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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태원의 묘수… 韓美日 연합으로 도시바를 낚다

Shawn Chase 2017. 6. 22. 02:43

박건형 기자


입력 : 2017.06.21 19:39


SK하이닉스가 일본 최대 반도체 기업이자 낸드플래시<키워드>의 원조인 일본 도시바 메모리 사업부 인수에 성공했다. 이로써 메모리 반도체 세계 2위인 SK하이닉스는 세계 1위 삼성전자를 따라잡을 수 있는 발판을 마련했다. SK하이닉스는 당초 유력 후보가 아니었지만 일본 정부, 미국 사모펀드 베인캐피털과 함께 한·미·일 연합을 결성하면서 막판 뒤집기에 성공했다. 2011년 SK하이닉스를 인수하며 반도체 사업에 뛰어든 최태원 SK그룹 회장의 승부수가 다시 한번 빛을 발한 것이다. 2조엔(약 20조5600억원)의 인수 대금 중 SK하이닉스는 3000억엔(약 3조850억원)을 부담한다. 한국 기업의 일본 기업 인수로는 역대 최대 규모이다.

◇지분 인수 대신 투자 방식··· 최태원의 승부수 통했다

도시바는 “21일 오전 이사회를 열어 SK하이닉스가 참여한 한·미·일 연합을 메모리 사업부 매각의 우선 협상 대상자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도시바는 오는 28일 열리는 주주총회 이전까지 계약을 체결할 방침이다. 교도통신은 “세부 매각 조건 협의, 도시바가 사업하고 있는 각국의 반(反)독점 심사 등을 거쳐 내년 3월까지 매각 작업을 완료하는 것이 도시바의 목표”라고 보도했다. 도시바는 원전 사업에서 입은 7조원대의 손실로 인한 자본 잠식을 해결하기 위해 올 초부터 반도체 사업부 매각을 추진해왔다. 인수전에는 삼성전자를 제외한 전 세계 반도체 업체 대부분과 사모펀드들이 뛰어들었다.

조선DB


한·미·일 연합은 도시바가 보유한 핵심 반도체 기술의 해외 유출과 매각 후 인력 구조조정을 막으려는 일본 정부가 주도했다. 아사히신문에 따르면 이 연합에는 SK하이닉스와 베인캐피털, 일본 산업혁신기구·일본정책투자은행·미쓰비시도쿄 UFJ은행, 미국 사모펀드 콜버그크래비스로버츠·도시바 본사 등이 참여했다. 이들은 특수목적회사를 설립한 뒤 도시바 반도체 사업부를 인수할 계획이다. 유력 후보였던 미국 반도체 회사 브로드컴 컨소시엄은 한·미·일 연합보다 2000억엔 많은 금액을 제시하고도 고용 승계가 확실치 않다는 이유로 탈락했다.

SK하이닉스는 지분 인수 대신 3000억엔을 특수목적회사에 융자해주는 방식으로 인수에 참여한다. 직접 투자에 나설 경우 독과점 심사에 더 많은 시간이 소요된다는 점과 외국 반도체 기업으로의 매각을 반대하는 일본 여론을 감안해 이같이 결정했다. SK하이닉스 관계자는 “최태원 회장이 4월 일본을 찾아 도시바 경영진과 면담하는 등 인수 방안을 모색하는 과정에서 찾아낸 묘수”라고 말했다.

일본 언론들은 도시바를 당분간 기존 경영진이 맡아 운영할 것으로 내다봤다. 하지만 매각이 완료된 뒤에는 SK하이닉스가 경영에 참여할 가능성이 높다. 한·미·일 연합에서 반도체 회사는 SK하이닉스가 유일하다. 반도체 업계의 한 관계자는 “SK하이닉스를 제외한 다른 기업들은 재무적 투자자이기 때문에 장기적으로 지분을 매각할 수밖에 없다”면서 “한·미·일 연합에 참여해 있는 SK하이닉스는 추가 지분 매입 때 유리한 입장에서 협상할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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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전자·SK하이닉스 양강 체제 확고해질 듯

SK하이닉스는 도시바 인수를 통해 약점이었던 낸드플래시 분야 기술력과 시장점유율을 동시에 끌어올릴 수 있게 됐다. SK하이닉스는 세계 D램 시장에서는 1분기 27.9%의 점유율로 삼성전자(43.5%)와 함께 확고한 양강 체제를 구축하고 있다. 반면 낸드플래시에서는 11.4%의 점유율로 삼성전자(36.7%), 도시바(17.2%), 웨스턴디지털(15.5%)에 이어 4위에 머물러 있다. 하지만 도시바와 하이닉스의 점유율을 합치면 28.6%로 단숨에 2위로 뛰어오른다.

또 도시바는 1987년 세계 최초로 낸드플래시를 상용화한 기업으로 다수의 원천 특허를 보유하고 있다. 세계 1위인 삼성전자도 도시바에 상당 수준의 특허료를 지불하고 있는 상황이다. 반도체 업계의 한 관계자는 “SK하이닉스가 도시바와의 기술협력 등을 통해 삼성전자보다 6개월 이상 뒤처진 것으로 평가되는 낸드플래시 기술력을 획기적으로 향상시킬 수 있을 것”이라며 “이렇게 되면 메모리 반도체 시장에서의 한국 기업들의 영향력이 더욱 강화될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독과점에 대한 세계 각국의 견제가 더 심화될 수 있다는 점을 우려하는 시각도 있다.

한편 도시바와 일본 합작 공장을 운영하고 기술을 공유해온 미국 웨스턴디지털은 이날 성명을 내고 “도시바가 우리 동의 없이 메모리 사업부를 매각할 권리가 없다”고 주장했다. 웨스턴디지털은 지난 14일 도시바에 독점교섭권을 주장하면서 미국 캘리포니아 법원에 매각 중단 소송을 제기했다.

:낸드 플래시(Nand Flash)
전원이 꺼져도 저장된 데이터가 계속 보존되는 메모리 반도체. 스마트폰 등 각종 IT 기기의 주(主) 저장 장치로 쓰인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7/06/21/2017062102984.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