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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핫이슈 분석] 트럼프가 자동차·철강 거론하며 FTA 재협상 언급한 까닭은... "車공장 더 짓고, 강관은 그만 보내라"

Shawn Chase 2017. 7. 4. 23:36

세종 이재원기자, 조귀동 기자


입력 : 2017.07.04 05:51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재협상이 필요하다는 주장의 근거로 자동차와 철강 산업의 불공정 무역을 언급하며 관련 산업계가 혼란에 빠졌다. 자동차 업계에서는 한국의 수출 증가율보다 수입 증가율이 높다는 논리 등을 앞세워 FTA가 한국에만 유리하게 작용하지 않았다고 주장한다. 철강업계도 중국산 철강이 한국을 우회해 수출한 경우는 전체 수출 물량의 2%에 불과하다며 전혀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우리만의 논리로 미국의 논리를 반박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 한미 FTA 재협상이 현실이 될 경우 미국이 공략할 약한 고리를 찾아 대비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미국이 한국의 주장을 그대로 받아들여 FTA 재협상 카드를 접을 가능성은 크지 않기 때문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달 29일(현지시각) 백악관에서 악수를 하고 있다./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달 29일(현지시각) 백악관에서 악수를 하고 있다./연합뉴스

◆ 대미 무역흑자 89%가 자동차... “공장 더 지으라는 얘기일 것”

지난해 미국 자동차 수입량(6만99대)은 전년 대비 22.4% 증가했다. 반면 한국산 자동차의 미국 수출량(94만6432대)은 11.2% 감소했다. FTA가 체결된 이후 5년 동안 추이를 보면 2016년 수출은 2011년 대비 61%가 증가했고, 수입은 340%가 증가했다. 국내 자동차업계의 논리다. 언뜻 FTA의 과실은 미국이 더 누린 것으로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미국 입장에서 이는 별 의미가 없는 숫자다. 우선 절대 규모가 크게 차이가 난다. 한국의 지난해 대미 자동차 수출 대수는 수입의 16배에 달한다. 증가율을 내세워봐야 여전히 압도적인 차이를 설명하기 어렵다.

더 큰 문제는 자동차가 대미 무역흑자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는 점이다. 한국은 지난해 미국과의 교역에서 232억 달러(약 26조 6000억원)의 흑자를 기록했다. 이 중 부품을 포함한 자동차 산업 흑자는 89%인 206억 달러에 달한다. 228억 달러를 수출하고 22억 달러를 수입한 것인데 미국 입장에선 심각한 무역 역조다. 자동차 산업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는 미국의 무역 역조를 개선하기 어렵다고까지 할 수 있다.

일각에서는 트럼프 대통령이 미국산 자동차의 수입에 걸림돌이 되는 비관세 장벽을 줄이는 데 목적이 있다는 분석도 나왔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한국의 수입 규제 상당수는 철폐됐고, 미국이 한국에 자동차를 수출하는 데 걸림돌은 거의 없는 상황이라고 말한다.

예를 들어 주황색 방향지시등만 허용하는 한국의 규제가 빨간색도 쓰는 미국 브랜드에 비관세 장벽이라는 것은 실제로 작동하지 않는 규제다. 정부는 1년에 2만5000대 이하를 수입하는 미국 브랜드에 상당수 규제에 대한 예외를 허용해줬다.

미국 자동차업체들도 현재 비관세 규제가 그리 많지 않다고 본다. 미국 브랜드의 한 관계자는 “FTA 체결 당시 생각하지 못했던 전기차의 전파인증 등 몇가지 새로운 문제가 있지만, 트럼프 대통령이 FTA 재협상을 이야기 할만한 일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면서 “현재는 연간 2만5000대 이상 수입해 파는 브랜드도 없어 대부분 규제를 적용받지 않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결국 트럼프 대통령이 자동차 분야 한미 FTA 재협상을 거론하는 것은 다른 의도일 가능성이 크다. 전문가들은 미국에 공장을 더 지으라는 압박일 가능성이 크다고 분석한다. 조철 산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관세율 조정이나 비관세장벽 철폐가 미국 입장에서 현재의 무역 역조를 해결하는 데 거의 도움이 되지 않는다”면서 “한국 브랜드의 미국 현지생산이 최대치에 달하면서 정체됐고 그러는 동안 수출은 계속 늘어난 점에 주목해야 한다”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당선되고 일본 도요타 자동차는 100억 달러(약 11조 5000억원)를 투자해 생산 설비를 확충하겠다는 계획을 내놨다. 현대·기아차도 31억 달러(약 3조5000억원)를 투자하겠다고 발표했지만, 생산 능력 확충이 아닌 연구개발(R&D), 생산설비 및 환경 개선에 쓰기로 했다. 생산과 직접 고용 창출 효과가 크지 않다.

◆ 철강 문제 핵심은 ‘강관’... ”반덤핑 공세 계속될 것”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달 30일 문재인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마치고 한국을 경유한 중국산 제품의 우회 수출을 막아달라고 요구한 것은 백악관의 철강 문제에 대한 시각을 극명하게 보여준다. 실제 중국산 제품의 우회 수출 비중은 2%에 불과하다. 하지만 문제는 미국 철강 회사들이 한국의 수출 관행에 대해 문제 삼는 핵심 사안 가운데 하나다.

한국산 철강 수입에 대한 미국의 시각은 5월말 미국철강협회(American Iron Steel Institute)가 윌버 로스 상무장관에게 보낸 공개 서한에서 잘 드러난다. 이 서한에서 한국이 언급되는 회수는 12번으로 중국(30회) 다음으로 많다. 그 다음으로는 유럽(5회), 일본(2회). 인도(1회) 순이다.

이 서한에서 한국이 가장 먼저 언급된 항목은 중국산 철강을 중간재로 삼은 가공품 수출이었다. 미국철강업체는 “값싼 중국산 제품을 수입, 가공한 뒤 미국에 헐값에 파는 경우가 많아지고 있다”며 “터키는 중국산 빌릿(billet·소강편, 크기가 상대적으로 작은 철 덩어리)을 수입해 철근 등을 만들어 수출하고 있고, 한국은 중국산 냉연강판을 수입해 강관을 만들어 미국에 밀어내고 있다(being dumped into the U.S. market)”고 주장했다. 결국 트럼프 대통령이 문제 삼는 것은 덤핑 판매되는 중국산 중간재를 활용해 미국 시장에 덤핑 판매하는 한국의 강관 회사들인 것이다.

2016년 한국산 철강의 대미 수출액은 23억3000만달러로 전체 대미 수출의 3.5%를 차지했다. 전체 대미 수출 가운데 철강이 차지하는 비중은 2014년 6.1%까지 늘었다 빠르게 감소하고 있다. 미국 상무부, 국제무역위원회(ITC) 등이 반덤핑 판정을 활용, 고율의 관세를 잇따라 부과한 데 따른 것이다.

수출 비중이 이렇게 줄었어도 트럼프 행정부 들어서서 미국의 자국 철강업체 편들기는 더 심해지고 있다. 정은미 산업연구원 산업경쟁력연구본부장은 “예상치 못한 품목까지 반덤핑 관세 부과 대상이 되고 있다”며 “세분화된 시장 별로 추가 덤핑 판정 및 상계관세 부과 조치가 더 이뤄질 가능성이 높다”고 우려를 말했다.

미국철강협회는 5월말 서한에서 “중국산 저가 제품이 국내 시장으로 유입되자, 한국 업체들은 미국 시장을 대안으로 삼아 헐값에 수출을 하고 있다”고 서술했다. “한국 업체들도 정부 보조금을 대규모로 받고 있어 덤핑수출이 가능하다”고 이들은 주장했다.

현재 미국 당국이 가장 문제 삼는 것은 송유관 등에 쓰이는 강관이다. 5월 24일 미 상무부가 무역확장법 232조를 철강 제품에 적용가능한 지 여부를 놓고 개최한 공청회에서 미국측 관계자들은 주로 강관을 문제 삼았다. US스틸 대표는 “한국 기업들이 원유, 천연가스 채취에 사용되는 유정용강관(OCTG) 시장을 장악하고 있다”고 말했다. 레오 제러드 미국 철강노조 위원장은 “한국이 OCTG 제품을 덤핑하는 바람에 미국 공장이 제대로 가동되지 못하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정 본부장은 “강관의 경우 중국, 한국, 일본 회사가 많이 생산하는 데 중국은 이미 덤핑 판정을 받아 고율의 관세를 부과 받았고, 일본은 특정 제품군에 집중되어 있는 상황”이라며 “한국 회사들이 몇 해 전부터 미국 철강기업의 집중 공격 대상이 되어 있다”고 설명했다. 미 국제무역위원회는 4월 OCTG에 대해 반덤핑 규정을 특수하게 적용해 관세율을 최대 3배로 올렸다. 지난달 2일에는 냉간압연강관 제품에 대해서 산업피해 예비 판정을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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