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가전

[이태억의 과학에세이] 우리는 4차산업혁명시대에 걸맞는 데이터를 생산하고 있나

Shawn Chase 2017. 6. 17. 22:33

입력 : 2017.06.16 06:00:00


이태억 KAIST 교육원장/대한산업공학회 회장


요즘 4차산업혁명에 대한 담론이 뜨겂다. 사실은 4차산업혁명보다 디지털 변혁이 더 적합한 용어일 수도 있다. 세상이 데이터로 넘친다. 컴퓨터과학의 눈에는 세상 만물이 데이터와 연산, 즉 컴퓨팅으로 보인다. 우리 일상은 이미 데이터와 컴퓨팅이 지배하기 시작했다. 영화 '매트릭스' 속의 가상 세계가 우리가 사는 현실 세계일지도 모르겠다. 인류는 이제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스마트폰에 연결되어 뭔가 하고 있다. 지하철에서, 길에서 이전처럼 얌전히 가는 사람이 드물다. 귀에 뭔가를 연결하고 좀비처럼 혼자서 중얼거리거나 손바닥만 보고 걷는다. 많은 사람이 온라인, 모바일 게임 속에 자신의 캐릭터를 키우면서 살아간다. 최근 스마트폰에 들어오기 시작한 인공지능이 단순히 비서로 머물지 않고 디지털 세상에서 자신의 존재를 대변하게 될지도 모른다.

항온항습실에 고이 모시던 거대한 메인프레임 컴퓨터 시절을 돌이켜 보면 변해도 너무 변했다. 1980년대 수백억원을 호가하던 메인프레임 컴퓨터보다 더 강력한 컴퓨터가 이제 사무실 책상, 가정, 무릎 위를 거쳐 이제 손바닥으로 들어왔다. 1990년대만 해도 수천만원이 넘던 고성능 그래픽 워크스테이션은 이제 PC에게 그 자리를 내어주었다. 과거 크고 신뢰성이 낮고 고가였던 센서는 이제 신뢰성 및 정확도, 초소형화, 저가를 무기로 우리 일상으로 들어왔다.

스마트폰에도 카메라를 포함한 센서가 10개 이상 장착되어 우리 일상을 지키고 있다. 가전제품, 차량, 휴대폰을 포함한 많은 기기와 곳곳에 장착된 센서들은 24시간 데이터를 생산하고 있다. 더구나 센서들이 와이파이, 인터넷에 초고속으로 연결되어 컴퓨터에 오감을 제공하고 있다. 축적된 막대한 데이터를 누군가 처리하고 분석해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고 이상 탐지, 분류, 진단, 예측, 최적화 등 인간의 지능을 모사하고 있다. 수십 년 전부터 선각자들이 외칠 때 다소 황당하다고 의심하던 사물인터넷(IoT: Internet of Things), 인공지능이 이제 현실이 되고 우리 일상에 들어왔다. 가히 초연결사회, 초지능 사회라 할 수 있다.

드디어 판도라의 문을 열고 만 것인가? 20~30년 이후는 상상하기도 쉽지 않다.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 'A.I.', '터미네이터', '매트릭스', '아이로봇' 등에서 그린 암울한 미래가 상상 속에만 머물 것 같지 않다. 10여 년 전 생물과 기계가 결합하고 초연결되는 신개념 인공지능 기술이 인간을 초월하는 특이점이 온다고 예언한 커즈와일의 주장이 이제는 딴 세상 이야기 같지 않다.

의사, 간호사, 의료검사기기, 변호사, 판사, 검사, 증권거래소, 금융투자전문가, 신용카드회사, 교수 및 연구원, 실험 장비, 유통업체, 온라인 쇼핑몰, 제조기업, 공정 장비, 가전제품, 스마트폰들이 막대한 양의 문서, 기록, 논문, 데이터들을 생산하고 있다. 정보화, 자동화, 네트워크화 덕분이다. 사람이 손으로 작성한 일반 문서도 급속히 발전한 글자 인식 기술, 자연어 처리기술 덕분에 디지털 데이터로 변환되어 축적되고 있다. 축적된 데이터는 통계, 확률, 빅데이터, 데이터마이닝, 머신러닝, 인공지능 기술로 새로운 가치와 비즈니스를 창출하고 있다. 디지털 데이터와 인공지능을 활용한 새로운 서비스, 신개념 기술 벤처가 우후죽순처럼 출현하고 있다. 데이터가 지능이 되고 돈이 되는 세상이다.

메인프레임 컴퓨터로 세상을 호령하고 PC를 출현시켰고 해고를 모른다던 IBM은 1990년대 이후 미니컴퓨터로의 다운사이징, PC, 윈도우 운영체제 등에 밀리다가 서비스 중심으로 사업을 재편해 재기했다. 이제 슈퍼컴 왓슨과 인공지능기술을 이용하여 의료, 법률, 금융 등의 인공지능 서비스 시장을 창출하고 사업의 중심을 옮기고 있다. 구글은 막대한 데이터와 자금을 바탕으로 알파고로 보여주었던 인공지능 기술로 무장해 인공지능 플랫폼 서비스를 확산시키고 있다. 우리 일상과 세상이 여기에 연결되고 의존하게 될 판이다. 아마존도 인공지능 서버를 기반으로 무인 상점인 아마존고, 인공지능 비서 알렉사, 에코를 만들어 서비스하고 있다. 애플, 삼성전자 등의 스마트폰 제조사들은 인공지능을 탑재하고 국내외 통신사들도 앞 다투어 인공지능 스피커를 출시하고 있다. 알리바바 마윈 회장도 비즈니스 개념이 전자상거래가 아니라 데이터 사업이라고 선언했다. 우버, 에어앤비 등의 거대한 공유서비스가 출현했고 수많은 신개념 서비스 비즈니스가 폭발적으로 생겨나고 있다. 과연 새로운 산업, 새로운 일자리가 생겨나는가?

산업혁명 이후 기술은 새로운 수요, 비즈니스, 산업을 창출하여 수십만년 이상 채집, 수렵, 농경에 머물던 인류를 구제해 오늘날 산업사회, 문명사회로 인도했다. 그 과정에서 원료와 시장을 확보하기 위한 식민지 확보, 제국주의가 근대사를 피로 물들였다. 오늘날 세계 형국이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 초고속 인터넷을 통한 디지털 서비스는 국경을 넘어 각 개인의 손바닥과 일상으로 침투하고 있다. 규모의 경제를 이루어야 하는 인터넷 플랫폼 서비스의 속성상 끊임없이 남녀노소 구분 없이 무차별적으로 전 세계로 시장을 확대하고 있다. 우리 모두가 거대 기업의 인공지능 서버에 의존하게 될지도 모른다. 막대한 데이터와 연산능력에 의해 좌우되는 인공지능의 능력과 관련 산업은 국가 간, 기업 간 격차가 갈수록 확대될 것이다. 규제와 무역장벽으로 막을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인터넷 디지털 서비스, 인공지능 산업의 경쟁력은 우선 규모의 경제에서 나온다. 축적한 데이터가 많을수록 지능이 높아진다. 핵심서비스는 무상으로 제공하고 광고 등의 부가서비스에서 수입을 창출하는 인터넷 플랫폼 서비스의 속성상 고객이 많을수록 유리하다. 국내 시장에 안주하는 비즈니스로는 생존조차 어렵다. 세계화가 필수조건이다. 그러나 영어를 모국어처럼 구사하는 인재가 별로 없는 우리나라 기업에는 넘기 어려운 벽이 될 수 있다. 막대한 데이터가 원재료인데 각종 규제에 막혀 있다. 의료정보, 고객정보는 벽장 속에 갇혀 공유, 활용되지 않는다.

다음으로 중요한 것은 데이터의 품질이다. 우리 기업들, 정부 기관들도 데이터는 많이 모은다. 그러나 정작 어떻게 사용, 활용될지를 면밀하게 생각하지 않고 설계, 수집된 데이터는 유용성이 크게 떨어진다. 엉터리 데이터로는 혼란스러운 결과만 나올 뿐이다. 우리 대학에서 일부 학과를 제외하고는 통계, 확률, 데이터 처리 및 분석에 대해 거의 가르치지 않는다. 머신러닝, 인공지능도 핵심 개념은 이들에 기반을 두고 있다. 본질과 원리를 모르는데 제대로 된 지능이 만들어질 수 없고 국제 경쟁력은 말할 필요도 없다. 의사, 법률가, 교육자, 금융전문가 등이 생산하는 데이터의 질은 이들의 전문성과 실력에 달려 있다. 우리나라의 이러한 전문직들은 소위 공부 잘하는 최우등 집단이다. 그런데 이들이 일상의 업무에서 얼마나 품질 좋은 데이터를 생산하는가? 환자가 몇 분도 진료 받지 못하고 폭증하는 판결과 사건에 허덕이는 판검사, 변호사들은 과연 건당 얼마나 시간을 들이는가?

십수 년 전 모 부장검사에서 들은 정보는 과연 놀랄 만했다. 지금은 물론 많이 개선됐다고 믿고 싶다. 과연 이들이 생산한 문서와 데이터는 믿을 만한가? 게다가 국내용이다. 과연 우리 인공지능은 무엇을 학습할 것인가? 잘못된 배움은 아니 배움만 못하다고 했다. 고치기는 더욱 어렵다. 우리 사회 각 방면의 전문가들의 서비스 전문성과 품질을 제고해야 이들이 생산한 데이터와 이를 기반으로 하는 인공지능의 실력도 좋아지고 세계와 경쟁할 수 있게 된다. 일선 학교에서 통계 및 확률, 데이터분석의 기초 개념을 필수로 가르쳐야 한다.

마지막으로 우리가 지금까지 경험해보지 못했던 새로운 융합적 문제와 비즈니스를 찾아내고 정의, 해결하는 능력이 중요하다. 잘 설계된 문제의 정답만 찾는 교수와 학생으로는 새로운 세상의 창의적 문제를 발굴하고 정의하는 통찰력, 사고력이 부족할 수밖에 없다. 어떤 인재를 어떻게 가르쳐야 할지 완전히 새로운 틀에서 생각하고 준비해야 할 때다.

우리는 이미 소프트웨어(SW) 산업의 실패를 경험한 바 있다. 시대에 맞지 않는 규제를 과감히 풀고 이념논리를 넘어서 새로운 변혁의 세상에서 생존을 위한 전략을 신중하게 고민해보아야 한다. 시간이 많지 않다.

※ 외부필자의 원고는 IT조선의 편집 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이태억 교수는 KAIST 산업 및 시스템 공학과 교수, 교육원장이며 대한산업공학회 회장입니다. 대통령직속 규제개혁위원회 위원, 교육부 대학구조개혁위원회 위원, 신성장동력기획단 위원, KAIST 정보시스템연구소장 등을 역임했습니다. 자동화, 정보기술 응용, 산업지능 분야 전문가이며, 일방전달방식강의에서 탈피하는 수업방식 혁신을 통한 교육혁신, 교육의 기회균등 실현을 위한 온라인대중공개강좌(MOOC) 확산에 노력하고 있습니다. 서울대, KAIST, 오하이오 주립 대학에서 학·석·박사 학위를 받았으며 미래부 및 한국연구재단의 '이달의 과학기술자상'을 수상했습니다.