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고시간 | 2015/09/09 16:29
"미국 프로기사가 목표지만 서울에 자리 잡을 수도 있어"
(베이징=연합뉴스) 천병혁 기자 = "두 가지 기분이 동시에 드네요. 이길 수도 있던 바둑을 실수로 져서 너무 아쉽지만 그런 유명한 기사들과 대국했다는 사실은 개인적으로 무척 영광입니다."
2015 삼성화재배 월드바둑 마스터스 본선 32강전이 벌어진 9일 중국 베이징 JW 메리어트 호텔 대국장에는 갈색 머리 하얀 피부의 이방인 한 명이 눈길을 끌었다.
삼성화재배 본선에 서양인 최초로 참가한 벤저민 록하트(22·미국) 아마 7단이다.
삼성화재배는 2013년 한국, 중국, 일본, 대만 4개국을 제외한 나라 출신 선수들만 참가하는 예선전인 '월드조'를 신설했다.
그동안 월드조에서는 3년 연속 미국 대표가 1위를 차지해 본선에 올랐지만 앞서 2년간 참가자는 중국계 미국인이었다.
즉 록하트는 삼성화재배 본선에 진출한 최초의 서양인이다.
하지만 그는 32강 조별리그에서 2연패로 탈락했다.
유일한 아마추어 기사이기에 충분히 예견된 결과였지만 록하트는 "오늘 요다 노리모토 9단과 대국은 이길 기회가 몇 번 있었지만 그만 실수를 저질러 지고 말았다"고 아쉬워했다.
그러나 그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프로기사들이 모인 세계대회 본선에 출전해 그런 사람들과 대국했다는 사실은 개인적으로 무척 영광스러운 일"이라고 말했다.
미국 뉴욕 브루클린 출신인 록하트는 브라운대학 수학교수였던 아버지의 영향으로 9살 때 처음 바둑 돌을 잡았다고 한다.
고교를 졸업하고는 대학 대신 바둑 인생을 살기로 결심하고 2012년 서울로 와 현재 충암바둑도장에서 공부하고 있다.
"고교를 졸업하고 대학에 진학하고 나중에 직장을 구하는 평범한 삶을 살고 싶지는 않았다"고 밝힌 그는 "바둑을 본격적으로 공부하고 싶었는데 마침 서울에 지인이 있어 한국으로 오게 됐다"고 전했다.
향후 록하트의 1차적인 목표는 미국바둑협회 소속 프로기사가 되는 것이다.
최근 미국바둑협회도 1년에 1명씩 프로기사를 선발한다.
그러나 록하트는 "미국바둑협회가 있긴 하지만 사실 큰 활동을 하지 않고 있다"면서 "내가 세계대회 본선에 진출했다는 소식조차 회원들에게 알리지 않았다"고 아쉬움을 드러냈다.
그는 "미국에서 바둑 활성화에 나서는 것이 내 목표이긴 하지만 정 여건이 되지 않으면 서울에 아예 뿌리를 내릴 수 도 있다"고 전했다.
생애 처음 출전한 세계대회 본선에서 2연패에 그치고 말았지만 록하트는 "본선 출전 사실을 부모님께 알렸을때 너무 좋아하셨다"고 환한 미소를 지었다.
shoeless@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