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방

“북ㆍ중 혈맹 개념은 만들어진 신화에 불과하다”

Shawn Chase 2017. 8. 2. 21:07

                                        


북한이 도발을 거듭할 수록 국제사회의 이목은 중국에 쏠린다. 중국이 지금보다 더 적극적인 입장을 취하면 북핵 문제 해결의 돌파구가 마련될 수 있다는 믿음때문이다. 하지만 중국의 실제 행동은 그런 기대에 못미치는 게 사실이다. 때로는 북한을 두둔하거나 보호하는 듯한 모습을 보일 때면 등장하는 것이 북한과 중국의 혈맹론이다.    
 

중국 화둥사범대 선즈화 교수 인터뷰
“사드 보복은 민족주의에 편승한 것”
“中이 한반도 전쟁 미ㆍ일보다 더 우려”

선즈화(沈志華) 화둥사범대 교수는 중앙일보와의 인터뷰에서 "북·중 혈맹 개념은 만들어진 신화에 불과하다"며 "국가 이익이 상반되기 때문에 (북한은 중국에게) 오히려 잠재적인 적국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그는 또 고고도미사일방어(THAAD·사드)체계 보복조치와 관련해 "민족주의에 편승해 국민감정을 선동하는 정책은 대단히 위험하고 잘못된 것"이라며 "한국에서 반중감정을 불러일으키고 북한만 이롭게 하는 악수"라고 강조했다. 선 교수는 북·중 관계를 방대한 자료에 의거해 실증적으로 연구해 온 중국 역사학계의 권위자다. 
선즈화 교수

선즈화 교수

 
-간혹 중국이 북핵 문제 해결에 소극적인 자세를 보이는 것을 놓고 한국에선 북·중 혈맹관계의 본질이 아직도 바뀌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보는 시각이 있다. 이에 동의하나.
 
"최근 『최후의 천조』란 저서를 새로이 펴냈는데 여기에 '혈맹은 신화에 불과하다'고 썼다. 그 신화는 김일성과 마오쩌둥(毛澤東)이 통치하던 시대에 만들어졌다.  그 신화는 이미 깨어진지도 오래다. 지금 시대에 혈맹 운운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혈맹이 신화에 불과하다고 보는 이유는
"북·중 관계가 그 좋다던 김일성-마오 시절에도 부침과 기복이 있었다. 양국 지도자간에 갈등과 불신도 존재했다. 가령, 1956년 11월 마오는 당시 이런 말을 한다. '내가 보건대 김일성은 너지가 될 것이다. 너지는 실패했지만 김일성은 성공할 수도 있다.' 마오는 너지 임레 전 헝가리 총리처럼 김일성이 사회주의 진영에서 이탈을 시도할 것으로 보고 이를 절대로 용인해선 안된다고 생각했다. 실제로 그런 일이 일어나지는 않았지만, 김일성이 생각을 바꾸지 않으면 조선의 지도자를 바꾸는 ‘적극적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도 생각했다. 나중에 김일성이 마오의 이같은 발언을 전해듣고 불같이 화를 냈다는 기록도 남아 있다. 이런 관계를 혈맹이라 할 수 있나. 북·중이 혈맹처럼 보인 것은 갈등과 불만이 있어도 외부를 향해 일절 표출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대신 '피로 맺어진 사이'만 강조하고 끊임없이 선전해 사람들로 하여금 그렇게 믿게 했다. 그건 이유가 있다. 미국이라고 하는 공통의 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적에게 아군 내부의 갈등과 분열을 드러내면 안된다는 이유에서였다. 그런 과정에서 혈맹 신화가 정착된 것이다."  
 
-하지만 마오와 김일성 시대의 관계가 돈독했던 건 사실 아닌가.  
 
"특수관계였던 건 사실이다."  
 
-어떤 점에서 특수했나. 
"그건 마오가 김일성이 원하는 것은 뭐든지 다 들어줬기 때문이다. 북한은 이런 점을 잘 이용해 이익을 극대화했다.마오는 김일성에게 쌀이든 땅이든 사람이든 모두 다 줬다. 쌀은 경제원조를 말하는 것이고, 사람은 6·25 참전을 말한다. 땅은 1962년의 북·중 국경획정이다. 그 때 백두산(중국명 창바이산) 천지를 비롯해 상당히 많은 영토를 중국이 양보했다. 김일성은 대단히 흡족해했다. 이 때가 북·중 관계의 피크였다. 이런 관계는 일반적인 국가간의 관계에선 유례가 없는 것이다. 더구나 작은 나라(북한)가 큰 나라(중국)를 제어하고 통제했다는 점에서 개꼬리가 몸통을 흔드는 '미파요구(尾巴搖狗)현상이 북·중 관계에서 일어났다.  "
 
-마오는 왜 김일성에게 모든 것을 줬나.  
 "지정학적 이유가 크다. 청·일 전쟁때부터 북한이 감기에 걸리면 중국이 기침을 한다고 했다. 마오는 북한과 중국의 관계를 전방(북한)과 후방(중국)의 관계로 보고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중국을 천조(天朝), 즉 봉건시기의 중앙왕조로 인식하고 북중 관계를 천조-주변속국 관계로 보는 마오의 전통적 사고방식도 작용했다. 하지만 그런 관계는 마오의 사망과 함께 모두 깨진다. 1985년 김일성이 미그기를 중국에 보낼테니 수리해 달라고 했다. 중국은 수리비를 요구했다. 하지만 김일성은 '마오가 준 선물인데 끝까지 책임져야지 웬 수리비를 요구하냐'며 불쾌감을 감추지 않았다. 덩은 '우리는 (개혁 개방으로) 도급경영을 도입했다. 군수업체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돈을 받아야 한다'고 말했다. 마오 시대의 북·중 관계가 깨어졌음을 상징하는 사례였다. 그 뒤 결정적으로 한중수교를 거치면서 혈맹이든 특수관계든 모두 깨졌다. 지금 시대에 혈맹 운운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여전히 북중 특수관계를 얘기하는 사람들이 많지 않나.  
 
"어려울 때마다 도와주곤 하기 때문에 그렇다. 많은 사람들이 중국은 북한을 마땅히 지원해야한다고 말하는 데 이건 북중관계의 객관적 본질을 모르고 하는 소리다. 동맹관계가 성립하려면 이해관계가 일치해야 하는데 중국과 북한의 이해관계는 오히려 상반된다. 중국은 개방발전이 필요하므로 미국과의 안정적인 관계 유지가 가장 중요한데 북한은 미국과 적대국가다. 경제적으로도 중국은 시장경제지만 북한은 여전히 폐쇄경제, 사회주의 경제다.  
 
최근까지 이런 관계를 정확히 보지 못하고 막연히 관성에 의해 북한을 지원하는 경향이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그런데 시진핑(習近平) 주석은 비교적 냉정하게 이해를 하는 듯 하다. 북·중 관계를 현대적인 의미의 국가 대 국가의 관계로 만들어야 한다. 이게 안되면 과거처럼 늘 모호한 관계가 되고, 문제 해결이 안된다. 그럴때에만 한반도 문제 해결도 가능하고 동북아 지역의 미래가 있다. "  
 
-하지만 지금도 중국은 북한에 대한 원유 공급 제한 등에 반대하고 있지 않나.
 
"내가 보기에 중국은 큰 걱정거리가 있다. 한반도에서 군사충돌이나 전쟁이 일어나는 것을 대단히 우려한다. 한반도는 중국의 앞마당이다. 미국으로부터는 멀고 일본도 바다를 사이에 두고 있으니 중국만큼 절박하지는 않다. 그래서 북한을 전쟁 외엔 출구가 없는 상황으로 몰아넣고 싶지 않은 것이다. 북한에 압력을 가하면서도 활로를 열어두려 한다. 북한이 죽음을 무릅쓰고 핵무기를 쏘는 상황이 오지 않는다고 장담할 수 있나. "
 
-중국은 한반도 통일을 원하지 않는다고 보는 한국인이 많다.  
 
"그렇지 않다. 하지만 중국이 바꿀 수 없는 입장이 하나 있다. 통일 이후에는 미군 주둔 필요성이 없어진다는 점이다. 그리고 통일을 전제로 반드시 비핵화가 되어야 한다. 1980년대에 통일 이후 한반도를 스위스처럼 영세중립화하는 방안도 제기됐었다. 나는 이것이 비교적 합리적이라고 본다. 유엔이 한반도의 안보를 보장하고 주변국이 군대를 파견할 필요가 없어지기 때문이다. 그럴때 중국의 동북지방과 러시아 원동지방까지 포함해서 이 지역이 크게 발전할 수 있다. "
 
-사드 문제가 한·중 관계 갈등을 일으키고 있다.  
 
"사드 자체는 그렇게 엄중한 문제가 아니라고 본다. 레이더 탐지 얘기를 많이 하는데 한국에 없어도 일본에 놔두면 그게 무슨 차이가 있나. 그래서 사드는 중국에 정말 새로운 위험을 가져오는 것은 아니라고 본다. 더구나 이런 방식으로 처리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다. 민간의 민족주의 정서를 선동해 한국 기업에 보복을 가하는 것은 잘못이다. 이는 한국 민심의 반발을 일으키고 한·중 관계를 이간시켜 북한만 이롭게 할 뿐이다. 내 말이 중국 정부의 입장과 다르게 들릴지 모르지만 이 말은 해야겠다." 
 
☞선즈화는=중ㆍ소 관계사, 북중 관계, 한국전쟁 발발과정 등 분야의 석학이다. 옛 소련의 기밀 문헌을 자비 140만위안(현재 한국돈 약 2억3000만원)을 들여 전문 입수해 중국에서 처음으로 6.25 남침을 실증적으로 밝혀냈다. 이후 중국과 미국, 옛 동구권 국가들의 사료 연구로 범위를 넓혔다. 그는 "인민일보 온라인 매체에서 6.25 남침을 뒷받침하는 글을 실었다가 삭제하기도 했지만 6·25에 대한 중국 정부 입장도 사실을 중시하는 방향으로 바뀌고 있다"고 말했다.
베이징=예영준 특파원 yyjune@joongang.co.kr

[출처: 중앙일보] “북ㆍ중 혈맹 개념은 만들어진 신화에 불과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