해소하라는 취지다. 졸음운전을 막기 위해 비행 조종 시간에 따른 의무 휴식 시간을 정해 놓은 것은 기본이다. 집중력 유지를 위해 12시간 넘는 비행에는 3명의 조종사가 탑승해 교대로 근무한다.

조종사 건강 평가와 관리가 철저한 것은 그들이 승객 수백명의 생명을 책임지기 때문이다. 이는 어찌 보면 사회 구성원의 건강과 생산성 관리의 롤 모델이다. 누구나 지키고 따르게 하는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 중요하다. 바라건대 조종사 수준은 아니더라도 이런 방식이 전신마취수술 외과 의사, 전투 지휘관, 더 나아가 고위험 화물 트럭이나 선박 운송자, 고령 운전자 등에게도 확대됐으면 한다. 전문 분야에 적용하던 것이 보편화되고, 특수 분야의 노하우가 일반화되면서 사회 발전이 이뤄져 왔다. 아울러 긴 인생 항로를 가야 할 고령 장수 사회, 이제 누구나 조종사 방식의 건강 평가와 관리를 따라 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7/04/17/2017041702933.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